<영상보도가이드라인> 지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올해로 ‘영상기자상’ 심사 4년차가 되었다. 심사위원으로서의 소감을 밝히자면, 정말 즐겁고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이다.
영상보도를 ‘뉴스현장 속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한 서태경 심사위원장님 표현에 200% 공감한다.
엄정한 심사를 위해 감정적 몰입을 경계하며 출품작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영상을 가득 채운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일은 다반사다. 빼어난 영상미는 물론이고, 일상의 편견을 뒤흔드는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마치 정교하게 수놓은 칼집 속에 든 예리한 검과도 같다. 잘 만든 영상보도 한 편에 눈 호강은 물론이고, 정신세계까지 풍요로워진다.
영상기자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와중에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다. 바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 위배되는 영상보도들이 더러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가이드라인에 위배되는 지점들은 대체로 일정한데, 지면 관계상 두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자료화면 사용시 반드시 사용표기해야
먼저, 자료화면 표시 문제다. 자료화면 사용에 관한 기준은 분명하다. 관련 없는 자료는 사용해서는 안 되며, 사용된 자료영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료화면’이라는 문구와 함께 해당 영상의 출처, 촬영일시 및 장소, 제공자 정보 등을 가급적 자세하게 표시해야 한다. 외부 제공 자료는 물론이고, 방송사 DB 자료 재활용에도 자료화면 표시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다수 방송들은 자료화면 표시에 꽤나 인색하다. 공적서에 자료화면 사용 비율이 상당하다고 기재되어 있음에도, 정작 영상에서 자료화면 표시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자료화면 표시를 일관되게 안 하는 경우보다 선택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부 영상에 표시가 있는 것을 보면 인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자료화면 표시누락, 뉴스신뢰도의 문제
자료화면 표시 누락은 단순한 가이드라인 위반 문제를 넘어선다. 일종의 투명성 내지 정확성 문제로서 보도윤리의 핵심적인 사항 위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학술논문으로 치면 인용 표시를 정확히 달지 않은 것과 유사할 수도 있다. 심사위원이기 전에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확한 자료화면 표시가 뉴스에 대한 신뢰도를 오히려 높이는 방안이 되리라고 본다.
초상권 보호, 경험이 아닌 '가이드라인'에 따른 판단 필요
다음으로, 초상권 문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영상기자들의 초상권 관련 가이드라인에 대한 인식에는 두 가지 편향이 존재한다. 주체 면에서 연차가 낮은 기자일수록 초상권에 대한 인식이 높다. 객체 면에서는 촬영 대상이 일반인의 평범한 일상생활일수록 초상권 침해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경험 많고 유능한 기자일수록 가이드라인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연차가 낮은 기자만 봐야할 무엇이 아니다. 모두의, 그러니까 연차가 높고 낮은 모든 영상기자들의 가이드라인이 되면 좋겠다.
기자들은 흔히 보도 내용이 부정적이지 않으면 일반인의 초상을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초상권을 포함하는 이른바 ‘인격권’에 대한 오해에 가깝다. 인격권을 흔히 ‘인격적 사항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 부른다.
인격권은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인격적 사항에 대한 촬영·작성·공표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그 주체에게 부여하는 권리다. 인격권 침해에서 당사자의 동의가 중요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평범한 시민의 일상적인 삶의 풍경 또한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좀 더 강고하게 형성되기를 바란다.
법을 지키라는 말처럼 식상한 것도 없다. 기왕 만들었으니까, 지켜야 하는 거니까, 안 지키면 상 못 받으니까 지키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겠다. 대신,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뭘 얻을 수 있을지를 역으로 묻고 싶다.
때로 지배적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편이 옳을 수도 있다. 인종 차별이 당연했던 1950년대 중반 미국 남부에서 로자 파크스는 그 당연했던 규범에 반기를 들었고, 그는 영웅이 되었다. 저항의 역설인 셈인데, 가이드라인이 정의롭지 못한 규범이라도 되는 것일까? 또,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영상 취재가 어려워질까? 가이드라인 제·개정에 참여했던 영상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쉽게 취재할 마음만 접으면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취재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요컨대, 가이드라인을 지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지키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윤리적 보도가 항상 좋은 보도는 아니지만, 좋은 보도는 항상 윤리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양재규 / 변호사, 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