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냉면과 가위
북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관계자가 서울에 왔을 때 일이다. 서울시내 모 갈비집에서 갈비를 먹고 냉면을 시켰다. 냉면이 나오고 예쁜 종업원이 가위를 들고 가까이 오더니 가위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민경련 관계자는 순간 당황하여 “어이쿠, 신변안전보장각서도 썼는데 내 거시기를 자르려나보다!”하고 그곳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런데 종업원은 가위를 냉면그릇에 넣고 냉면을 자르는 게 아닌가? 민경련 관계자는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북한에서는 냉면을 자르지 않고 먹는데, 남한에서는 냉면을 잘라먹는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벌어진 웃지 못 할 사건이었다.
제주도 장관급 회담 때 일이다. 장관급회담이 예정보다 늦어져 공동발표문을 작성하고 회담관계자들이 제주 공항으로 향했다.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고, 그들이 탑승할 비행기는 전세기가 아닌 일반인과 동승하는 비행기였다고 한다. 이들이 늦는 바람에 몇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항공사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사과를 하고 승객들의 양해를 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북측 관계자들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던 것이다. 나라의 중대사에 국민 개개인의 불편함 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북한에선 국가 중대사보다 개인의 사정이 우선시 되는 듯한 남한의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일간 북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초청으로 평양과 남포일대 남북협력 공단을 둘러보았다. 2001년 이후 두 번째 평양방문이었다. 지난번 방문(3월)때보다 날씨는 더 따뜻했고 만리향(수수꽃다리-라일락)의 향기가 그윽했다. 평양과 남포의 거리 모습도 조금은 더 활기차 보였다.
민경련 관계자 3명과 17명이나 되는 남측 경제인들이 함께 평양방직공단과 남포경공업종합공장을 둘러보는 일정은 무척이나 빠듯했다. 북한에서 이미 사업을 시작한 경제인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러온 남측 경제인들 모두 관심 있게 공단과 공장, 북측 근로자들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이것저것 꼼꼼히 물어보았다.
이번 대표단의 안동대마방직 김정태 회장은 대마재배에서 제품생산, 판매까지 전 공정을 북한 현지에서 함으로써 북한에 천연섬유산업의 기초를 닦고 남북한 공동이익을 창출하려는 큰 꿈을 현실로 이루어 가고 있다. 70억 가까운 돈을 북한에 투자하고 평양시내에 대마방직합영회사 공장이 착공한지 3년 여 만인 7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공장이 완공되고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북측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대마재배와 대마방직사업이 잘 되어 많은 인력이 일자리를 얻고, 실제 수익이 나는 사업이 되도록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심양의 공장을 두고 있는 신화 인터크루의 고영근 사장은 중국의 부동산과 인건비 인상과 관세 때문에 일부제품을 북한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어려움은 많지만 우수한 인력과 수익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북한현실에 맞게 오더와 납기, 원자재 및 생산에 필요한 소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겨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고 했다. 북한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인내를 가지고 추진해나가는 것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와 망하고 나간 남한 사업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북한에선 남한의 사업가들이 사업하기 좋은 인프라(교통, 통신, 전기 등)를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고, 남한에선 북한의 상황을 폭넓게 이해하고, 꼼꼼히 파악해서 남북한이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남과 북이 보다 많은 준비와 투자,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성공단과 달리 평양과 남포에 남한 경제인들이 투자해 제품을 생산하는데 남한에서 경협자금지원과 기술지원을 위해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고 한다. 법적, 제도적인 근거마련과 더불어 한국내 제조업의 여건이 날로 어려워지고, 더 싼 인건비 때문에 중국 등지로 공장을 옮기는 요즘 한국내 유휴기계와 설비를 북한에 들여와 생산을 하고 북한과 다른 나라에서 판매할 수 있다면 남북한이 함께 경제성장을 하고, 보다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남북경협이 성과를 이뤄 남한 기업인들이 북한에서 성공해 북한 근로자들과 국민들이 지금보다 잘 살게 된다면 남북의 왕래도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북한 어느 곳도 마음껏 취재할 수 있고 남?북 방송을 남북이 함께 시청할 수 있다면 남과 북의 사고와 문화의 갭을 점차 줄여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