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기고>
대통령선거와 네거티브 선거캠페인
1964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이었던 골드워터는 극우성향의 인물로 전술적인 핵무기 사용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핵실험 금지 조약에 반대하였다. 이처럼 핵무기 사용을 옹호하는 골드워터를 향해 민주당의 존슨 후보는 ‘원자폭탄과 소녀’ TV 캠페인에서 데이지 꽃을 든 귀여운 소녀가 잎사귀를 하나씩 뜯으며 ‘1, 2, 3, 4, 5, 6, 7, 8, 9’라고 숫자를 세는 순간 갑자기 미사일 발사 시간을 카운트 하는 성인 남자의 목소리가 겹쳐지고 핵폭탄이 폭발하는 장면을 방영하였다. 실제로 단 한번밖에 방영되지 않았지만, 이 선거 캠페인은 미국 대선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공격 캠페인이 되었다.
선거에서 미디어를 활용한 역사를 살펴보면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라디오 ‘노변담화’ (Fireside Chat)가 정치선전의 도구로 활용되었고, 할리우드 영화도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선거캠페인의 역사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TV의 특성인 현장성과 즉시성이 이미지 정치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놓게 된 것이다. 텔레비전의 시각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정치 캠페인은 “현실을 다시 구성할 만큼 본능적인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제미슨(Jamieson)은 그의 저서 「더러운 정치」(Dirty Politics)에서 주장하였다.
사실 텔레비전 이전 시대의 인쇄매체와 라디오를 통한 선거캠페인은 기존 정치태도와 성향을 보강만 할뿐 정치적 영향력에 있어서는 미미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시대를 맞이하여 영상의 총체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주의를 집중시키는 강력한 흡인력 덕분에 TV선거 캠페인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심지어 고학력의 의식 있는 시청자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의심스러운 주장을 잘 믿지 않으려는 심리적인 방어기제마저도 텔레비전 캠페인 앞에서는 잘 포장된 정보 전달 형태로 쉽게 설득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대통령선거부터 방송광고가 허용된 이후 텔레비전을 활용한 선거 캠페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오락적인 속성과 직관적이고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쿨미디어’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선거에 관한 정책적 쟁점과 토론은 사라져가고 이미지 중심의 영상메시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더욱이 최근 대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지 선거캠페인은 부정적인 내용으로 넘쳐나고 있다. 이제 미디어 선거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은 핵심적 요소가 되고 있다. 일반인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네거티브는 왜 줄어들지 않고 성행하는가? 정치권과 선거 캠페인 전문가들은 네거티브 캠페인이 효과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 컨설턴트 버클리(Buckley)는 “사람들은 부정적 광고를 증오한다. 하지만 그것은 먹힌다. 사람들은 증오하지만 동시에 그것 (내용)을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각종 선거 캠페인에서 네거티브 광고의 위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TV방송의 네거티브 캠페인 보도는 무엇이 중요한 이슈인가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후보자들은 효율적인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 전략을 통해서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에게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사람들이 주목하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8 부시 진영은 심층면접을 통하여 두카키스가 범죄예방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일련의 네거티브 캠페인을 실행했다. 부시의 광고를 본 사람들은 보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범죄와 법, 그리고 질서가 가장 중요한 국가 현안이라고 응답한 경향이 높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시가 얻은 수확은 이 네거티브 광고를 실행함으로써 범죄와 범죄인에 대해서 부시가 얼마나 단호한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응답이 23%에서 61%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또한 이러한 네거티브 캠페인의 의제설정효과는 언론이 부시의 광고를 대서특필하고 계속해서 다룸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1992년 미국 대선의 승리 표어는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이었다. 클린턴은 부시를 향해 경제정책의 직접적인 공격을 펼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휘청거리는 경제문제를 최고의 이슈로 제기하였고, 간접적인 공격을 통해서 유권자들에게 경제가 국가의 최대 현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클린턴의 광고를 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경제문제를 투표결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경우가 더욱 많았다. 2004년 미국 대선의 아젠다는 무엇보다도 “이라크”전쟁이었다. 아들 부시는 케리 후보의 베트남전 경력과 반전 경험을 줄기차게 물고 늘어졌고 언론은 두 후보에 대한 전쟁과 애국주의 검증에 열광했다. 누가 더욱 애국자인가에 대한 후보 평가 기준이 설정되었고, 부시의 군복무 비리에 대한 CBS와 댄 레더의 오보는 언론의 아젠다와 프레이밍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이 언론의 신뢰성 검증으로 극적으로 전환되었다. 양쪽 후보의 네거티브에 언론이 가세하면서 발생한 현대 미국 대선에서 가장 혼탁한 선거로 막을 내렸다.
이처럼 네거티브 선거 캠페인 대하여 대응하는 방식은 원론적 수준에서 단순하다. “진리를 추구하여 보도”하는 것이다. 또한 SPJ(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되도록 해를 끼치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며, 책임 있게 보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기와는 달리 쉽지 않아 보인다.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장점과 단점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하며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공격할 경우 네거티브의 정보의 진위와 정보원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정당한 공격과 부당한 공격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에는 진실과 적절성 이라는 두 가지 기준이 작용할 수 있다. 어쨌든 혼탁한 시대에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의 진위 식별도 유권자들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민규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