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통령 선거 보도, 책임있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한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헌법재판소가 전원 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그날, 국민은 2024년 12.3 정변이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이 아니라 명백한 내란 기도였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우리는 123일간의 탄핵 정국이라는 지옥을 견뎌냈지만, 그것은 그저 한 국면의 종료였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대통령 선거라는 더 큰 무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목적이 아니다. 일상의 정권 교체가 아닌, 헌정질서 회복과 민주주의 심화라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 언론은 지금까지 회피했던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연 헌정질서를 파괴한 세력과 동일한 무대에서 정치 경합을 허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이 내세운 '후보'의 경합을 중계하며, 선택이라는 이름의 부조리를 감내해야만 하는가?
방송 영상은 정치를 재구성하는 정치의 언어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방송 영상 보도의 책임이다. 영상은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구성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의미를 확장하거나 삭제하는 가장 강력한 저널리즘 도구다. 내란을 조력하고 공조한 정치인들을 클로즈업하거나, 그들의 발언을 편집 없이 전달하고, 오히려 현장감 있는 톤으로 재현하는 뉴스 영상은 시청자에게 그 발언의 실질적 위험보다 발언자의 존재감을 강화시킨다. 영상은 사운드 바이트 하나로 맥락을 전복할 수 있고, 자막 하나로 발언의 폭력을 중립적 언어로 전환시킬 수 있다. 윤석열을 옹호하는 자들의 “계엄령은 계몽이었다”는 발언을 보도 영상에서 무비판적으로 내보내는 순간, 방송은 폭력의 언어를 정상의 언어로 세탁하는 매체가 된다. 탄핵 정국 동안 방송사들은 윤석열 측의 계엄령 논리를 요약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했고, 아스팔트 극우의 광기어린 구호와 폭력 장면을 교묘히 편집하여 마치 대립 구도가 당연한 것처럼 처리했다. 내란에 침묵한 정치인의 얼굴을 정중한 뉴스 인터뷰의 앵글로 담아낸 그 순간, 방송은 이미 단절이 아니라 재결합의 무대가 되어버렸다.
‘중요한 정치인의 발언’, ‘양측 보도’, ‘국민의 알 권리’, 이 문장들은 저널리즘의 알리바이로 자주 호출된다. 그러나 그러한 알리바이 뒤에서 방송 영상은 극우세력의 정치적 권력을 정당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자막에서 “논란”이라 쓰는 순간, 극우세력의 ‘환호’와 ‘폭력’의 영상을 확산시키는 순간, 반헌정, 반민주는 우리의 정상적 모습이 되어 버린다. 민주주의 파괴가 단순한 하나의 의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위기의 주체에게 마이크를 제공하고, 정제된 조명과 앵글을 통해 그들을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방송 보도 영상은 단순한 중계가 아니라 정치적 재연이며, 시청자는 정상적으로 세탁된 극우세력을 마주할 이유가 없다.
방송 보도 영상의 언어
영상 기자들은 잘 알고 있다, 카메라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떤 순간을 보여주고 어떤 구호를 배치하며, 어떤 음성을 제거하고 어떤 인물을 주목하는가에 대해 방송 영상은 매 순간 정치적 편집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모든 장면은 역사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계엄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앵글, 후속 질문 없는 인터뷰, ‘양측 의견’이라는 명목 아래 편집된 구도는 결코 저널리즘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이다. 대선 후보로 호명된 자가 민주주의의 적이었다면, 방송은 그 호명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그 호명이 어떤 역사를 망각하게 만드는지를 영상 언어로 비판해야 한다. 방송은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 장면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인터뷰는 누구의 귀환을 연출하는가? 지금 우리는 저널리즘의 이름으로 반헌정 세력을 복권시키는 정치 드라마의 중계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이다.
이번 대선은 이전의 대선과는 전혀 다르다. 헌정질서의 회복과 민주주의의 복권을 위한 시민적 기록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언론, 특히 방송 영상 저널리즘은 그 무대의 형식이 아니라 역사적 전환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출현’시키는 내용을 구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정당성은 정당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은 그 민주주의의 출현을 위한 프레임과 언어를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