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7일, 영상기자이기에 가능했던 “귀한” 순간들
- 전국 여성 영상기자들의 대모 이향진 MBC 국장 퇴임 인터뷰
MBC 이향진 국장이 2025년 3월 31일 정년퇴직을 맞았다.
1986년 11월 15일부터 2025년 3월 31일까지 38년 5개월 간(14017일) 재직한 이향진 국장의 소회를 통해
영상기자 발전과 여기자 성장의 역사를 동시에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인터뷰 : 조은경 기자)
Q. 국장님, 정년퇴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먼저 38년 5개월이라는 놀라운 재직기록을 달성하셨는데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대학4학년때 입사해서 무탈하게 정년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986년 입사해 영상기자로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것들(영상취재, 생방송뉴스팀 중계PD 등)을 경험했던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Q. 여기자가 드문 시절에 기자가 되셨어요. 혹시 영상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대학시절 사진반 활동을 열심히 했고, 그것을 계기로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MBC 신입사원 공고를 보고 영상기자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선배가 입사하셨을 당시 현장에서 여기자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A. 여성 영상기자 1호 선배가 계셨지만 제가 입사했을때는 퇴사하신 상태라 제가 입사했을때는 홍일점이었죠. 취재현장 어디를 가도 눈에 띄어서“카메라 무겁지 않냐?”등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았죠.
여기자가 드문 시절이라 보도국이 있는 5층에는 여자 화장실도 없어서 다른 층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죠. 처음 입사해 수습기간과 신입시절에 야근할 때 숙직실이 없어서 사무실 책상과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죠. 선배들의 관심과 배려로 일을 배우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고, 현장에 가서도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더 열심히 취재할 수 있었죠.
Q. 실제로 일을 하시면서 입사를 준비하셨을 때 생각했던 부분과 달랐던 부분, 또는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 있으셨는지?
A. ENG카메라의 무게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죠. 지하철 공사장 등 여성출입이 터부시 되는 곳에서의 취재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설득해서 적당한 선에서 취재를 하기도 했죠. 아무래도 여기자가 거의 없는 곳에서 일하다보니 임신으로 야근과 업무 조정 등을 하는 문제 등은 처음이라 데스크들과 상의해서 해결했어요. 물론 날씨스케치, 남산외인아파트 폭파 등은 간간이 취재를 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출산휴가도 3개월, 육아휴직도 있어서 예전보다는 좋아진 것 같아요.
Q.영상기자가 되기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셨을까요?
A. 누구보다 먼저 뉴스를 현장에서 접한다는 것이죠. 문화, 과학, 경제, 정치,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영상취재와 시사매거진 2580 같은 긴호흡의 시사물 취재, 세월호사고, 박근혜대통령 탄핵과 문재인대통령 취임식까지 생방송뉴스팀의 중계PD로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습니다. 김현경 북한전문기자와 <여기자 북한방문기-평양 10박 11일>(2001년3월) 취재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MBC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과 이미지개선을 위해 2005년, 2006년, 2008년 <MBC시청자촬영대회>를 개최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대회 수상자들이 MBC, KBS에 영상기자가 되신 분들도 있고 종편 시민기자 등 영상분야로 전업하신 분들도 계셔서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영상기자이기에 가능했던 귀한 순간들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Q. 그러면 실제로 영상기자가 된 후에, ‘영상기자가 되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 취재 현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문화와 스포츠 취재를 할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오랜기간 취재를 했던 분야인데 심미안을 기르고, 영상적인 고민을 많이 해야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취재원들도 순수하고 좋은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취재하는 것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Q. 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긴 시간을 겪으시면서 영상기자들의 취재 환경이나 업무 변화도 많이 체감하셨을 것 같아요. 국장님이 느끼신 가장 굵직한 변화는 무엇인가요? 또 영상기자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보시는지요?
A. 80년대만 해도 해외 출장을 가면 현지방송국에서 위성송출을 해야했는데 지금은 MNG나 인터넷으로 송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상기자들이 1인 3~4역을 해야해서 업무로드가 증가했죠. 지상파뿐 아니라 종편, 유튜버 등 매체가 늘어 현장이 훨씬 복잡해져서 자리경쟁, 속보경쟁이 더 치열해졌습니다.
요즘은 ENG카메라가 아니라도 누구나 휴대폰으로 영상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이 영상기자가 되어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영상기자들은 더 높은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해야 차별화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기도 합니다.
Q.앞서 언급한 변화들 외에도 여성 후배들이 늘어난 것도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사람 수도 늘어나고, 이제 10년 넘은 여기자들도 회사에서 자리잡고 있죠. 대선배로서 이런 여기자 후배들의 성장을 보는 기분은 어떠실까요?
A. 참 뿌듯한 일입니다.예전에 비해 여기자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 출입처에서 자신의 몫을 당당히 해낸다는 것도 괄목할만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자 후배들이 20명 이상되고 각자 방송사에서 제몫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기자 후배들이 더 늘어날거라고 봅니다.
남자기자들보다 현장에서 취재원들과 친화력있고, 섬세한 면에서 여기자들이 강점이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뉴스영상을 제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Q. 여기자에게 요구하는 모습들이 달라져서 과거와 같이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나 현장에서 처우 등이 개선되고, 출입처에 나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선배는 여기자들의 롤모델이셨는데, 앞으로 여기자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A. 예전에 비해서 여성영상기자들이 많아졌고, 자신의 강점을 현장에서 녹여낼수 있는 능력들이 있습니다.
입사초기부터 취재원, 취재기자, 오디오맨, 차량기사 등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자”는 생각으로 일을 하니 생각지 못했던 행운이 많이 따라준 것 같습니다.
영상기자가 현장에서 취재원이나 현장상황을 신속, 정확하게 판단하고 영상취재를 해야 좋은 뉴스가 됩니다. 호기심을 많이 가지고 질문을 많이 해야 핵심을 파악할 수 있죠. 10명의 영상기자가 현장에 있으면 다 다른 영상을 취재하고 담습니다. 뉴스가 만들어지고, 후속뉴스가 나갈때도 나의 영상이 유용한 영상이 될 수 있을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합니다.
그리고 나의 영상이 아카이브로 잘 남겨졌을 때 방송사의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그래서 취재할 때 캡션에 신경을 쓰고, 영상을 자료로 남길때도 정확하게 영상과 캡션을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좋아하는 일도 열정을 갖되 지치지 않아야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머리를 비우고 여유를 가져야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사고의 유연성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고의 유연성은 업무와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한가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38년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이향진 국장은 평소의 바람대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며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근무의 마지막 날 열린 자그마한 축하 자리에는 MBC 동료들과 후배 여성 기자들, 협회 최연송 회장 등이 참석하여 꽃다발과 함께 그녀의 마지막 퇴근을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