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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영상 AX, 속도 조절해야 할 때

관리자 2026-06-25 조회수 19


 EBS 교육방송에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등 국내외 고전 100권을 소개하는 인문교양 프로그램이다. 물론, 지식과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고전문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야 전혀 새로운 기획은 아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15분 분량의 콘텐츠 전부가 AI 영상과 음성으로 제작되었고,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듯한 연출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데 있다. 즉, 18세기 글래스고 대학에서 직접 강의하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 강의를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하는 원전 충실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이미지, 음성, 자막이 모두 생성형 AI로 제작되었고 강의도 영어로 전달되어 고전의 교양과 외국어 학습이라는 EBS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매우 “효율적”으로 성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고전은 고금과 자타가 공인한 인류의 지식과 지혜의 보고이지만,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AI를 사용해 교육의 접근성을 높인 것은 분명 매력적이고 동시에 EBS 공공성에 부합하는 기획인 듯하다.

 

 사실, 인쇄술 이후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인터넷과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고전은 늘 새로운 매체 기술의 문법에 따라서 다시 만들어져 왔고, 대중은 원전보다 매체가 요약하고 해설한 고전 “콘텐츠”에 훨씬 더 익숙해져 왔다. 그렇기에 “원전 충실성”과 “접근성”, 그리고 최종적으로 “효율성” 세 마리 토끼를 AI로 모두 잡은 EBS의 고전 콘텐츠 기획은 성공적인 공익적 AX(AI 전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서구에서 고전문학의 교육적 활용은 고전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개인적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교의 라우라 루이즈(Laura Ruiz) 교수의 고전 읽기의 방법론은 매우 사려 깊어 보인다. 그녀에 의하면, 고전 읽기는 단순히 원전의 의도를 충실히 학습하는 개인적 교양 습득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회적인 맥락 속에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경험을 공유하는 사회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 고전 콘텐츠가 고전을 매끄럽게 요약해 주는 방식과 달리, 그녀의 고전 읽기는 고전에 대한 접근성과 학습의 효율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충실성”과 “접근성”을 더 중시한다. 아울러 이를 통해 고전문학이 개인의 지적 수준을 엘리트적으로 고양시키는 것이 아닌 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변화의 도구임을 깨닫게 한다. 이는 김유열 EBS 대표가 "AI 기술을 활용하면 질은 획기적으로 높이고, 제작비는 획기적으로 낮추는 마법 같은 일"이 만들어 내는 교육 효율성 원리와는 어쩐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인다. 특히 지극히 원자화된 미디어 이용과 능력주의에 부대끼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EBS의 AX를 통한 공공적 효율성에 우리가 환호하는 이유는 사실, 그것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교양 콘텐츠와 달리 언론보도는 AI에 대해 좀 더 엄격하다.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영상기자, 법조 및 언론학자와 함께 마련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I로 실사풍 영상이나 이미지를 만들어 사용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그 이유는 “보도영상은 영상기자가 현장의 사실을 조작 없이 기록한 것이라는 시청자의 믿음을 근본적으로 훼손하여 언론의 공적 신뢰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영상기자들이 “전문직 윤리”를 “공공적 효율성”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으로, 매우 적절하다. 다만, “뉴스 맥락의 이해를 돕는 보조적인 시각자료”로서 AI 생성 영상은 허용이 되는데, 이는 뉴스 제작자의 자의적 판단이 상당히 개입될 여지가 있다. 지난 5월, 모 방송사 뉴스룸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정박 중이던 HMM 나무호 선박 폭발 사고를 다루면서 실제 확인되지 않은 정황과 추정을 사실적인 AI 영상으로 재현해, 시청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또 다른 방송사의 메인뉴스에서 북ᄋ중ᄋ러 정상이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 나란히 서서 전망을 바라보며 박수치는 장면을 AI로 제작해 내보냈다. 시청자에게 정상 간 회동의 맥락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한 ‘보조적’ 자료였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맥락적 정보가 무엇인지는 모호하였다. 이외에도 전쟁이나 사건과 사고 보도에서도 서서히 AI 생성 이미지와 영상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보도에서 “공공적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보도영상 AX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BS의 고전 교육이 파편화된 학습과 능력주의의 재생산을 의도하지 않았듯, 어느 방송사도 영상기자 없는 현장과 ‘생성된 맥락’으로 진실을 대신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공공성의 본질을 해치려 하는 의도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가장 ‘효율적’ 길이 곧 ‘공리’라고 믿는 데 익숙해져 있고, 그 믿음 속에서 효율성은 어느새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 정작 공공의 이익이 무엇이며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뒷전으로 밀어내 버리고 있다. 그러나 라우라 루이즈 교수의 말처럼 고전문학은 교과서와 달리 결코 매끄럽게 배달될 수 없고, 더디게, 그러나 끝내 다른 사람과 함께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보도 영상의 한 컷의 이미지는 매끄럽게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두 발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기에 비로소 기록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실마저도 손쉽게 생성 가능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훼손시킬까 걱정되는 것은 공공적 효율성으로 인해 수많은 공공의 것들이 훼손되어 왔는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