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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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재, 미디어법 합헌 판결
    헌재, 미디어법 합헌 판결 야당, 시민단체 강력반발 헌재, 미디어법 합헌 결과... 언론단체, 강력 반발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미디어법 개정안에 대해 합헌 결과를 내놓자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 언론단체, 시민단체 등은 '정치적 판결'이라며 일제히 반발하고 헌법재판소가 위법을 확인한 미디어법은 원천 무효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많은 시민단체와 언론단체들은 미디어법이 절차적 위법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거대 여당이 수의 힘을 앞세워 재논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시민 다수 뜻을 외면한 것으로 대의 민주주의에 역행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은 잘못 태어난 언론악법을 국회로 하여금 다시 바로 잡으라는 취지”라며 “방송법 및 신문법 시행령 심의는 국회가 이 법의 절차적 하자와 위법성을 치유한 이후에 진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도 11일을 언론악법 원천무효 행동의 날로 하고 전국 동시 다발로 언론악법 원천무효 1인 시위를 벌이고 선전전을 벌이기로 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내일(11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촛불문화제는 수도권 지역위원장을 비롯한 당원들이 대거 참가해 언론악법 원천무효와 재논의를 촉구하는 언론자유의 촛불을 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성명을 통해 “경찰이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석방해야 한다” 며 “전체 언론노동자의 대표를 잡아 가두는 것은 군부독재에서 가능한 심각한 언론탄압이다.”라고 주장했다.  최상재 위원장은 미디어법 국회 재논의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다 9일 연행됐다. 언론노조도 지난 10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장 평화적인 수단인 단식을 통해 위법으로 확인된 언론악법을 폐기하고, 원점 재논의를 촉구하던 최상재 위원장을 불법 연행했다”며 최 위원장과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의 석방을 촉구했다. 김형오 국회의장 기자간담회 “야당 공세에 물러나지 않아”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 6일 집무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헌법재판소로부터 ‘위법’을 지적받은 언론법 재개정 의사가 없음을 재차 밝혔다. 또한 헌재 판단의 본질은 법 개정 유·무효 처리과정 문제 있으나 무효화할 만큼은 아니 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의장은 “헌재는 신문·방송법 처리과정에 일부 하자가 있었지만 이것이 법통과 자체를 무효화시킬 만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는 과거 국회가 제소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서 ‘위법은 인정되나 대통령직을 박탈한 만큼은 아니다’고 한 것과 논리적으로 같다”고 주장했다.
    2009-11-11
  • <릴레이 인터뷰> 대전 YTN 박동일 기자
    1. 대전 MBC 장우창 기자에 의해 ‘이어지는 인터뷰’에 추천된 소감과 장기자의 추천사에 대한 한마디 이어지는 인터뷰를 보면서 카메라기자에 대한 동종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고, 선후배 동료간의 교류와 소통 공간을 만들어주기에 미디어아이에서 즐겨보는 코너이다. 추천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연락을 받아 조금은 쑥스런 기분이다. 추천해준 대전MBC 장우창 기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싶다. 2. 박동일 기자가 생각하는  ‘장우창 기자’는? 대전MBC 장우창 기자는 오랫동안 대전지역에서 같이 활동해온 카메라기자로, 매우 듬직하고 우직한 기자로 정평이 나 있는 기자이다. 특히, 선배에 대한 예의가 남 다르고 동료들간 화합에 늘 앞장서 솔선수범하는 기자로 협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유능한 카메라기자로 늘 생각하고 있다. 3, 카메라기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카메라기자는 정말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 해외영업부에서 3개월 근무하다가, 대학 추천으로 대전 KBS 촬영보조 요원으로 5년여 기간동안 근무했고, 95년 YTN개국과 동시에 경력으로 입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일은 ‘공주 산사태’를 취재하면서 자취를 하던 10여명의 젊은 학생들이 매몰된 안타까운 사건이다. 기록적인 폭우로 곳곳에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끊기고 무너져 내린 토사로 현장에 접근조차 어려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4. ‘카메라기자의 게이트 키핑’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항상 카메라기자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따로 연구하시는 것이 있나요? TV카메라기자는 방송뉴스에서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역할이나 업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카메라기자는 취재기자나 타 부서직에 비헤 자리매김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2003년  ‘TV 카메라기자의 게이트 키핑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과 ‘보도편집론’ 을 주 1회 강의와 외부특강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부족하지만 가르친다기 보다는 늘 같이 연구하고 배우는 자세로 준비하고 강의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너무도 많고 보람도 많이 느낀다. 5. 앞으로의 목표 및 계획은? 그 동안 강의 내용을 정리해서 ‘보도영상’에 대한 책을 출간하고 싶다. 5년여를 강의하다 보니 정리해야할 것이 많다. 그리고 오랜전부터 준비해온 대전,충남 카메라기자가 중심이 된 ‘한국 보도영상 아카데미’를 설립해 자라나는 영상세대들에게 영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해주고 싶고, 카메라기자 역시 자기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전재되어야 하고, 나름의 역할을 감히 강조하고 싶다. 6. 카메라기자협회나 동료 선후배 카메라기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 간 카메라기자협회는 중앙 중심으로 만들어 졌고 운영된게 사실이다. 지역협회는 협회운영에 따른 소극적 대응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역협회 활성화는 카메라기자협회 주출돌과 같아서 활성화가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임원진 구성이나 운영이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이고 상호소통이 가능한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협회 특성을 살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2009-11-09
  • 회원실명제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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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0-22
  •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취재기 - 故 고미영 대장을 추모하며
    ‘고미영 대장이 제 2캠프 도착 바로 전에 실족해서 생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산소 부족으로 가뜩이나 머리가 띵-했는데 옆에서 전해오는 본부의 무전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멍해지며 아뜩해졌다. 바로 몇 시간전에 낭가파르밧 정상을 정복하고 우리와 무전 인터뷰까지 했던 고대장이 실족해서 몇 천 미터인지도 모를 산 밑으로 추락했다니... 지난 7월 6일, 김한성 부장과 강재훈 취재기자 나, 지원팀 두 명으로 꾸려진 취재진은 8,000M급 11번째 봉우리인 낭가파르밧 등정에 나선 고미영 대장을 취재하러 출발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부의 칠라스를 거쳐 3일간의 등산과 야영 끝에 도착한 낭가파르밧 4,200M 베이스캠프. 도착한 10일 저녁, 정상 정복에 성공한 고대장은 하산하면서 기상악화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무사히 4캠프(정상에 가장 가까운 캠프)에 도착해 우리와 무전으로 인터뷰를 했다‘. 14좌 완등을 꼭 해내겠다.’,‘박영석 선배를 뛰어넘는 산악인이 되고 싶다.’인터뷰 내내 밝은 목소리로 자신의 목표와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베이스캠프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는데 제2캠프를 조금 남겨놓고 사고를 당해 결국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음날 새벽, 비탄에 잠긴 등반 대원들이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고, 오후에 헬기 수색에 나섰다. 파키스탄 군의 지시를 받는 구조 헬기라 돈을 주고 부른다고 해도 맘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조종사가 헬기에 한 명씩 탈 것을 요구했고, 등반대의 김재수 대장과 내가 한 대씩 나눠 타기로 했다. 내가 헬기에 올랐는데 대원 한 명이 다가와 자기가 타야한다고 했다. 그 대원은 윤치호 대원. 그는 고 대장이 떨어지던 순간 손으로 잡았다가 놓쳤던 대원이다. 가장 가까이서 고 대장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 본 안타까움에 누구보다 간절하게 헬기에 타기를, 자신의 눈으로 고 대장의 시신을 찾기를 원했다. 하지만 조종사가 기록을 위해 카메라맨이 타기를 요구했고 나는 안타까움에 울먹이는 윤 대원을 뒤로한 채 카메라를 준비했다. 헬기는 6,000M 높이를 오르내리며 시신을 찾았다. ‘그래, 이건 관광이 아니다.’나도 카메라기자가 아닌, 대원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한 마음으로 시신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기를 20분, 고 대장의 시신을 찾았고 카메라에 담았다. 헬기에서 내려 촬영한 화면을 대원들에게 보여 주며 고 대장임을 확인했고, 그 화면은 주변 지형이 담겨있어 수습방법 논의에 활용되었다. 지금껏 실종된 시신을 찾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사고 하루 전 실종된 이탈리아 대원도 시신을 못 찾던 상황에서 그건 정말 기적이었다. 취재 대상의 죽음이라는 초유의 사건 속에서 취재를 하고 방송을 했다. 우리가 한 인터뷰가 마지막 육성이 되었고 우리는 얼굴 한 번 못본 채 리포트를 제작했다. 차디찬 얼음눈 위로 추락해 있는 고 대장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며칠 후 우린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왔다. 일정에 쫓겨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보지 못해서, 산을 내려오는 내내 아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국내에 들어와서 고 대장에 대해 더 많이 찾아봤고, 찾아볼수록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그분의 도전 정신에 고개 숙여졌다. 또, 그동안 취재 대상에 대해 우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접근하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들었다. 낭가파르밧 정상 정복 후 짧은 인터뷰 중 고 대장이 한 인상적인 말이 있다. 14좌 완등 할 것이냐는 질문에 고 대장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포기라는 건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처음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다시 들어보니 이 말장난처럼 보이는 한 마디에 고대장의 강철같은 의지가 부담스럽지 않게 녹아있었다. 11번째 봉우리 낭가파르밧에서 운명을 달리한 故고미영 대장, 삶 자체로 보여준 도전 정신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상하 / KBS 영상취재국 upndown@kbs.co.kr
    2009-10-15
  • 나로호 발사 순간을 기억하며..
    나로호가 발사되기 10분전.. 남열 해수욕장에는 대한민국의 우주 시대를 개막하게 될 나로호 발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반인들이 구비하기엔 비쌀 것 같은 길다란 망원경을 보는 사람, 여기저기 기념 사진 찍기에 바쁜 가족 및 연인들.. 그래도 오늘은 직선으로 17km 떨어진 외나로도가 뚜렷하게 보일 정도의 맑고 깨끗한 날씨다. 불과 일주일 전쯤.. 작렬하는 태양빛과 찌는 듯 뜨거운 습도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심지어는 해무가 잔뜩 껴서 방향만으로 발사대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불과 7분 ?초를 남기고 발사가 취소되면서 아쉬운 한숨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던 사람들이 기억났다. 순간의 찰나, 사람들의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 바쁘게 백사장을 휘젓고 있을 때 의아한 표정의 한 시민분이 "발사 취소됐어요?"라고 물었다. 말도 안 된다는 식의 대답을 건성으로 해놓고, 해수욕장에 '안타깝게 취소됐다'는 내용의 아나운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생각보다 무척 허무했다. 취재 중인 우리도 그랬는데 전국 각지에서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오죽했으랴... 그런데 오늘 다시 발사를 한단다. 첫 발사 성공률이 25%에도 못 미친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저번에 안타깝게 되돌아가던 사람들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오늘은 성공할 수 있을까? 나의 임무는 사람들의 리액션컷! 발사 7분 정도 남았을 때부터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발사가 임박해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 10, 9, 8....3, 2, 1 "발사" 여기 저기 탄성이 터져 나왔고 황홀경에 빠져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찍고 있는 피사체들이 보는 내 뒷머리 위로 나로호가 날아가고 있단 말인가? 이정도면 사람들의 리액션이 충분하다고 느꼈을 때 비로소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작은 불빛의 날아가는 나로호를 볼 수 있었다. 신기했다. 와~~!! 하지만 감탄은 잠깐뿐.. 또 다시 나의 본분으로 돌아와 사람들의 인터뷰를 따기 시작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위대한 발전에 감동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발 빠르게 현장 제작을 마치고 뉴스 제작을 위해 외나로도에 있는 미디어센터로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나로호가 위성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비보를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제작과정을 모두 버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방송 시간은 다가왔고 그때부터 처음부터 제작을 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8시 뉴스가 나가고 모두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있었다. 끝없는 원인 추궁과 책임 공방... 실망 하지만 우리는 가능성을 봤다.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 무한한 우주 공간을 연구하고 여행하게 될 우리의 다음 세대 그들에게 오늘은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며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취재할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홍종수 / SBS영상취재팀
    2009-10-15
  • 쌍용차 평택 공장 잠입기
    쌍용차 평택공장 옥쇄 파업 취재 후기를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얼떨결에 승낙해버렸다. 그로부터 벌써 3주가 흘렀다. 일반적인 취재 후기를 써야 하나? 문득 후배들이 공장 안으로 어떻게 들어갔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고, 공장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취재 후기가 아닌 일기 형식의 '잠입기'를 쓰기로 했다. 7월 21일(첫 번째 출장 1일째) 괜한 짓을 해서 물 먹은 날이다. 타사는 2명, 나는 혼자. 별일 없을 것 같아 애써 내려온 지원 인력 경원이를 올려 보냈더니, 정문이 아닌 남문방향에서 경찰이 공장 일부를 탈환했다. 내일부터 방송법 파업이라 미리 제작하는 뉴스가 많을 것 같아 경원이를 올려 보냈는데, 경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무리인가? 분명 내일도 경찰이 공장 탈환에 나설텐데......구멍을 찾아봐야겠다. 7월 22일(첫 번째 출장 2일째. 공장 진입한 날) 집이 평택인 희준이와 수원지국의 동수가 새벽부터 충원됐다. 타사도 2명. 희준이와 동수가 있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다들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공장 주위를 살펴본 결과 남문 방향을 제외하고는 도장 공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 진입은 고사하고 촬영조차 불가능하다. 남문 방향도 어제와는 달리 사측의 통행 제한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남문 방향을 다시 살펴보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철망을 찾았다. 일단 경찰이 작전을 시작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자. 오전 11경. 경찰이 프레스 공장 옆 공장으로 다가가기 시작, 다행히 철망의 위치가 경찰과 노조와의 중간이다. 문제는 맞은편 건물에서 볼트와 너트가 내 쪽으로 날아온다는 것이다. 일단 촬영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철망에 볼트와 너트가 날아든다. 철망에 볼트 맞는 소리가 요란하다. 다시 후퇴! 불안한 마음에 오디오맨 민우를 보니 민우도 약간 불안한 표정이다. 문득 어제 노조가 쏜 볼트에 맞아 박살난 차가 떠오른다. 볼트에 맞으면 골로 갈 텐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머리위로는 볼트와 너트가 철망에 맞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죽을 지경이다. 문득 철망 열쇠가 잘려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머리를 빼꼼히 내밀어 보니 열쇠는 달려 있는데, 정말 열쇠가 끊어져 있지 않은가! 일단 열쇠를 제거하고 문을 열어보자! 긴장한 탓인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계속해서 볼트는 날아들고, 보다 못한 민우가 힘으로 밀어제친다.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노조가 있는 오른편으로 부리나케 뛰었다. 진입 성공이다. 8월 2일(두번째 출장 5일째) 출장 온지 5일이 지났다. 30일부터 시작된 노사협상은 오전 10시경 사측의 결렬 선언으로 막을 내렸고, 사측은 도장 공장에 대한 단전조치를 취했다. 밤 11시. 쌍용차 정문 앞 KBS CP차 안. 잠을 자야 하는 데 잠이 오질 않는다. 두 시간 뒤면 쌍용차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산을 타야한다. 대략적인 진입 장소는 컴퓨터상으로 확인을 했지만 컴퓨터상의 확인일 뿐이다. 나가서 담배나 한대 더 피자. 애꿎은 담배만 죽어나간다. 8월 3일(두번째 출장 6일째. 두번째 공장 진입한 날) 결국 잠은 한 숨도 못 잤다. 쌌던 짐을 다시 확인한다. 배터리, 마이크, 카메라 등. 디스크는 카메라에 넣어 놓은 것이 유일할 정도로 짐을 줄였지만 배낭의 부피가 여전히 크다. 조명기기가 큰 부피를 차지해서다. 도장공장 내부가 단전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져가야한다. 새벽 1시. 얼마 자지 않은 오디오맨을 깨운다. 정문에서 동쪽으로 500미터 쯤 떨어진 야산이 진입지점이다. 한 5분여를 걸었을까 야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전경들이 양쪽을 보고 경비를 서고 있다. 바로 앞에는 불 켜진 전경버스까지 있다. 저 야산을 올라야 하는데, 들키지 않고 야산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일단 전경이 우리를 의심하지 않게끔 태연하게 쭉 더 걸어간다. 500여 미터를 더 걸었다. 혹시라도 다른 쪽에는 지키는 전경이 없지 않을까 기대해봤지만 마찬가지로 전경이 보초를 서고 있다. 결국 다시 돌아왔다. 1시 20분쯤 되었을까. 일단 전경들이 교대한 후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오디오맨은 다시 재우고, 난 정문 앞 인도에 앉아 정문 앞을 지키는 전경들의 교대시간을 확인했다. 2시가 약간 넘었을 무렵, 전경들이 교대하기 시작했다. 아마 2시간씩 근무를 서고 교대하는 듯 했다. 다시 오디오맨을 깨워 야산을 향해 출발. 역시나 전경들이 말똥말똥한 눈을 한 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제기랄!' 욕이 절로 나온다. 일단 조금 더 간 뒤 오른쪽으로 꺾어진 골목길에 있는 편의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오디오맨과 어떻게 진입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질 않는다. 선택은 두 가지다. 포기를 하던가, 잡히더라도 무작정 산으로 들어가고 보던가. 다행히 아까 보니 입간판이 서 있는 쪽에 오솔길 같은 것이 나 있었다. 문제는 너무 밝다는 것. 그리고 전경과의 거리가 불과 20미터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잡히더라도 시도하기로 했다. 뭘 먹으면서 가면 의심은 안 할 것 같아서 음료수를 먹으면서 걸었다. 그리곤 자연스레 오솔길로 접어들었고 바로 수풀 속으로 몸을 숨기고는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수풀을 헤치기를 5분. 어느덧 야산의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산 정상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공장 내부의 정보원에게 전화를 걸어 철조망이 있다는 얘기를 왜 안했냐고 했더니 아무 말이 없다. 다만, 철조망 아래를 잘 보면 잘라 놓았는데 이어진 부분이 있을 거라며 그 부분을 한 가닥씩 풀어야 하는데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사측에서 개구멍을 다시 막아놓았는데 얼마나 촘촘하게 복구를 해놓았던지 무려 30분이나 걸렸다. 철망을 기어서 통과한 뒤 산 아래로 내려가자 서치라이트의 불빛이 길목을 비추고 있었다. 다시 정보원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전화로 물었다. 기다리기를 20분. 마치 내가 사측인양 당당히 걸어서 서치라이트를 통과하라는 주문이었다. 쉽게 말하면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말이었다. 알려준 방법대로 무사히 통과했더니 또 하나의 철조망이 있었다. 게다가 바로 앞엔 전경들이 쓰는 볼트 너트 차단막도 있었다. 재빨리 몸을 피한 채 다시 전화를 했다. 역시 방법은 그 길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 무조건 그 철망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철망을 넘었고 같은 방법으로 하수관을 통과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도장 공장 앞 바리케이드까지 접근했다. 경찰은 그때서야 우리가 들어온 것을 알았던지 진입루트 방향으로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경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원이 마중을 나왔고 그의 안내로 공장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때 시간이 4시 10분. 1시부터 진입을 시도했으니 무려 3시간이 걸려서야 진입에 성공한 셈이다. 어느덧 가을이다. 뜨거웠던 7월과 8월의 기억도 이제는 흐릿해져 간다. 또 다시 수많은 여름이 다가오겠지만, 올해의 쌍용차 옥쇄 파업과 같은 뜨거운 여름은 다시 오지 않기를 소망한다. 또한, 올해와 같은 여름이 다시 온다면 그 결과만큼은 올해의 여름과는 다르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쌍용차 취재를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동료 선후배님들께 정말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글을 끝맺고자 한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손병우/ KBS 영상취재국
    2009-10-15
  • 인도네시아 다문화가정 취재기 - 엄마의 나라를 찾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행 비행기를 타기 전 인도네시아 여행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그러나 서점 어디에도 인도네시아 여행에 관련된 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휴양지인 발리에 관한 책만 몇 권 있을 뿐이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조차 자세한 여행 책이 여러 권 나와 있는데, 동남아에서 가장 큰 나라인 인도네시아가 없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인구 2억 4천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 인도네시아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네 명의 인도네시아인 어머니와 다섯 명의 자녀들. 다문화 가정이라 불리는 그들과 인도네시아친정 방문길을 함께 했다. 10년 가까이 한국에 살았다는 인도네시아 어머니들은 우리말이 생각보다 서투른 편이었다. 반면 쉼 없이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혼혈아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완전한 한국아이들이었다. 서툰 한국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섞어 쓰는 어머니와 우리말로만 대화하는 아이들. 신기하게도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할 줄 알면서도 일부러 인도네시아 말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일행 중 리나 이차 씨의 고향인 반둥 외곽의 시골 마을을 방문했다. 9년 만의 고향 방문에 리나씨는 무척 설레 보였고 어머니와 만나는 순간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리나씨의 아들 규호는 처음 보는 외할머니의 포옹이 어색한지 자꾸 외할머니의 팔을 뿌리쳤다. 인도네시아어로 대화를 나누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이모와 외삼촌. 하지만 규호의 입에서는 오직 한국말만 나올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인도네시아 말을 할 줄 한다는 것은 그렇게 내세우고 싶지 않은 아니, 감추고 싶은 능력처럼 보였다. 완벽한 한국인으로 키우기 위한 부모의 방침인지 아니면 스스로 선택한 자기 방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인도네시아 혼혈이란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만일 그들의 어머니가 미국인이나 프랑스인이어도 그런 모습을 보일까? 한국이 가지고 있는 편견의 칼 끝에 그들은 서 있었다. 1만 3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1인당 GNP가 1000불에 못 미치고 산업의 중심이 농업과 광업인 개발도상국이다. 당연히 우리나라보다 모든 부분에서 뒤떨어져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각종 자원이 풍부하고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제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인도네시아를 상대할 때 가장 경쟁력 있는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는 바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될 거라 생각한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한국인이고 한국인으로 자라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한국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몹쓸 편견 때문에 많은 것을 숨기고 잃을 것이 아니라 당당히 세계인으로 자랄 수 있게 해야 한다. 며칠이 지나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몇몇 아이들이 자연스레 인도네시아어를 쓰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어를 할 줄 아는 것이 숨길 게 아니라 대단히 유용한 능력이란 것을 깨닫고 있는 듯 했다. 주용진 SBS 영상취재팀 / creeden@sbs.co.kr
    2009-10-15
  • '카메라기자 수난시대’ 쌍용차사측, 기자폭행…경찰은뒷짐
    “쏵 다 밀어 붙여!~” 멀찌감치 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급히 카메라 렌즈를 격앙된 함성에 초점을 맞추며 앵글을 잡았다. 곧 마스크, 복면,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 손에는 각 각 쇠파이프, 빗자루, 나무막대기, 물병, 돌을 움켜 쥔 겉보기에 수백 명의‘무력단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 나타났다. 범상치 않아 보이던 그 집단은 평택공장 정문 앞에 모여 있던 쌍용차 가족대책위, 민주노동당 당직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에게 서서히 다가갔고 곧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집단은 쌍용차 사측직원들로서 수십 명씩 떼 지어 다니며 고립된 한두 명의 사람들을 쇠파이프와 주먹, 발 등으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사측직원에 대항해 천막을 지키기 위한 쌍용차 가족대책위 여성회원들이 서로 팔짱을 껴 스크럼을 짜고 맨몸으로 막아섰지만 되돌아오는 건 주먹과 발길질이었다. 사측은 나무막대기로 여성들의 몸을 가격하거나 얼굴을 향해 물병과 돌을 던지기도 했다.“ 밀어”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스크럼이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자 머리와 몸에 피가 흥건한 부상자가 직접 눈에 보일정도로 속출하면서 집단구타가 순식간에 번졌다. 탄력을 받은 사측은“야, 죽여. 밟아버리라고”를 연신 외치며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심각한 사태을 담기 위해 충돌의 한 가운데 있던 중 사측직원들은 취재진에 대해서도 비이성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맨 상태에서 시각이 오로지 한 방향에 머물러 있기에 앞 상황에 집중하며 취재를 하고 있던 중 뒤에서 누군가 내 목덜미를 세게 잡아 뒤로 끌어내려하자 뒤로 넘어질 뻔한 위험한 순간이 발생했다. 카메라도 뒤로 넘어갈 뻔하던 것을 순간반응에 의해 다행히 가슴 안쪽으로 안았고 사측은 찍지 말라며 항의를 넘어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폭력을 사방에서 쏘아댔다. 이런 과격한 사측의 태도가 불손하다고 판단해 더 적극적으로 현 상황을 영상에 담기 시작했다. 순간 파인더 안에 쇠파이프와 나무막대기가 나타났고 물을 뿌리며 카메라를 향해 치려고 하는 순간 채규빈 오디오맨이 이를 몸으로 막아 넘어졌고 옆구리에 타박상을 입게 됐다. 상황이 위급하다 생각해 급히 카메라를 어께에서 내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재빨리 REC 버튼은 눌러놓은 상태에서 오디오맨을 잡아 일으켜 무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사측의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발이 밟히고 어깨, 등에 주먹질의 흔적을 남기며 힘겹게 빠져 나왔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취재진들에 대한 그들의 폭력행위는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주변에서 취재하던 SBS 김태훈 기자는 눈 바로 위에 빗자루로 맞아 크게 부어올랐고, YTN 김현미 기자는 뒤쪽에서 누군가 달려들어 옆구리를 발로 가격해 넘어졌다. 그 외에도 촬영테이프를 탈취당하거나 사진기자의 렌즈를 뺏은 후 땅에 후려쳐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취재기자재를 파손시키는 상황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건 사태를 방관한 경찰의 태도였다. 30여분동안 사측의 무력에 의해 천막당사가 강제 철거당하고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경찰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경찰지휘관들은 되레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현장을 힐끔 쳐다보고 유유히 지나가기만 했고 인도로 올라서라는 주문만 할 뿐이었다. 사측직원들의 폭력행위를 막기 위한 경찰력 배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의 호위 아래 사측직원들의 폭력행위가 인정되고 있는 듯한 불쾌한 느낌까지 들었다. 경찰간부에게 사측의 폭력행위를 제지해 달라고 부탁을 넘어 간곡한 호소로까지 이어져 강력히 얘기해봤지만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것은 최근 쌍용차 사측 시위대가 기자들에 대해 이유 없이 폭력을 가한 대표적 사례였다. 또한 작년 여름‘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경찰에게 발길질을 당하거나 뒤통수를 맞는 등의 폭행사례는 다반사였고, 지난 7월에는 서울역 앞에서“용산참사 대책 집회”를 취재하던 KBS정환욱 기자는 경찰의 폭행으로 손가락 인대가 파열돼 수술까지 받는 최악의 상황까지 직면한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정환욱 기자가 KBS 촬영기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취재 중인 정 기자를 기다란 장대우산으로 찌르고 이에 항의하는 정 기자에 대해 불법연행을 시도하며 쓰러진 정 기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더군다나 간부로 보이는 한 경찰은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취재 중인 정 기자의 카메라를 가로막고 손에 든 무전기로 물리력을 가하면서 폭력과 폭언을 퍼부었다. 경찰의 폭행으로 취재현장을 지켜야 할 정 기자는 오른손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고가의 방송장비는 파손을 당하였다. 이러한 경찰의 폭행사례가 비일비재하자 협회는 서울지방경찰청과 경찰정을 항의 방문하여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이에 경찰은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과 사과를 표명했었다. 경찰은 폭행의 주체가 누구이던 기자들의 취재행위에 대한 안전보장과 폭력행위에 대한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최근 쌍용차 사태에서 수수방관한 경찰의 태도를 보면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기자의 수난시대라고 할 정도로 요즘 현장에서는 뉴스보도의 방향 혹은 방송사의 이미지에 대한 편견에 따라 시위대의 폭력행위가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고 진압과정에 있어서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폭력으로 변질돼 카메라기자의 신변안전에 위협을 주는 상황이 부쩍 많아졌다. 이러한 현실이 반증하듯 이전보다 작은 규모의 집회를 나가더라도 안전모, 보호대 등 신체 안전장비를 꼭 챙겨 나가는 것이 일상화 됐고 선배들은 취재해 올 영상에 대한 조언보다는“몸조심해라”, “절대 다치지 마라”,“ 시비 걸어도 참아라”등 안전에 대한 유의를 특히 강조하는 것이 영상취재부의 요즘 분위기다. 심지어 해당 방송사에 극도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규모가 큰 단체를 취재할 때는 방송사의 로고를 떼고 취재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기에 언론사의 자존심 내세우기를 마다하고 취재에 전념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어느 위험한 상황이 닥치든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누구보다 한발자국 더 앞서 취재하며 보도 하려는 기자의 의지가 폭력에 무방비인 지대에서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열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있는 것을 한 발자국 정도 앞에 나가 취재된 영상만을 보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취재원인 시위대, 단체의 성향을 파악하고 기자협회와 카메라기자협회 등 보도취재에 해당되는 협회 간 상호대화를 통해 그들과 사전 대화를 시도하면서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등의 공동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경찰은 언론보도기자들에 대한 취재 여건 보장을 위해 상황별 가이드라인 등을 스스로 제시하여 교육과 대비를 통해 피해가 없도록 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정인학 MBC 영상취재부 / jitop@naver.com
    2009-10-15
  • 2009년 OBS경인TV 경력기자 모집공고
    “희망과 나눔의 방송 OBS에서 경력사원을 모집합니다”                     2009년 OBS경인TV 경력기자 모집공고   1.모집분야 : 취재기자                 영상취재기자   2.응시자격 : 해당분야 경력 3년 이상(취재기자)                  해당분야 경력 2년 이상(영상취재기자) 3.공통사항   - 4년제 대학이상, 연령제한 없음   - 병역의무를 필하였거나 면제된자   -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는자   - 국가보훈 대상자 및 장애인은 관련법규에 의거 우대   4.전형방법   - 1차 서류전형(1차 서류전형 합격자에 한해 개별통지)   - 2차, 3차 면접전형   5.지원서접수   - 접수기간 : 2009. 10. 12(월) - 10. 19(월) 오후 6시까지   - 접수방법 : 당사 홈페이지(www.obs.co.kr접속) 지원서 다운로드(첨부파일)                     지원서 작성후 이메일접수(E-mail: Recruit@obs.co.kr)   기타문의 ☎ 032 - 670 - 5213, 5214 OBS 인사총무팀   ※ 제출서류(서류전형 합격자에 한함)   -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대학원졸업자는 대학원 졸업증명서)   - 국가 유공자 및 그 가족은 취업보호대상자 증명서   -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등록증 제출   ※ 채용 진행결과 적임자가 없을 경우 채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제출된     서류는 일체 반환하지 않음. 또한 최종합격자라 하더라도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하거나 결격사유가 발생될 경우 합격을 취소 할 수 있습니다.   OBS채용바로가기  
    2009-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