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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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벽등반 촬영교육을 다녀와서```
    제목 없음 새로운 앵글을 위해 등반 길에 들어서다 지금까지 등산을 하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른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학교에 참가하였다. 게다가 등반 장소인 설악산을 그 동안 5~6번 정도 가 본적이 있어 그 곳은 내게 친근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설마 초보자인 내가 저 멀리 보이는 가파른 암벽을 오르진 않겠지’라는 섣부른, 몹쓸 판단을 하면서. . . 설악동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3박 4일 동안 교육받을 등반 교구와 산에서 먹을 행동식을 챙겨 숙소인 비선대 산장으로 출발하였다. 30 여 분을 걸어 숙소에 도착하였고, 황급히 점심을 해치운 뒤 바로 교육장으로 향하였다. 첫 교육은 20 여 미터 정도 높이의 암벽 밑에서 이루어졌고, 등반하기 전에 기본적인 로프 매듭법에 대해 배웠다. 실제 암벽 등반은 손과 발만을 이용하지만,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지켜줄 자기 확보 줄을 허리에 매고 진행한다. 그래서 이러한 자기 확보 줄과 로프와 로프를 연결하는 법을 반드시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로프 매듭법에 대해 배워 나갔다. 테이프 매듭부터 여러 종류의 8자 매듭까지, 종류별로 매듭을 짓다 보면 매듭 이름도 헛갈리고 뇌 혈관이 꼬이는 듯한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대략 매듭법에 대해 배운 뒤 바로 자기 확보 줄을 허리에 매고 20 여 미터의 절벽을 올라갔는데, 홀드(바위 표면의 패인 부분이나 틈)도 많고 커서 그런지 첫 암벽등반은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사실 암벽화를 준비해 와서 수월했고, 암벽화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암벽에서의 추락, 커져만 갔던 고소 공포증 등산학교 첫 날은 솔직히 할 만했다. 둘째 날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이 날은 실제 릿지(소규모 급준한 바위능선) 등반에 대비해 자기 확보줄 연결과 다음 등반자를 위해 로프 사리는 방법을 배웠다. 반복해서 연습을 해보았지만, 로프를 연결하는 순서가 뒤바뀌기 일쑤였고 카라비너(연결 쇠고리)를 조작하는 것도 서툴렀다. 어렴풋이 등반 방법을 익힐 때쯤 바로 릿지 등반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초장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암벽에 몸을 맡겨야 했다. 나는 강사들이 우리를 과대평가해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것을 시키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세 피치(암벽과 암벽 간)를 오르고 다음 피치를 오를 때쯤 나는 순간 움찔했다. 50cm정도 되는 거리를 건너서 암벽에 매달려야 하는데, 순간 두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발은 지면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힘껏 점프를 한 순간 추락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자기 확보줄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렸지만, 이때부터 공포에 사로 잡혔다. 자꾸만 절벽 아래만 눈에 보이고 오금이 저렸으며, 바위 위에 일어서기 조차 힘들었다. 내가 왜 이 암벽에 매달려서 이 생고생을 해야 하나 한탄을 하기도 하였다. 가까스로 두, 세 피치를 더 올라가 결국 하강을 했지만 그때 느꼈던 공포로부터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머리가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러움 증세에 시달려야 했고, 온 몸은 까지고 긁히어 만신창이가 되었다. 공포를 떨쳐 버리고 내 한계의 끝에 오르다 그 전 날 고전한 것을 만회 해보고자 이 날은 출발할 때부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스스로 나약하게 느껴진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더욱 약이 올랐다. 지금 오르는 등반 코스는 분명 올라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코스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한 발씩 올라갔다. 특히 선등자가 어디를 잡고, 밟고 올라갔는지를 정확히 보면서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 등반을 계속해 나갔다. 요령이 생겨서 그런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암벽을 오르다 순간적으로 손으로 잡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앞이 캄캄해졌다.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잠깐 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완등할 거라고 다짐을 했기에, 조금 힘들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오르고 또 올랐다. 특히 한 피치, 한 피치를 오를 때마다 조원들은 나를 응원해 주었고, 서로 응원을 하며 힘을 북돋았다. 결국 긴 릿지 암벽 등반 동안 우리 조는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정상에 올랐고, 긴 고생 끝에 느끼는 성취감은 너무나 달콤했다. 우리는 정상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행동식으로 허기도 달래며 여유를 만끽했다. 특히 정상에서 깊숙이 들이 마시는 담배 한 모금은 온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평소 가파른 절벽을 등반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완등의 기쁨이 그들을 암벽등반에 미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민환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9-01-09
  • <대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카메라기자
    <대 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카메라기자  지난 3일,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카메라기자’를 주제로 대담이 있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의 강의와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번 대담에는 MBC 정연철 기자, SBS 정상보 기자, YTN 성도현 기자가 참여했다.  자유 토론에 앞서 진행된 강의에서 전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전 교수의 강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영어로는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이며, 통상 PTSD라고 한다. 이 질환은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외상)을 경험한 사람이 겪는 심리적 반응이다. PTSD가 오면 해당 스트레스(외상)가 없어져도 그 당시를 회상시키는 활동이나 장소를 피하게 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잠을 잘 자지 못하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은 크게 침습적 증상, 회피와 무감각으로 나눠볼 수 있다. 침습적 증상은 외상적 사건들이 생활에 침투해 재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보통 투사 검사를 해보면 증상의 유무를 가늠할 수 있다. 데칼코마니 작품처럼 모호한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겪었던 외상과 연관을 시키는 것이다. 정상인들은 박쥐나 곤충처럼 보인다고 하는 그림을 ‘피’와 연결을 시킨다든지 죽어있는 사람과 연결을 시킨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이다.  회피와 무감각에서 ‘회피’는 말 그대로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상에 관련된 생각이나 외상을 회상시키는 자극을 회피하는 것이고, ‘무감각’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감소되고 매사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말한다. PTSD 환자가 계속 ‘회피’를 할 경우, 증상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으며, 그렇게 증상이 심각해지면 얼굴에 표정이 없어지고 ‘무감각’도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하나 눈여겨 봐야할 증상이 ‘지나친 각성’이다.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항상 위험에 처할 것을 두려워해 모든 것을 경계할 수 있다. 이를 견디지 못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부작용이 ‘불면증’이다. ‘불면증’이 오면 정신뿐 아니라 육체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공황(극심한 공포 반응), 불안 장애, 우울한 감정 및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때 괴로운 기분을 둔화시키기 위해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담배, 마약)을 남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PTSD의 원인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극심한 스트레스(외상)이다. 그러나 그런 극심한 그트레스(외상)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PTSD가 발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스레스(외상)을 일으킨 사건이 그 사람에게 주는 주관적인 의미이다. PTSD는 극심한 스트레스(외상)을 겪은 사람 중 40~90%에게 나타날 수 있으나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10%정도이다. 이 10%에는 죄책감이 있는 경우, 우울증이나 불면, 불안 장애가 있었던 경우가 포함될 수 있다.  직업의 특성상 PTSD에 노출된 가능성이 많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이에 대해 자각하고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의 세 가지를 지키도록 노력해보자. 먼저 스트레스(외상)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한다. 단, 이야기를 들어주되 절대 충고를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한다. 쉽지 않겠지만 주위에서 함께 노력해 준다면 생각의 굴레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사회적 지지 체계를 넓혀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친구나 가족이 용기를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 이상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특히 조절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의 인내가 필요한 시기에는 누구보다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시점에 가족이 외면을 한다면 인내를 갖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열심히 일만 하다 보니 가족을 챙기지 못해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본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조차 가족의 관심은커녕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이다. 비단 이런 문제 때문에 아니더라도 가족은 나의 가장 든든한 백이다. 사회생활뿐 아니라 가족생활에도 신경을 쓰자.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PTSD 치료 방법으로는 약물 치료, 바이오피드백, 이완요법, 집단 치료, 인지 행동 치료 등이 있다. 다른 치료와 함께 약물 치료를 하면 더욱 도움이 되는데, 약물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복용함과 동시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술이나 다른 약물을 중단하고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참아야 하는데 그 시기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나은 편이다. PTSD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알더라도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PTSD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직업군의 경우, 외상에 노출될 때마다 혹은 정기적으로 PTSD에 대한 스크리닝을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또 그런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렇게 전홍진 교수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강의가 끝이 났다. 그리고 대담 참석자들과 전 교수의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과 주위의 경험 등을 들어 궁금한 점을 기탄없이 털어놓았다. 그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연철 : 나는 물속에서 패닉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다. 예전에 수중촬영교육을 갔을 때 일인데 시야가 안보이면서 숨이 막히는 듯 그것을 이겨내 보려고 더 깊이 들어갔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 온 몸이 마비가 되고 목이 조여 오면서 정말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을 한 후, 물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다. 사실 지금도 그것을 완벽히 떨쳐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수중 교육을 다녀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는 샤워를 하면서도 목이 조임을 느끼기까지 했다. 지금도 문득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전처럼 그렇지는 않다. 다만, 목을 감싸면 그 때가 기억나 아무리 추워도 목을 감싸는 티셔츠나 머플러는 하지 않는다. 아직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전홍진 :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 기자에게 PTSD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라고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벗어난 상태라고 할 수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정 기자의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사건이었으나 그것이 무마되는 속도가 빠를 수 있었던 것은 그 대상이 ‘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이 무섭기는 했겠지만, 그렇다고 마시지 않을 수 없고, 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PTSD는 피하면 피할수록 심해지는 병이다. 반면 자꾸 접하면 접할수록 PTSD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정 기자는 피할 수 없는 물이었기에 그 공포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 정도의 공포를 겪으면 누구나 그 대상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정 기자는 매우 양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여기서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PTSD 환자는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되는데 그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상보 : 나는 정연철 선배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사건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취재를 다녀온 직후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몇 해 전 ‘남아시아 쓰나미 참사’를 취재하기 위해 태국 푸켓에 다녀온 이후 한 동안 그랬다. 허무한 기분이 들면서 태국으로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내 발밑에서 올라오던 악취이다. 정신없이 취재를 다니다가 발밑에서 악취가 올라오면 ‘이 아래 시체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일로 인해 충격을 받아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내가 입사도 하기 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취재를 갔다가 그 충격과 괴로움에서 해어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둔 선배도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를 보면 카메라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는 일이 사람에 따라서는 부담을 넘어 고통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전홍진 : 그렇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어떤 상황에 처했다고 모든 사람이 PTSD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며, 그 부분에 특히 취약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해서 정상보 기자가 이야기한 케이스처럼 직업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스크리닝이다. 스크리닝을 통해 문제 여부를 파악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조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쉬운 방법인 것이다.  정상보 기자의 경우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면, 전혀 걱정할 것 없다. 정상보 기자의 경우 PTSD 증후가 있었다고도 보기 어려우며 그런 상황을 겪었다면 누구든 그 정도의 괴로움은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단,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술’이다. 그런 상황을 겪고 난 후, 술로 푸는 것은 좋지 않다. 정상보 기자의 경우, 술로 풀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술이 어떤 기능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이 그것이 빨리 잊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스트레스(외상)을 겪었을 때, 술을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쪽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도현 : 나는 참 많은 것을 겪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도 갔었고, 파키스탄 내전에도 쓰나미 참사 현장에도 갔었다. 이라크 전쟁을 제외하고 기자들이 갈 수 있는 웬만한 곳은 다 갔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취약한 사람’과는 정 반대되는 사람인 것 같다. 현장에 있을 때는 허무하다는 등의 생각을 했지만, 다녀와서 동료들과 술 한 잔 마시고 또 바쁘게 일하다 보면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 자리에 와서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본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을 하다보면 남달리 ‘여린’ 사람들이 있다. 팀 내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되도록 험한 현장에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인력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본인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전홍진 : 그렇다. 이 PTSD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PTSD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TSD라는 병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경우, 스스로 이상 징후가 느껴질 때 그것을 이겨내려 노력하고,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는 모르기 때문에 치료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혼자 앓다가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나빠지는 케이스이다. 그러므로 카메라기자 역시 직업의 특성상 PTSD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육이나 스크리닝 등의 시스템을 만들어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요즘은 건강검진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높아져 예전에 비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그런데 그 건강검진 내역에 ‘정신과’ 분야가 있는 병원이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PTSD 증상으로 불면증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도 다른 질환이 없다면 ‘건강 검진’은 정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사회의 특성 때문에 ‘마음의 병’은 ‘몸의 병’만큼이나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인식하고 스스로 문제가 있으면 드러낼 수 있는 시스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9-01-05
  • <릴레이 인터뷰> MBC 박동혁 기자
    <이어지는 인터뷰 - MBC 박동혁 기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1. SBS 홍종수 기자가 ‘말한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보기 드문 친구’라고 소개하며 이번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로 추천했다. 홍 기자의 ‘추천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관계 여부를 떠나서(?) 일단 기분은 좋았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이 기쁜 일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홍종수 기자가 나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실제로 그렇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홍 기자의 눈에 내 노력이 보였나 보다. 말은 적게 실천은 많이 하며 살고 싶다. 2. 박동혁 기자가 생각하는 ‘홍종수 기자’는?  홍 기자는 매우 ‘조화로운 사람’이다. 봐서 알겠지만 매우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가졌다. 밝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홍기자는 놓치지 않는다. 사람에게 세심한 관심과 배려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홍 기자가 ‘조화롭다’고 생각한다.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친구다. 그 밝음을 닮고 싶다. 3. 얼마 전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요즘 근황은 어떠한가?  결혼식 날부터 지금까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이 끝나 있었고, 또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이렇게 않아 있다. 안사람은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오늘은 야근을 끝냈으니 안사람 당부대로 집에 들어가 밀린 집안일(?)을 해야겠다. 결혼은 생활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지금 내 연차가 가장 바쁜 시기인 것 같다. 경찰팀에 있다 보니 더욱 그렇다. 이런 와중에도 결혼 준비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배려해주신 여러 선배님들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비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4. 카메라기자로 일한지는 얼마나 됐나?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햇수로는 6년, 만 5년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무엇보다 1년 차였을 때 갔던 살인 사건 현장이다. 그 때도 어제처럼 야근을 했었다. 그날 밤 경기도 양주와 인천에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친 아버지가 자식을 살해했다는 점, 아이가 둘이라는 점,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살아남았다는 점, 살아남은 아이는 둘 다 딸이라는 점 등… 끔찍했고, 살아남은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종종 생각난다. 그 무게를 어떻게 이고 살아가고 있을 런지 걱정되고 궁금하다.  카메라기자를 하면서 많은 것을 봤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말이다. 뷰 파인더를 통해서 관찰을 하다보면 두개의 기억을 갖게 된다. 일반적인 상황의 기억과 뷰파인더 안의 기억. 뷰파인더 안의 기억은 보통의 기억보다 구체적이고 강렬하다. 원래는 잘 꿈을 꾸지 않는데 입사해서 3년 정도 많은 꿈을 꿨다. 불타고, 죽고, 다치고, 손가락을 자르고, 할복하고... 그래도 지금은 그런 꿈이 많이 줄어 든 것을 보면 다소 적응이 되었나 보다. 5. 지난 5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면.  지난해 내 동기인 김경철 기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가 떠난 것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그즈음에야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주는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철이는 나와 많이 달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의지하게 되었을 무렵 경철이가 훌쩍 떠나버렸다. 말과 글로 경철이에 대한 느낌을 규정지어 버리고 싶지 않다. 어디있는 가는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곳에서 따뜻하고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6. 앞으로 계획, 또는 바람이 있으시다면?  항상 계획도 많고 바람도 많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편이다. 특히 기자생활 하면서 '앎‘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다. 알지 못하면 볼 수 없다. 볼 수 없으면 기록할 수 없다. 눈을 뜨고 망막에 맺히는 상은 보이는 것이지 보는 것은 아니다. 조선 정조시대 문인 유한준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보이는 것은 예전 같지 않으리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따를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따를 수 없다. 이를 좀 바꿔서 이야기 하면, 아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 각각 다르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좀 더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느리게 걷고 싶다. 7. 협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지난 호에 홍종수 기자가 했던 말에 공감한다. 보도 윤리나 준칙이 있다지만 별반 실효성이 없는 것 같다.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우선은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카메라기자가 지켜야할 기본적인 소양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준의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보완하고, 교육을 통해 회원들에게 일깨우다 보면 전체적인 취재 문화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번 홍종수 기자는 상가를 예로 들었지만, 환자 인터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화상을 입어서 고통 받고, 기도 손상을 입어 말도 못하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인터뷰를 강요한다. 이것은 폭력이다. 항상 급변하는 현장에서 전에 겪지 못한 다양한 상황들을 겪다보니 무언가에 대한 판단을 그때그때 올바르게 하기가 힘이 든다. 현장을 알지 못하는 데스크에선 이런 저런 취재지시들이 내려올 것이고 논리적으로 차분히 지시에 대해 변을 늘어놓기에는 많은 것들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그래서 어찌되었건 일단 해놓고 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협회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8.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 주세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부분이 가장 고민되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본 결과 YTN 이상은 기자를 추천하기로 결론을 냈다. 이상은 기자는 나이에 비해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다. 그 순수함이 함께 있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 그가 생각난다. 술을 좋아해서 술에 대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지금 ‘공정 방송 수호’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을 텐데, 이 자리를 비러 힘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정말 괜찮은 남자인데, 세상 여자들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얼른 좋은 사람만나 결혼했으면 좋겠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9-01-05
  • 람사르 총회를 취재하고
    제목 없음 <취재기> 람사르 총회를 취재하고.. “현명하게 자연을 이용하자는 회의... 오히려 자연 훼손에 한 역할 한 것 같아 안타까워” 환경수도를 지향하는 창원에서 굵직한 회의, '람사르 총회'가 열렸다. 습지와 철새 등 환경에 관해 논의하고 토론하여 우리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자는 것이 그 취지인 것 같다. 창원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습지와 철새, 인간과의 공존, 논도 습지라는 결정을 하는 등 많은 논의를 거쳐 창원 선언문이 채택되고 성공리에 총회를 치렀다는 기자회견까지 마쳤다. 하지만 람사르 총회의 열기 탓으로 철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져 창원의 주남저수지와 창녕의 우포늪은 몸살을 앓는 듯하다. 총회 전에 마무리 하려고 서두른 흔적이 역력한 탐방로며, 덩지만 커다란 람사르 문화관, 이상한 모습의 탐조대가 주남에 만들어졌고, 갑자기 늘어난 탐조객이 오히려 철새를 놀라게 하는 역할을 했다. 모든 것을 새들의 입장에서만 볼 수도 없겠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 람사르 협약의 본질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제일 아름답고, 인간이 건드리지 않으면 부서지지도 훼손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기에 유엔환경계획도 세우고, 람사르 협약도 만드는 것 아닌가? 자연을 현명하게 이용하자(Wise Use)는 회의가 오히려 자연을 손상시키는데 일조를 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총회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 회의에서 논의된 사항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습지보호 회의를 유치하면서 습지를 매립하는 행위나, 철새와의 공존을 말하면서 철새를 놀라게 하는 행동이 비일비재하다. 무의식 속의 사고를 의식적으로라도 바꾸면서 자연과의 공존을 머릿속에 각인시켜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 습지 보호를 주민들과 함께 해 나간다. 일반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해 내방객을 상대로 상당한 깊이 있는 설명을 한다. 아직은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다. 주민에게도 무엇인가 혜택이 있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축제든 무엇이든 마찬가지지만 람사르 총회가 열렸다 하더라도 일반 시민들이 그 의미나 중요성에 대해 깨닫거나 느끼기는 사실상 어렵다. 철새 탐조 때의 기본적인 행동 양식에 대해서라도 주지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정도는 있어야 하겠다. 적어도 탐방로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고 조심해서 조용하게 다녀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람사르 총회는 총회 이후의 실천을 숙제로 남겨 준 듯하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기자로서의 비애 한마디. 람사르 총회 첫날 개막식엔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래서 취재용 비표를 신청했는데… (경남도청을 통해서 신청함) 아뿔사, 고의인지 실수인지 모르겠으나 근접이 아닌 원거리 취재 비표가 나왔다. 나뿐 아니라 지방 기자는 모두 ‘원거리’로 나왔다. 도대체 취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면 비표 신청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대통령의 행사에서 해당 지역 기자들 역시 풀단을 구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중 한 사람이라도 근접 취재 비표를 발급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항의를 했더니 경남도청 관계자들은 서로 자기 권한 밖의 일이라며 미루기만 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제 해결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무진 / 마산MBC 보도제작국 영상부 부장
    2009-01-05
  • <자출족 인터뷰>
    자출족! 내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이유 1.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는가? 2달 정도 2.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된 계기는? 운동 할 기회가 없어서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3.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 어떤 점이 가장 좋나? 체력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는 것 같습니다,무엇보다 하루가 길고 상쾌해 집니다. 4.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점은? 자전거 도로 부족,일반 도로 운행시 자동차 운전자 의식 부족. 5. ‘자출족’을 하고자 마음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무조건 시작 하세요...중독 됩니다. 이영석 / OBS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9-01-05
  • <자출족 인터뷰>
    자출족, 내가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이유 초보!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에 도전하다!  1년여 전 쯤 이었습니다. 늘어만 가는 몸무게와 뱃살,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하는 막연한 걱정 그러다가도 어김없이 퇴근시간이 가까워 오면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니는 술집들....  그러던 중 어느 날 목욕탕에서 체중계가 저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과체중을 넘어서 본격적인 비만이 다가왔음을 이제는 숫자로 확인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릎도 많이 아픈 것이 불어난 체중을 견디지 못해 나타난 부작용이었던 겁니다. 그때부터 바로 운동을 결심, 집 앞 헬스장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쁜 회사생활에 짬을 내어 운동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1달에 3-4번 운동하기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저는 사정사정해서 환불을 받았습니다. 환불받은 30여 만 원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한선배의 권유로 드디어 첫 자전거를 마련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저의 자전거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전거를 사오자 제집사람은 ‘또 시작이구나.  얼마나 오래가나 보자’는 고깝지 않은 따가운 시선을 보내더군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이거타고 출퇴근 할꺼야’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적응기간 2주 지나고 나서 바로 한강으로 나갔습니다. 집에서 행주대교를 건너 서강대교를 건너오는 제 딴에는 ‘이 정도는 돌아줘야지’ 하고 떠난 길, 무려 4시간 30분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집에 와서 몸살을 앓으면서 생각이 들더군요. ‘자전거 괜히 샀어.’  하지만 집사람의 그럴 줄 알았다는 비웃는 듯한 시선, 도저히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저질 체력이 문제였어’라는 나름대로의 진단을 내리고 본격적인 체력훈련에 돌입합니다. 처음에는 1시간정도 걸리는 거리를 꾸준히 연습한 결과 45분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됐어 자전거 타고 회사 가는 거야!  첫 자출에 부상당하다!  제집은 화정동입니다. 화정동에서 서울역까지 강변자전거도로를 이용하면 25Km정도, 2시간이면 되겠다 싶었죠. D-day는 일요일 야근 날, 아침9시까지 출근이니까 넉넉하게 6시30분쯤 출발하면 되고 조금 늦어져도 부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아침 햇살도 좋고 강바람도 너무 시원한 게 ‘이런 맛에 자전거 타는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더군요. 성산대교쯤에서 시간을 보니 1시간이 채 안 걸렸네요. ‘어허! 이러다 너무 빨리 회사에 도착하는 거 아냐?’하는 걱정까지 생기더군요. 한강대교를 올라와 삼각지방향으로 뻗어있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속도를 올려 밟아대고 있는데 갑자기 신호등이 바뀌면서 횡단보도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급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이건 또 뭡니까! 나도 모르게 허공을 날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군요. 횡단보도에서 자빠지다니! 하필 옆에 서있는 버스. 뒤따라오던 승용차 건너고 있던 수많은 시민들. 일요일이라 그나마 사람이 적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재빨리 자전거를 다시 집어타고 부리나케 줄행랑쳤죠. 그런데 얼마 가다보니 양쪽 무릎이 쓰라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까졌습니다. 무릎을 살펴보니 피가 철철 나더군요. 약국 아저씨는 아침부터 별 이상한 놈을 다보겠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시더군요. 어찌어찌해서 출근은 했습니다. 출근해서 무릎에 약 바르고,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있는데 선배가 말씀 하시더군요 “용호야! 너 내일 퇴근은 어떻게 하냐?”  ‘자전거’는 여러분에게 어떤 단어로 다가 오십니까?  어떤 분에게는 아이들의 장난감정도? 또 다른 어떤 분에게는 시장에서 짐 실어 나르는 수단정도? 어떤 의미라도 좋습니다. 저에게도 자전거는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알면 알수록 끌리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느 코미디언의 유행어가 생각나는 군요. 자출해봤어? 안 해봤으면 얘기를 하지 마라! 최용호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9-01-05
  • <자출족 인터뷰>
    자출족! 내가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이유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해 보자!  아침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흠뻑 땀을 흘린 채 회사에 도착하면 그 때부터는 밀려드는 피로와 싸워야 하니 큰 맘먹고 자전거 출퇴근을 해보다가도 금방 포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질끈 눈을 감고 며칠 고생해서 이것들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자전거를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다.  우선 자전거를 한 대 사야 한다. 너무 고급 자전거일 필요는 없으나 지나치게 싼 자전거도 좋지 않다. 자전거 도로나 차가 없는 직선 도로를 달릴 때는 시속 20km 이상의 속도를 낼 때도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견고해야 한다. 시중에서 40만원 안팎의 자전거면 무난하다. 안전을 위한 자전거 헬멧과 땀 흡수가 좋은 옷이 필요하다. 자전거 전용 복장을 마련하면 더욱 좋겠지만 편한 트레이닝 복도 괜찮다. 근무할 때 입을 평상복을 넣는 작은 배낭과 퇴근시 어두워졌을 때 길을 밝혀줄 자전거 전용 라이트도 있어야 한다.  또한 집에서 회사까지 어떤 길로 갈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최단거리 코스라고 하더라도 자전거 도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거나 차량이 고속주행을 하는 곳이라면 안전을 위해 피하는 게 좋다. 자전거 도로가 없는 길을 주행할 때는 반드시 도로 1차선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순 주행을 해야 한다. 차량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으니 항상 전방을 주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전거 도로를 달릴 때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자전거 도로는 사람이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조깅을 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만일 사고가 나면 이유에 상관없이 대부분 자전거의 과실로 처리되기 때문에 사람들을 잘 피해 다녀야만 한다. 특히 애완견에 목줄을 매고 산책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칫 목줄을 못보고 달리다가 줄에 걸리면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페달은 기어를 중간 정도에 놓은 상태에서 발 앞부분으로 규칙적으로 밟아야 한다. 가능하면 땀이 제대로 쏟아질 때까지 쉬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것이 운동에 도움이 된다.  자전거 출퇴근을 하면 출퇴근 비용을 아끼면서 운동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더불어 멋진 취미 생활도 하나 가지게 된다. 바람과 자전거와 내가 하나되는 느낌.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이 놀라운 세계를 알 수 없다. 주용진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9-01-05
  • <자출족 인터뷰>
    자출족! 내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는 이유 1.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는가? 2007년 부터 타고 다녔다. 올해로 넘어오면서 겨울이라 안타고, 이사하느라 안타고 했었다. 그러다 올 여름 ‘타고싶은 자전거’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느낀바가 있어 다시 타게 되었다.   2.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된 계기는? 영등포에 살고 있을 땐 버스, 택시, 지하철 중 어느 걸 타도 출퇴근 시간이 비슷하게 걸렸다. 인터넷 쇼핑몰에 싸구려 자전거가 보이길래 몇 번만 타고 다녀도 택시비만큼은 되겠다 싶어 한 번 사서 타봤다. 결론은 돈도 아끼고, 출퇴근 시간은 가장 적게 걸리고... 대 성 공. 3.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 어떤 점이 가장 좋나? 아침, 저녁으로 느끼는 시원한 바람이 의외로 쏠쏠하다. 주변경치를 즐기며 페달을 밟다보면 스트레스는 안녕~!  물론 체력단련과 교통비 절약은 보너스. 환경보호에 한 몫 하는 자랑스러움도 느낄 수 있다. 4.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점은? 자전거도로는 있는 둥 마는 둥에, 자전거 관련법은 애매하기 짝이 없다. 결국, 자동차와 보행자 사이에 끼인 ‘자전거 타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빨리 자전거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5. ‘자출족’을 하고자 마음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헬멧과 전조등 후미등은 필수.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음주라이딩은 절대! 금지. (걸리면 운전면허 취소랍니다.) 서두범 /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기자
    2009-01-05
  • <자출족 인터뷰> 내가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이유
    자출족! 내가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이유 1. 자전거로 출퇴근한지는 얼마나?  11년 정도 되었다. 등촌동에서 출발하여 여의도까지 편도 12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25분정도에 주파한다. 2. 자전거 출퇴근 하게 된 계기?  입사초기 사건팀에서 정신없이 생활하다 보니 일상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안을 갖고 싶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땀 흘리며 달리다 보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 좋다. 3. 자전거 출퇴근의 좋은 점?  오랜 세월 자전거를 타다보니 허리와 허벅지가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취재하는 촬영기자에게 특히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한강 8경’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멋진 풍경이 많다. 시원한 한강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자전거 타는 재미 중 하나이다. 4. 자전거 출퇴근 불편한 점, 개선할 점?  격세지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한강변 자전거 전용도로도 중간 중간 끊어지고 교량 연결도 미흡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다만 한강에서 벗어난 간선도로와의 연결이 더 원활했으면 좋겠다. 로마의 경우 시티바이크라고 해서 등록증을 가진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갈아탈 수 있는 공용 자전거를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킨다고 알고 있다. 5. 자출을 마음먹은 사람에게 한마디?  자전거를 구입할 때 돈을 좀 투자해서 쓸 만한 자전거를 사야 타다가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헬멧, 장갑은 꼭 구입하고 퇴근길에 대비하여 전후 라이트도 반드시 부착하는 것이 좋다. 박진경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
    2009-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