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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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특검을 계기로 본 포토라인,
    삼성특검을 계기로 본 포토라인 단상(短想) “각 기자들 간의 협력과 신뢰가 중요해”  긴 시간 삼성특검을 취재하면서 지루하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막상 끝내고 글을 쓰려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단조로운 일상도 있었고 하루가 힘들 정도로 격렬한 날도 있어서 시간에 관한 복잡한 심경을 느끼기도 한 기간이었습니다.  우선 삼성특검(이하 특검)을 출입하는 각사 카메라기자들의 간사를 맡아 느낀 포토라인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해 볼까합니다.   포토라인과 각종 매체의 카메라로 복잡했던 특검 로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이며 세계적인 그룹인 삼성 그룹의 비리를 조사하는 특검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이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좁은 로비에 각종 매체에서 온 다양한 장비들로 사람도 통행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이럴 때 정렬된 라인 뒤에서 질서 있게 취재하지 않으면 혼란이 극에 달해 취재는 취재대로 하지 못하고 기자간의 몸싸움으로 감정이 상하는 등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포토라인의 필요성이 강하게 필요한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포토라인을 정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우선 방송카메라 기자들처럼 상주하는 기자들의 경우는 그래도 기득권(?)이 있었지만 중계카메라나 사진기자들이 경우는 먼저 오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늦게 오는 기자들은 포토라인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방송은 2개사끼리 서로 풀을 하고 자리가 좋은 사진기자가 타사에 사진을 풀 해주는 등 서로간의 노력으로 혼란을 피하고 포토라인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별탈 없이 취재가 잘 끝난 것은 카메라, 사진, 인터넷 기자들 간의 협력으로 잘 조율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상적인 ‘카메라 존’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오고 있지만, 이번 삼성특검처럼 먼저 오는 순서대로 자리가 정해지는 포토라인 유지의 핵심은 상호간의 신뢰인 것 같습니다.  늦게 오는 경우 맘이 급한 것은 알겠는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라인 바로 앞에 놓인 방송 트라이포트 밑에 앉겠다고 하는 사진 기자들이 그런 경우인데 한 명의 사진 기자가 앉으면 다음, 다음으로 계속 이어져서 결국엔 통제가 될 수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간사 간에 조율이 중요한데, 특검의 경우에는 비교적 합의가 잘 이루어져서 포토라인의 유지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결국엔 서로간의 협력과 신뢰가 포토라인 유지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포토라인의 유지가 깨진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이건희 회장의 1,2차 소환 조사 후 귀가 때와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소환 때였습니다. 홍 사장의 귀가 때는 어처구니없게도 같은 직종군의 기자가 본인이 만들어 놓은 포토라인을 지키라며 취재를 방해한 경우였는데 아무리 충성심이 높아도 지켜야 될 것이 있는데 허탈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만 다음에 이런 경우가 있다면 미리 조심하고 잘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다음 경우는 카메라기자들의 포토라인 이탈로 생긴 일이 아니고 취재기자들의 과잉 취재로 생긴 일이였습니다. 보통 때는 취재기자 3명이서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들고 포토라인 안에서 정리가 됐는데 이건희 회장 소환 같은 큰 상황에서는 그 것이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조사 받고 나오는 이 회장에 대한 취재 열기는 이해가 되지만 카메라 기자들이 포토라인 밖에서 질서를 지키고 있는데 안에서 무너뜨려 현장이 엉망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매체의 수가 과거에 비해 많아지고 촬영, 오디오기기도 아주 소형화된 지금 취재기자들의 움직임도 포토라인 안에서 강한 조치로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정리하면 지난 여러 일 동안 삼성 특검에서 포토라인에 관해 느낀 점을 언급한다면 각각 기자들 간에 협력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 민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8-06-26
  • 대전MBC 카메라취재부가 기술국 영상제작부로 통합되는 어이없는 일이
    “안정적이고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 대전MBC 카메라취재부, 기술국 영상제작부로 통합되는 어이없는 일이  부에 대한 욕망과 본능으로 치러진 이번 대선과 총선의 결과가 신자유주의자들의 압승으로 나타났고, 그로인해 노동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타나났는가? 진중권 씨는 이에 대해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것을 개혁과 진보의 수사로 치장했다. 그러다 보니 판단에 혼란이 생겨, 대중들은 자신의 삶이 어려워진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탓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표방하던 개혁과 진보의 가치 때문이라고 믿어버리게 됐다. 한나라당에는 이런 애매모호함이 없다. 그것이 그들의 장점이다. 그들은 선명하고 화끈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걺으로써 혼란이 빠진 대중의 욕망을 사로잡아 버렸다. 결국 잘 먹고 잘살자는 욕망이 문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문제에서도 이런 혼란은 이어져 정규직은 자신의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비정규직은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됐을 때 자신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20대 비정규직과 40대 정규직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한나라당’이라는 합의에 도달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현 정권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생각 자체가 없는 듯하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의 구조개혁과 더불어 비정규직 고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이들 비정규직의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의 중심에 놓여왔다. 실제 비정규직 및 취약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사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이들 비정규직의 임금과 복지수준이 정규직의 절반에 그치는 매우 열악한 고용조건 역시 그들이 감수해야할 부분이었다. 더욱이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관계법과 사회복지로부터 배제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노동시장은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이중적 고용관행이 고착화 되어 있는 가운데 이들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 그리고 사회적 배제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사회에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보수의 광풍 속에서 비정규직들은 자신과 열정을 잃어가고 있다. 또한 성장과 집중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자본의 욕구가 분배와 균형의 논리를 압도해 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원론적으로 성장과 분배의 균형적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본심에 드러나는 징후들 속에는 아주 거친 성장주의다. 이런 신자유주의자들이 모인 이명박 정권의 극단적 시장주의는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다. 서두가 너무 장황했다.  이와 같은 현실인식은 대전MBC 카메라기자들에게도 예외 일 수 없다. 9명 총원에 6명이 비정규직인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10여 년 동안을 개선하겠다는 회사의 거짓 약속만 믿고 버텨온 힘없는 노동자인 것이다. 회사는 다양한 방법으로 법망을 피하며 계약을 연장하다 노동법이 적용되는(300명 이하 사업장) 올해가 되서 고작 한다는 것이 ‘효율성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인원을 축소하고 조직을 개편한 것’이다. 이 결과 보도국 카메라취재부가 사라지고 기술국 영상제작부로 통합되었다. 조직적인 측면에서도 비정규직이 많은 부서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가없다. 회사 내에서도 2등 국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정규직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권리는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카메라기자도 방송의 근간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생산자이며 이런 생산자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투쟁과 물샐 틈 없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앞선 구조를 가진 방송국 선배들이나 후배들의 경우도 사회적 힘과 발언권을 이용해 자신들이 앞으로 겪을지도 모를 불합리한 처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한다.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비정규직 스텝들과 연대해 발언권과 사회적 정당성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힘을 모아 비정규직 카메라기자들이 노력한 만큼 정당한 평가와 가치에 대한 주장을 한다면, 그래서 영상뉴스의 중요성과 역사의식을 가진 카메라기자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방송 시스템 개선의 토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겪었던 불합리함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들이 회사 사장에게 보낸 성명서를 소개하며 끝을 맺겠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다. “안정적이고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뿐이다. 우리가 신임사장이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혹시나’하는 바람이 ‘역시나’하는 실망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 훈 / 대전MBC 기술국 영상제작부 기자
    2008-06-26
  • 기대와 고통과 깨달음의 과정을 겪고 나서
    제목 없음 기대와 고통과 깨달음의 과정을 겪고 나서 첫날! 너무도 힘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는 게 없으니 아무것도 안보이고 답답하고 스스로 한심한 생각만 들었다. 내용을 모르니 재미도 없고, 컨벤션 센터는 너무 넓어 다리만 아프고… 괜히 Sony랑 Panasonic만 들어가서는 이것 저것 사진 찍고 자료 찾고… 사실 그 부스에 있는 것들은 서울에서도 자주 보는 것들이고 그래서 대부분 너무 익숙한 것들이었다. 굳이 라스베가스까지 가서 봐야 하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는 것이 없으니 그렇게 조금이라도 익숙한 곳으로 숨어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었나 보다. 바보 같은 날이었다. 같이 다닌 선배는 왜 그렇게 아는 게 많은 지, 난 회사 이름도 처음 듣는데 그 선배는 각 회사의 특징 및 대표 브랜드까지 다 꿰고 있다. 자괴감, 피로감, 열등감 3감의 하루였다. 다음날. 일단 마음을 비웠다. 부담도 지우고, 놀 생각도 지우고, 그냥 느끼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들 그냥 궁금해 보이는 것들에 다가가기로 했다. 아직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무선으로 찍은 영상이 바로 전송되는 무선 카메라, 필터 없이 색 온도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라이트, 현장에서 취재한 데이터를 다양한 포맷으로 현장에서 저장하는 소형 필드 레코더, 헬리콥터를 닮은 플라잉 캠과 로보트와 카메라를 접목한 Cambotics, Ultra 3D HD TV 등 많은 것들이 하나 둘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흥미로워질수록 사람들은 친절해졌다.   “Hi… I’m a Korean video journalist… Wow… this is great! Could you explain more detail…” 안 되는 영어로 천천히 관심을 보이면 반응은 하나같다. “Sure, come on… this is…” 하면서 이리 저리 보여주면서 아주 신이 난다. 그 사람도 나도 모두 말이다.   난 라스베가스 NAB에 견학 온 대한민국 방송국에서 일하는 6년 차 카메라기자다. 내가 무슨 IPTV의 미래나 HD 방송의 Total Solution을 이해하고 방송 기술의 첨병으로 한국 방송 발전에 큰 몫을 하려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소박하고 성실하게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이렇게 좋은 경험의 기회를 준 협회 회원들에게 내가 느낀 것을 함께 나누면 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씩 컨벤션 센터를 돌아다니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이번 컨벤션의 주제는 “Where content comes to life” 였다. “컨텐츠가 삶이 되는 곳”이라.. 아마도 이번 컨벤션에서 선보인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 같다. 즉 우리 삶에 아주 가깝고 편리하게 이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미래 기술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이미 충분히 발전한 기술을 삶과 접목하느냐가 화두였던 것이다.    중요한 건 상상력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Day Light 필터가 필요 없이 색 온도가 조절되는 LED 라이트나 지금은 너무도 큰 라이트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는 소형 배터리… 혹은 가벼운 스테디 캠이나 미니 크레인 등등 우리가 취재 현장에서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들을 상상하면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문제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상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평가하는 소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연수는 기대와 고통과 깨달음의 과정이었다. 처음 협회에서 라스베가스 연수를 가라는 말에 얼마나 들뜨고 기뻤던지 하지만 회사에서는 과거와 달리 놀지 말고 공부하는 연수를 해보라고 부담을 주기 시작 했고, 현장에 도착해서는 그 커다란 컨벤션 홀에서 혼자 버려진 듯한 고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현장에 문을 두드리면서 새로운 세상의 문이 조금은 열린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연수를 다녀와 1주일 동안 무슨 고시공부 하는 학생처럼 공부를 했다. 회사에서 연수 보고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가나다를 처음 배우는 것처럼 부끄러움을 버리고 솔직하게 공부를 했다. 선배들에게 지겹도록 전화해서 묻고 또 묻고 1080p와 1080i에서 p는 뭐고 i는 뭔지 에서부터 자료에 나온 단어 하나 하나의 뜻을 찾아 가면서 그렇게 1주일을 공부하고 연수 보고 발표를 했다. 물론 발표 내용은 연수를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수준에 그쳤지만 그 준비 기간만큼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카메라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쓰고 있는 장비, 또 내가 앞으로 쓸 장비와 그 장비의 메커니즘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던가에 대한 반성. 장비 전시회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어려운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처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에 오히려 귀 기울여주는 곳이라는 인식의 변화. 부끄러움에서 시작했지만 구석으로 숨어들어가지 않고 한번 도전해 본 2주일의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은 거품 없이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 바로 그것이다. 정상보 기자 justice@sbs.co.kr
    2008-06-26
  • 한국 최초 우주인을 취재하고
    한국 최초 우주인을 취재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긴박한 러시아어 몇 마디가 흘러나오자 잠시 후 로켓은 그 몸체를 둘러  싸고 있던 지지대를 떨쳐버리고 불을 뿜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땅을 울리는 듯 굉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불꽃이 흘러나오자마자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를 태운 소유즈 호는 바로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일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우주선이 발사되는 현장의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카메라의 렌즈를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로 돌려야 했다. 발사 순간의 리액션을 취재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덕분에 로켓이 발사되는 잠깐의 순간과 이미 하늘로 올라가버린 후의 작아진 로켓의 모습만 내 뇌리에 남게 되었다.  로켓이 발사된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는 일반적인 도시라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군사기지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도착하는 공항부터가 마치 포로수용소의 감시탑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곳이었지만 외부인에게는 도착할 때부터 떠날 때까지 통제만을 강요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발사현장이 있는 기지 안으로 들어갈 때는 물론이고 시내에서 이동을 할 때에도 단체로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게다가 당국의 허가를 받은 안내자가 없이는 버스가 있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현지 당국자들은 취재를 위해 전혀 융통성을 발휘해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이뤄져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우리가 자율적으로 취재를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이동 시에 어쩌다 버스의 정원이 초과되면 인원이 맞춰질 때까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러시아어 이외에는 영어도 사용하지 않는 지역이라 통역이 없이는 아주 간단한 의사전달조차 힘들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절반정도가 리모델링을 한 상태라 깔끔하기는 했지만 욕실에서 나오는 물로는 양치도 할 수 없어서 생수로 대신할 만큼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여러모로 열악한 취재조건이었지만 카자흐스탄의 사막이라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일한다는 점과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을 태운 우주선 발사 현장을 지켜본다는 점에서 이번 출장은 의미가 있었다. 사방이 막힌 한국과는 달리 바이코누르의 발사기지 주변은 어디를 봐도 시원한 지평선이 보였다. 그 지평선 아래에 간간히 작은 풀들과 군사시설 같은 건물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 넓은 발사기지의 저 편에서 한국인을 태운 로켓이 우주로 날아오르기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취재하는 우리 취재진이 있었다. 로켓이 발사되기 전 로켓 조립동에서 나와 발사대까지 이동하는 과정을 취재하는 동안에는 바로 코앞에서 로켓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웅장한 로켓이 기차에 실려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장관이었다. 드디어 발사준비가 완료되고 많은 관람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주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은, 비록 사람들의 리액션을 취재하느라 모든 과정을 자세히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내 기억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주선이 무사히 발사되고 방송도 별 탈 없이 나갔다. 발사하기 전까지의 과정들을 수차례 교양프로와 뉴스를 통해 방송했지만 가장 중요한 실제 발사과정 방송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간의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안도감이 들었다. 뉴스 취재팀 뿐 만 아니라 중계팀, 교양, 라디오 제작팀, 행정팀 등 전회사차원의 대규모 출장 팀이 꾸려진 만큼 부담감도 컸었기 때문이다. 로켓 발사 이후에는 모스크바의 MCC(Mission Control Center)로 이동해 소유즈와 국제우주정거장의 도킹까지 취재를 했다. MCC의 경우 취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큰 물리적 어려움 없이 취재를 할 수 있었다.  바이코누르와는 달리 러시아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공항 출입이었다. 세관신고를 해야 하는 장비를 갖고 공항을 몇 번 출입하는 동안 소비된 시간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까르네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공항으로서는 당연하겠지만 세관 직원에 따라 일관성 없이 일을 진행하는 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직원은 마치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고 괜한 배짱을 부리는 듯한 인상까지 줄 정도였다. 이런 불편함을 미리 전해 듣고 출장을 떠났기에 현장에서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대국이라고 하는 러시아의 이런 후진국과 같은 모습에는 실망을 했다.  어려움도 많고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출장이었다. 역시 역사의 현장에 서 있을 수 있는 나의 일, 이 길을 선택하고 그  길 위를 걸어 갈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신동환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8-06-25
  • 건강한 사회인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집에 일찍 좀 오렴
    자랑스러운 내 딸, 카메라기자 오 령 “건강한 사회인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집에 일찍 좀 오렴”  꽃샘추위가 바로 얼마 전에 지나간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화사한 꽃들이 앞 다투어 피기 시작한지도 오래구나. 벌써 때 이른 무더위에 여름이 머지않은 듯 한낮에는 햇살이 부담스런 느낌도 드니 세월이 빠름을 이럴 때 다시 한 번 실감한다.  9시에 뉴스데스크가 시작하면 오늘도 변함없이 진행되는 뉴스에 얼른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예전에는 그저 시간이 되면 별 생각 없이 보고 듣기만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사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저 내용을 어떻게 취재하고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고 있어. 그것은 아마도 내 딸인 네가 뉴스를 만드는 한 구성원으로써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더 화면을 주의 깊게 눈여겨보면서 ‘저걸 찍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위험하지는 않았을까’, 언제나 궁금한 마음 반 걱정 반으로 뉴스를 보고 있다. 특히 네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다 오거나 먼 곳에 다녀와야 할 경우에는 오직 걱정뿐이지. 하지만 너를 비롯한 여러 카메라기자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집에 앉아서도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매일 알 수 있으니 네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단다.  더욱이 네가 오늘 한 일을 엄마는 뉴스를 보면서 알 수 있고, 종종 네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네가 취재한 일에 대해 묻기도 하면서 내 딸이 하는 일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안타까운 사연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떤 사연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깊이 그 감동이 전해오기도 한다. 또 짧으나마 계절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땐 시원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그 영상에 빠져들기도 하지.  다만 부모의 심정에서 자식으로는 아직 미완의 존재인 너에게 부탁하고픈 바는 여러 곳을 다니고 많은 사람들과 사건을 접하면서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본받을 점은 마음에 새기고 반성도 했으면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인생 공부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겸손한 마음 자세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려고 애쓰며, ‘설마’하는 안이함보다는 미리 깊게 생각 하고 성의껏 최선을 다하렴. 앞으로도 항상 준비하는 마음으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고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회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란다.  엄마는 이런 마음으로 오늘은 어떤 뉴스에 ‘영상취재 오령’이라는 자막이 나올지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을게. 집에 일찍 좀 오렴. 2008년 5월 엄마가 양승숙 /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오 령 어머니
    2008-06-25
  • 새내기 아내의 눈으로 바라본 내 남편, 카메라기자
    새내기 아내의 눈으로 바라본 내 남편, 카메라기자 솔직히 생소했다. ‘카메라기자’라는 이름!  결혼한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나로서는 방송국의 카메라기자 아내로서의 느낌을 말하기가 여러모로 부족하다. 사실 방송 뉴스조차 매일 모니터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나와는 달리 시부모님들께서는 남편이 취재한 뉴스에 집중하신다. “수고했다”, “고생했다”, “자랑스럽다” 등의 문자가 남편의 휴대폰으로 날아온다, ‘직업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들인데 항상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오는 일이 있었다. 남편이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으로 출장을 다녀왔을 때 일이다. 입고 갔던 청바지는 온통 기름 범벅이었고, 몸에서는 기름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여 머리가 아플 정도로 좋지 않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굴은 초췌해가지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우리 남편 정말 힘들었구나. 시청자들이 직접보기 어려운 상황을 뉴스로 전해주느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다닌다고 고생이 많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꼭 안으며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고생했어.”  가슴이 미어지며 쓰라렸다. 뉴스 하단에 자그마치 반짝였던 남편의 이름 세 글자가 자랑스러웠지만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이 고생을 꼭 우리 남편이 해야 하나?’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 출장 갔다 돌아오는 날은 머리가 아프다. 남편의 피곤함을 풀어줄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느라 말이다. 맛있는 한 끼 식사, 혹은 남편이 즐거워할만한 이벤트를 짜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사건이 많은 날이면 더 바빠지는 우리 남편, 집에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싶고, 안정을 찾게 해 주고픈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자 바람이다.  카메라기자도 사람인데 찍는 순간 괴로운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남북 이산가족 상봉 후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이나 혜진, 예슬이 사건의 토막 난 시체, 유가족들의 모습 등 사람으로서 보기 힘든 모든 것들을 외면할 수 없는 그의 마음이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남편이 찍은 모든 장면이 보고 싶다.  뉴스의 보여지는 부분만이 아니라 카메라가 움직였던 모든 순간이 궁금하다. 그것은 아마도 남편이 고생과 노력을 함께 느끼고 싶어서 일 것이다.  카메라기자의 아내로서 나는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집에 돌아와서 SBS 뉴스 및 타사 뉴스를 모니터링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견스러운 마음이, 또 원하는 대로 영상이 구성되지 않아 궁시렁 대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항상 느끼는 것은 ‘자랑스러움’이다. ‘한국 최초 우주인 프로젝트’ 같은 일은 일반 직장인의 경우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역사적인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내기 위해 17시간을 버스로 이동하며 이어지는 스케줄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갖고 있는 점이나 풍부한 간접 경험으로 언제나 나보다 폭넓은 사고를 하며 내 사고의 폭 역시 넓혀주는 점 또한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남들은 위험해서, 혹은 더러워서, 그렇지 않으면 짜증나서 피하는 상황들을 내 남편은 오늘도 내일도 카메라에 담아낸다. 카메라 렌즈 너머의 삶은 다양하다. 그런 다양한 상황 속에 익숙해진 남편의 배우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나도 카멜레온처럼 여러 상황에 맞춰 변신해야만 할 것 같다. 숨가쁘게 움직여온 것에 익숙해진 남편에게 항상 새로운 것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한미 FTA 반대 집회 같이 너무 위험해서 발탁되지 않기를 바랬던 현장에서 일한 남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현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건 알지만 “왜 저렇게 위험하게 찍었어?” “다치면 어떻게 해?”하며 잔소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 뒤 “리얼하다”, “잘 찍었네” 하며 두 가지 상충된 마음을 같이 표현한다. 그런 마음인 것 같다. 카메라기자의 아내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취재한 뉴스를 통해 남편의 하루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내 남편이 카메라기자이기에 가능한 것 같이 분명 내 남편은 평범하지 않은 직업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 또한 두 가지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걱정스러움과 자랑스러움! 이은정/ SBS 영상취재부 이용한 기자 아내
    2008-06-25
  • <인터뷰>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차근차근 보답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처음 원고제의를 받았을 때는 이런 저런 이유로 적잖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참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 쓰지 않던 편지 형식의 글을 카메라기자협회지를 통해 가족에게 전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으니까요.  가족, 너무나 친숙한 두 음절입니다. 하지만 평소엔 잊고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족이기 때문에’ 라는 표현은 세상의 논리를 초월합니다. 일반적으로 가족이라 함은 혈연으로 묶인 관계를 의미하지만 그 범주를 넓게 본다면 의미는 더욱 강력해집니다. 피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회사에서 ‘우리는 하나’, ‘하나의 가족’, ‘한 식구’등 지금 보기엔 식상한 표현을 자주 씁니다. 그런데 남을 내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실패와 고통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와 고통을 느껴본 자가 성숙하듯이 그것을 ‘함께’ 나누었고 결국 ‘극복했다’함은 나와 그 고통을 느낀 자와의 관계에서 가족 이상의 그 무엇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가족이란 나와 피를 나눈 부모님과 두 누이 그리고 회사 여러분들입니다. 이들에게 다음의 글을 전합니다. 부모님과 두 누이에게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고 또 지원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 짧지 않은 길을 멀리 돌아왔지만 그 시간을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또 기다려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젠 마음을 놓으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제가 세운 목표를 향해 정진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누나들! 항상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언제나 무엇이든 먼저 챙겨주고 내게 양보했던 두 누나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막내 티를 내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 봤지만 누나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철없는 막내입니다. 지금까지 받기만 했던 삶, 덤으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보답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회사 식구들에게  우선 방황(?)하던 저를 한 식구로 맞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한 식구입니다. 새 집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 지금보다 조금만 더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이곳은 진정 행복한 집으로 거듭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가족이니까’라는 강력한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우린 서로를 아껴주고 챙겨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한 가족입니다.  저에겐 새집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즐겁습니다. 혹시 새집 증후군이 있는 식구가 있다면 저와 대화 한번 나누시죠. 제가 새집의 친환경 소재, 환기구가 되겠습니다. 영상취재팀의 유병철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서 다시금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기회를 주신 카메라기자협회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전국의 카메라기자 선배님, 후배님들 모두 건강하시길 바라며 가정과 회사 모두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OBS 경인TV 영상취재팀 유병철
    2008-06-25
  • <릴레이 인터뷰> OBS 윤산 차장
    <이어지는 인터뷰 - OBS 보도국 윤 산 차장> “우리의 회사 OBS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  지난달 김두연 차장에 이어 이번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는 현재  OBS에서 아카이브 매니저 역할을 맞고 있는 윤 산 차장이다. 윤 차장을 인터뷰하러 간 날, 날씨가 유난히 따뜻(?)했다. 지리에 매우 약한 나는 OBS가 있는 부천과 사무실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던 고로 너무 서두른 나머지 무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렇게 빨리 도착해 전화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윤 산 차장은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다”며, “바로 나가겠다”고 말씀해주셨다. ‘호감형’일 뿐 아니라 ‘매너까지 좋은’ 그 분,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지난 인터뷰 주자인 SBS 김두연 차장께서 윤 산 차장을 ‘매우 호감 가는 후배’라고 소개 했습니다. ‘호감’가는 사람이 되는 윤 산 차장님의 비법을 말씀해 주신다면.  그것은 100% 김두연 선배의 개인적인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봐주신 김 선배에게 감사하다. 후배가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마음을 열어준 김선배야 말로 호감형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떠나서 나이를 떠나서 경력을 떠나서 카메라기자 모두가 ‘호감형인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2. 카메라기자가 되신지 몇 년이나 되셨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내가 1994년에 입사를 했으니까 햇수로 15년이 되었다. 카메라기자로서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YTN이다. YTN이 개국한지 몇 달 안 돼 입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카메라기자로 일을 한 15년 동안 3번의 개국을 경험했다. YTN 개국, iTV 개국, 그리고 OBS 개국까지… 이것도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웃음)  이와 함께 기억에 남는 일은 내가 처음 취재를 나갔던 ‘성수대교 붕괴 사고’이다. 그 때 나는 모 선배의 보조 역할로 희생자 영안실 취재를 갔었다. 영안실은 말 그대로 울음바다였다. 나 역시 가슴이 먹먹했다. 그런데 한 젊은 여자가 오열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라고 했다. 선배는 포커스를 그녀에게 맞췄다. 조명을 들고 있던 나  역시 그녀에게 조명을 비췄다.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와중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선배를 봤다. 그런데 선배는 한 치 흐트러짐도 없이 취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기자는 저래야 하는 구나!’하고 생각했다. 만약 그 때 카메라를 들고 있던 선배가 나처럼 울고 있었다면 어떻게 제대로 취재를 해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겠는가?  그 취재를 다녀와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카메라기자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에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무엇보다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3. iTV가 재허가 추천을 거부당해 OBS가 설립되기 전까지 굉장히 어려움을 겪으신 것으로 아는데요.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뭐든 했다. 사실 그 기간이 2년이나 될 줄은 몰랐다. 나뿐 아니라 동료들 모두 1달 혹은 2달 길면 6개월, 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상 외로 그 기간이 너무 길어졌고, 계속 이렇게 가야 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을 버텼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배를 믿고 함께 하는 후배들에 대한 책임감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되든 함께 해보자고 했던 의지가 오늘을 만들어 주었다고 본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시기를 겪음으로 해서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다른 여유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여유 말이다. 전 iTV 영상취재팀원 중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현 OBS 영상취재팀에 합류했다. 힘든 시기를 함께 겪어서 인지 팀워크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OBS 영상취재팀원 모두 전보다 한 단계 업 그레이드 되었다고 믿는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OBS 영상취재팀, 모두 모두 파이팅이다! 4. 현재 ‘아카이브 매니저’ 업무를 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하고 계신 일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아카이브 매니저’는 들어온 영상을 보관할 것인지 삭제할 것인지, 만일에 보관을 한다면 얼마동안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분류해서 보관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OBS뿐 아니라 타 방송사 역시 아카이브 매니저는 카메라기자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카이브 매니저’의 역할이 ‘영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기 때문에 뉴스 영상에 대한 경륜이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므로 그 역할에는 카메라기자가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뉴스 제작 환경의 변화로 이 역할의 중요성은 매우 크며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카메라기자들은 영상취재, 편집뿐 아니라 그것을 분류하고 저장하는 아카이빙까지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5.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시다면?  다른 목표는 없다. 오로지 내 인생의 세 번째 개국 방송국인 OBS가 일정 고도에 오르기 까지 미약하나마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는 것이다. OBS는 작지만 큰 잠재력을 가진 방송사이다. 회사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공을 탄탄히 쌓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우리의 회사 OBS’를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6.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다른 것보다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되라고 하고 싶다. ‘고여 있는 물’은 결국 썩는다. 그러나 ‘흐르는 물’은 미래가 있다. 비록 졸졸 흐르는 개울물이라고 계속 흐르다보면 강이 되고 또 바다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자리에 그리고 자신이 가진 능력에 안주하다 보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다른 것은 다 변하는데 뉴스 영상만 그대로라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후배들은 항상 새로운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 말이 쉽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하고 노력하다보면 뭔가 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함께 조금씩 발전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7.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 주세요!  YTN부산지국 전재영 기자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나와 YTN 동기이지만, 사실 서로 다른 지역에 있기 때문에 많이 보지는 못했다. 몇 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힘들고 지칠때 바다 만큼이나 보고 싶은 친구다. 지나치게 진지한 측면이 있어서 부담스럽기는 해도 그것이 진심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좋다. 전재영! 다음 달에는 네 얘기 한 번 들어보자!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6-25
  • 영상 매체의 주체인 카메라기자, 저작권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 있어
    “영상 매체의 주체인 카메라기자, 저작권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 있어” 지난 4월, MBC 보도국 문화스포츠영상팀 류종현 부장이 쓴 ‘현대 저작권의 쟁점과 전망’이 발간됐다. 이 책은 「사이버 스페이스의 법과 기술」(공저), 「네티즌을 위한 e-헌법 Cyber Law」(공저)에 이은 류 부장의 세 번째 저서로 여타 저작권 법률서와는 차별화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인터뷰는 류종현 부장의 바쁜 스케줄 관계로 질문을 보내고 답변을 받는 식의 서면 인터뷰로 진행됐다. 1. ‘현대 저작권의 쟁점과 전망’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신다면. 한마디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곧 저작권의 변화를 주도하였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학기술과 저작권법 다 같이 인간의 지식과 삶의 조건을 규정짓는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구조적 요인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과학기술과 법의 관계는 자칫 대립적인 긴장 관계로 인식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이 문화의 일부로 이해되기보다는 여전히 도구적인 문화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과학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은 마침내 정보통신혁명을 선도하면서 기술융합을 통하여 방송과 통신의 경계도 허물어 가고 있듯이 학문의 경계도 허물고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어느 법학세미나에서 발표를 주도했던 여성판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명쾌한 분석을 제시하며 법률적 이해를 높인 비결에 대하여 서슴없이 학제간 연구로 가능했었음을 은연중에 내비쳤습니다.  이제 우리의 현실로 잠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상매체와 영상콘텐츠가 중시되는 현시대적 상황에서 기술융합이 진행된 지 오래건만 아직도 법과 기술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미 도래한 지식정보화시대에 기술융합적인 저작권법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우스운 사례를 하나 들어 볼까요. 평소 남녀평등을 강력히 주장하는 어느 여성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동성동본금혼규정을 찬성하느냐?”구요. 서슴없이 적극 찬성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남녀평등’이 다른 의미이고 ‘양성평등’이 또 다른 개념이 아니라면, 우리 함께 잘 생각해봅시다. ‘동성동본(同姓同本)금혼’이라 하면 아버지의 성을 따른 자식들 사이에 (부계혈통의 친족 간에)는 결혼이 금지되는데, 모계혈통의 동성동본결혼은 허용하는 혼인제도 아니겠습니까? 분명히 남녀평등에 저촉되는 일입니다. (물론 가족법이 개정되어 최근에는 자식들이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아주 부분적으로 해소되어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아이가 많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여전히 법률적으로도 위헌의 소지가 있는 문제조항이 되고 있습니다.) 위 이야기는 평소 자기주장이 철학적 원칙이나 법률적 이론에 바탕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질 수 있는 자가당착적인 넌센스 사례입니다. 저작권법도 어떤 의미에서는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은 민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사권(私權)임에도 공권(公權)적인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문득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이 동성동본금혼규정을 적극 옹호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적어도 시대착오적인 조항은 마땅히 개정되거나 새로운 입법을 위한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을 추천하신 법률전문가의 견해에서도 그런 표현이 있었지만, 한마디로 기술의 발전이 저작권법을 변화시킨다는 시각에서 출발하여 미래의 저작권법을 전망하는 내용으로 저술된 새로운 저작권법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이 책을 쓰시게 된 계기는?  언젠가 모 언론사 신입사원 공채시험문제에 “포르노와 같이 배포나 열람이 금지되는 음란저작물도 저작권으로 보호될까?”라는 문제가 출제된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선뜻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리기 쉽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떤 저작물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이냐의 여부와 그러한 저작물의 저작권보호와는 별개의 사항입니다. 비록 배포가 금지된 음란물이라 하더러도 저작권법에 의한 저작권보호는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어떤 저작물이든 내용에 근거하여 저작권보호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같은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포르노나 음란성저작물이 저작권법에 의한 저작물로 보호되지 않는데, 그 근거는“법으로 출판? 배포가 금지된 저작물은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라고  중국저작권법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저작권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구체적인 표현형식”이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이디어”는 산업재산권인 특허나 실용신안 등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저작권법에서는“아이디어와 표현의 2분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작권침해에 대한 뉴스 중에 “표현만 바꾸었지 저작권침해이다....”라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기술이 발전하자 선진 각국들이 앞 다투어 저작권보호기간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지적재산권이 자손 2대까지 혜택을 받도록 한다는 것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저작물 이용기간도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호기간 연장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저작권보호기간의 연장은 지적재산권을 소유한 국가들에 있어서는 그들의 국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영상매체의 주체이자 주인임을 자부하면서 영상콘텐츠를 생산하는 우리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넓게는 영상콘텐츠의 생산자입장에 있는 방송사와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포털이나 ISP 등과의 권리관계의 재설정문제를 포함하여, 좁게는 최 일선에서 영상콘텐츠를 생산하는 카메라기자의 저작권행사에 관한 문제까지 모두가 연구와 고민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난해 6월 29일에 발효된 개정 저작권법에 명시된 영상저작물의 저작권에 관한 규정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영상저작물의 저작권관련 조항으로서“영상제작자와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 자가 그 영상저작물에 대하여 저작권을 취득한 경우 특약이 없는 한 그 영상저작물의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권리는 영상제작자가 이를 양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영상저작물”은 연속적인 영상(음의 수반여부는 가리지 아니한다)이 수록된 창작물로서 그 영상을 기계 또는 전자장치에 의하여 재생하여 볼 수 있거나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을 말하고“영상제작자”는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있어 그 전체를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현재 취재하는 영상콘텐츠나 저작물의 카테고리를 분류하자면 일종의 ‘업무상저작물’이며 동시에 ‘공동저작물’로 볼 수 있습니다. 법률적인 정의로 설명한다면‘공동저작물’은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한 저작물로서 각자의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하여 이용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업무상 저작물’이란 예를 들어‘회사의 일원으로 급여를 받고 저작한  저작물’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분류될 경우 그 영상콘텐츠의 저작권은 회사에 귀속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저작권행사는 이른바 “영상제작자”가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요. 즉, 영상저작물의 저작권문제는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있어 그 전체를 기획하고 책임을 지는 자’인 ‘영상제작자’에게 저작권을 위임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외국 일부국가의 저작권법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시청각저작물의 저작자의 지위는 저작물의 지적 창작을 실행한 자연인 또는 복수의 자연인에 귀속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라마다 그 국가의 상황에 따라 저작권법이 달리 입법되고 있다는 것은 방송영상물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저작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방송영상물을 방송사가 제작하지 않고 외주를 주는 경우에도 역시 저작권의 귀속과 양도에 대한 법률적 논란이 야기되는 우리 현실과 비교하여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저작권은 여러 가지의 권리가 혼합되어 다발(bundle)로 이루어져 있는 저작재산권과  양도가 불가능한 저작인격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금의‘저작권의 포괄적 양도’ 시비는 주로 이러한 외형상의 ‘공동제작’이나, 사실상의 ‘위탁제작’ 형태를 둘러싸고 야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 간의 합리적인 합의도출을 위해서라도 누군가가 연구에 나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로서는 ‘공동제작’이나‘위탁제작’ 형태를 둘러싸고 야기되는 논란의 핵심이 ‘공동제작’이나 ‘위탁제작’의 개념이 모호하고, 영상저작물에서 차지하는 영상을 비롯한 음향, 조명 등의 창작비중과 제작의 주체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동안 관행처럼 여겨졌던 저작권의 포괄적 양도 문제는 결국 미디어융합시대에 법과 기술이 충돌함으로써 빚어지는 잠재적 모호성의 요인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며, 이러한 생각은 머지않아 개인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작조직의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본격적으로 제기되리라고 예측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잠재적 모호성(latent ambiguity)’이란 외적인 사실이나 부대적인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문언이 명백하여 모호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성문법의 의미를 불확실하게 만듦으로써 어떤 대상에 적용할 때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것들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경우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사례를 하나 들자면, 기술이 발전하여 IP-TV가 생겨나게 되고 이 IP-TV가 수행하는 ‘실시간 웹캐스팅’은 기존의 성문법 개념으로 ‘전송’과 ‘방송’이라는 개념에 동일하게 적용되어 성문법의 의미를 불확실하게 만듦으로써, 기술융합영역을 규율하기 위하여 새로운 개념의 법률용어설정이 불가피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개념을  동시에 포섭하고자 지난 해 6월 29일에 발효된 개정저작권법에서 ‘공중송신권’을 신설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좋은 예에 해당합니다. 3. 책을 저술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엊그제가 석가탄신일 이었죠. 부처님도 공동생활에서 모든 사람이 염두에 두어야 할 여섯 가지의 중요한 윤리덕목(倫理德目) 으로 계화(戒和), 견화(見和), 이화(利和), 신화(身和) 구화(口和), 그리고 의화(意和) 이렇게 여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여섯 가지의 화합을 의미한다고 해서 ‘육화경(六和敬)’이라고도 합니다. 그 중에서 두 번째 덕목인 “오직 정법(正法)에 의한 정견(正見)만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견화(見和)”는 의미도 깊거니와 실천도 어려운 수행입니다. 주로 정치인들이나 속세의 힘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아주 긴요한 덕목이라 여겨지기도 하구요. 어쨌든 이 육화경은 그 실천성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이렇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몸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살라는 ‘신화공주(身和共住)’, 입으로 화합함이니 다투지 말라는 ‘구화무쟁(口和無諍)’, 뜻으로 화합함이니 같이 일하라는 ‘의화동사(意和同事)’, 계로 화합함이니 같이 수행하라는 ‘계화동수(戒和同修)’, 이익으로 화합함이니 균등하게 나누라는 ‘이화동균(利和同均)’, 바른 견해로 화합함이니 함께 해탈하라는 ‘견화동해(見和同解)’가 바로 그것입니다.  굳이 저작권을 이에 연관하여 설명하자면 ‘저작재산권’의 문제는 ‘이화동균(利和同均)의 차원’이고, ‘저작인격권’은 나머지 모든 덕목과 조금씩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지식을 체계화하고 이렇게 체계화된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여 지적재산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따라서 그런 작업에는 개인적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희생을 무조건 손해라고 보기 시작하면 저술 작업이 아주 어려워집니다. 이런 생각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 저술이 하나의 인격수양이고 사회에 대한 봉사로 생각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법조인은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어머니에게 비빔밥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하여 도서관에서 밥 한술 입에 넣고 책 한 장 넘기고 그렇게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자신의 입신출세보다도 사회정의를 확립하는 법치주의 사회건설에 봉사하기 위한 명분에서나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저도 점심시간을 방송센타 10층 도서관에서 보낸 적이 많습니다. 컵라면 신세를 지면서 말이죠. 이 지면을 빌어 도서관 직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매일같이 주로 새벽 두, 세 시에 일어나 집필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시간이 집중도 잘 되고 몸과 마음도 가벼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이상 가족들에게 ‘신화공주(身和共住)’의 덕을 베풀지 못한 점을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저녁 먹고, 9시 뉴스시청을 마치면 우리가족은 어김없이 이른바  “3국 시대”로 돌아가곤 했지요. 우리 집에 방이 세 개있는데, 아내는 안방으로, 딸은 자기 방으로, 그리고 나는 서재로 돌아가 아침기상 때까지 세 나라의 왕으로 갈라져 사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통일된 단일국가로 돌아가 뭉쳐 잘 때는 서로 왕이 되려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마침내 내가 코를 심하게 곯아서 다시 삼국시대로 갈라지곤 했습니다. 4. 이 책이 지금까지 출판된 저작권법 책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제가 개인적으로 즐겨 쓰는 표현 중에 하나가 “Be the first, be the best, or be different."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우리말로 하자면 “최초가 되어라. 최고가 되어라, 아니면 차별화해라”입니다. 이 책은 저작권법 서적으로 최초나 최고라고 말할 순 없지만, 차별화된 점에는 자타를 막론하고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국제저작권사회도 크게 대륙법계와 영미법계로 나뉘어 집니다. 어느 저작권법학자는 이 두 계파에 대하여 “저작권자가 자기 권리의 절반밖에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half-full의식과, 저작권자 권리의 절반은 공백으로 한정시킬 수도 있다는 half-empty의식으로 대립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습니다. 저작권법이 환경변화에 여전히 둔감하고 이론적으로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비아냥거리는 표현이지요. 그런데 이런 불완전한 저작권법은 순수 법학적인 이론만으로 그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이미 기술융합의 시대이고 기술이 더 이상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법제정을 포함하여 정치?사회?경제 분야까지도 종합적 지식에 의한 합리적 판단을 요구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여타의 저작권법 도서와 내용상에서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저자에게 피드-백 되는 독자들의 서평 중에서도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5. 이 책에 대한 기사가 일간지에 실리고, 모 서점 인터넷 사이트에 ‘주목할 만한 책’으로 올라가기까지 하는 등 법률 서적으로는 흔치 않게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소감 한 말씀.  어느 일간지 신간담당기자의 서평에 저도 사실 감동했습니다. 아마 아직도 포털에 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의 마음을 어디까지 간파할 수 있을까 하는 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 줄 만큼 책의 내용과 저자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홀아비 속사정을 과부가 알소냐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었지만, 그 기자 자신도 박사학위과정에 있는 자학(?)의 인생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서야 전해 들어 알았습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과, 오래 살아서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는 것, 어느 쪽이 더 불행할까?” 문득 이런 자학적인 우문(愚問)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던 저에게 그의 서평은 일말의 해결가능성에 대한 어떤 매듭을 풀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기사내용이상으로, 내가 그 기자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쨌든 독자들에게 책을 히트를 친다는 것은 야구에서 주자만루 상황에 3루타 정도 장타를 치거나, 골프에서 이글 샷을 한 기분에 간단히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 앞으로 저술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지, 있으시다면 어떤 내용을 다뤄보고 싶으신지.  저술 계획 말입니까? 글쎄요.  제가 전에 저술한 책이 어떤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거나, 이번에 출간한 책이 몇 주 연속 법률분야 베스트셀러를 하였다는 이런 소식들이 간간히 들려오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이런 것들에 연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2-3년 전, 제가 지난번 책을 출간한 직후, 어느 신문에 기고한 출간 인터뷰기사내용 중에 학문 간의 장벽을 서둘러 허물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최근 어느 베스트셀러 책 내용 중에 당시 제가 말했던 내용과 너무 비슷한 내용이 있다면서 저에게 그 책을 사서 선물한 분이 있었습니다. 선물이 고맙기도 하지만, 제 기사를 잘 읽어 준 그 분에게 여러 가지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책 선물을 제일 좋아합니다. 후배나 제자들에게는 내가 보던 책을 주기도 하구요. 선배들 집에 가면 좋은 책을 빌려오기도 하구요.  책을 볼 때마다 저자가 얼마나 힘들여 썼는가에 대하여 예사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 책이 출간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었습니다만, 사실 얼마 전에 회사 동호인 모임에서 갔을 때 일입니다. 부문은 다르지만 제 책에 대하여 이모국장께서 아주 적절한 질문과 평을 곁들여주셨는데 정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역시 타 부문이지만, 김 모부장의 진심어린 격려의 말은 집필기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맥주 한잔과 같았습니다.  이처럼 책을 통하여 부문 간의 벽을 허물고 대화의 장이 열리는 것을 보고 저도 보람을 느꼈지요.  우리가 흔히 책을 두고 우스개 비슷한 소리로 말하는 ‘서3치(書三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옛날 장학퀴즈정도에 출제될 만한 내용입니다만, 책에 대하여 세 가지 바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첫째가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이고, 둘째가 책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주는 사람이고, 셋째가 빌려준 책을 돌려주는 사람이 바보라는 뜻입니다. 책에 대하여 세 가지 바보가 되지 말자는 얘기는 역설적으로 ‘책 도둑과 꽃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옛말을 무색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소신으로는 책에 가까이 하여 ‘바보’가 되거나 ‘도둑’이 되기보다는 ‘현자’가 되거나 ‘부자’가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번 집필기간에 머리가 많이 빠지고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예”, “아니오”를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본인 자신에 대하여 너무 무책임하고 안이한 답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