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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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국 쿠데타 취재기
    <태국 쿠데타 취재기> 이번에도 작심삼일, 삼일 후에 또 작심삼일! 갑작스러운 출장 (우리의 숙명)  아침에 받는 전화 - 기상하기 전에 전화벨이 울리면 비몽사몽간이라도 반사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100이면 100이 일찍 출근하라는 전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출장 건으로 갑자기 전화를 받고 출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갑작스런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인한 현지 급파... 일단 급한 대로 작은 배낭에 간단하게 옷가지를 챙겨서 출근했다. 출근하자 만난 선배들이 군사쿠데타니까 위험할 수 있다며 몸조심하라고 일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얼핏 들었던 출장에 대해서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태국의 군사쿠데타라? 무슨 일일까? 쿠데타라고 하면 우리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군사쿠데타라고 하면 군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언론을 장악할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  이미 야근자가 출장 장비를 모두 준비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간단하게 점검만 하고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취재기자 선배도 아침에 전화를 받아서 전체적인 출장준비가 미흡한 상태였다. 차로 이동하면서 비행기좌석, 현지 가이드, 이동수단, 위성송출 등을 전화로 준비해야만 했다. 마침 얼마 전에 태국으로 탈북자 취재를 다녀온 선배가 생각났다. 선배를 통해서 현지 가이드, 대사관 공보관, 대한항공 주재원 등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이 번호들이 현지에 도착해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던지...  어쨌든 아침 일찍 출발하는 직행 비행기는 놓쳤고, 그 다음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다음 비행기는 1시간 뒤에 출발하고 홍콩에 경유까지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석은 이미 없었고, 비즈니스 석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처음으로 비즈니스 석에 탔다. 역시 비싼 값을 한다고 넓고 아늑한 공간과 승무원들의 서비스도 차원이 달랐다.  비행기가 방콕 공항에 도착하고.. 연착까지 한 비행기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후 5시 40분 정도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출발선상에 서있는 육상선수마냥 다른 사람들을 앞서서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입국심사대에 섰는데 왠지 모를 긴장... 혹시 외국 언론에 비협조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제재도 없었고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서둘러야 하는 시간... 이미 위성은 포기했다. 시내까지 나가는 대만 1시간이 걸릴테니 전화연결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공항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항공에 전화를 걸어서 사무실을 잠시 쓰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태국에서 첫날 리포트를 해결했다. 첫날 취재  ‘성공한 쿠데타?’ (탱크 옆에서 총 든 군인과 웃으며 사진 찍는 태국 국민들)  실제 취재 첫날이다. 현제 태국의 상황은 어떨까? 이번 태국의 군부쿠데타의 원인은 바로 탁신 총리였다. 통신재벌이라 알려진 탁신 총리.. 경찰 간부 출신으로 옷을 벗고 IBM 컴퓨터의 경찰청 납품 등으로 한 몫을 잡았다. 이후 휴대폰 통신사업으로 완전한 재벌로 변모한다. 그냥 성공한 기업가로 남았으면 좋으련만 주변의 충동과 본인의 권력에 대한 욕구 등으로 인해 정치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기존 정치 세력에 식상해있던 국민들이 신선해 보인다며 탁신의 정계 진출은 성공을 이룬다. 하지만 그의 사소한 욕심 때문이었는지 세금도 내지 않는 등 권력남용과 부정부패가 하늘을 찌르자 국민들의 신임을 잃었다. 그 와중에 왕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태국은 입헌군주제의 나라이다. 시내 곳곳에 국민들이 국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지 경험이 없는 나라 태국.. 1932년 이 나라에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뒤 20번째 쿠데타이다.  우리는 태국의 왕실과 국회, 국방부 등이 있는 시내 중심으로 갔다. 차로 이동하면서 창문밖에는 신문 사진에서 봤던 탱크와 장갑차들이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곳곳에 총을 든 군인들이 눈에 띄었고 우리는 살짝 긴장하였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서 그곳에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총 든 군인과 탱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먹을 것들을 사와서 군인들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그들은 이번 쿠데타를 반기면서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약간은 의외였지만 이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탁신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취재 둘 째 날 민주주의의 후퇴 (지식층의 교수들의 쿠데타 반대 집회)  국왕의 승인과 국민의 지지를 받아 국정을 완전 장악한 군부가 정권을 제대로 민간에게 이양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부 대학교수들은 한곳에 모여 쿠데타를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물론 탁신이 물러난 것을 반기는 사람들이지만 군부의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인터뷰 다니면서 대부분이 탁신을 싫어했지만 쿠데타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리 군부가 쿠데타 이후 과도정부 구성-헌법개정-총선실시라는 정권이양 절차를 제시하였다 하더라도 이런 절차와 형식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 겉은 민간정부로 포장하고 권력 내부에는 여전히 쿠데타 지도부가 자리하면서 국왕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군인들의 총으로 정권을 바꿔온 경험을 많이 해온 국민들 스스로도 그?! ? 내성이 길러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오래된 습관처럼 다음에도 쉽게 일어난다면 누구를 탓해야 한단 말인가? 돌아오는 비행기...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언제나 출장의 마무리는 돌아오는 비행기였는데... 역시나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고 그 동안의 일들을 정리해본다. 1. 나름대로의 출장 매뉴얼을 만들어 본다. 2. 인터넷 송출 등의 시스템을 잘 알아둔다. 3. 사고방식이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판단할 수 있게 노력한다. 4.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  이번에도 작심삼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삼일 후에 또 다른 삼일을 계획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오랜 습관처럼 될 수 있도록 말이다.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기자 홍종수
    2006-10-20
  • 카메라기자의 혈액형
    <궁금해요> 카메라기자의 혈액형 조사 결과 : A형 53명(27%), B형 57명(29%), O형 57명(29%), AB형 : 29명(15%) 우리나라 국민의 혈액형 비율 : A형(32%), B형(30%), O형(27%), AB형(11%)  요즘 대한민국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혈액형’ 붐이 거세가 일고 있다는 얘기다. 혈액형별 처세술, 혈액형 별 학습법, 혈액형별 건강법, 혈액형별 연애법 거기에 혈액형 마케팅까지...   얼마전 SBS스페셜 ‘혈액형의 진실’에서는 노미 도시타가의 ‘혈액형 인간학’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 이는 혈액형에 대한 관심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이 피바람(?)에 부응해 카메라기자의 혈액형별 비율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서울 회원사 회원 351명 중 196명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A형 53명(27%), B형 57명(29%), O형 57명(29%), AB형 29명(15%)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혈액형 비율[A형(32%), B형(30%), O형(27%), AB형(11%)]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A형(27%)이 가장 많은 한국인의 혈액형 비율과는 조금 다르게 B형과 O형이 공히 29%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 국민적으로 봤을 때, 소수인 AB형을 제외하면 A형과 B형, O형이 골고루 분포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하나는 혈액형과 성격, 혈액형과 직업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이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기자’라는 직업이 각 혈액형별로 그 특성을 잘 살린다면 모든 사람이 도전해 볼만한 매력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혈액형별 특성’을 보면 묘하게 맞아 떨이진다고 느낄 때가 많다. 혹자는 그것이 ‘애매한 말장난’이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맞아 떨어진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리마인드 해볼 필요가 있다. 평소에는 생각해볼 기회가 많지 않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제3자의 눈으로 냉정하게 말이다. 그러면서 장점이 많은 본인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말고,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2006-10-20
  • 포토라인 준칙 선포식
    포토라인 준칙 선포식 국민의 알권리 실현, 취재원 보호를 위해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곽재우)와 한국사진기자협회(회장 최종욱), 한국인터넷기자협회(회장 윤원석)는 바람직한 취재문화 정착을 위해 포토라인 선포식을 8월31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취재경쟁의 폐단을 막고 취재현장에서 신문, 방송, 인터넷언론, 통신사 등의 상호협력에 의한 원활한 취재와 언론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포토라인 준칙을 제정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곽재우 회장은 “ 포토라인 준칙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실현하고 취재원의 인권보호를 도모하여 포토라인 준칙이 정착되어 실행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토라인준칙 선포식에는 정남기 한국언론재단 이사장과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이 참석해 축사를 했으며 많은 방송, 신문, 통신, 인터넷 매체 데스크들이 참석했다.  한국기자협회 정일용 회장은 “ 많은 사건 사고 현장에서 기자들이  고생이 하는데 가끔 포토라인이 붕괴 되 혼란 한 상황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며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정해 지키기로 한 것은 대단히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포토라인 준칙은 취재현장에서의 포토라인을 설정하고 실천하는 세부 규정이 담겨져 있으며 9월 한 달간의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10월부터 시행 될 예정이다.  또한, 포토라인 설치 운영이 예고 된 취재현장에서는 위 3협회 소속 회원이 아닌 경우 TV동영상 취재는 카메라기자협회, 사진취재는 사진기자협회, 인터넷매체취재는 인터넷기자협회의 사무국에 포토라인 취재 참가를 신청해야한다.  포토라인 위반 시의 벌칙은 각 협회에서 별도의 규칙을 정해 시행하기로 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경우 포토라인을 위반 한 회원사는 최소 1개월이상 또는 3회 이상 포토라인이 시행되는 모든 취재현장에서 포토라인 내 취재를 금지하고, 그 내용은  협회 홈페이지에 이를 공고 할 예정이다.  한편, 포토라인 준칙은 지난 4월 6일 있었던, ‘포토라인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세미나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 되었다.  위의 3협회는 5월3일 포토라인 준칙 제정 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5회에 걸친 회의 끝에 포토라인 준칙을 합의하고 회원사의 의견수렴과 운영위원회를 거쳐 제정 했다.  우리나라의 포토라인은 1994년 12월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 간에 협의된 라는 기치를 내걸은 ‘포토라인 운영 선포’를 통해 발효되었다. 이는 상호 간의 불필요한 경쟁과 무질서한 취재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운영되어 왔으나, 10여년이 지난 현재 다매체 다채널시대에 취재진이 늘어나고 무질서한 취재 형태가 반복되어 나타남에 따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 하고자 본 준칙을 제정했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
    2006-09-13
  • <칼럼>외압에 대한 언론인의 자세
    외압에 대한 언론인의 자세  언론노동자는 늘 두 가지 차원의 갈등을 느낀다. 하나는 양심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양심을 희생시키고 다른 이익을 구할 것인가 하는 갈등이다. 다른 하나는 회사 내외부의 각종 압력이나 유혹을 뿌리칠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일 것인지 하는 갈등이다. 이런 갈등은 언론노동자들이 스스로 풀거나,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해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진실을 다투는 언론인에게 스스로 양심을 지키려는 의식과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어떤 시대, 어떤 나라를 보아도 양심에 따라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며, 약자의 권리를 수호하려는 언론인에게는 회유와 탄압이 잇달았다. 그래도 언론인들이 자기희생적인 정신으로 압박을 물리치면서 진리는 더 환하게 밝혀졌고, 정의는 수호되었다. 그러나 언론환경이 더욱 더 생존 경쟁의 압박을 받으면서 이윤 추구를 위해 매체산업은 발가벗고 돈 벌이에 나섰다. 일부 신문기업은 부동산, 증권에 투자하고, 더러는 호텔을 운영하거나, 상품권을 발행하는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종사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데 동원되곤 하였다. 언론을 무기로 다른 사업에서 이익을 얻자는 심산이다. 언론종사자들은 진실과 정의 추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많지만 그 반대로 언론생산 과정에서 사적 이익, 자본의 이익을 위해 거짓과 왜곡 보도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많았다. 이런 과정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내외부의 압력, 압박이 아니라 언론노동자들이 왜곡된 현실에 순치되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꺼리 낌 없이 하는 것이다.  언론종사자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외압을 물리쳐야만 한다. 사람이 독약을 거부하듯이 회유나 압력을 거부하는 것은 언론인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이것은 언뜻 쉬운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온갖 유혹과 압력이 따르는 언론인에게 상식을 지키라고 요구를 쉽게 할 수 있지만 언론현장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너무 많은 유혹과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니 진실이니 하는 추상적인 구호보다 상식을 지킨다는 마음만 있어도 부당한 압력이나 회유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도 언론인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본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야말로 언론인에게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카메라 기자는 언론인들이 일반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를 예외 없이 지켜야 하되 영상 보도의 영향력을 감안하여 더 신중하고, 더 공정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카메라 기자는 영상보도라는 ‘핵폭탄’만큼이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질 기업인, 정치인, 지식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든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멋지게 반영되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쓸 것이다. 영상 보도를 통제해서 얻는 이익이 클수록 돈과 권력 지식을 가진 집단의 회유와 압박이 따라서 커진다. 그럼으로 카메라 기자가 진정으로 올곧은 언론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려면 카메라를 핵폭탄 다루듯이 신중하고, 또 신중할 것을 권한다. 또 내부적으로 영상보도 강령을 두고, 이를 위반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학계, 시민단체 등 시민사회와 교류의 폭을 넓히기를 권고한다. 또 강력한 언론노조운동이 있지 않는가? 내외부의 압력을 물리칠 공간은 넉넉하다. 문제는 언론인들이 그럴 의지가 있어야 한다.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승수
    2006-09-13
  • 책임, 진정한 책임에 대하여!
    <줌 인> 책임, 진정한 책임에 대하여!  뉴스 영상에 카메라기자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그 뉴스 영상을 누가 촬영했는지 알린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에 대한 책임이 카메라기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각 아이템에 대해 리포트를 한 취재기자의 이름과 영상취재를 한 카메라기자의 이름이 각각 명시하는 것은 리포트에 대한 책임과 영상에 대한 책임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모든 방송사들이 TV 뉴스를 디지털로 전환하여 인터넷에서 영상을 서비스하고 있다. 많은 네티즌과 시청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게 된다.  앵커멘트와 취재기자의 리포트가  전문으로 나오고  영상화면을  클릭하면 뉴스를 볼 수 있다.  네티즌과 시청자들이 특정 뉴스의 제목을 클릭 했을 때, 뉴스 전문과   영상뉴스가 함께 게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포트를 한 취재기자의 이름만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영상취재를 한 카메라기자의 이름이나, 그것을 편집한 편집기자의 이름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카메라기자나 편집기자의 이름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 영상을 검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TV뉴스에서 카메라기자의 슈퍼는 뉴스화면의 신뢰도를 제고하는 수단이며 시청자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정보이다. 영상의 힘은 대단한 것이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실제와 다르게 과장되거나 왜곡 될 수 있다. 뉴스에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어떤 것을 강조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카메라기자의 몫이다. 영상의 이런 면 들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일을 카메라기자가 맡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영상취재의 신뢰도를 위해서라도 이를 취재한 카메라기자의 이름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뉴스 전문 텍스트에 카메라기자와 취재기자의 이름만 넣어주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작업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가져온 데에는 카메라기자와 편집기자의 잘못도 있다. 이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고, 알고 있더라 하더라도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못하고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카메라기자의 위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 같다.  뉴스 영상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 ‘카메라기자’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올라가는 뉴스 전문에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책임’이 있다면, 그에 따르는 ‘권리’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것을 찾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라고 본다. 뉴스 영상을 책임지고 있는 카메라기자, 편집기자로서 ‘책임’을 다하자. 그래야 진정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2006-09-13
  • MBC 조직개편, 그 의미와 영향
    MBC 조직개편, 그 의미와 영향  MBC 보도본부는 지난 8월11일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번 조직개편의 골자는 기존의 보도국과 스포츠국을  보도국으로 통합하고, 기존의 부장 중심의 조직구조를 7개 에디터 책임하의 팀제로 개편한 것이다. 이번 개편으로 보도국의 기자들은 편집에디터, 영상에디터, 정치국제에디터, 경제과학에디터, 사회에디터, 문화스포츠에디터, 뉴미디어에디터 소속의 2-5개의 팀으로 속하게 되었다. 보도영상부문의 경우는 기존의 보도국의 영상취재부와 영상편집부, 스포츠국의 스포츠영상취재부가 영상에디터 소속의 영상취재1팀, 영상취재2팀, 탐사-스포츠팀, 영상편집팀, 자료-기재관리팀등의 5개 팀으로 개편되었다.    이번 조직개편은 MBC뉴스의 추락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보도국내부의 위기의식의 결과로서  MBC는 최문순 사장취임 직후부터  취재·제작 환경의 변화, 뉴스 시청 행태의 변화에 발맞춰 오래 전부터 추진해왔다.  스트레이트 뉴스의 나열이 아니라 심층·기획 보도 중심으로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여 경쟁사와 차별화를 꾀하고 내부적으로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해소함으로서 취재력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직개편으로 기존의 부서 체제가 전면 폐지되고 경험많은 중견기자들이 취재일선에 전면배치 되었다.    특히 보도영상부문의 통합은 오래전부터 현장의 카메라기자들이 만성적인 인원부족과 장비관리의 효율성 제고, 부문내 소수직종으로서의 불이익개선을 위해  계속적으로 요구해온 사항중의 하나이다. 이번 개편으로 영상부문의 경우는 100명의 영상취재-편집기자들을 통합하여  순발력있는 인원재배치와 자원의 선택과 집중을 가능케 되었다. 아울러 소속이 나뉘어져 운용과 관리가 분산되어 있던 기존의 지원인력 및 장비등이 일원화 됨으로서  비용과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일수 있게 되었다. 보도영상부문의 경우만 년 간 수억원의 예산절감효과를 기대할 수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조직개편이 장밋빛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도국차원에서는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MBC뉴스를 되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한 조직개편의 순수한 의도가 준비과정에서  실무진들의  독단적인 행태와 부문간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불완전한 형태로 매듭지어 진것이다.  몇 달간 수뇌부 인사조차 미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조직원간의 불신과 냉소만 깊어지게 되어 조직개편의 초심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고참기자들의 현업투입인력의 확대도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현장취재팀장들 입장에선 데스크 업무와 리포트 제작을 병행한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부문이 경우도  이미 현장의 최일선에 고참 카메라기자들을 배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투입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이미 팀제를 시행하고 있는 타사의 경우를 보더라도 팀중심의 조직개편이 실질적인 현장투입인원의 확대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에디터와 팀장간의 업무분장도 아직 진행중이다. 에디터는 인사-예산권의 권한이 커진만큼 책임도 무거워 졌다. 보도영상 에디터의 경우 100명이 넘는 초대형 조직의 책임을 맡은 만큼 조직관리에 있어 엄청난 업무부담이 가중되었다. 그렇다고 각각의 팀장들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것도 효율성있는 통합관리라는 조직개편의 취지와 상반된다.  따라서 에디터와 팀장간의 업무분장을 적절하게 이루어내는 것 또한 이번 조직개편의 주요한 과제이다.  이번 조직개편은 지난 수십년간 현실에 안주해 오던 MBC 보도국 조직의 변화의 몸부림이다. 물론  조직개편자체가 완벽할 수도 없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직개편이 또 한번의 부질없는 푸닥거리로 끝나버리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향후 몇달간의 실험적 운영을 통해 조속한 인력의 재배치, 에디터와 팀장간의 역할분담, 각 팀들의 명확한 업무구분을 통해 조직의 안정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MBC뉴스를 부활시키겠다는 모든 구성원의 사심없는 희생정신과 부문의 수장들의 리더쉽, 구성원들의 인내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최경순 기자  
    2006-09-13
  • 인터넷 상에서 카메라기자 이름으로도 뉴스 검색할 수 있어야
    인터넷 상에서 카메라기자 이름으로도 뉴스 검색할 수 있어야  요즘은 TV 뉴스를 인터넷을 이용해 보는 시청자들이 많다. 아무래도 시간의 제약이 없고, 근무 중에도 잠깐 짬을 내 볼 수 있으며, 원하는 기사만 골라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TV 뉴스의 각 기사에 대한 크레딧이 영상 원본에만 있고, 텍스트로 명기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취재기자의 이름만 명기되고, 카메라기자나 편집기자의 이름은 빠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영상 원본에 있다고는 하나, 보통 인터넷으로 보는 영상은 크기가 작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크레딧을 넣는 것은 기사를 제작한 사람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취재기자는 내용에 대한 책임을 지고, 카메라기자는 영상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또, 방송 뉴스가 카메라기자와 취재기자 공동의 노력으로 제작된 것임을 시청자에게 알리는 의미도 갖는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TV 뉴스를 시청하는 시청자를 위해, 취재기자 아무개의 이름으로 기사 검색이 가능한 것처럼 당연히 카메라기자 아무개의 이름으로도 기사 검색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에 대단한 작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사 원문을 올릴 때, 각 기자의 이름만 써 넣어 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다.  이에 대해 KBS와 iMBC의 뉴스 업로드 담당자는 전달받은 텍스트를 그대로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한이 아니라고만 말했고, SBS 보도국 인터넷부는 이전에 이 사안에 대한 제안이나 이의제기가 없어 고려가 없었다며, 향후 이를 논의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MBC 보도국 영상취재팀 한 관계자는 이에 관해 각 사 취재기자 리포트 업로드 프로그램 자체에 카메라기자의 크레딧을 넣는 란을 만들어 텍스트에 카메라기자의 이름을 넣도록 한다면, 인터넷 상에서도 영상 취재를 담당한 카메라기자의 이름으로 뉴스 검색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한국경제TV 뉴스는 전국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사의 뉴스 중 유일하게 텍스트 자체에 카메라기자와 편집기자의 크레딧을 올려, 현재 뉴스를 함께 제작한 사람 중 누구의 이름으로도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6-09-13
  • 비언어커뮤니케이션과 TV 뉴스 영상
    비언어커뮤니케이션과 TV뉴스 영상  얼마 전 신문을 뒤적이다가, 사람을 만나 첫인상이 어떻다는 결정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0.1초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한 기사를 읽으면서 한편으로 그럴 법하다고도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론 글쎄. 정말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 연구팀이 실험자 200명을 대상으로 여러 장의 얼굴 사진을 보여 준 뒤 매력, 호감도, 신뢰도, 능력, 공격성 등을 평가해보라고 한 결과 놀랍게도 0.1초 뒤의 판단과 0.5초, 1초 뒤에 내린 결론에 별 차이가 없었다! .”라는 것이다.  0.1초든 1초든 순간에 불과하므로 수치에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싶지만 첫 대면에서야 0.1초보다 그의 10배인 1초가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0.1초 만에 내린 결정을 고수하고, 찰나에 느낀 인상이 단지 매력뿐 아니라 신뢰도와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외모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분류된 정보는 웬만해서는 달라지지 않는데,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초두효과(primacy effect: 만남에서 첫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전반적인 인상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라는 정의를 내려, 왜 그토록 부모들이 자식에게 단정한 옷차림과 깔끔한 매무새를 입에 달고 사는지 이유를 알 듯하다.  의사결정구조를 단순화시켜 재빨리 필요한 첫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관찰기간 내내 지렛대로 삼는 인간의 행동양식은 실생활에서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 일일이 사람과 사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분류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정보 처리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판단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우리는 첫인상에 일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선택하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가 하면, 직감적으로 물러설 때를 알아 크나큰 사고를 예방하기도 한다. 바로 비언어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인 예다.  언뜻 생각하면 비언어커뮤니케이션의 사고체계가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즉흥적인 것으로 비치지만 사고의 기저에는 스키마(scheme: 이전에 학습하고 훈련했던 경험을 통해 사물을 어떻게 경험하여야 하는지에 관한 마음의 모델)가 작용하고 있어 “그래! 맞아! 나도 그렇게 봤는데.”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그래? 나는 그렇게 안보이던데?”라는 반응을 낳기도 한다.  성장하면서 배우고 경험한 환경 자체가 다르니 개인별 지각패턴이 다를 수밖에 없어 특정 사물과 현상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기도 하나, 일반적인 문화나 관습, 사회현상 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속성이 있는 스키마는 비언어적인 수단으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일반적으로 언어 메시지와 비언어 메시지가 서로 충돌할 때,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비언어적 메시지라고 한다. 언어 속에 감춰진 송신자(sender)의 무의식 세계까지 엿볼 수 있으니 정보의 신뢰도가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한 일선의 수많은 취재현장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표정과 몸짓, 목소리의 떨림에서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취재원을 만났을 때 우리는 경험상 어느 정보를 더 신뢰해왔을까?  거짓말 탐지기를 무력화시키는 내공의 소유자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메시지 전달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며 이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비언어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살아가며 때로는 이것에 더 의지하게 된다.  기쁨이나 슬픔, 분노 등 감정이 도를 넘어서게 되면 말보다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몸짓으로 담아내는 이런 감정의 표현은 언어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정도의 감정 상태인지 알아채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터뷰 도중 말을 잇지 못하고 몸으로 감정을 삭이는 침묵의 시간에 우리의 한 손은 벌써 줌 인(zoom in)에 들어가고 있지 않았나?  감정의 몰입을 유도하면서 얻고자 했던 것은 결국 말 없는 순간에도 쉴 사이 없이 흘러나오는 메시지를 잡아내기 위함이며 전달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감각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취재 현장에서 내츄럴 사운드(natural sound)를 놓치지 말라고 하는 이유 역시 자연음향에 담긴 비언어적 요소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며 편집 시 언어적 요소와 적절한 조합을 통해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은 점차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옮겨 가고 있다. 그 이면에는 물론 보편성, 전달속도, 전달정보의 양에서 우수하다는 비언어 매체의 효율성이 자리하고 있다.  영상을 보고 이해하는 데는 언어와 같이 약속된 기호체계를 배울 필요가 없어, 국경을 초월한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메시지를 전달받고 이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특정 상황에 대해 같은 내용을 담은 1분 내외의 영상과 몇 십 매의 원고를 각 각의 사람에게 주고 얼마만 한 정보를 얼마나 빠른 시간에 취할 수 있는지를 비교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은 정보의 정확성을 함축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정확한 정보에 접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현장 그림은 없고 앵커의 긴장된 모습과 취재기자의 긴박한 오디오만 전해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럴 것이라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궁금증만을 더할 뿐이다.  재난보도 등 현장성이 강한 주제의 경우 TV뉴스에서는 톱(top) 아이템으로 헬기 스케치를 주로 배치한다. 이것은 조망을 할 수 있다는 부감의 장점과 함께 전체적인 상황파악을 위한 대량의 정보제공에 목적이 있으며, 여기에 미디어 기술의 발달에 기초한 TV뉴스의 즉시성으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이다.  톱 아이템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한 시청자는 세부 아이템으로 단락화 된 뉴스를 통해 더욱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며 신문 등을 통해 정보를 보완하게 되는 것이 재난보도를 통한 일반적인 메시지 습득과정이라고 하겠다.  한편 누구나 이해하기 쉬우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영상의 속성은, 언어의 간접적이고 조작적인 속성과 달리 특정 상황에 대해 사람의 사고(思考)를 가두는 특징이 있다.  재연(再演)화면이라는 자막을 올렸다 하더라도 ‘그래. 이건 재연 화면일 뿐이지’라는 인식을 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와 가까운 그래서 실제의 상황과 다름없는 것으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시청자가 재연 화면을 실제 상황과 다름없이 인식한다는 사실은 일반 교양프로그램이나 오락프로그램과 달리 TV뉴스를 제작하는 카메라기자들이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현장이 사라진 아이템을 어떡하든 만들어 보겠다고 재연을 시도하고, 회사로 돌아와서는 그럴듯하게 만들었다는 칭찬에 우쭐했던 적이 있다.  아이템 제작에만 온 신경을 쏟던 잔바리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 속에 당시 총 맞고 나온 동료 취재기자의 근심스런 표정도 함께 떠오르니 문제의식도 없었고 모질지도 못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동일한 상황에서의 영상은 촬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줄거리를 가질 수는 있으나 상황에 담긴 그림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렇게 찍으나 저렇게 찍어도 그 상황 안에서 관점만을 달리할 뿐이다.  반면 언어는 동일한 상황을 단순 묘사한 글이라고 하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양한 표현과 언어를 구사하므로 십인십색(十人十色)의 글이 나오고, 이를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해석자(수신자)는 동일한 상황에 대해 제각기 해석을 달리한다.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온 종일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만들어 낸 리포트 한 꼭지.  앵커 멘트를 포함한 1분 30초의 리포트 한 꼭지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기사의 내용만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TV뉴스의 비언어적 요소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부장 김영창
    2006-09-13
  • 전쟁 취재에 대한 교훈 얻은 소중한 경험
    <취재기> 전쟁 취재에 대한 교훈얻은 소중한 경험 인천-영국-시리아-레바논  폭염에 휩싸인 레바논을 취재하기 위해 택한 첫 번째 관문 영국공항. 취재진들은 레바논 전쟁터에서 어떻게 취재해야할지를 고민하느라 사뭇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러나 레바논은 커녕 영국공항에서 환승을 하면서부터 일은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런던 공항에서 발권을 담당하는 항공사 직원은 취재진에게 시리아 비자를 요구했고, 이에 취재진은 한국은 시리아와 외교관계를 맺어 사전에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을 했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무비자 입국여부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당장 귀국조치 시키겠다”고 했다. 해명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입국규정이 적인 책자를 가져와 시리아에서의 비자면제 규정에는 한국이 적혀 있지 않다고 따지는 것이었다. 이에 우리는 시리아 공항에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니냐며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똑같은 얘길 반복하길 1시간 반, 갑자기 항공사 직원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해결됐다며 발권을 해주는 것이었다.  시리아 다마스커스 공항에선 통상 금액만 지불하면 해결 되는 비자였지만, 상황이 위험하다며 취재진을 여기저기 사무실로 데려가 여러가지 확인절차를 거친 뒤에야 비자를 발급해주었다. 취재진은 시리아에 도착했을 뿐인데 에너지를 절반 이상 소모해 버린 느낌이 들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느낀 예상밖의 평화  장장 7시간이 걸려 도착한 레바논 베이루트는 전쟁터라고 하기엔 예상외로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시리아에서 베이루트까지 가는 동안 취재진을 안내한 운전기사와 현지 코디에게 수없이 들었던 위험이라는 단어는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레바논 전쟁은 종교전쟁이기에 이슬람 시아파거주 지역들만이 위험할 뿐 그 외의 지역은 매우 평화로웠다. 전쟁터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선 폭격이 이뤄지고 있는 남부지역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취재진이 확보할 수 있는 정보라고는 호텔에서 보는 CNN과 BBC 그리고 현지 코디네이터가 알려주는 로컬 방송뿐인데다, 고용한 현지코디네이터가 남부로 내려가는 것에 부정적이어서 초반 취재는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취재시작 4일째 되던 날『한국시간 7월 30일 새벽 이스라엘이 두 차례 공습을 가해 건물 수십 채가 붕괴되면서 지하 대피소에 있던 어린이 22명 포함 51명의 사람들이 사망하는 레바논 전쟁에서 가장 큰 사태가 발생』했다.  같은 시각 취재진은 레바논 남부 시돈(카나에서 40분 거리)에서 취재를 하던 중에  로컬 TV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우리는 즉각 카나로 가려했으나 코디가 "매우 위험한데다 도로가 붕괴 되 갈 수 없다"라고 만류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베이루트로 돌아오게 됐다. 취재진의 안전 확보에 대한 논쟁 벌어져  취재진은 숙소로 복귀해 카나행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쟁점은 취재진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였다.  취재진 사이에는 신중론과 적극론이 팽팽하게 맞섰고 1시간 넘게 언성을 높이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때 마침 TV에선 ‘이스라엘과 해즈볼라가 48시간 동안 공습중지하기로 했다’라는 뉴스가 나왔고, 이 뉴스를 본 팀원들은 카나행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도로가 다 파괴된 까닭에 산길로 3시간 걸려 카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마치 유령도시를 연상시키는 듯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전방엔 온전한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취재팀은 신속하게 현장 스케치를 마치고, 전날 폭격 당했던 대피소 앞에서 취재기자 스탠드업을 잡기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어딘 선가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몇 초 뒤 또 다시 두세 차례 강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폭격중지 상태로만 알고 있었던 취재진은 혼비백산이 됐고, 위성인터넷 사용을 위해 필드테스트를 하고 있던 나 역시 안테나를 바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심각해지는 레바논 사태  카나 마을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정도 지났을까? 레바논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져 갔다. 야간이면 폭격소리에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가 됐고, 그간 공격하지 않았던 북부지역과 기독교지역에 까지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또 베이루트까지 공격을 하겠다며 불온선전물을 뿌려댔다. 레바논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취재진들에 대해 소개명령을 내리기 시작했고 만일의 경우 배편으로 키프로스로 대피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사태추이가 이렇게 변하면서 취재진의 취재반경은 더욱더 줄어들었고 철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며칠간의 고전 끝에 결국 MBC 취재진은 레바논 철수를 결정했다. 철수 루트는 시리아 다마스커스를 통해 항공편으로 두바이로 나가는 것. 하지만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 세 곳중 두 곳이 이미 폭격으로 파괴됐고 마지막 남은 한 곳에 가기 위해선 산길을 돌아가야만 했다. 또 현지에 휘발유 가격이 폭등한데다 위험지역을 가야한다는 이유로 운전기사들은 턱없이 높은 금액을 요구했다. 취재진은 어쩔 수 없이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동이 트기 전에 시리아로 출발했다. 군데군데 끊어진 도로와 다리를 넘어 펼쳐지는 아름다운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10시간 정도 걸려 간신히 시리아에 도착한 뒤 우리는 긴 한숨을 돌렸다.   귀국하는 길도 만만치 않아  하지만 시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취재진은 두바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마스커스 공항에 4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다마스커스 공항은 시리아를 빠져나가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무질서와 혼돈의 공항에서 취재진은 3분을 남겨놓고 가까스로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두바이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두바이 공항에서는 취재진이 갖고 있던 방탄조끼와 방탄헬멧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두바이 공항 경찰서까지 가서 신원을 확인한 후에야 입국이 가능하게 됐다.    전쟁 취재라 함은 기본적으로 전쟁의 야만성과 참상을 가까이 접근해 보고 느낀 바를 시청자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전쟁터를 취재 하고 돌아온 뒤에 느낀 것은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일만이 전쟁취재의 다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전쟁터에 접근하고 또 취재한뒤 안전하게 벗어나는 것. 아울러 생사를 건 전쟁터에서 취재를 하는 동료들과 최선의 선택을 하기위한 갈등을 지혜롭게 해소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을 잘 극복해야지만 전쟁리포트가 제대로 취재될 수 있다는 큰 교훈을 얻고 돌아왔다.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권지호
    200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