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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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취재기2
    KBS 영상 취재부 유민철 기자 2. 몽골의 한국바람 1 몽골은 소련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공산화한 나라지만 반대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하고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나랍니다. 90년도엔 공산당 1당체제를 버리고 복수 정당제를 채택했으며 92년엔 사회주의를 버리고 대통령 중심의 민주국가 체제로 탈바꿈했읍니다. 시골의 모습은 앞에서 쓴대로 옛날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울란바토르를 비롯한 도시의 모습은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급변하고 있읍니다. 아직 사회주의 시절의 생활 습관들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 몽골과 주변국, 수도 울란바토르 몽골은 17세기 이후 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924년 공산혁명과 함께 청으로 부터 독립합니다. 이 때 러시아의 도움을 받은 이후에 몽골의 발전은 러시아와 그 길을 같이 합니다. 60년대 중,소 대립때도 소련을 지지했으며 중국과 수교한 것은 87년일 정도로 중국과는 소원한 관계입니다. 일반인들의 중국에 대한 감정도 역시 좋지 않습니다. 반면 소련, 러시아와는 형제같은 관계입니다. 국가의 탄생을 같이 했으며 공식문자에서 부터 사회기반시설에 이르기까지 몽골은 러시아와는 뗄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몽골의 대중주가 보드카라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상징합니다. 일본에 대한 감정도 별로라고 합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서울에서 직항 비행기로 세시간 반이 걸립니다. 시간은 서울보다 한시간 늦습니다.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라는 뜻입니다. 해발고도는 1250미터, 겨울기온은 영하 30도, 낮에도 영하 15도 부근에서 맴돕니다. (취재기간 동안 갤로퍼를 타고 다녔는데 갤로퍼에 옵션으로 달려나오는 온도계, 고도계가 여기서는 장식품이 아니라 진짜로 쓸모가 있더군요) 울란바토르는 서울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기오염이 심합니다. 울란바토르는 분지라서 바람이 거의 없읍니다. 옛날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피해서 도읍을 정했겠지만 지금은 거꾸로 공기의 흐름을 막고 있어서 대기오염이 발생하고 있읍니다. 자동차들이 유연휘발유를 쓰는데다가 도시지역내에 화력발전소가 세개나 있어서 굴뚝으로 엄청난 연기를 뿜어내고 있읍니다. 또 일반가정의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도 대단합니다. 겨울에는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기온때문에 자동차는 차고에 보관하지 않으면 시동이 안걸리거나 엔진이 동파되는 사태가 벌어져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 솔롱고스는 가장 가고 싶은 나라 한국은 코리아로도 알려져 있지만 전통적으로 또 공식명칭으로는 솔롱고스라고 불립니다. 중화사상에서 주변 민족을 모두 오랑캐로 보는 것과 비슷하게 몽골의 역사관에서도 중국이나 한국은 주변의 민족입니다. 역사상 한민족도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는 설명인데 몽골에서 아시아의 역사를 파악하는 방식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한국은 주변국중 가장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좋습니다. IMF를 극복한 대통령으로 또 몽골인을 닮은 외모때문에 더욱 친근감을 가지고 있답니다. 몽골인들이 한국에 불법취업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좀 의외였는데 현재 만이천명정도라는 많은 숫자가 체류를 하고 있읍니다. 한국에서의 불법체류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바로 몽골이랍니다. 외모가 비슷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 바람에 여타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관심이 덜 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에 취업을 하기 위해 반년치에 해당하는 거금을 받고 가짜 서류를 만들어주는 브로커들도 있는데 서류가 워낙 정교해서 대사관에서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합니다. 이 몽골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받는 대우가 여느 외국인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음은 물론이구요... * 자동차의 70%는 한국산 많은 자동차들이 울란바토르를 누비고 다니는데 이 차들중 70%는 한국산 차들입니다. 대부분 중고차이지만 EF소나타, 무쏘등 새차도 볼 수 있읍니다. 소나타, 갤로퍼, 프린스등 모든 종류의 한국차종을 쉽게 볼 수 있읍니다. 특히 승합차는 거의 전부가 베스타, 이스타나등 한국산입니다. 한국산 시내버스도 다니고 한샘학원, 오현고등학교의 스쿨버스등이 글자도 지우지 않은 채 다니는 차들도 있읍니다. 일제나 독일제차들보다는 못하지만 한국산 자동차는 품질도 좋고 값도 싸서 인기가 좋습니다. 이상한 점은 오토바이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자동차는 여전히 중상층의 부의 상징인만큼 값싼 오토바이가 많이 있을 법한데 단 한대도 본 기억이 없읍니다. * 말을 타고 핸드폰 몽골에서 핸드폰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것도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읍니다. 대학생들 열명이면 두세명 정도가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단적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사오년전 정도가 될 듯 합니다. 이렇게 대중적으로 핸드폰이 보급된 것은 한국SK텔레콤과 몽골의 합작기업인 스카이텔 덕분입니다. 먼저 진출해 있던 일본이동통신회사보다 나중에 출발했지만 저가의 단말기 공급을 전략으로 회사 설립 반년여만에 휴대폰 시장의 40%를 차지했읍니다. 스카이텔의 접수창구는 실제로 발디딜 틈없이 붐비고 있었읍니다. 스카이텔이 공급하는 단말기는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 단말기의 부품을 가져다가 외장을 바꾼 것입니다. 기지국시설이나 교환기도 한국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사용해서 원가를 낮추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리포트도 제작했는데 전통복장을 입은 몽골인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촬영했읍니다. 몽골의 핸드폰 보급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실 그 지역은 통화지역이 아닌데다가 그 주민 역시 핸드폰 가입자가 아니어서 많이 망설였지만 이런 모습은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촬영을 하기로 했읍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도 말이나 소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읍니다)
    2003-02-24
  • 몽골 취재기 1
    몽골 취재기 1 ( 2000년 1월 중 2주간) -------------------------------------------------------------------------------- KBS 영상 취재부 유민철 기자 지난 1월에 2주 동안 몽골에 출장을 다녀왔읍니다. 몽골과 한국의 교류를 중심으로 몽골의 이모저모를 담아왔읍니다. 유목민족으로서의 몽골보다는 이번엔 변화하고 있는 몽골에 촛점을 맞추었읍니다. 1몽골인들의 생활과 2몽골의 한국바람 두 가지 제목으로 두 번에 걸쳐 글을 올리겠읍니다. '1. 몽골인들의 생활'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몽골인들의 생활모습을 쓴 거고, '2. 몽골의 한국바람'은 이번 출장의 주제로 몽골의 현재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적어 본 것입니다. 몽골 취재를 다녀와서 ... 둥그런 천막집, 마유주를 마시며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는 유목민족, 아시아 대륙을 지배했던 징기스칸의 나라지만 이제는 빛이 바랜 잊혀진 제국... 이번 몽골 취재를 다녀오기 전에는 이런 이미지가 몽골의 전부인줄로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몽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 중에는, 아니 막연히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던 것들 중에는 사실과 다른게 많았읍니다. 도시에는 여느 나라와 다름없이 각종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고 핸드폰이 대중화 되었고 서울의 패션이 일주일 후면 곧장 유행됩니다.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징기스칸의 제국도 변화하고 있었읍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몽골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아서 취재기간 동안 보고 들은 것을 대충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몽골인들의 생활 * 몽고가 아니라 몽골 우매할 몽, 옛 고자의 몽고라는 이름은 중국인들이 몽골을 낮춰부르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몽골이란 용감하다는 뜻으로 몽골의 여러부족 중 한 부족의 이름이 점차 국명으로까지 쓰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파오로 많이 알고 있는 몽골인들의 천막집은 '게르'라고 해야 합니다. 파오는 중국에서 부르는 명칭입니다. 가축을 몰고 이동하는 유목생활도 이제는 없읍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지만 몽골은 유교문화권이 아니며 한자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말은 몽골어를 사용하지만 문자는 러시아 문자를 사용합니다. 몽골 고유의 표음문자가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몽골문자를 부활시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 적극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소련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해왔기 때문에 사회기반시설, 건물의 양식등은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 몽골인들은 정말 몽골인들처럼 생겼을까? - 외모 흔히들 외모가 좀 투박하고 세련되지 않은 사람더러 "몽골리안"같다고 얘기하지만, 외모만으로는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읍니다. 바꿔말해 한국인중에는 누구를 몽골리안이라고 놀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깁니다. 체구는 전반적으로 한국인보다 큽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있지만 우리와 정말 '많이' 닮았읍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얼굴이 약간 다르기는 해도 섞여 있으면 꼬집어 구별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시풍속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기품있는 촌로와 탤런트로 데뷰해도 될 만큼 세련된 외모의 아가씨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 시베리아 바로 밑의 동토 몽골은 동서의 길이가 약 2500km, 평균해발고도가 1200m정도되는 내륙국이고 기후는 전형적인 대륙성기후입니다. 요즘 겨울엔 아침 기온은 영하 30~40도, 낮에도 영하 15도에서 머무릅니다. 한국과 달리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바람이 없는 곳에서는 그래도 견딜만 하지만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10분 이상 활동하기가 힘듭니다. 말들이 뛰어다니는 푸른 평원은 몽골의 상징이지만 겨울의 몽골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혹독한 추위만이 있읍니다. 그래서 여름에 몽골에 왔던 사람들은 꼭 다시오겠다고 하고 겨울에 온 사람들은 다시는 못 오겠다며 돌아간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어떤 작물도 재배할 수가 없읍니다. 들판에서 말이나 소들이 뭉툭한 앞발로 눈을 헤쳐내고 마른 풀을 찾아 뜯어먹는 모습을 보면 안스러운 생각도 들지만 그것이 이런 혹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인 듯 합니다. 건초를 준비해서 가축들에게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무렇게나 풀어놓고 저희들이 먹이를 찾도록 놔두는 것이 이곳의 방식입니다. * 천막집 게르의 안모습 시골에서는 게르가 가장 일반적인 주거형태며 도시에서도 저소득층은 게르촌에서 많이 살고 있읍니다. 골격은 나무인데 분해하고 설치하는데에 삼사십분이면 된다고 합니다. 사발을 엎어 놓은 모습의 게르의 내부지름은 4-5m, 높이는 2m정도. 두꺼운 천으로 밖을 두르고 가운데에는 난로가 있읍니다. 바닥은 천이나 마룻바닥 같은 것을 깔아 놓습니다. 가장자리에는 의자 겸용으로 사용하는 침대들이 놓여 있읍니다. 입구와 가장 먼 안쪽이 집안의 어른이 사용하는 자립니다. 우리와 달리 손님이 오면 이 안쪽 자리에 앉도록 합니다. 게르는 이른바 원룸 시스템으로 안에 침대, 난로, 취사시설등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들어있읍니다. 전기가 들어오는 지역에는 텔레비젼, 라디오 등도 있고 전화도 있읍니다. 풍요로운 살림이 아니라도 집에 손님이 오면 서슴없이 따뜻한 차와 음식을 제공하고 잠자리까지 제공하면서 환대하는 것이 몽골인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나도 언제든지 어려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남에게도 서슴없이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 식생활, 마유주보다는 보드카 음식문화는 일천해보입니다. 주식은 양고기이고 채소섭취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농촌의 게르안에서 점심을 먹을 일이 많았는데 메뉴는 한결 같이 삶은 양고기, 뻣뻣한 빵, 우유를 넣은 찝질한 맛이 나는 차, 이 세가지 였읍니다. (양념도 없이 삶은 양고기는 그 독특한 풍미때문에 도저히 못 먹겠더군요) 오이지도 있고 양고기국이나 칼국수에 채소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채소는 어디까지나 보조재료일 뿐 입니다. 한국인들이 김치를 처음 보여주었을때 동물이나 먹는 채소를 준다며 화를 내는 일이 많았다고 할 정도로 채소를 안 먹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런 몽골식단도 근래에 크게 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몽골인들이 가장 즐겨마시는 국민주는 마유주가 아니라 보드카입니다. 가장 많이 팔리는 보드카는 징기스칸이 그려진 징기스라는 보드카입니다. 마유주는 맛이나 색이 막걸리와 거의 같은데 집에서 담궈 먹기는 해도 시중에 시판되는 것은 아니어서 흔히 마실 수 있는 술은 아닙니다. 또 우유로 만든 술도 있는데 이건 소주처럼 맑고 도수는 약한 술입니다. * 설과 유사한 차강사르 몽골에도 음력이 있고 12간지가 있읍니다. 우리의 설에 해당하는 것을 차강사르라고 하는데 하얀 달이라는 뜻입니다. 차강사르엔 양고기와 만두를 준비하고 세배를 다니며 덕담을 나눕니다. 차례상이래야 삶은 양고기와 과자를 준비하는 정도로 간단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홍동백서, 조율이시 하는 식으로 양고기를 놓을 때 부위별로 놓는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과자는 여러 단으로 쌓아 놓는데 꼭 홀수라야 합니다. 첫 단에서부터 행복, 고통, 행복의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라 행복으로 끝나도록 홀수로 쌓는 것이랍니다. 홍두깨로 만두피를 밀고 양고기를 넣어 만두를 빛는 모습은 우리와 너무나 똑같습니다. 만두속은 야채는 거의 없이 양고기로만 채웁니다. 가장 안쪽의 어른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차례대로 아이들의 인사를 받고 어른들끼리는 덕담을 나누며 남자들끼리는 코담배를 서로 건넵니다. 화장품 샘플처럼 생긴 병에 인도산 담배를 넣은 것으로 뚜껑을 열고 담배냄새를 맡은 다음에 돌려주는 식입니다. 코담배는 특히 남자들만이 즐기는 고급 취미 같은 것으로 옥으로 만든 담배병은 무척 비싼 것도 있답니다. 허허벌판에 천막집을 차려놓고 풍요롭지 않은 살림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연민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척박한 환경에 맞게 발전해온 강인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가 있읍니다. 특히 한없이 순박한 인심은 부럽기만 했읍니다. 삼십분이면 설치할 수 있는 천막집, 물과 부재료가 많이 들지 않는 음식등은 척박한 환경에 알맞게 발달해온 의식주 형태인 걸로 보입니다. 극한의 추위에서 생활할 수 있는 능력, 즉 이동이 가능한 주거시설과 간단한 음식은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는 원동력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까지가 지금도 변함없는 몽골의 전통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몽골도 항상 변해왔고 근래의 변화중 많은 부분은 한국과 관련한 변화입니다. ( 1. 몽골인들의 생활 끝 , 유민철 기자의 몽골 취재기 2, 3으로 이어집니다 )
    2003-02-24
  • 즐거운 장례식
    KBS 영상 취재부 최연송 기자 ( http://www.9ood.com ) 즐겁고 기쁜 장례식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 제가 갔다 왔습니다. 다름아닌 故 버다 홀트여사의 장례식이었습니다. 남편 해리 홀트와 함께 한 평생을 한국의 고아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다 가신 분이시지요. 원래 기독교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슬프지만은 않은 의미을 가지고 있죠. 그렇지만 사실, 많은 이들은 어떤 사연을 안고 죽던 간에 모두 슬퍼하는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홀트여사의 자손들은 기쁘다고 하더군요. 심지어는 조문객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고 하늘로 날리게 하더군요. 상당히 인상깊었음은 당연한 일이겠죠. 후손들은 하나님께 평생 복종한 삶을 사신 어머니가 천국에 가셨을 거라고 기뻐하더군요. 인간의 간사한 잣대(즉, 저의 잣대)로 봤을 때 도 기뻐할 만 하더군요. 구름 같은 조문객들(대통령 영부인 포함), 그 분에 대한 끊임없는 칭송들...너무 부러웠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도저히 살 수 없는 삶이죠. 수많은 고아들을 자식같이 살피고 가정을 만들어주고 갈곳없는 장애자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다는 것이 돈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들도 사실은 돈 열심히 벌어 잘 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故 해리 홀트가 심장병에 걸렸다가 나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는 군요. 구체적으론 잘 모르겠지만 보통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이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로 답하기 어렵고 자신없는 질문을 드립니다. "당신은 당신의 장례식에 모든 이들을 기쁜마음으로 오게할 자신이 있습니까?" 홀트여사의 숭고한 영혼위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길...
    2003-02-24
  • 여성의 나라 핀란드
    KBS 영상 취재부 신동곤 기자 핀란드의 첫 여성 대통령 할로넨. 남편은 없지만 동거하는 남자 친구가 있다. 게다가 그 남자는 전부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 대통령궁에서 있었던 만찬회장에 그 남자 친구도 동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사생활이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국회의장과 부의장이 여성, 6명의 주지사중 3명, 시의원의 45%가 여성. 연립 정권의 각료 18명 중 8명이, 녹색당과 좌파 연합의 당수도 여성. 핀란드 여성의 75%가 직장을 가지고 있다. 핀란드 남성은 결혼을 꺼려한다. 반면 여성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만약 이혼하게 되면 남편은 부인에게 양육비 명목으로 자기 급여의 절반 이상을 내야 한다. 어떤 여성은 이 제도를 선호(?)하여 3-4번 결혼, 한 때 사회 문제화가 된 적도 있었다. 이번 출장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핀란드, 스웨덴의 일반 가정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 모두 대가족(핀란드에서는 자녀가 8명, 스웨덴은 5명)이었고 아이들이 모두 인형처럼 예뻤다는 점. 이렇게 자녀를 많이 가질수 있는 이유는 아이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회 복지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이란다. 성이 개방된 나라 핀란드. 애정 표현도 대담하다. 만나자마자 대로상에서 진한 키스를.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오직 우리 취재팀뿐.
    2003-02-24
  • 뉴 밀레니엄 첫날. 열기구를 타고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부 신동곤 기자 뉴 밀레니엄 첫날. 열기구를 타고 국토를 횡단하는 남녀 중학생을 취재하게 되었다. 그동안 비행기도 타보고, 헬기도 타 보았지만 열기구라는 색다른 비행도구를 타고, 그것도 새해 첫 날을 하늘에서 맞이한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잠실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에는 이미 열기구 3개가 준비중이었다. 우리 취재팀은 섭외를 늦게 한 탓에 학생들이 탈 주기구에 타지 못하고 대신 보조기구에 탑승할 계획이었다. (주기구는 9인승, 보조기구는 4인승. 그러나 말이 4인승이지 원래는 2명밖에 타지 못한다는 주최측의 설명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탈 기구에 비행사를 포함 취재기자와 나 3명이 동승하게 되었다. 동틀 무렵 드디어 기구가 서울 상공을 상승하기 시작했다. 흥분,기대,두려움 등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이미 내 눈 아래는 서울시내의 야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발 아래로 스쳐 지나가는 고층 빌딩을 바라보는 것은 그야말로 흥분이었다. 그러나 비좁은 공간에다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카메라를 아래로 향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몸을 어디에라도 결박했어야 했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륙한지 20분 정도가 지나자 새 천년 첫 태양이 우리를 반겼다. 그 아름다운 장관을 카메라에 담을때 까지는 그래도 원래의 기대감이 유지되었다. 고도를 3천미터 까지 상승시키고 20분이 지나도 기구는 제자리에서 맴돌뿐이었다. 게다가 기구의 풍선에 공급하는 가스의 밸브를 교체하는 단 몇 초의 순간에 기구가 순식간에 하강할 때는 아찔했다. 결국 우리가 탄 기구는 연료부족으로 서울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착륙지점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기구는 상하로는 인위적으로 가스를 공급하여 조절할 수 있으나, 수평이동은 오직 바람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종사의 의도는 기구를 한강 고수부지에 착륙시키려고 했으나 바람이 제대로 불지 않아 영동대교부터 동작대교까지 한강 중심을 하염없이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연료는 부족하지, 바람은 뜻대로 불지않지 이제는 아예 카메라 파워를 끄고 무사 착륙에 대한 기도만 하였다. 더군다나 기구는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을 지나가고 있어서 이런 상황만 아니었으면 와이프한테 전화해서 내다보라고 했을 법도 한데 그럴 엄두가 전혀 안났다. 동작대교를 지나자 기구는 강을 벗어나 흑석동 쪽으로 향했다. 조종사는 산에라도 불시착 하자고 했다. 그런데 천지신명이 나의 기도를 들었던지 저 아래로 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거였다. 조종사는 착륙할 때 충격이 심할거라고 했다. 그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땅에 발을 댈 수만 있다면... 운동장이 가까워지자 기구는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를 다리 사이에 끼고 주저앉아 있었다. 드디어 착륙. 그 충격은 너무도 대단한 것이어서 순간 다리 뼈가 골절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어리벙벙한 가운데 기구에서 빠져나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카메라 테스트(무서운 직업정신), 그 다음에 내 몸 확인. 복사뼈와 무릎에 촬과상이 약간 있었다. 회사에 와서 테잎을 확인해보니 헬기 샷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특히 일출장면이 잘 나와서 고생한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새 천년 첫 날, 액땜치고 너무 심했다. 다시는 기구 안 탈거다.
    2003-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