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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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대만 지진 취재기3
    오늘은 추석. 이국에서 맞는 추석이라 아침부터 부모님과 사랑하는 마누라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수시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여진에 대한 부분은 빼고 잘먹고 잘잔다는 의례적인 이야기만 하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동안 김박사는 타이중에 있는 모든 구조 기관과 단체에 수 십통의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마침내 119 구조대 발견!!!!!!!!! 그들은 타이중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서 인명 구조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무너진 아파트 건물 지하로 들어가니 우리를 최초로 맞이한 것은 시체 썩는 냄새와 무너진 콘크리트 틈새로 뚝뚝 떨어지는 피였다. 오싹 하는 기분과 함께 떠오르는 많은 얼굴들. 특히 쌍둥이 내 아들(그당시 생후 17일 째) 비상 조명 기구만 밝혀진 그곳은 아파트 주차장 이었다. 구조대는 무너진 틈으로 뚫고 들어가 혹시 생존자가 있는지 수색 중이였다. 석 선배도 구멍으로 비집고 들어가 수색 작업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여진 때문에 대강 취재하고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이 모든 취재진의 솔직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약 30여분간 취재하고 일단 지하실 밖으로 나왔을 때 햇빛과 신선한 공기가 왜 이리도 소중한지. 오늘 취재 아이템은 이국에서 추석을 맞는 119 구조대와 대만 사람들의 우울한 추석이었다. 석종철, 이영진 선배는 현장에 남고 나와 조재익 선배는 지진 피해 현장에서 추석을 맞는 대만 사람들을 취재하기로 하였다. 약 11시 50분경. 근처 절에서 촬영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생존자가 발견되었다는 급보였다. 모든 취재를 물리치고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그곳은 흥분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지만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가시게 하였다. 생존자 확인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가느다란 음성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의 목소리 였는데 여자 아이라는 것이다. 생존자 확인이 끝나자 구조 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취재진도 뜻밖의 현장을 포착하여 약간 들떠 있었다. 아직 지진 피해 현장에서 생존자가 구출되었다는 뉴스가 없는 가운데 매몰자는 가녀린 여자 아이이고 게다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취재진은 오직 KBS뿐. 특종이다!!!!
    2003-02-24
  • 대만 지진 취재기2
    첫 날 송출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취재팀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송산호텔'로 향했다. 10층 이나 되는 호텔 건물은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지진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그러나 송산 호텔의 붕괴는 이후 보게될 피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었다) 호텔 건물의 인명 구조 현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취재팀의 취재 경쟁이 한창이었다. 말로만 듣던 CNN, BBC, ABC, 로이터 통신도 보였다. 취재를 마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뛰어 다니고 계속 긴장을 해서 그랬던지 하루가 일주일 처럼 느껴졌다. 내일부터 피해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된다. 대만 도착 2일째. 본사에서 헬기 취재를 시도하라는 급보가 전해졌다. 잠시 난감해졌지만 우리가 고용한 가이드(참고로 해외 취재시 가이드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전 섭외에서 통역까지 취재진의 손발이 된다. 단순한 통역이 아니라 가이드 자신도 취재팀의 일부라는 책임의식이 있는 가이드를 만나면 그 해외 출장의 절반은 성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인 김진오 박사는 공항으로 연락을 취해 어렵게 헬기를 확보했다. 재난 상황이라 임대료가 매우 비쌌지만 회사에서는 강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헬기가 너무 작아 3명만 탑승할 수 있었다. 부득이 석종철 선배(카메라 기자), 조재익 선배(취재기자), 가이드 3명만 헬기에 탑승하고 나와 이영진 선배는 호텔에 남아 있었다. 헬기팀이 돌아오기로 한 오후 3시가 넘어가자 슬슬 걱정이 되었다. 혹시 사고라도.... 핸드폰이 계속 불통이라 걱정은 더해갔다. 5시가 넘어서야 헬기팀이 돌아왔다. 촬영한 그림을 보니 지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멀쩡한 고층 아파트가 가운데가 동강나 쓰러져 있는가 하면 사찰은 가운데 부처님 상을 제외한 모든 부속 건물이 폭싹 주저앉아 있었다. 우리가 위성 송출을 청약한 대만의 CTN이라는 방송국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피해 상황 속보를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헬기 테입이 총 60분이라 원본을 모두 송출하기란 불가능 하였다.(통상 위성 청약 시간은 5-10분, 이것도 매우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60분을 청약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짧은 시간동안 기자의 오디오, 인터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림을 송출한다. 그래서 원래 촬영할 때 거의 편집한다는 개념으로 절제해서 촬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완성품을 만들어 송출할 수 밖에 없었다. 편집기는 여유가 없고, 시간은 촉박하고 편집하고 있는 석 선배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청약된 위성 시간에 맞춰 완성품을 송출할 수 있을지 걱정 되었다. 본사에서는 시간 없으니 미완성품이라도 쏘라고 재촉하였다. 청약된 위성시간을 약 3분 경과해서 석 선배가 뛰어 왔다. -- 임무 완수 -- 헬기에서 본 지진 피해 상황은 한 편의 재난 영화를 보는 듯 했다. 뒤에서 지켜본 CTN 관계자도 그런 헬기 그림은 아직 대만의 어떤 방송국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헬기 취재를 결정한 데스크의 판단과 석종철, 조재익 선배의 노력 그리고 가이드의 책임감이 조화되어 훌륭한 취재가 되었다. 이날 헬기 취재의 대성공은 앞으로 전개될 지진 취재 성공의 시발점이 되었다.
    2003-02-24
  • 대만지진 취재기1
    좀 지난 취재기이지만 이 보도로 신동곤 기자는 본회가 제정한 한국TV카메라기자상 보도뉴스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9월 21일 대만에서는 강도 7.6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새벽 6시쯤 데스크로부터 출장 준비해서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급하게 하달된 출장이라 모든 것이 정신 없었다. 더군다나 나로서는 첫 해외 출장이었다. 다행히 나와 동행한 석종철 선배는 고베 지진현장의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라 안심은 되었다. 출발부터 우리의 출장은 순탄치 않았다. 12시 오사카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회사에서 출발한 시각은 11시 5분. 통상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최소한 1시간 전에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아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공항 도착 후 약 15분만에 모든 절차를 완료하고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오사카에서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 모니터를 통해서 처음으로 대만 지진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피해는 심각했다. 사망자는 천 명 이상이고, 실종자는 약 7천명 정도였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대만에 도착한 시각은 19시 20분(대만은 한국보다 1시간 느림) 우리가 도착한 타이베이는 다행히 피해가 적었다. 진앙지가 남부지방이어서 그랬다. 공항에는 회사에서 이미 섭외한 차량과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 첫 날 우리에게 하달된 임무는 지진 현장에서 1보를 송출하는 것. 공항수속 마친 시각은 약 19시 50분. 예약된 위성 송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약 40분. 이 임무를 완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40분이 걸린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무 완수. 렌터카 운전사('까오'라는 친구인데 마지막까지 우리와 동행해서 무척 정이 들었다)의 난폭 운전 덕분에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위성 송출 완료. 대만 지진 현장 취재팀 첫 날 임무완수 완료!!! *** 사건 현장에서 1보를 보내는 것은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입니다. 아무리 좋은 화면일지라도 다른 방송사에서 1보가 나간 후 뒷북을 치면 그 화면의 가치는 별 볼일 없는 것입니다. 타 방송사보다 1초라도 빨리....
    2003-02-24
  • 끝없는 전쟁
    7년간 지리하게 계속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상은 제 2당인 리쿠드당 당수 샤론의 팔레스타인의 성지인 엘 락사 사원 무단 강행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매일매일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두 민족간의 대립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갔습니다. 엘 락사 사원은 팔레스타인의 성지인데, 샤론의 방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입니다. 급기야 아랍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방안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이라크 같은 강경파와 이집트나 요르단같은 평화적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온건파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는 바로 아랍대표 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달려갔고 현장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가로 놓아 높은 장벽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가 전쟁으로까지 치달을수 있고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오일쇼크를 몰고 올 수도 있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갑작스레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이 두 민족간의 분쟁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사건의 발단은 미시적으로 보면 샤론 당수의 무력을 앞세운 팔레스타인 성지 방문입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이스라엘에서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뚜렷이 구분됩니다. 강경파들은 유대교의 성지인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들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보면 2000년전에 유대인이 떠난 땅에서 살아온 데다가 유대인만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논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의 성지인 엘 락사 사원을 이스라엘 강경파의 우두머리가 우력을 앞세워 침입을 한 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문제의 엘 락사 사원의 위치를 보면 왜 이 두민족이 몇십년째 싸우고 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유대인 거주지역인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인 동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예루살렘지역안에는 구시가지가 있는데 이 지역 안에는 기독교 성지인 예수 관련 교회들과 유대교의 성지인 통곡의 벽, 이슬람의 성지인 황금사원과 문제의 엘 락사 사원이 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즉 각 종교와 민족의 성지를 물리적으로 옮기지 않는 다음에야 해결책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지역을 보면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곳인 베틀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인데 이 안에는 유대인의 성지인 라헬의 무덤이 있고 이슬람 과격단체인 하마스의 주 활동무대인 헤브론에는 아브라함의 성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의 변두리 언덕에는 유대인 정착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난 2000년간 살아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대인의 성지를 차지하고 있고 그 주변의 경비는 이스라엘의 경찰들이 맡고 있고 이스라엘 정착촌들은 차츰차츰 이 지역주변을 파고 들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도 양보할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돌멩이를 던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총과 탱크로 맞서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인의 사상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두 민족간의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돌아오는 그날까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상은 제개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과 라말라 근처의 한 유대인 정착촌, 그 밑 팔레스타인 마을에는 산발적인 총격전이 계속되고 있고 가자지구, 헤브론, 라말라등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도 투석전과 총격전이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젼에서 자세히 전해드릴 수 없었던 생생한 분쟁현장을 동영상으로 감상해 보십시오. 이 화면은 목숨을 걸고 취재한 것입니다. MBC홈페이지 뉴스인뉴스
    2003-02-24
  • 구제역 예방접종 허위기재
    그 많은 소·돼지에게 주사를 맞힌 사람은? CJB 청주방송 영상취재부 김준수 충주에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지난 4월11일. 주로 서해안에서만 발생하던 구제역이 내륙 중심지인 충주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 방역당국 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카메라기자로서 구제역이 발생한 충주시 신니면 마수리 지역을 빠짐없이 취재했다. 이 과정에서 방역선을 넘었다며 농수산부로부터 고발까지 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우여곡 절이 많았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했던 사람들은 바로 축산농민들. 자식같이 기르던 소와 돼지를 산채로 파묻어야만 하는 농민들을 바라보면서 농민의 자식으 로 살아온 나도 속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후 구제역 예방 백신접종과 낙인작업 등의 구제역 확산 방지 작업이 계속 이뤄져 농민들 은 그야말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구제역이 발생한지 4개월 가량 지난 8월18일. 구제역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한 농민으로부터 제보전화가 왔다. 자신이 키우던 염소는 자신이 직접 예방접종을 했는데 면직원이 들고 다니던 예방접종부에 는 수의사가 한 것처럼 기재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꺼리'가 되겠다 싶어 취재기자에게 알려주고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농민이 직접 접종할 경우 접종비가 없지만 수의사나 접종요원이 접종할 경우 소와 염소 사슴 등은 마리 당 천원, 돼지는 마리 당 5백원의 접종 시술료를 주기 때문이다. 충주시에서 예방접종한 가축은 모두 12만마리. 접종 시술료로 수천만원이 수의사와 접종요원들의 배를 부르게 해준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 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곧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예방접종 대장은 어렵게 입수했지만 분량이 1, 2차 예방접종대장을 합쳐 3천 쪽이 넘고 농 가에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한 제보한 농민과 같은 사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틀 밤을 새우며 10여 마리 이상 소와 돼지를 키우는 농민 3백여 명을 골라 전화를 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모두 수의사와 예방접종요원이 직접 농가에 찾아와 했다는 것. 그럼 이 농민만 단순 실수로 잘못 기재한 것일까. 이렇게 싱겁게 끝나는 것인가. 더구나 취재소식을 알고 충주시와 면에서 농민들에게 입단속을 했다는 정보가 들어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예방접종대장에 돼지 7천 마리를 접종한 것으로 돼 있는 예방접종요원 성아무개씨와 통화중 "자신은 예방접종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성씨는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제 풀렸다.' 그 동안의 피곤함이 한꺼번에 씻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돼지 7천 마리를 실제로 접종한 접종요원 홍아무개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홍씨는 처음에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른다"며 부인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성씨의 이름 을 거명하며 다그쳐 묻자 그제서야 진실을 말했다. "시청 직원의 요청에 의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시청직원은 그런 일을 했을까 의문이 생겼다. 취재기자와 함께 충주시 축산과를 찾아가 사실여부를 확인하자 공무원들도 처음에는 완강히 사실을 부인하다 "감사에 적발될 것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실토했다. 이런 사례가 크고 작은 것을 포함해 수십여 개가 드러났다. 공무원의 조직적 개입이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또 소와 돼지, 염소 수백여 마리가 농민에 의해 자가 접종됐으나, 수의사와 예방접종요원에 의해 접종된 것처럼 기재된 사실도 이후 3일 동안의 취재에서 추가로 밝혀냈다. 나는 이후 취재기자와 함께 '구제역 예방접종 내역 허위기재', '보조금도 비리의혹', '경찰 본 격수사 착수' 등 7차례에 걸쳐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결국 경찰이 본격 수사에 나서 공무원 2명과 접종요원 1명을 사법처리하면서 사건은 마무리 됐다. 이 시리즈 기사로 취재기자와 함께 한국기자협회와 언론재단이 공동으로 주는 제120회 '이 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수억, 수십억원의 돈이 새 나간 것은 아니지만 비록 적은 돈이나마 정부보조 금이 다른 곳으로 유출되는 것을 사전에 막았다는 데 후한 점수를 주셨다. 9월28일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영상취재 기자로 5년간 일한 보람을 느낄 수 있 어 좋았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수상소감도 발표했다. "이 상은 제가 받아야할 상이 아니라 구제역으로 자식같이 기르던 소와 돼지를 눈물을 흘리 며 메마른 땅에 묻어야만 했던 축산농민들에게 주어야할 상입니다." 아직까지 구제역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이 하루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찾 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03-02-24
  • 71세 김상일씨의 엄마찾기
    김시현 기자(문화방송 영상취재부) : daytrix@dreamwiz.com 살아계시다면 92세이실 어머니 김태숙씨를 찾는 김상일씨(71세)는 이번에 상봉한 이산가족들이 밉다신다. 당신이 못하신 효도를 그들이 할 수 있어 너무나도 샘이 나신단다. 이제는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움에 버럭 역정을 내신다. "이제 구십밖에 안됐는데 무슨..." 홀로 걸어내려온 38선을 뒤로 한지 55년. 밀을 절구에 찧어 손바닥 반 만한 밀떡을 해주시며 "오늘이 니 생일이야"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남한에서 배불리 먹으며 지낸 세월이 너무나 송구스럽다. 당신은 오늘 당장 일거리가 없으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열남매중 혼자 피난 여느 이산가족은 남한과 북한에 조금씩 나뉘어져 있을 법도 한데 그는 혼자다. 그래서 라면 박스에 화선지를 붙여 정성들여 쓴 울긋불긋한 가족의 이름도 다른 사람보다 많다. 그는 아버지 김원식씨(96세)와 어머니 이태숙씨(92세) 사이의 열 남매 중 유일한 남한 식구이다. 더 이상 혼자이기 싫은 김 할아버지의 가족 찾기는 절규에 가깝다.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죽기 전에 부모님을 뵙는게 지상 소원이시다. 매스컴에 나간 뒤로 자못 할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정작 당신의 소식을 북녘에 전해야 할 북측 기자들은 적십자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제는 남은 시간이 없다 일흔을 넘긴 나이를 더 이상 믿고 있을 수 만은 없다. 85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상봉자 명단에 올렸지만 번번이 허사. 백만 이산가족이 1년에 100명씩 본다면 10,000년이 걸린다는 현실 앞에서도 할아버지는 좌절하실 수 없다. 그래서 영어도 배우고 인터넷도 배우셨단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의 기자와도 만나보고 알림판에 이메일 주소도 적어본다. 조금이라도 상봉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으신다. 무엇이 할아버지를 그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흔을 넘기신 부모님이 살아계실 거라고 굳게 믿어 보지만 더 이상 자신이 없으신 거다. 이제는 당신의 일생도 장담 못하는 상황에서 자꾸만 희미해져 가는 어릴 적 어머니 모습 앞에 조금이라도 젊은 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으신 거다. 50년 세월 너머로의 절규 너무나 오래 혼자 버텨온 55년. 떼를 써도 받아줄 이 없는 메마른 부대낌 속에서 반세기를 거슬러 엄마를 떠올리는 김상일씨의 통곡은 생일날 밀떡 하나 입에 넣어 주시던 엄마를 찾아 메아리 친다. "엄마 저도 효도하게 해주세요!!!"
    2003-02-24
  • 한 청년의사의 항변
    아래 내용은 문화방송 홈페이지 뉴스인뉴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한 청년의사의 항변 김 철영 (문화방송 영상취재 1부 ): zarathus@imbc.com 서울 중앙병원 내과 레지던트 4년 차 한 상택 씨. 벌써 두 달여 째, 중앙병원 내과의국이 아닌 의사협회내의 참의료진료단에 출근하여, 전국의 진료단 현황과 응급실 상황들을 점검한 뒤 자신이 책임진 구역으로 황망히 발걸음을 옮긴다. 예년 같았으면, 전문의 국가고시 준비와 외래진료, 후배 레지던트들의 교육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시간이겠지만, 요즘은 국가고시 준비는 사치스런 생각이라며, 오히려 전공의 생활보다 더 여유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의사 폐업사태를 취재하는 현장에서 만난 그는 이번의 의료폐업사태가, 특히 젊은 의사들의 공포심과 미래에 대한 절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된 약사법에 약사의 조제장부 기록 의무화 조항이 없어 의사의 사전 동의 또는 통보 없는 대체조제가 가능하게 됐고, 그에 따른 의료사고의 발생·책임을 고스란히 의사들이 떠맡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의료사고의 책임소재에 관계없이 자기자신이 느끼는 중압감만으로도 의사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항변이 이어졌다. 정부는 정부대로, 약사는 약사대로, 특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정부와 의사집단 사이에 끼어서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피해를 보는 환자들 모두가 할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폐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의사 측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근본부터 이해하기 전에는 이해당사자 간에 합리적인 타협과 양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취재현장에서 만난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대로 전달해 보고자 한다. 이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네티즌의 몫이다. 의료보험 수가문제 취재현장에서 만난 의사들의 문제점 지적은 '의료 수가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70년대 후반 도입된 의료 보험 제도는 출발부터 '저수가-저지급' 이라는 생색내기용 선심정책이었으며 이때문에 보험료를 낸 만큼 혜택을 받도록 하는 진정한 의미의 '의료보험증'이 아니라 정부의 복지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의료할인증'에 불과했다는 것이 의사측 주장이다. 별 돈 안들이고 복지생색을 내기위해 정부가 도입한 의보수가 제도의 근본적 모순의 누적에 대해, 약품 판매 마진과 리베이트라는 편법에 기대어 부족한 소득을 보충해 온 의사집단이 작년 11월부터 시행한 실 거래가 상환제도로 바뀌면서 직업적 절망감과 함께 그야말로 '생존권'이 달린 분노의 폭발로 이어졌으며 결국 의사폐업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현상화했다는 것이다. 의약품납품 과정에서 생겼던 리베이트를 차단하고 대신 정부가 '보험수가'를 올려주어 의사들이 리베이트 등의 비정상적인 수입에 의존하지 않게 한 '실거래가 상환제도'는 그 인상분 자체가 부족할 뿐 아니라 대형병원들에만 거의 집중되어, 일반 개업의들을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 그리고 적은 시간에 더 많은 환자를 기계적으로 치료하게 강제하는 문제점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80년대 이후 성장한 의료자본과 사적 영리의 목적으로만 기형적으로 팽창한 '의료산업'은 의료제도의 '공공성'이라는 본원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와 정부의 소극적 대처로 일반의사들을 손익분기점에 대한 계산을 강요케 하는 소상인으로 전락시키거나 대형의료자본(특히 재벌을 끼고 있는)의 틈바구니 속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몰아 넣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 때문에 일반의사들과 병원, 특히 대형병원들과의 이해관계는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라는 주수호 의쟁투 위원장의 지적은 동네 병원의 위기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의 실시 이후 기본적 진료기관인 동네병원(특히 메이저 4기본과 중에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들이 대형의료자본에 의해 침식되어 몰락해감으로써 의료체계의 근간부터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의약분업의 현실적 여건 의약분업 도입의 문제점 가운데 또 다른 현실적 문제로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들 수 있다. 쉽사리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의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는, 약국에서 편하게 약을 지어 먹을 수 있는 그간의 기형적 약조제가 편리할 수 밖에 없다. 의사들이 아무리 최신 의료행위로 환자들을 돌본다고 하더라도 의료서비스의 대상인 환자들의 노동환경이, 자 원칙적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서 다시 약국에서 약을 탈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적 열악한 노동환경의 풍토에서는 문자 그대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노동환경이 기본적으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설사 의사들의 주장대로 원칙적 진료를 정부정책으로 가능케 한다 하더라도, 그 수혜자의 폭이나 수는 일부 여유계층에 국한될 것이라는 것이 의사측의 현실진단이다. 의사의 절망, 의료제도의 절망, 그 탈출구는? 취재현장에서 접한 많은 의사들의 주장을 위에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또 의사들이 현재의 의약분업의 대안으로 내놓은 완전의약분업요구안을 보면 그 자체로 상당히 이상적인 면을 많이 담고 있으며 제도적 정당성을 많은 부분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환자없는 의사가 존재할 수 없는 이상,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의 속성상 그들의 단체행동이 제한되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는 점에도 의사들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모순의 결집체적 성격을 띈 의료 제도의 문제점이 폐업으로 드러난 것은 우리 사회에 교훈을 던져 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왜곡된 의료체계라는 점을 알고도 수 십년 동안 별 목소리를 내지 않고 편법으로 자신의 소득 보전에만 힘써 왔던 의사집단이 갑자기 국민건강 수호라는 명분으로 돌입한 폐업과 그 이유들에 대해 국민들은 쉽사리 납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의사집단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적의료보험제도의 도입과 미국식 의료체계의 도입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도 시민단체 등에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가속화로 전체인구의 15%가 아무런 의료보험과 보호혜택을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뼈대만 남은 한국의 공적의료보험제도를 사적 의료보험제도로 대체하자는 것은 전공의 협의회나 의쟁투에서 주장한 내용과 배치될뿐더러 제도적 정당성과 명분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정부도 문제의 본질을 돈으로만 환원하여 의사처방진료의 인상으로 의사집단을 달래려 한 정책이 오히려 그들의 분노만 더 키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의보수가 인상의 주요인이 약사의 조제료 450%인상과 주사약 조제료에 기인하였음에도 이를 호도하기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는 의약분업에 있어 기득권을 쥐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의사집단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사태를 해결하려는 안이함에 다름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상택씨는 최근 전공의들 사이에 미국의사 시험 공부가 붐을 이루고 있다고 귀뜸했다. 자신도 이민의 유혹에 대해 솔직히 쉽게 떨치지는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의.정 강경대치 상황이 계속되어 의대생들의 집단자퇴 결의와 함께 전공의들이 집단유급을 당한다면 종합병원 치료와 수술의 60%를 담당하는 현 의료제도하에서 전공의 수급 자체가 중단되고 전체 의료인력의 수급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 것은 불문가지이다. 뛰어난 의료체계지만, 의료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가 너무 적어 유학생들이 의과대학의 학생들 중 50-60%를 차지하는 영국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미래가 절망뿐이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어느 청년의사의 한숨은 역시 취재현장에서 맞닥뜨린 환자들의 고통과 아울러 한국의 미래 의료상황에 대한 나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했다.
    2003-02-24
  • 사랑이 담긴영상
    아래 내용은 문화방송 홈페이지 뉴스인뉴스에서 발췌한것입니다. 사랑이 담긴 영상 정연철 카메라 수습기자 mpeople@imbc.com 영상 매체의 절대적인 힘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영상의 중요함을 다시 말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입니다. 일례로 TV에 나온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성금이 쏟아진다든지, 뉴스에서 보도했던 방법으로 모방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그에 공감하고 반응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전국의 오천만 시청자가 보는 뉴스 영상을 그려내고자 이 자리에 도전했습니다. ▶ 그려내고 싶은 삶의 모습들은 너무나도 많은데... '카메라'라는 기구를 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많습니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 어린아이가 순수하게 웃음 짓는 모습이며, 주름 투성이의 아주머니가 시장에서 콩나물을 파는 모습, 그런 평범한 모습에서부터 노숙자들의 생활 모습이나, 역사의 한 현장에 서서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악수하는 모습까지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나의 눈을 통해, 그리고 나의 마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에 한창 전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엘살바도르의 지진 피해자의 눈물 한 방울, 그리고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지에서의 삶들의 모습 그런 모습들도 그려보고 싶습니다. 연수 생활동안에 저의 이런 생각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된 계기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뉴스의 공정성과 객관성에대한 강의였습니다. '과연 내 마음을 통해 한 번 걸러진 영상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포함하면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또한, 편집 데스크에 앉아서 걸려오는 시청자들의 항의 전화를 받아 보면서 '내가 만든 잘못된 영상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게 될까' 하는 걱정 또한 들었습니다. ▶마음까지 찍어낼 수 있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마음을 여는 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갑갑한 도시 속에 살면서, 또 각박한 세상을 헤쳐가면서 닫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가 만든 영상으로 살짝 열어보고자 하는 욕심을 부려 봅니다. 하지만 먼저 제 맘속에 있는 걱정들을 떨쳐버려야겠죠. 훌륭하다기보다는 올곧은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지금은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그려내는 영상이 MBC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갈 때 결코 우리회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합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보도 본부의 여러 선배님들을 봤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그 옆에서 멀뚱하게 서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저도 그 안에서 바삐 돌아가는 동료가 되려고 합니다. 같이 웃을 수 있는 정을 느끼며 뉴스의 영상을 그려내겠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그려낸 영상으로 우리 모두가 한 번 웃을 수 있고, 한 번 울어줄 수 있는 꿈을 꿔 봅니다. 사랑이 담긴 영상... 그것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3-02-24
  • 국민의 눈이되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문화방송 홈페이지 뉴스인뉴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국민의 눈이 되겠습니다. 문화방송 박지민 카메라 수습기자 jmcool@imbc.com 부산에 사는 한 소년이 있었으니 그는 'TV 맹신론자'였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말처럼 TV를 통해 현실을 인식하였습니다. 소년의 부모가 TV를 '바보상자'라 말하고 소년과 TV를 격리시키려한 것은 아마 소년의 이런 행동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TV를 통해 세상을 느꼈던 소년 소년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국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한 위인이 암살되었고 소년은 TV 속 사람들과 함께 무척이나 울었습니다. 그런 소년의 아픈 마음을 뒤따라 찾아온 위대한 군인들이 어루만져 주었고 소년은 그들을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그들에게 버릇없는 방해꾼이 있었으니, 그들은 흔들리는 TV화면 속 남포동 거리 한가운데서 화염병을 던지기도 했고 착한 순경아저씨를 각목으로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국민에게 큰 도움을 주던 미국인들의 사무실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소년은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소년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국가를 위해 한 지붕에 모인 세 사람이 있었고 TV 속 그들의 의기투합은 참으로 멋져 보였습니다. 반면, 뉴스 한 귀퉁이에서 초라한 유세를 하던 지금의 대통령은 정말 나약한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끝은 아니였습니다. 소년은 찢어지는 사운드와 거친 화면의 흔들림 속에서 지하철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밝은 조명 아래 단정한 옷차림으로 국민에게 사과하는 (국민의 발을 담보로 파업을 일삼는 이들을 대신해)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성장했습니다. TV 속 기자들의 어려운 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TV 속에 투영된 이미지로 세상을 이해할 따름이었습니다. 소년에게는 세상을 바라볼 지적 능력도 방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기자는 소년의 눈을 위탁받아 대신 세상을 바라봐 주었던 것이였습니다. 그런 소년이 카메라기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른 수많은 소년들을 대신해서 조그마한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주관이 아닌 객관의 눈으로 이런 막중한 임무를 떠올릴 때면 부족한 나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특히 며칠 동안 바라본 선배들의 일상은 마치 '시간과의 전쟁'과 비슷한 것이어서 더 많은 걱정이 앞섭니다. '대학시절에 기자는 전문직이라고 배웠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데스크의 지시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취재처를 옮기는 상황에서 어떤 지식과 확신을 가지고 취재에 임해야 하나...?', '내가 카메라기자로서 숙련되지 못한 기간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왜곡된 현실을 보게될까...' 나는 적어도 카메라기자에게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시간과 취재계획을 세울 여유는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선배들처럼 뉴스가 곧 일상이라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초보자인 나에게 이런 현실은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것들로 보완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몇 가지 목표를 실천하며 내 눈을 시청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카메라기자의 눈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불편 부당한 영상취재를 위해 기존의 편협된 사고를 버리고 수많은 보통사람의 입장에 서볼 것입니다. 사형수에게도 인격은 있다는 생각으로 모든 취재원을 대할 때 같은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킬 것입니다. 이제 몇 달 뒤 내 어깨 위에는 카메라가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내 눈은 나의 눈이 아닌 것입니다. 나의 눈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나를 믿고 내게 위탁한 그들의 눈입니다. 나는 어떤 국민의 눈도 소홀히 혹은 특별히 여기지 않을 것이며 나의 눈도 '수천만 명의 눈 중 하나'로 여길 것입니다.
    2003-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