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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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현장의 유튜버, 취재의 자유와 방해의 경계에서…
    취재현장의 유튜버, 취재의 자유와 방해의 경계에서… ▲ 유튜버들의 취재 방해를 다룬 MBC 온라인 채널 〈엎어컷〉 화면 갈무리 지난 8월13일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당일 이른 아침부터 검찰 기자단을 비롯한 각 사의 현장 취재진이 이재용부회장의 석방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야외공간에서의 취재는 자리 경쟁이 그렇게 치열하지 않고 꽤 이른 시각이라 아무 생각 없이 현장에 도착했는데 서울 구치소 앞은 이미 유튜버들로 발붙일 곳이 없었다.  취재 현장에서 유튜버들의 활동이 많아진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취재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의 차원에서 누구든지 취재를 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것이고 시민저널리즘의 확대 차원에서도 반가운 일이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최영 교수는 “시민저널리즘은 저널리즘 프로세스에서 소외된 일반 독자를 적극 참여시켜 민주주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역할을 복원하고자 하는 운동” 이라고 정의했다. 유튜버와 같은 뉴미디어의 발전은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시민저널리즘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유독 유튜브를 이용한 뉴스 이용률이 높다. 21년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다양한 소셜미디어 플랫폼 가운데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44%로 가장 높았다. 여기에 유튜브는 2015년부터 일반인이 사건사고와 같은 뉴스 제보용 동영상을 직접 올려서 언론이 인용보도 할 수 있는 ‘뉴스와이어’를 통해 시민저널리즘의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꼭 유튜브 여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기성언론의 보완재로서 시민저널리즘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도구는 이미 마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취재현장에서 만난 유튜버들은 시민저널리즘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유튜버들의 취재행위가 시민직접 참여를 통한 언론과 지역사회와의 합의와 토론의 연결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조회 수를 바탕으로 한 돈벌이와 한 쪽 귀만 열어 논 편파방송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어 보인다. 시민저널리즘의 부작용으로 언급되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편향성만 더욱 부축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 언론의 과도한 정파성이 주 된 원인 중 하나겠지만 취재현장에서 보이는 유튜버들은 언론의 편향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 미디어라고 인정하기에는 그 목적성에 상당한 의심이 생긴다.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알권리를 실천하기 위한 기존 언론의 취재에 상당한 방해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취재현장에서 고성 지르기, 카메라 막아 서기, 논조를 벗어난 과도한 질문하기 등 이들의 행동이 취재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취재현장에서의 유튜버들의 행패는 MBC 영상기자들의 취재 뒷 이야기인 ‘엎어컷 유튜버 편’을 보면 일부 유튜버들의 도를 넘는 행위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취재현장의 모든 유튜버들이 이렇게 과격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일부 유튜버들의 행패는 사실 상 도를 넘고 있다.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실천 할 수 있도록 헌법이 그 권리를 인정하고 있고 기자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 이는 개인 혹은 소수의 이익이 취재의 자유라는 울타리 안에서 언론의 취재행위보다 우선 시 되어서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다. 뿐만 아니라 유튜버들의 과도한 활동은 취재원의 인권보호와 취재원과 취재진의 안전을 위해 운영되는 포토라인 시행규칙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과격하고 껄끄러운 유튜버들이 많다보니 취재현장에서 대부분의 취재진이 그들을 마냥 방관만 하고 있는 것도 취재현장이 갈수록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 있다간 언론의 취재 행위가 특정 목적을 가진 집단에 의해 방해 받고 위협 받을 지도 모른다.  이제 현장의 기자들이 진실추구와 국민의 알권리 충족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취재현장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들과의 직접 대응은 그들이 소요를 일으키기 위한 좋은 빌미를 제공한다. 대신 소위 말하는 꾼들을 걸러내기 위해 취재 중 불법적이거나 취재방해 행위에 대한 철저한 기록들을 남겨야 한다. 이러한  누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영상기자협회는 사진기자협회, 인터넷기자협회 등과 함께 취재 방해 행위를 하는 유튜버들에 대한 강력한 법적 대응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알권리는 결코 특정 목적에 의해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 현기택 / MBC
    2021-11-17
  • 좌충우돌 ‘교수’ 적응기
    좌충우돌 ‘교수’ 적응기<베테랑 영상기자에서 새내기교수로>  때는 바야흐로 다니던 회사의 명퇴 신청이 막 마감됐고 최악의 대학 신입생 충원율을 기록하게 될 2021년 봄, 나는 이직을 했다. 장면 #1 “학교 홍보차 나왔습니다. 3학년 주임 선생님과는 통화했습니다.” “이건 학교 홍보 책자고요.” / “저기다 놓고 가요.” 경비원은 말을 끊었다. “먹고 사는 게 참 힘들어.” 그의 혼잣말이 등에 꽂혀 따라왔다. 얼마 전 다친 발목은 더욱 욱신거렸다. ‘그렇구나. 학교를 홍보할 때 절룩거리니 슬프구나.’ 장면 #2 국립대 교수인 지인과 통화. “채교수, 임용 축하해! (중략)이 바닥에 들어왔으니 하는 말인데…. 대한민국 대부분의 교수 다 비정규직이야. 근데 쉽게 자르지는 못해.” 서로 측은했지만, 안위(安危)의 바람도 불었다. “그래? 고마워” (중략) “근데 이런 얘기 왜 미리 안 해줬어?” / “야~ 이런 말 외부인에게 어떻게 해. 교수 모양(가오) 떨어지게.” “앞으로 무시 안 당하려면 자네 몸집부터 키워!” ‘그렇구나. 교수는 다 자란 어른도 더 커져야 하는구나.’ 장면 #3  야간 실습을 마친 학생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후각만으로 메뉴를 전광석화처럼 찾아냈다. 다행히 무한리필집이다. 식당은 코로나 시대 첫 대통령 순방 소식에 TV 모니터가 시끌시끌하다. 몇 달 전까지 청와대 출입 기자였고 그 기자단의 간사였던 나는 지금 교수가 되어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짐승처럼 굶주린 가여운 자취생들에게 아직 남아 있는 프로의 실력으로 폭탄주를 만들어 주고 있다. “애들아! 맛이 어떠냐?” / “맛이 최곱니다!” ‘그렇구나. 폭탄주는 교수도 춤추게 하는구나.’ 교수로 앞으로의 멋진 꿈이나 포부 정도를 기대했을 선후배들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신파극’과 같은 마중의 글로 시작해 송구스럽다. 하지만 다른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동안 밖에서 무엇을 했든 이곳에 온 이상 나는 막내 초보 교수니까.올해 2월 28일 OBS에서 퇴직했고 3월 1일 세종시에 있는 ‘한국영상대’ 촬영조명과 전임교수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전임교수이긴 하지만 조교수 신분이고 산학협력단 소속이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영상대’는 전임교수 사이에 큰 차별을 두는 것 같지 않아 다행이다. 지난 학기에 나는 3학년들에는 ‘보도 다큐멘터리’를, 4학년들엔 ‘ENG 심화 과정’을 가르쳤다.  누구의 말처럼 사랑이나 시(詩)나 음악처럼 ‘과정’이 ‘목적’인 것들이 있다. 한 학기 동안 내 ‘연구실’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결국 아는 것이라고는 ‘나는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나’’라는 허위의 ‘나‘를 발견하는 성찰의 ‘실험실’이 되었다. 글 쓰다 보니 진짜 교수가 돼야 할 분들께 염치없이 미안해진다. 아무튼 반년의 몸앓이 끝에 나는 나의 시간을 살기로 다짐하게 됐다. 학교에 처음 가기로 정했을 때의 초심은 ‘폐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묵묵히 해야 할 것들을 찾다 보면 오히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림이 되든 안 되든 역사의 현장에서 늘 목도되는 영상 기자들의 ‘뻗치기’처럼 말이다.채종윤 / 한국영상대학교 교수(前OBS영상기자)
    2021-09-24
  • 공공의 이익과 보도과정에서의 중과실
    공공의 이익과 보도과정에서의 중과실 언론의 취재관행 여전히 ‘소수정예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일같이 사건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가 판단해야할 상황변수는 많다 이를 하나의 윤리규정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기자는 오랜 취재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사건을 재구성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전문 직종이던 시절에는 이러한 판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는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취재현장에는 이미 기자수보다 1인미디어와 블로거들이 시위대나 구경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있다. 온라인을 통해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사실과 허위’를 구분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환경이 바뀌면 관행도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의 취재관행은 여전히 ‘소수정예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언론의 정파성과 현란한 편집기술만 진화하고 있다.  ‘언론중재법’논쟁 전에 왜 이런 상황이 왔나 언론 스스로 자문해 봐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논쟁은 이러한 환경에서 등장했다. 개정발의된 징벌적 손해배상을 법조문화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은 언론보도의 고의중과실 추정요건을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악의적으로 위반하여 보도한 경우와 사진·삽화·영상 등 시각자료와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하여 새로운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등 시각자료로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등 6가지로 규정한다. 시각자료와 기사내용이 명예를 고의로 침해했거나 중대한 과실을 범했는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공공복리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언론보도는 예외로 하지만 좁은 의미의 공인에 대한 보도만 허용된다. 언론보도를 정확한 보도와 허위조작 보도로 나눌 수 있는지, 악의적이고 고의에 의한 명예훼손 정도를 어떻게 추정할지, 공공의 이익을 사안별로 판사가 판단하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인지 등 논란은 뜨겁다. 그러나 입법논쟁을 정치에 맡겨두더라도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를 현업에서는 곰곰이 되짚어야 한다.   2014년4월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연안여객선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를 지나다가 8시49분 기울기 시작하여 10시31분 병풍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했다. 이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 338명과 일반 승객, 승무원 등 모두 476명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언론은 11시1분7초 “단원고 측 학생 모두 구조”라고 자막을 내보냈다. 세월호는 8시49분 처음 기울기 시작했고 첫 보도가 나간 건 9시19분이었다. 해경이 처음 도착한 건 9시34분이었고 10시31분에는 배가 완전히 뒤집혔다. 방송속보에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뜨던 그 시점에는 이미 승객들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었지만, 방송에서는 낙관적 보도가 계속되었다. 심지어 세월호 침몰 8일째인 4월24일에도 언론은 여전히 "물살이 평소보다 크게 약한 소조기가 이날로 끝남에 해군과 해군구조대, 소방 잠수요원, 민간 잠수사, 문화재청 해저발굴단 등 구조대원 726명이 동원됐고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 등의 장비가 집중 투입됐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과연 이러한 보도를 ‘공공의 복리’를 위한 불가피한 보도라고 할 수 있을까? 인권의식 높아진 시대, 외부의 강제이전에 언론 스스로 취재윤리강화와 교육 절실  한국사회에서 세월호사건 이후, 이제는 ‘공공의 이익’이나 ‘사회적 관심사’라는 이유로 모든 취재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취재과정이 정당하지 못하고, 취재방법이 인권을 침해한다면 개인의 사생활과 명예를 침해한다고 본다. 보도의 정파성과 받아쓰기, 정해진 프레임만 촬영하고, 편집하는 관행을 더 이상 ‘공공의 이익’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더욱이 디지털제작환경에서 누구나 1인미디어로 활동할 수 있고, 심지어 환경문제나 전문분야에 대한 정보제공에서 브이로그의 영향력이 기성언론사보다 더 커지는 현실이다.   공공의 이익과 복리를 위한 보도에서 중과실은 있을 수 없지만, 취재과정에 사익이 개입되고, 정파성에 따라 사실관계를 재구성하는 관행이 지속되면, 그 결과물은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중과실이 된다. 이제는 그 발생비율을 줄여야 한다, 법률에 의해 직업윤리가 강제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시민들의 인권의식이 기자들의 취재윤리를 앞선 상황에서 자정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불행은 외부로부터 강제 받는다. 이젠 현업에서 취재윤리강화와 교육으로 답할 차례이다.  심영섭 /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
    2021-09-24
  • 아프가니스탄 전쟁 20년, 다시 탈레반의 시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20년, 다시 탈레반의 시대로…  2001년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었던 오사마 빈 라덴 체포협조를 탈레반정권(오마르)이 거부하면서 시작된 아프간 전쟁. AP통신 서울지국 TV기자로 근무하던 필자는 각 대륙에서 1명씩 총3명이 한조가 되어 한달씩 로테이션으로 아프간 근무를 하는 팀에 포함되어 12월15일 바그람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당시 아프간은 민간항공기 운항이 금지되어있는 상황이라 이슬라마바드에서 카불까지 회사가 UN을 통해 마련한 전세기를 이용했다. 토요일 새벽 이슬라마바드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비행하여 도착한 바그람 공군기지는 언 듯 보아도 마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전쟁영화 세트장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바그람 공군기지는 지금 뉴스에 나오는 카불공항(하미드 카르자이)과는 달리 카불외곽(약 45km 떨어진)에 위치한 군사공항인데, 당시 시내에 있는 카불공항은 재건 전이라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 하였고 바그람 공군기지마저도 전자 이착륙장치가 없어 조종사가 눈으로 확인하고 착륙여부를 판단하였다.    미처 뜨지도 못하고 활주로 옆에 두 동강난 탈레반 전투기들, 기지 활주로 두 개 중 하나는 폭격으로 생긴 구멍이 여러 곳 있었고 공항 전역에 무장한 미군들과 아프간 군인들, 그리고 기관포 등을 보며 공항에 접근할 때  ‘아... 그냥 이 조그만 비행기가 다시 하늘로 솟구쳐 날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짐을 내리고 미군 트럭을 얻어 탄 후 기지 밖으로 나가 마중 나온 현지 운전사를 만났다.  닷지 픽업트럭에 몸을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카불 시내로 가는 길도 예사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흙먼지를 내며 달리는 우리 차는 혹시 모를 저격에 대비해 일정속도 이상을 유지하며 달려야 했다.   도로 주변엔 민간인 복장이지만 소총을 매고 탄띠를 두른 외국인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하고 있었으며 (용병으로 추정) 부서진 탱크위에서 놀던 어린이들은 아직 전쟁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얼굴과 맑은 눈을 깜빡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용기를 내어 흔드는 손짓에 환한 웃음도 보여주었다. 다 부서져 있는 검문소를 통과할 때는 아프간 군인들을 향해 우리가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불은 고대시대 실크로드의 동서양을 잇는 길이라 상대적으로 강대국들의 침략이 잦았고 그로 인해 문화와 치열한 전쟁의 역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오늘날에도 카불은 세계적 호텔체인인 인터콘티넨탈이 1969년 영업을 시작할 정도로 교통의 요지이다. 그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우리 숙소 겸 업무공간이었는데 전쟁의 후유증으로 전기 공급이 끊기기 일쑤였고 겨울임에도 온수는 아애 나오지 않았다. 객실 유리창은 총격으로 깨져있어 12월 카불의 찬바람이 방안을 휘감고 있었다. 객실 천정과 벽에는 호텔외부에서 객실을 향해 난사한 총탄자국이 선명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마침 2001년 라마단의 마지막 날이었다. 저녁이 되자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한 북부동맹 리더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몰려들었고 나의 아프간 첫 임무도 시작되었다. 전쟁에 승리한 북부동맹군들은 하늘을 향해 간간히 총을 쏘면서 언덕위에 있는 호텔 마당으로 차를 몰고 올라왔고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근접하는 나를 총으로 막는 무리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추후 아프간 초대 국방장관으로 추대된 북부동맹 리더도 있었는데 며칠 후 나와 동료들은 북부동맹의 숙소로 인터콘티넨탈이 정해져 무장군인들에 의해 호텔에서 나가야 했다.       해가 지자 카불시내는 하늘을 향해 쏘는 자동소총 소리와 차량 경적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로 혼란스러웠다. “탈레반의 반격이 시작되었나?” 불안해하는 나에게 현지코디들은 “라마단 마지막 날을 축하하는 것이니 걱정 말라.”고 웃음을 보냈다. 전쟁 속에서 살던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을 것이다. 이날부터 무거운 푸른색 방탄조끼와 방탄헬멧은 카메라보다 먼저 챙겨야 할 짐이자 생명보호 도구로 내 몸에 달라붙었다.   아프간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현지코디 D, F, K (신변보호를 위해 실명이 아닌 이니셜로 표기)는 우리와 함께 항상 취재를 다녔다. 초대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 단독 인터뷰, 연합군의 순찰, 바그람 기지에 도착한 미 상원의원들과 카르자이의 면담을 위한 기지내 숙영, 탈레반이 로켓으로 고대석상을 부순 바미안 지역 난민들 취재, 아프간 탱크부대 재정비 및 훈련, 백신접종과 빵집 재개관... 제목으로만 보면 별것 없는 취재 같지만 아직도 아프간 남부지역은 총격과 폭격이 계속되고 카불외곽은 치안이 불안한 상황이라 모든 삶이 전시상태였다. 그래서 탈레반이 물러간 카불이지만 탈레반 시대엔 남자 보호자 없이 다니면 종교경찰의 막대기를 피할 수 없었던 아프간 여인들은 아직 부르카를 벗지 못한 채 거리로 외출하고 있었다.   어느새 출장 한 달이 되어가던 2002년 1월, 카불은 점점 활기를 띄어가고 있었다. 거리시장의 상인들 모습도 한껏 밝아져 있었고 거리에서 아프간 명물인 카펫을 직접 제작, 판매하는 이들도 많았다. 시민들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외국인들에 대해 미소를 보이는 등 많은 곳에서 변화가 느껴졌다. 식당은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흥정소리도 곳곳에서 들렸다. 그러나 칸다하르 등에서 계속 전투가 진행 중이라 밤에는 통행금지가 유지되었고 전기는 툭하면 끊어져 열심히 발전기를 돌려야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선가 자동소총 소리가 들렸으며 밤에는 그 소리가 더 자주 들렸다.   길었던 한 달 간의 아프간 순환근무가 끝나고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가는 UN비행기 안에서 멀어져가는 카불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고단한 삶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한 희망이 엿보이는 곳이었고 가진 것은 없지만 웃음을 잃지 않던 아이들의 크고 맑은 눈동자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도시였다. 더욱이 2001년12월24일 어두운 카불 밤거리에서 소총부리를 내 배에 대고 위협하던 아프간 군인 때문에 또 하나의 삶을 시작하게 된 나라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0년,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의 손에 넘어간 2021년 8월, 외국군과 정부에 협력했던 현지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취재시 고락을 같이 했던 세 명의 아프간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D, F, K 모두 무사하길 기도해본다. 문승재 / 연합뉴스TV 부국장
    2021-09-24
  • 한국영상기자협회 입회에 즈음하여…
    한국영상기자협회 입회에 즈음하여… “‘제3의 눈’으로 한국 사회 발전 보도…협회 회원들과 유대 깊어지길” 우선 저희 외신기자단을 회원으로 받아 주신 전국의 모든 회원님들에게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에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원으로 가입한 외신영상기자들은 외신풀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22명입니다.  외신풀단은 일본계(NHK, NTV, TV아사히, TBS, TV도쿄, 후지TV)와 구미계(ABC, APTN, BBC, CNN, ReutersTV)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입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우선, 국내 풀단이 사용하는 카메라와 동등한 수준의 기자재를 사용하여 Full HD NTSC방식으로 취재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 지상파와 소재 협력을 염두에 둔 조치입니다. 그 다음으로 영상 기자의 조건입니다. 지상파 방송이나 메이저 방송 경력 3년 이상의 조건을 충족시킨 후 TV World Pool사의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가입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내부적으로 다양한 조건을 두어 상당히 까다로운 가입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가입한 외신영상기자단은 평균 10년 이상 현장을 누빈 베테랑들입니다.  저희 외신은 한국 내 제 3의 눈으로써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취재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국으로서의 제창과 유신의 과정, 군사독재 시대에는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 외부로 전하였는데,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참상을 세계에 전한 것을 계기로 그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가속화된 한국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눈부신 발전을 근간에서 바라보며 ‘한강의 기적’을 앵글에 담아 보도했고, 2002년도에는 “대한민국~대한민국~ 짝짝짝 짝 짝~”이라는 월드컵 응원가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뒤흔든 붉은악마들의 응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의 붕괴 사고도 전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K-POP이나 한국의 음식 등을 소개하는 문화 전도사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는 후지텔레비전은 MBC와 1970년대부터 제휴관계를 맺으면서 특파원이 근무하는 지국을 상호 각 사옥에 설치하여 취재 및 활동에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MBC와 후지텔레비전 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각 방송사가 제휴 협정을 맺고 있는데, KBS-NHK, SBS-NTV, YTN-TBS, TV조선-테레비 아사히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 역사문제의 인식 차이로 불협화음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일본계 외신 소속인 저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앞으로 더 견고해질 양국의 관계를 기대해 봅니다.  또한 이번에 저희 외신이 하나의 지회로서 가입하게 된 것을 계기로 정부기관에 대한 취재 시 외신사의 환경개선과 함께 회원 여러분과의 유대가 더욱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저희 외신은 한국의 제 3의 눈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수호과정을 지켜볼 것이며,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황삼규 / 후지TV    
    2021-09-24
  •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취재 “재난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취재“재난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코로나시대의 올림픽 취재 올림픽 취재의 첫 단계는 5월 초 코로나19백신 접종이었다. 5월 중순부터는 코로나 관련 입출국 및 취재 유의점에 대한 이메일 자료, 교육 등을 받았다. 올림픽 취재 한 달 전부터는 더욱 각별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모임, 약속 등을 되도록 잡지 않았다. SBS영상취재팀에서 5명이 가는 상황에서 한 명의 손실은 출장자 및 회사에 더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입출국 시간은 총 하루가 걸렸다. 올림픽 경기장 취재에서 가장 이색적이었던 부분은 관중이 없는 스포츠 경기라는 점이다. 올림픽 경기장에 가면서 ‘차 막힘’과 관중들에게 취재를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이었다. 반면에 단점은 경기장 입구에서 실시되는 여러 차례의 방역+보안 검사, 그리고 경기장 내에 취재진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OBS직원들의 제재가 상당히 엄격했다는 점이다. 모든 경기는 사전 취재신청을 해야 했는데, 허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권에 오를 경우에는 무리한 취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영상취재에 있어서는 선수들의 대화까지 들릴 정도로 접근이 가능하기도 했지만, 늘 2미터의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회사의 이름을 걸고 온 취재에서 확진이 될 경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거리두기 미숙으로 한국 선수의 방역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도 늘 주의해야 했다. 모든 식사는 IBC에서 해결했다. 취재로 인하여 IBC에 접근하지 못할 경우 현지 코디네이터를 통해서 햄버거, 도시락 등을 사오게 하여 취재차량에서 취식하였다.올림픽 풀(POOL)취재 올림픽 일부 경기에 풀(POOL)취재가 발생했다. 일반적인 풀(POOL)취재와 같이 사전에 협의하고, 업무 분담을 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각사가 하루 전 취재허가를 진행했다. 취재 불허가 될 경우 추가로 비표를 받을 수 있는지 경기장에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믹스드존이나 ENG존이 취재 불가일 때, 풀 취재를 진행하였다. 사전 허가가 3사(SBS, KBS, MBC) 모두 나지 않는 경기도 있었고, 한 개 사만 허가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BIO의 판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늘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취재 제한시 타사와 상황을 공유하고 풀 여부를 논의해야 했다. 풀 상황에서 개별 취재에 모호한 지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큰 충돌없이 3사가 올림픽을 마무리했다.올림픽 조직위원회 운영 미숙 올림픽 개막전에서는 주경기장 주변으로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일본인들의 인파를 뚫고 경기장에 입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폐막식에는 주경기장 주변으로 도쿄올림픽을 반대하는 시위대들로 둘러싸였다. 취재진들은 코로나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매일 일본 내 확진자뿐만 아니라 올림픽 관계자, 선수들의 확진자 숫자도 대폭 증가했다. 일본 내 확진자는 개막일 4,225명에서 폐막일 14,000여 명, 도쿄도는 개막일 1,356명에서 폐막일 4,066명으로 집계되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선수와 관계자 총 436명으로 발표했다. 취재진에 대한 PCR검사는 매일 진행했지만, 함께 동거동락하는 코디에 대한 검사는 한 번도 없었다. 경기 중 선수들 간의 스킨십도 강한 통제가 없었다. 경기 중 스킨십을 제재했지만 방송을 통해 그대로 노출되었다. 선수촌에서의 선수 교류도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게 통제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경기장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유일한 인원은 선수들이었다. 취재 제한은 코로나로 인한 경기장 내 인원 제한에 목적이 있다. 취재진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지점들이다. 정당하게 취재 허가를 받고 온 올림픽에서 다시 매 경기 출입 여부를 제한받았다. 조직위에서는 인원 통제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합리적으로 그 과정을 진행했어야 하지만 강압적인 통제에 가까웠다. 취재진이 거의 없는 경기장에서도 원칙대로 취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고, ENG존이 포화되는 상황에서도 추가로 취재 허가가 나있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할 수밖에 없는 취재현장이었다. 올림픽 경기장 시설들 역시 부족함이 많이 보였다. 가건물을 사용하는 태권도 경기장의 경우에는 한 사람의 걸음에도 ENG존 바닥이 흔들려서 촬영이 쉽지 않았다. 배구 경기장, 양궁 경기장, 올림픽 주경기장 등은 주변에 공사 자재들을 치우지 못한 채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 등은 비용의 문제로 인하여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적자인 상황에서 안전에 대한 신경을 쓸 수 없었던 것일까. 관중들이 들어왔더라면 사고의 위험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올림픽 관계자, 자원봉사자들 역시 충분한 교육을 받고 훈련된 인원들이 아니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없이 많은 자원봉사자들 중 제대로 길 안내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없었다. 통제 대상에 대한 숙지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합법한 이동에도 제한이 걸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 공식적인 문서로 발급된 오디오 주파수를 확인하는 절차조차 하루 이상 걸렸다. 부족한 자원봉사자의 공간은 일본 자위대가 채웠다. 주로 보안 공간에서 마주하였다. 한국팀이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자위대가 태극기를 향해 경례하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하지만 과거 침략의 반성 없이 역할 확대 중인 자위대에 대한 거부감은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한국 선수단 및 한국 취재진들 모두 큰 문제없이 도쿄올림픽을 마쳤다. 2022년에는 동계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몇 개월 남지 않은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는 이번 올림픽 운영 방식을 참고하게 될 것이다. 영상기자들 역시 이번 올림픽에 대한 내용 공유를 통해 다음 올림픽을 잘 준비하길 바란다.하륭 / SBS
    2021-09-24
  • 방역 아래 초대 받은 불청객
    방역 아래 초대 받은 불청객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가운데 개최 강행이냐, 취소냐 이야기가 많았지만 일본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행을 선택했다.  개최가 결졍되고 선수와 임원, 올림픽 지원인력?등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입국했다. 그리고 올림픽을 취재하기 위한 미디어 관계자들도 대거 입국했다.  미디어에 대한 통제는 엄격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버블방역체계를 내우며 코로나 19방역규칙을 정리한 플레이북을 배포했다. 미디어 관계자들의 외부 접촉을 차단하고 코로나 확산을 막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먼저 입국 과정부터 일본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일본 정부는 각 언론사에게 일본 입국 후 14일 동안의 활동 계획서를 받고, 이를 검토한 후 입국 승인을 내주었다. 숙소는 전용 예약 홈페이지를 통해 조직위에서 지정한 숙소 중?한 곳을 골라 예약해야 했다. 입국 후에는 입국일 포함 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으며,?이 기간에는 외부에 나갈 수 없고 오직 인근 편의점 이용만 15분 동안 가능했다. 이후에도, 입국 후 14일은 활동계획서에 기재하고 승인된 곳들을 제외하면 이동이 불가능했다. 교통편도 대중교통과 렌터카의 이용은 불가능했으며 조직위에서 마련한 미디어 전용버스와, TCT라는?방역 택시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가 잘 이루어졌을까? MBN취재진은 첫 출발부터 조직위의 원칙 없는 방역을 접했다. 출발 당일 새벽 조직위는 메일을 보내와 정부승인이 안 났으니 출국을 늦춰달라는 요청을 했다. 출국을 늦추면 자가격리 4일을 면제해 주겠다는 약속도 함께 해왔다. 방역의 첫 단계인 자가격리 4일의 원칙을 조직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숙소 예약 또한 조직위의 구멍 뚫린 방역체계를 느낄 수 있었다. 조직위가 지정한 일부 숙소가 미디어 전용 사이트에서 예약이 불가해 문의 메일을 보내자, 조직위는 일반 호텔 예약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진행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방역이 철저한 호텔인 줄 알았던 미디어 전용 숙소가 일반인들도 함께 묵을 수 있고 분리되지 않은 숙소였던 것이었다.   입국 후 차량 이동은 어땠을까? MBN취재진은 조직위의 플레이북 내용대로 렌터카 이용이 불가해 차량을 취소하고 전용 버스와 방역택시를 타고 이동했지만, 일부 언론사는 렌터카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자가격리가 없었던 MBN취재진은 입국 다음날부터 바로 취재 활동을 했다. 승인 받은 활동계획서의 내용대로 움직여야 했기에 움직일 수 있는 장소는 제한돼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통제가 가능했을까? 선수들이 입국하는 나리타 공항은 활동계획서에 적을 수 없어 미디어의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나리타 공항은 미디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있었으며 취재에도 제한이 없었다.   14일 동안 미디어가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전용 버스와 방역택시 TCT이다. 물론 이러한 방침을 어기고 렌터카를 이용한 언론사도 있었지만, 조직위의 방침과 규정을 이행한 언론사는 그 곳에서 또한 방역 구멍을 느껴야 했다. 방역택시는 전화로?예약한 후 이용할 수 있었는데?TCT콜센터에 연결하려면 10분 이상이 소요됐다. 콜을 받는 인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지금 바로 택시를 이용한다고 전화를 하면 이용 가능한 택시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약을 한다 해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실제로 MBN취재진은 신주쿠의 주경기장에서 2시간을 기다려 방역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예약이 되지 않을 때는 대중교통을 탈 수 없기에 숙소에서 주경기장까지 30분 넘게 걸어가는 날도 있었다. 도쿄 조직위가 내세운 버블 방역은 말 그대로 쉽게 꺼지는 거품이었다. 실행할 준비도 의지도 부족했다. 렌터카를 이용하지 말라고 하면서 올림픽 구역 차량 통행 패스를 판매하는 것과 같이 자신들의 방침들이 서로 충돌해 지킬 수 없는 경우도 목격했다.  일본 정부와 조직위는 세계인의 축제를 생생하게 전달할 목적의 미디어를 안전하게 지원하기 보다는 방역이란 이름으로 실행 가능하지도 않은 통제를 하려고만 했다. 적자를 최소화해 빨리 끝내야 할 올림픽이었다. 미디어를 초대하긴 했지만, 그들에게 취재진은 불청객이었던 것이다. 임채웅 / MBN 
    2021-09-24
  • Olympics, Enjoy the Moment!
    Olympics, Enjoy the Moment! ‘사상 처음’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곳을 찾기가 힘들만큼 ‘전례 없는’ 올림픽. 그리고 영상기자로서 ‘첫’ 종합대회 출장. 평소 같으면 기대가 앞섰을 출장이지만 이번엔 출발 전부터 각종 악재와 우려로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방사능과 코로나에 대한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부터 올림픽 조직위가 승인한 ‘Activity Plan’에 따라 철저히 제한된 동선까지. ‘기껏 불러놓고 취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라는 의구심을 품은 채, ‘얼마나 잘 치르는지 한 번 보자’는 다소 삐딱한 시선을 카메라에 장착하고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으로 향했다.   ‘원칙’만 있고 ‘효율’은 없는 운영 우선 악명 높았던 ‘입국절차.’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3시간 30분이 걸렸다. “언론인들은 일본의 적(敵)이 아니다.”라는 국제스포츠기자협회(AIPS) 회장의 일갈이 내 입에도 맴돌았다. 현장에 배치된 일본의 자원봉사자들은 보안 검색대를 한 번 통과할 때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를 네다섯 번씩 연발할 만큼 친절했지만, 그것이 결코 취재를 수월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일본인 특유의 ‘원칙주의’와 ‘꼼꼼함’은 종종 취재를 어렵게 만들었다. 20kg이 넘는 장비를 든 취재진에게 코앞에 있는 입구를 두고 굳이 건물을 빙 돌아 들어가라고 하는 건 애교. 자원봉사자들은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대여섯 명이 하기 일쑤였고 - 한 명만 거치면 될 일을 대여섯 명 거쳐야 가능했다 - 그나마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Mixed Zone에서의 선수 인터뷰 시간을 90초로 제한해놓고 시간을 넘기면 카메라 옆으로 다가와 (말을 하고 있는 선수 앞에서)  촬영을 중단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이도 있었다. “올림픽 취재는 원래 이런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특히 혼자서 영상, 음향, 송출, 장비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챙겨야 했던 영상취재기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효율성이야말로 적(敵)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더 어려웠을 수 있는 그 시간들을, 함께 출장 온 영상기자 선배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장비와 짐을 최소화·간소화해 부담을 줄이는 것부터 취재 시간의 효율적 사용 및 이동 동선의 관리까지, 역시 ‘경험자’의 내공은 달랐다. BIO, ENG Zone, Mixed Zone등 ‘올림픽 취재는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을 두루 할 수 있었던 것, 자주 해보지 못했던 ‘스포츠 영상취재’의 촬영 기법 등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올림픽 출장의 가장 큰 성과였다. ‘엄격’한 듯 ‘허술’했던 버블 방역 출국 전 두 번을 포함, 일본에 머물렀던 23일간 모두 12번의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매일 체온을 비롯한 몸 상태를 ‘OCHA’(온라인 체크인 건강관리 앱)를 통해 올림픽 조직위에 보고했고, 동선과 접촉자 파악을 위한 위치추적 앱도 설치했다. 입국 후 14일 간은 숙소, IBC, 경기장을 제외한 어떠한 곳의 출입도 불가했고 동선도 철저히 제한됐다. 숙소 로비에는 조직위에서 보낸 ‘감시원’이 상주했고, 방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식사 및 음주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취재진에게 유독 엄격했던 방역수칙이었지만, 정작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일본 자국민에 대한 통제는 소홀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숙소가 위치했던 신주쿠의 유흥가는 밤만 되면 노 마스크인 채로 모여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일본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미리 백신을 맞은 게 천만다행이면서도, ‘이 정도면 백신이 효과가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입국 14일 이후로는 격리가 풀려 자유로운 이동과 외출이 가능해졌지만 숙소 근처의 식당을 가는 것조차 불안했다. 개인적으로 첫 일본 방문이었지만, 식도락(食道樂)은 포기한 채 3주 내내 거의 모든 식사를 도시락과 컵라면, 즉석식품으로 해결했다. ‘성적’보다 ‘성장’이 중요해진 올림픽 그럼에도 불편하고 힘들기만 했던 올림픽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올림픽의 주인공인 ‘국가대표’ 선수들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을 무엇에 비교하랴.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순간만은 언제나 설렘 가득이었다. 5년 동안 올림픽을 위해 피땀 흘려온 선수들의 열정으로 타오르는 눈빛은, 바닥난 체력에 숯이 되어 있던 나의 정신력에도 불을 지펴주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내 가슴을 유독 뜨겁게 해주었던 몇몇 선수들이 기억에 남는다. 출전을 위해 온몸의 수분을 다 빼낸 것도 모자라 삭발까지 감행한 강유정(유도, ‘선수’ 생략), 자신을 가로막는 벽은 물론 스스로의 한계까지 뛰어넘어버린 우상혁(육상), 귀화까지 해 가며 ‘한국의 아이들이 단 몇 명이라도 럭비를 알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실천했던 코퀴야드 안드레 진(럭비), 세계 최강자들과 겨루며 투혼을 발휘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한 뒤에도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진윤성(역도). 메달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나에게, 또 우리 국민에게 이미 챔피언이었고, 선수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모습은 우리(한국 관객)들도 더 이상 메달과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축제 그 자체를 즐기게 해주었다. 그들과 함께 우리도 한 뼘 더, 성장했다. ARIGATO, Team Korea  ‘유래 없이’ 말 많고 탈 많았던 도쿄올림픽은 3년 후 파리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고, 나의 첫 올림픽 출장도 무사히 끝났다. ‘무사함’에 그저 감사한 출장이었다. 폐막식에서 올림픽 스타디움 전광판에 펼쳐진 ‘ARIGATO’라는 감사 인사를 우리 선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다시 시작된 3년이라는 그들의 기다림이 희망으로 가득하길 응원한다.  그리고 끝내 ‘미생(未生)’이었던 이번 올림픽 또한 파리에서는 ‘완생(完生)’으로 치러질 수 있기를 바라며, さようなら、東京(사요나라, 도쿄).김동세 / MBC 
    2021-09-24
  •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첫‘기로에 선 세계상’(대상) 수상자에 미케일 아르신스키(M...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첫‘기로에 선 세계상’(대상) 수상자에미케일 아르신스키(Mikhail Arshynski) 벨라루스(Belarus) 영상기자  선정뉴스부문,  싱가포르 CNA방송의 양곤지국 영상기자 노만(Norman. 가명), 콜린(Colin. 가명) 공동수상특집부문, 美PBS NEWS <Desperate Journey> 영상보도한 브루노 페데레코(Bruno Federico)  ▲미케일 아르신스키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8월2일부터 27일까지 13개국에서 출품된 25개 출품작들에 대한 1차, 2차 심사결과, 대상인 ‘기로에 선 세계상’  수상자로 벨라루스(Belarus)의 영상기자 미케일 아르신스키(Mikhail Arshynski)를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폴란드에 기반을 두고 벨라루스를 시청권역으로 하는 벨셋(Belsat) 위성방송의 영상기자인 미케일 아르신스키는 2020년 벨라루스 대선운동 기간 중, 야당후보들의 선거캠페인을 따라다니며, 루카센코 정권이 벌이는 야당후보들에 대한 탄압, 선거운동 방해, 벨라루스 시민들의 민주정부 탄생을 열망하는 집회와 활동들을 취재했다. 그리고, 취재영상들을 정리해 벨라루스 대선을 다룬 보도다큐〈Don’t be afraid〉를 제작해 지난 5월 방송했다. 그는 벨라루스 대선 취재 과정에서 대중집회를 촬영, 방송하려다 경찰에 체포되어 법원으로부터 10일간의 구금판결을 받고 구금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독재권력의 불법선거를 고발한 그의 고민과 노력이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의 참상을 알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오랜 기간 취재, 보도해 온 정신과 맞닿아 있기에 ‘기로에 선 세계상’의 수상자로 선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얀마기자들 수상-미얀마시민들에 대한 세계인의 연대, 지지의 뜻도 담겨뉴스부문 수상자로는 싱가포르 CNA방송 양곤지국의 노만(Noman. 가명)과 콜린(Colin. 가명) 두 명상기자가 선정됐다.올 2월 27일, 미얀마 양곤에서 개최된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대규모시위 도중,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최루탄 발사, 구타와 연행작전이 벌어지는 장면을 취재해 당일 전 세계에 보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이번 수상자 선정이 두 기자의  용감한 취재에 대한 격려이기도 하지만,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세계시민들이 보내는 연대와 지지, 응원과 격려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이주민, 망명자들의 인권과 삶의 희망을 담아낸 영상미특집(Feateurs)부문 수상자로 선정 된 브루노 페데레코(Bruno Federico) 기자는 남중미와 북중미를 잇는 험난한 협곡지대인 다리엔갭(Darien Gap)를 거쳐 미국으로 이동하려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이주자들의 험난하고 위험한 여정을 카메라에 담아 미국의 공영방송 PBS 뉴스에 <필사적인 여정: Desperate Journey>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주민, 망명자들의 인권과 삶의 희망을 보여준 이 보도는 뉴스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고, 취재원들의 위험하고 험난한 여정을 무거운 카메라와 장비들을 갖고 함께 이동하며 생생하면서도 높은 영상미로 표현해냈다는데서 심사위원들의 큰 점수를 받았다. 오는 10월27일 서울서 시상식, 9월 9일 ~ 12일 <에이스페어(Ace-fare)>에서 수상작 전시회 개최힌츠페어국제보도상 수상자들에 대한 자세한 발표는 9월 1일 광주 5.18기념재단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상의 시상식은 오는 10월 27일 수요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 한국전파진흥협회는 오는 9월9일부터 12일까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에이스페어(Ace-fare)>에서 수상작들과 최종심사에 오른 다른 다섯 작품들을 공개하는 전시회도 개최할 예정이다.허은지 기자(tvnews@tvnews.or.kr)
    202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