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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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올드미디어일까?
    TV, 올드미디어일까?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 서는 순간마다 내가 영상기자가 된 것을 실감한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건의 현장마다 취재진이 몰려든다. 빼곡히 채워진 포토라인, 그 사이에 서 있을 때면 긴장감을 느낀다. 동시에 내가 영상기자란 것,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전두환이 광주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로 향하던 날. 나는 아침부터 전두환 자택 앞에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전두환 씨는 이미 집을 나서고 없는 상태였다.     전두환을 옹호하는 보수 유튜버들이 취재진에 시비를 걸었다.  ‘있는 사실 그대도 보도하세요.’  ‘편집하지 마세요.’  ‘너희는 올드미디어, 우리는 뉴미디어!’    그 광경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냉소적인 말이긴 해도 그냥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편집과 사실 보도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린 올드미디어가 맞는가?    입사 후에 당황스러웠던 몇몇 순간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증거품 스케치. 증거품을 만지고 던지고 하며 촬영하는 풍경이 나에게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현장에서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액션을 요구하거나 소위 그림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다. 나아가 현장은 보여줄 것이라곤 전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을 보여주어야 하는 몫은 오롯이 영상기자 책임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행위는 조작일까? 윤리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액체로 된 증거품을 그대로 놓고 찍어서는 액체의 물질적 특성을 전달할 수가 없다. 에어컨 실외기 취재를 하면서 단순히 에어컨 실외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을 느끼게 할 수가 없다. 액체를 흔들어보거나 어딘가에 따라 보여 주어야 액체의 물성을 전달할 수 있다. 에어컨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 앞에 휴지라도 대 봐야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런 액션이나 상황 설정은 과장이나 거짓, 혹은 왜곡인가?    보수 유튜버들이 말 중에서도 귀담아들어야 할 게 있다. 사실과 진실을 영상으로 제시할 의무가 내게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숙제다. 여전히 많은 질문이 미해결 상태다. 편집을 거의 거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은 사실 전달에 충실한 방법일까? 사실과 진실 전달에 가장 부응하는 편집은 어떤 걸까? 자극적으로 사고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디까지 온당한가?    초상권과 재산권 등 개인의 권리가 높아져 이제는 현장에서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촬영하면서 이런저런 요건을 모두 고려하는 것은 어렵지만 피해서는 안 된다. 시대는 변했다. 업무 수행 과정에서 까다로워진 것이 많지만 우린 시민들의 권리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 90년대 카메라 출동과 같이 유치장에 있는 사람이나 무단 횡단하는 사람을 여과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시대는 분명 끝난 것이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방송이 올드미디어가 되느냐 마느냐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과거보다 더 치밀하고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동학 / MBN      
    2019-09-09
  • 우리는 바다에 늘 손님입니다
    우리는 바다에 늘 손님입니다          “잡았다!”, “꿀맛!”.   ‘생존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모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자막이다. 문명의 손길이 덜 미친 촬영지에서 출연자들이 자급자족하고 지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제법 재미를 주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저렇게 생물을 사냥하고 요리해서 먹는 게 저 나라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    결국, 사달이 났다. 태국에서 천연기념물인 대왕조개를 사냥하고 시식하는 걸 방송에 내보냈다가 출연자와 제작진이 태국 정부로부터 고발을 당했고, 석연찮은 해명과정에서 결국 사냥 장면을 촬영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협조공문까지 보내고도 사냥과 촬영을 한 일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런데, 사과문은 이랬다.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중략)... 대왕조개 채취 및 촬영과 관련, 현지 규정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후략)>    또 다른 의문이 하나 더 생긴다. 그 현장의 수중 촬영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물속에서의 촬영을 배우기 전에 스쿠버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수중 수렵과 채취는 거의 모든 교육단체에서 금기시한다. 국내에서 그런 행위가 수산자원관리법 위반인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 역시 금지되거나 허가가 필요한 일인 걸 절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과 환경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속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11년 전 이맘쯤 처음 바다에 눈을 떴다. 일을 위해 하게 된 만큼, 얼마 안 지나 수중촬영도 시작하게 됐다. 기고, 걷고, 뛸 수 있어야, 심지어 뒤로도 뛸 수 있어야 땅 위에서 제대로 촬영을 할 수 있듯, 물속에서도 뛰는 수준 이상으로 몸을 편하게 가누고 움직일 수 있어야 수중촬영이 가능하다. 그저 움직이는 것을 넘어,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 즉, (중성) 부력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갑작스러운 상승과 하강으로 인한 압력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부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과 바다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프리다이빙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인위적 호흡 장치와 부력조절 장치, 추진 장치를 가지고 한정된 시간만큼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바다에 우리는 ‘명백히 언제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다. 어류, 갑각류들, 산호들, 해초들, 심지어 돌멩이 하나도 우리는 만날 수 없는 존재로 설계되어 있었다. 서로 접촉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던 존재들끼리 마주치면 문제가 생겨난다. 자라는 데만 족히 30년은 걸린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 산호에 마치 공룡 발자국 화석처럼 보이는 몰지각한 인간의 오리발 자국이 남겨지는 걸 보았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니 겁을 먹고 방어하는 사나운 물고기에 물려 피를 흘리는 사람도 보았다. 겁 없이 손을 뻗어 작은 복어를 만져보려다 복어가 몸을 숨긴 독 품은 산호와 히드라에 쏘여 수십 분 동안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도 보았다 (부끄럽지만 이건 제 얘기입니다).    바닷속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불청객이 된다. 질서로 가득 차있는 곳이기 때문에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함부로 손을 대거나 잡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바닷속 첫 번째 규율이다. 기억과 카메라의 메모리에 담아오기만 할 뿐, 그곳을 휘젓고 부수지 않으려고 잘 움직이고 잘 머물러 있으며 가만히 멈춰 서서 지켜볼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생물 교과서에서 우리보다 열등한 생물이라고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의 주인인 바다의 생물들을 얕보지 않고, 무엇보다 건드리거나 부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거친 파도와 조류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바다가 품을 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 밖과 달리 다이빙 중 멈춰서 가만히 있는 것은 더 힘들다. 바닷속을 느끼고 싶고 담아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이 가만히 멈춰서서 생각해 봤으면 하는 점이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것 중 한 가지를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 속에서 말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겠지만 물에 들어갔을 때 바로 이 한 가지를 먼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구본원 / MBC      
    2019-09-09
  • ‘보이콧 재팬’ 일본 현지 취재기
    ‘보이콧 재팬’ 일본 현지 취재기        한일 양국의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지난 7월 1일 일본 정부는 당국이 생산하는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출 규제의 주요 대상은 우리나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소재 3가지인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수출 규제를 하는 이유에 대해선 “신뢰 관계의 손상” 때문이라고 일본 당국은 밝혔다.    안보 문제와 역사 문제 사이에서 말 바꾸기를 하며 줄곧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인 아베 정권의 행보에 우리 국민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가 모여 현재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지금 일본에 가지도, 일본 제품을 사지도 않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일본 현지의 분위기는 어떨까? 지난 7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일본의 규슈 지역(후쿠오카, 벳푸)을 SBS 취재팀이 돌아보고 왔다.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일본 관광지 중 한 곳인 후쿠오카에선 단체 관광객이 종적을 감췄다. 이곳은 ‘원데이 투어’라는 관광 상품(버스로 주요 관광지를 하루 안에 둘러보는 상품)이 인기였는데 지금은 손님이 없어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가 한 대도 없었다. 한국의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한 분위기의 소도시 ‘히타’는 마을 골목골목마다 한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곳인데, 현재는 현지인과 상인들 외에는 썰렁한 분위기다.    장사하는 이들은 시름이 깊다. ‘당장 다음 달 세를 낼 수가 없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인 덕에 그동안 고마웠는데 7월 이후 관광객이 줄어 서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취재진을 향해 털어놓았다.    온천으로 유명한 ‘벳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벳푸는 규슈 지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관광지였다. 지금 벳푸는 단체 버스로 가득 찼던 주차장들이 텅텅 비어 있고 한국 관광객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은 관광산업의 비중이 큰 나라가 아니어서 일본 여행을 보이콧하는 것이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 하지만, 관광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소도시는 (우리가 확인한바) 타격이 컸다. 또한 한국인이 떠난 자리를 중국인 관광객이 메울 것이란 예상도 있었지만, 며칠간 숙박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돈을 쓰고 가는 한국인과 크루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행을 하는 중국인의 소비 형태는 상이하기 때문에 완전한 대체는 불가능하다는 게 현지 여행 업계의 생각이었다. 일반화하긴 어렵겠지만, 한국의 일본 불매운동은 일본 현지에서도 분명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의아했던 것은 일본 내 언론의 반응이다. 한국 내 일본 불매운동의 커다란 움직임에 대해 일본 언론은 아직도 무게감 있게 다루지 않는 모습이다. 극우 성향의 몇몇 매체를 제외하면 단신 한두 꼭지 수준이다. 언론 보도의 영향인지 우리가 만난 일본 시민들의 상당 수는 정부의 정치적 이벤트 영역과 개인의 행보는 별개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일 양국의 갈등 국면에서 완전한 승자나 패자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민사회가 나서서 참여하는 불매운동은 예사롭지 않다. 정치 영역에서의 말싸움 정도로 그치곤 했었던 양국의 충돌이 일정한 선을 넘었고 지금은 시민들이 직접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갈등과 싸움의 진원지는 이미 지난 과거 어느 한 시점에 있다. 결국 일본이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정확하게 반성하고 성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은 불매운동보다 더 큰 저항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본은 한국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행보를 걱정하는 더 큰 세계와 싸우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일본 입장에서도, 한반도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결자해지는 지금 일본의 몫이다.     최대웅 / SBS      
    2019-09-09
  • [헝가리 유람선 사고 취재기] 화려함 아래 잠긴 슬픔
    화려함 아래 잠긴 슬픔     ▲ 다뉴브강의 야경<사진>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의 알람을 끈다. 자연스레 화면의 연합뉴스 속보 알림을 읽는다. 지난 5월 30일 아침, 헝가리 다뉴브 강의 유람선 사고, 승객은 모두 한국인들임을 알리는 속보가 떴다. 기사를 읽고 나는 무거운 맘으로 눈을 떴다. 선박 사고, 하면 으레 세월호가 생각난다. 당시 긴 시간 팽목항에 머물며 많은 슬픔을 마주했기 때문이리라. 떠나간 아이들, 그 위에 겹치는 유족들의 모습. 다뉴브 강 소식을 듣자마자 내 뇌리에 먼저 스친 것이다.    헝가리는 직항이 없어 언론사 대부분이 한 군데씩은 경유해 헝가리로 입국했다. MBN 취재진은 암스테르담을 경유해서 들어갔다. 헝가리에 입국하기 전, 적은 취재인원으로 어떤 사안을 우선에 두고 취재해야 할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론은 역시 현장에 답이 있으리라, 하는 것뿐이었다.    헝가리에 도착해 사고 피해자 가족들의 입국 영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공항에는 내외신의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 중이었다. 가족들이 입국하는 상황에서 가장 신경쓴 것은 거리였다. 가급적 근접 취재는 피했다. 가족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이동 중에 얼굴을 가렸다. 현지에서 이미 취재진으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국은 유족 취재 시 조심해 달라는 브리핑을 했다. 우리 취재진은 유족에 대한 취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서도 유족에 대한 취재지시가 전혀 없었다. 대신 침몰 사고 현장 속보, 수색 상황, 피해 선사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취재 관행 상 큰 변화라고 할 만한 부분이었다.    사고 현장은 실종자 수색 작업과 허블레니아호 인양 준비에 한창이었다. 헝가리 군함을 모선으로, 작은 보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MNG 현장 연결 모습이 포착되었다. 머르기트 다리 위에는 검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헝가리 시민들은 꽃과 촛불로 추모를 이어갔다.    침몰 사고의 초기 주요 취재 포인트는 수색이 이루어지는 침몰현장과 정례 브리핑이 이루어지는 신속대응 본부 2곳이었다. 그 이외에 하류 수색 현장과, 실종자들이 발견돼 현장감식이 이루어지는 곳 등이 더 있었다.    우리는 사고 현장을 우선적으로 커버하고 현재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고 실종자들이 발견된 하류 지역을 집중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당국의 수색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상황에서 실종자 수색 현장을 커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아도니 지역과 굴츠라는 지명이 사고 현장에서 55km가 떨어져 있다는 것. 취재진은 현지인 코디와 함께 물어물어 어렵게 실종자들이 발견돼 현장 감식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실종자들은 인양 후 현장 감식이 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도착 직후 감식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이후 부다페스트로 복귀하려다가 아직 당국에서 브리핑하지 않은 추가 실종자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입수해 그곳으로 이동했다.   ▲ 실종자가 발견된 아도니-굴츠 지역<사진>    한참 수색이 이루어지는 동안 선박 인양 시점은 주요 관심사였다. 현장과 언론에서는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라 했지만 기약이 없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양을 위한 클라크 아담호는 수심이 내려가지 않아 다뉴브강의 다리를 통과하지 못해 현장 도착이 미뤄졌다. 유속이 빨라 잠수사들의 작업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우여곡절 끝에 클라크 아담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제 곧 인양이 시작될 터였다. 인양을 앞두고 헝가리 대테러청에서 인양 현장이 잘 보이는 곳을 언론사에 개방하되 출입인원 제약을 두겠다고 했다. 인양 취재를 위한 협회사 간 풀 구성 논의가 이루어졌다.   ▲ 허블레니아호 인양 위치풀<사진>    각사가 인양 시간대 특보를 준비 중이었다. 결론은 인양 장소를 둘러싼 위치 풀이었다. 또 허블레니아호 인양 시 MNG송출로 5개 사가 모든 영상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인양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간이 짧지 않을 것이란 점이었다. 배터리, MNG의 전원, MNG 유심 용량 등이 문제였다. 배터리 문제나 유심 교체로 인해 송출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생방송 중 인 화면이 블랙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장 취재팀과 서울 제작진 간 충분한 협의와 약속이 필요했다. (실제로 인양은 8시간 가까이 걸렸다.)    풀 구성을 논의하고 인양을 앞두고 서울에서 출발한 교대팀이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인양을 지켜보고 취재하고 싶었지만 선발대에게 예정된 취재는 여기까지였다.    귀국을 앞두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사고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봤을 풍경이었을지 모르는 풍경이다. 통행금지가 풀린 다뉴브강에는 유람선들이 유유히 떠 있었다. 세체니 다리와 부다성, 국회의사당의 야경은 역설적이게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는 다뉴브강 아래 잠긴 슬픔이 너무 컸다.     임채웅 / MBN      
    2019-09-09
  • 홍콩, 20세기 제국과 21세기 제국 사이에 놓이다
    홍콩, 20세기 제국과 21세기 제국 사이에 놓이다     ▲ 홍콩 시위 현장<사진>.   ‘2019年 07月 27日’과 ‘21/07/2019’    홍콩과 중국은 다르다. 우선, 언어부터 본토의 표준어인 ‘만다린’이 아니고 광둥어와 영어를 쓴다. 심지어 글자도 홍콩은 중국에서 쓰이는 간체자가 아니라 번체자를 선호한다. 화폐도 본토의 위안화가 아니라 서구와 같이 달러화(홍콩달러)를 쓴다.     이와 같이 말하는 법과 쓰는 법, 화폐가 다르니, 당연히 문화적으로도 둘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날짜를 쓰는 법에서 홍콩은 동양에서 일반적인 연월일 순이 아니라 서구식인 일월년 순으로 거꾸로 쓴다. 홍콩은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고, 자동차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다. 또 중국과 달리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대륙과는 전혀 다른 20세기를 보낸 홍콩을 같은 중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898년 홍콩이 영국에게 임차된 후 지난 100년 동안 두 지역은 전혀 다른 사건과 세월을 거쳐왔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지만, 20년이 흐른 지금도 그 차이는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21세기, ‘중국’이라는 새로운 제국 앞에 선 홍콩    중국이 홍콩을 빼앗긴 계기가 된 1840년 아편전쟁은, 청나라의 아편 단속에 반발한 영국의 보복 전쟁이었다. 국민의 마약 중독을 막기 위한 청나라의 조치에 영국이 반발해 힘으로 이를 무력화시켰다. 비록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역사는 후에 이 전쟁을 ‘가장 불명예스러운 전쟁‘, ’명분 없는 전쟁’으로 기억한다.     약 180년이 흐른 2019년 ‘또 다른 불명예스러운 전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명분 없는 전쟁’의 칼자루를 쥔 주인공은 중국이다. ‘행정장관 직선제 거부‘, ’범죄인 송환법 제정 시도’ 등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一國兩制)’라 불리는 홍콩 자치에 서서히 영향력을 넓혀가자 홍콩 시민사회가 반발하기 시작했다. 2019년 6월 이후 수십 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홍콩의 자유’를 요구하며 저항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00년간 경험한 문화·정치·경제의 자유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유롭게 ‘페이스북’이나 ‘구글’을 이용하던 홍콩 시민이 어느 날 갑자기 ‘웨이보’ 밖에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긴 시간 동안 누린 자유와 삶을 앞으로도 보장해달라는 이들의 명분은 타당해 보인다. 이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중국 정부는 폭력과 무자비로 대응하고 있다. 청나라를 힘으로 굴복시킨 그 제국이 겹쳐지는 상황이다.     홍콩은 어디로 가는가    최루탄과 방독면, 곤봉과 벽돌, 경찰과 시위대. 홍콩 시위의 풍경은 지난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최루가스로 뿌옇게 흐려진 거리에서 간절히 자유를 외치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은 과거 우리 사회의 모습 같아 더 안타깝다. 홍콩 시민사회도 대한민국처럼 그들의 바람을 쟁취할 수 있을까? 우리와 달리 막강한 제국을 상대로 직접 투쟁해야 하는 홍콩 시민들. 매일매일 지하철과 공항을 점거하는 시위대의 용기가 위대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고단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까닭이다. 동·서양의 문화가 절묘하게 결합하여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작은 섬에 또다시 역사의 파도가 거세게 일고 있다.     안민식 / KBS       
    2019-09-09
  •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튀어나오고, 깨지고... 전주 풍남문 ‘안전 우려’        전주 풍남문 일부 성벽이 돌출됐다는 제보가 있었고 현장에 가 보았다. 성벽은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려져 있었다. 시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튀어나온 성벽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였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돌이 쪼개져 손이 들어갈 정도 틈이 생긴 데도 있었다. 성벽은 그야말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30cm 플라스틱 자를 가져와 튀어나온 길이를 측정했고, 손을 흔들거나 손가락을 대보기도 했다. 드론을 띄워 가림막이 설치된 성벽의 전경을 담았다. 이렇게 풍남문 성벽 돌출 기사를 내보냈다.    뉴스가 나간 다음 날 선배가 찾아왔다. ‘어제 리포트에서 클로즈업 샷이 부족했다. 타사 리포트는 봤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선배가 말한 타사 리포트에는 성벽 클로즈업이 11컷이 사용된 반면 내 리포트엔 3컷이 전부. 물론 단순히 클로즈업이 정답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현장에 갔을 때 그날 핵심 주제를 화면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또 한번 느껴야 했다.    “소리와 자막 가리고 영상만으로도 이해가 돼야 한다.”    영상기자들이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을 실천하고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현장을 떠나고 리포트를 제작하고 나면 찾아온다는 것. 왜 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누군가 소리는 없이 화면만으로 내 리포트를 봤다면? ‘그래서 풍남문에 뭐가 문제라는 건가’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날 이후로 머릿속이 복잡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취재 현장에 서는 것이 다시 두려춰졌다. 단순히 리포트 잘 만들고 못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게 문제였다.    이전에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적었던 메모를 다시 꺼냈다. 당시 나는 꽤나 불안했나 보다. 선배들이 한 말을 자세하게 적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리포트를 찾아 모든 장면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하려고 이미지를 캡처하기도 했다. 촬영하고 돌아와서도 내 마음은 불안이 지속되는 상태였다.    ‘뉴스 시간 내에 못 만들면 어쩌지?’  ‘실수해서 방송사고 나진 않을까?’    제작을 끝내고 방송 테이프를 넘겨야 안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메모는 지난 5월 이후로는 더 이상 적혀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이때쯤 혼자서 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일에 적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리라. 그 이후 촬영, 편집이 힘들다고는 해도 조금씩 나태해졌던 건지도 모른다.    메모를 보다 보니 웬만큼 답이 찾아지는 듯했다. 안도감. 나는 무언가 놓쳤던 게 아니라 불안에 나 자신이 나름의 대응책을 찾아냈던 것이다. ‘적당히 이 정도면 돼’라는 안일한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이 쌓이고 쌓여, 방치되고 또 방치돼 성벽이 갈라졌듯이, 업무에 있어 나 자신의 문제 역시 작은 안일함이 오랜 시간 누적되어 나타난 것이 아닐까?    순간의 방심은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방송사고보다 더 큰 문제는 보도의 완성도. 영상은 고민과 취재, 생각의 최종 표현물이다. 그런 만큼 더 노력하고 한발 더 뛰며 새어나가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좌절을 찾아 사람을 만난다. 왜냐하면 그 좌절이야말로 성장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좌절이 또 찾아오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리라 다짐해 본다. 정성수 / KBS전주총국      
    2019-09-09
  • ‘기적의 생환’ 조은누리,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적의 생환’ 조은누리,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 군ㆍ경찰이 조은누리양을 찾기 위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   ▲ 지난 7월 23일 충북 청주의 한 야산에서 실종됐다가 열 흘 만에 구조됐던 조은누리 양이 충북대병원으로 이송 되고 있다<사진>.      군·경·소방 인력 5700여 명. 군 수색견과 드론팀을 포함해 열흘간 수색 끝에 조은누리 양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실종 당시 한마음 한뜻으로 무사귀환을 염원했던 국민의 바람이 통한 걸까? 열흘간의 장마와 폭염, 악조건 속에서도 조은누리 양은 잘 버텨주었고 사람들이 ‘기적의 생환’이라고 말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조은누리 양‘ 기적의 생환’, 앞으로 실종 수색 변화 이끄나?    조은누리 양이 발견됐을 당시 나는 다른 현장에 있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휴대전화기 화면에 뜬 ‘조은누리 양 발견’이라는 문구를 보고 굉장히 놀라고 또 기뻤다. ‘의식이 있고 대화도 가능하다. ’정말 말 그대로 ‘기적의 생환’이었다.    조은누리 양이 발견되고 어떻게 열흘간 버틸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관련 후속 보도가 많이 나왔다. 태국 치앙라이 한 동굴에 갇힌 뒤 구조대가 찾기까지 열흘을 버틴 10대 소년들은 종유석에 떨어진 물로 수분을 채웠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열흘 이상 버텼던 생존자 역시 구조대가 물을 뿌려 최소한의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조은누리 양 실종 당시 날씨를 찾아 확인해 보니 총 3번 비가 왔었다. 조 양은 어쩌면 그 비를 통해 수분을 공급받아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조 양의 사례는 향후 산중 실종 수색에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당시 집중 수색 장소 범위 바깥에서 발견이 됐다. 평소 조 양의 행동과 실종 지점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을 거라 고 판단해 군·경·소방 인력이 일주일 넘게 산 전면부에 한해 집중 수색을 했다. 하지만 조 양은 가족 등과 헤어진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1.7km 떨어진 산 뒤편 능선 계곡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조 양이 열흘간 버틸 수 있던 이유, 수색 범위 밖에서 발견된 지점 등을 기록해 조 양의 ‘기적의 생환’을 ‘조은누리 백서’로 만들기로 했다. 열흘 간의 기록을 백서로 만들어 산중 실종 사건에서의 대응과 수색 주 안점 등을 정리해 비슷한 사례에 참고하기 위해서다.    끈질긴 수색과 취재    실종 이틀째부터 나는 조은누리 양 취재에 참여했다. 당시 경찰과 소방 인력이 투입돼 이미 조은누리 양을 찾고 있는 상황이었고 취재팀은 조심스럽게 어머니 인터뷰를 요청했다. 며칠 뒤 어머니와의 인터뷰가 보도되자 당사자인 어머니에 대해 인터넷 여론이 싸늘했다.    ‘핸드폰도 없는 아이를 왜 혼자 보냈는가.’  ‘아이를 잃은 엄마 같지 않게 너무 침착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었다. 인터뷰 당시 어머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굉장히 불안한 상태였다. 두 손을 움켜잡고 조은누리가 꼭 돌아와 달라며 계속 기도를 했다. 조 양의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혹시나 조은누리가 방송을 보게 되면 꼭 돌아와 달라는 이유에서 인터뷰에 응했으리라. 그러나 이와 달리 여론이 싸늘해 취재진으로서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취재팀은 주변 마을을 돌고 산과 수풀, 저수지와 주변 계곡들을 샅샅이 수색하는 현장에 내내 함께 있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났고 조은누리 양의 실종 소식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있었다. 군 인력 뿐만 아니라 충북도·청주시, 마을 주민들까지 발 벗고 나서 조 양의 수색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취재진은 매일 돌아가면서 조 양 소식을 체크했다. 지난 1일 밤에는 열화상 드론 수색팀과 함께 야간까지 같이 취재를 이어갔고 MNG(Mobile News Gathering)를 통해 현장을 보여주었다. 열화상 드론이 산 주변을 수색할 때 현장에는 조 양의 아버지가 눈을 떼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음날인 2일 오후 2시 40분경 조은누리 양을 발견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육군 32사단 박상진 원사와 군 수색견 ‘달관이’가 조 양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조 양의 상태는 의식은 있었지만 탈수 증상을 보였다. 박상진 원사는 물을 건넸고 조 양은 그 자리에서 물 5병을 먹었다고 한다. 조 양은 곧바로 충북대병원으로 이송됐고 일주일 간 치료를 받았다.    현재 조 양은 그림 맞추기 놀이와 BTS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중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열흘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실종 사건에서는 피를 말리는 굉장히 길고 지루한 시간이다. 이 긴 시간 동안 모든 국민의 눈이 조 양 찾기 수색 현장에 가 있었다. 그러한 관심과 응원에 감동도 받았다.    해피 엔딩이어서 다행스럽고 나 나름대로 큰 보람을 느낀다. 작은 힘 하나를 보탠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조 양이 당시의 상처를 잊고 더 아름답고 멋진 여성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강사완 / KBS청주총국      
    2019-09-09
  • 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 일부 이재민들이 에어컨 고장으로 선풍기에만 의존해서 여름 나기 하고 있다<사진>.   ▲ 이재민들을 위해 조립식 임시 주택이 마련되어 있다<사진>.     강원도 속초는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지역 순환근무 때문에 2년 동안 속초에 살면서 인연을 맺었다. 퇴근 후에 집 앞 영랑호를 산책하는 것은 당시 내게 커다란 행복이었다. 그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지난 4월 속초와 고성에 산불이 발생했다. 그곳 지리를 잘 알기 때문에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3일 간 속초와 고성을 오가는 취재를 하게 됐다. 속초 요금소를 통과하자마자 마주한 모습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덩이들과 활활 타고 있는 ‘우리 동네’였다. 그 느낌은 실로 참담했다. 불은 하루 만에 꺼졌지만 산은 까맣게 타고 집들이 전소되어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취재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넉 달이 지나고, 8월의 서울은 폭염이 한창이었다. 나는 다시 속초와 고성으로 가게 됐다. 산불로 집을 잃고 더위와 싸우고 있는 이재민들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쩌면 의식적으로 더 잊고 싶었던 기억이기도 했다. 속초, 고성 등지의 집 잃은 이재민들이 임대아파트나 인근 연수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정도의 소식은 이미 들었던 터였다. 그 이상의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더위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원래 살던 집은 복구했는지 등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속초의 장천마을. 그곳은 속초에서 지낼 때 내가 살던 곳 바로 옆 동네다. 원래 집이 있었던 자리는 공터로 변해 있었다. 그 공터가 터를 닦는 공사 작업 중이었다. 근처 50미터 거리에 주민 41명이 거주하는 조립식 임시주택 20채가 마련되어 있었다. 말은 임시주택이지만 사실상 컨테이너 박스 안에 상하수도 설비와 기본 가전만 갖춰진 곳이었다. 당일 열화상 카메라 상 외부 온도는 63도였다. 말 그대로 ‘찜통’이어서 에어컨이 없다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전기 요금을 감면받고 있는 상태이지만, 감면 기간이 지나면 전기요금 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실제로 한 이재민은 에어컨이 고장 나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고성 용촌마을 조립식 임시주택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재민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낮에는 일을 하러 나가고, 저녁엔 집집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TV를 봤다. 하지만 오히려 열악한 상황에 적응해버린 그들의 모습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제2의 고향 속초. 바로 옆 동네 사람들의 힘겨운 여름 나기를 보며 ‘나도 어쩌면 집을 잃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불 이후 몇 달 동안 무관심했던 내 모습을 반성했다.    르포르타주 성격의 리포트를 만들고 MNG 라이브 연결을 하는 것이 당일 내 일이었다. 라이브 연결은 포인트가 문제였다. 조립식 주택 밖에서만 할 것인지. 아니면 동선을 조립식 주택 안으로까지 이을 것인지. 조립식 주택 안으로 들어가는 동선은 영상적으로 보면 더 나은 것이지만 여러 가지가 걸린다. 촬영 시 통제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라이브를 하기엔 부담스럽다. 사적 공간을 라이브로 연결한다는 것도 영 맘에 걸렸다. 이재민의 어려움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최선인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거주 중인 이재민 분의 허락을 구하고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씬으로 최종 결정이 됐다. 방송 때문에 해당 주택에 거주 중인 이재민은 그날 꽤 긴 시간 동안 협조를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새삼 심심한 감사와 위로를 전해야 할 것 같다.    대략 1500여 명의 이재민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산불 피해 관련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되었지만, 복구 비용이 부족해 다시 집을 짓기 어려운 이재민도 있다. 한국전력과의 손해 사정, 피해 보상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내 두 번째 고향 속초.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재민들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나는 요즘 그곳 이재민들의 삶이 걱정스럽다. 올 겨울 쯤엔 그들이 따뜻이 한 해를 마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권준용 / KBS      
    2019-09-09
  •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과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 추진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과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 추진 28일 광주에서 첫 세미나…“광주시민 등 국민 공감대 형성이 우선”     ▲ 지난 8월 28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의 공동주최로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 세미나’가 열렸다<사진>.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한원상·아래 영상기자협회)가 5·18기념재단(이사장 이철우)과 함께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추진한다.    영상기자협회와 5·18재단은 지난 28일 광주광역시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위르겐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민주화에 기여한 영상기자를 선정하여 상을 수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5·18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신군부의 단속을 피해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독일 제1공영방송사인 ARD에 전달하여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기자로,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이다.    이철우 5·18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2018년 말 영상기자협회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제안해 왔다.”며 “힌츠페터상 제정을 위해 의견을 나누는 첫 자리인 만큼 현실적인 제안과 거침없는 의견 교류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한원상 회장은 “5·18광주민주항쟁은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원동력이 되었고, 이러한 힘은 한국 국민이 독재 정권과 싸워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를 이루게 했다.”며 “힌츠 페터 국제보도상은 자유·민주·평화를 위해 노력해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부각시키고,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로 연결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상기자협회는 지난해부터 가장 뛰어난 TV 영상뉴스를 취재한 전 세계 영상기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5월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을 수여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시상 부문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인도주의적 영상에 수여하는 임팩트상 △시의성에 초점을 둔 뉴스상 △우수한 탐사보도에 수여하는 탐사보도상과 함께 세계의 자유·평화·인권·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영상기자(사망자 포함)에게 수여하는 공로상 등이다. 5·18기념재단과 공동주최로, 소요 예산 2억 원은 광주시 후원을 받는다는 구상이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 모두 공감했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신문방송학)는“힌츠페터의 헌신과 희생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저널리스트의 용기와 집념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역설하고 있다”며 “힌츠페터 언론상 제정은 여전히 독재국가에서 신음하는 전 세계 국민들에게 진실의 소중함, 언론자유의 가치를 알리는 큰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해 광주 시민을 포함한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또한, 전 세계 영상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보도상인 만큼 해외 언론인들과의 교류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재 조선대 교수(신문방송학)는 “힌츠페터가 독일 ARD 소속 영상기자였던 만큼, 이 상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 대한 정보와 시상을 위한 기금 조성 방식에 대한 논의를 독일 정부 또는 ARD와 공유했으면 한다.”며 “힌츠페터의 가족, 친구는 물론 독일 영상 저널리스트 단체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이날 세미나에 대해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자리였다.”고 평가한 뒤 “서울 등에서 한 번 더 세미나를 열자는 제안이 나와 검토를 거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전남대 김영기 교수(신문방송학)의 사회로 김창룡·김성재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송진호 한국국제협력단 상임이사, 강철수 광주전남언론학회 회장, 김학실 광주광역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김철원 광주MBC 기자, 나준영 MBC 보도본부 뉴스콘텐츠취재1부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안경숙 기자
    2019-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