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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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줌인] 다름과 깊이가 있는 뉴스
    다름과 깊이가 있는 뉴스       나열 뉴스는 독재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특권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특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뉴스는 깊이 들어갈 수 없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깊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언론)이 가진 특권을 잃는다. 역설적으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거기엔 무의미한 나열, 맹목적인 외침만이 있을 뿐이다. 독재 사회에서는 뉴스도 영화도 단지 나열에 불과하다. 거기엔 깊이와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    현대사회 대부분의 영화들은 스스로 나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빌리엘리어트에서 빌리는 흰 옷을 입은 소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청색 반바지를 입은 남자아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빌리는 그 안에 등장하는 소녀들, 심지어 영화 속 다른 남자들과도 다르다. 영화 속에서 춤을 추는 다른 소녀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그녀들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같은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들이 앵커의 얼굴, 목소리, 뉴스 세트, 정장의 색 등에 변화를 주지만 거기엔 다름이 없다. 다른 앵커, 다른 세트, 다른 옷은 이미 동어 반복의 우리 안에 갇혀 있다.    그들의 열띤 나열에는 다름이 없다. 나열하는 뉴스에는 본디 시선과 시각, 주관성과 철학이 있을 수 없다. 개별자의 생각, 날카로운 시선이 결여되어 뉴스는 밍밍한 맛을 낼 뿐이다. 다름이란 치열한 자기 깎기의 결과물이다. 달라지기 위해 하나의 대상을 치열하게 깎고 또 깎아야 한다. 나열의 형식은 본디 개별자의 이러한 깎는 수고를 덜어준다. 나열은 깎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충실하게 더하는 일이다. 더함으로써 날카로움을 잃는 대신 안전함, 즉 위험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얻는다.    나열 뉴스에서, 경쟁이란 ‘무엇이 빠졌는가’만을 말한다. 만약 다른 데는 A와 B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A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나는 왜 B를 가지지 못했는가? 기자들이 흔히 쓰는 물 먹었다는 표현은 자기 수중에 B가 없기에 오늘 충실한 나열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열의 게임에서 재미를 보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 바로 언론뿐이다. 내가 왜 이 채널을 보는가? 채널을 선택한 수용자(시청자)에게는 실익이 없다. 어느 채널이든 뉴스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악몽이다. 수용자들은 어디를 둘러봐도 같은 풍경만이 펼쳐지는 끔찍한 동화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서점은 다름의 천국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서점의 생명이다. 한 주제, 한 영역, 하나의 사건에 대해 보는 이마다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았기에 손님에게 선택의 재미가 생긴다. 대한민국 뉴스는 다름이 없기에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대한민국 뉴스엔 무엇보다 깊이가 결여돼 있다. 깊이 들어가는 것은 모두 날카로운 것이다.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끝을 날카롭게 다듬어야 한다. 뭉뚝한 것은 표면 위에서 깨지고 부서진다. 성역이란, 표면에서 깨어지고 부서질 뿐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장소다. 성역은 날카로움이 없는 공간, 즉 선진국보다는 후진국, 민주화가 덜 된 사회, 부패한 국가, 봉건적인 조직에 더 자유롭게 자리한다. 성역이란 언제나 날카로움이 없는 언론과 한 쌍이다. 성역이 굳건한 곳마다 반드시 창끝이 무딘 언론이 있기 마련이다. 언론의 창끝이 뭉뚝해서 그저 표면 위에서 적당히 깨지고 적당히 부서지기 때문에 성역은 유지된다.     A와 B, C 중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가가 아니라 A1, A2, A3... 혹은 A’, A”, A’”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B와 C가 없어야 한다. B나 C는 더 깊이 들어가야만 하는 A를 위해 제거되어야 한다. 이것은 나열의 경쟁보다 훨씬 위험하다. 나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수용자들은 즐거움과 행복을 되찾게 된다. 거기엔 다름이 있고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 편집장         
    2019-07-02
  • 이상한 출장
    이상한 출장      “카메라 기자 인생 30년에 가장 굴욕적이었어.”  “오죽했으면 내가 출장기간에 억울한 부분을 하루하루 메모를 해놨다니까.”  “이런 출장 인지도 모르고 갔지.”  “갔다 와서 엄청 싸우고 다신 안 간다고 했어.”  “취재기자는 몰라도 우리한테는 사역이자 봉사 같은 출장이야.”    영상기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출장이 있다. 스포츠팀에서 말하는 ‘협회 풀 출장’이다. 종편을 비롯해 다양한 미디어가 생기기 전, 그리고 김영란법 이전까지는 큰 문제가 없는 출장이었을지 모르나 여러 형태의 미디어가 생기고 권익위의 새로운 해석이 나오면서 부활된 이 출장은 적어도 영상기자의 입장에선‘ 이상한 출장’이다.    이 출장은 기본적인 풀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했다. 순번은 물론이거니와 장비나 송출에 대한 요구 수준도 서로 맞지 않고 협회의 가이드라인에도 맞는 것이 없다. 각사 취재부 이해가 섞여 순번이 미뤄지고 당겨지기도 한다. 사내 규정으로 인해 후원 출장 자체를 가지 못하는 방송사도 있다. 제대로 된 순번이나 절차, 원칙없이 누군가에 의해 촬영된 ‘풀’ 영상은 종목별 협회 웹하드를 통해 회원사 모두에게 공유된다. 그러니 더욱 순번대로 안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사례를 찾아 본 3년 동안 한 번도 안 간 회사도 있고 1년에 세 번을 간 회사도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대회 중간 갑자기 남북단일팀이 되는 바람에 이슈가 된 종목의 풀 출장이 있었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와중에 무임승차하는 회사들마저 요구사항을 쏟아내 현장에서 촬영, 송출을 혼자 해야 하는 영상기자는 몸도 마음도 상처를 받아야 했다. 같은 회사의 취재기자에게는 좋은 기회이니 그것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풀’ 상황에서 함께하는 영상기자의 소신과 기준은 외면받고 있는 상황이다.    종편을 포함한 방송의 스포츠 취재기자들은 스포츠 기자 연맹 소속이고, 종목별로는 더 많은 미디어가 포함된 협회 출입기자단이 존재한다. 바로 이 기자단이 협회 후원 출장의 대상자가 된다. 종목별로 다르지만 40여 명 안팎이다. 스포티비 VJ를 포함한 11개 방송사가 (상황에 따라 거를 수 있는) 순번을 돌린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이 영상 풀에서 나온 결과물은 풀 순번으로 촬영도 하지 않는 인터넷 매체나 신문사도 사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히려 그들이 유튜브 채널이나 인터뷰 코너에서 협회사보다 더 많은 양을 소화하기도 한다. 모든 풀 출장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상이 협회 웹하드를 통해 모든 협회 소속 기자에게 공유되는 것은 이미 기본적인 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특별한 형태의 출장이라고 하더라도 협회가 오디오맨(취재 스태프)을 제외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것은 보통 사내에서 경비 절감을 위해 핸디캠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많은 회사가 영상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서 해당 스포츠 협회에 고용된 카메라 크루처럼 내 능력이 사용되어야 할까? 어느 스포츠 협회의 비용 문제 때문에 최상의 결과가 아닌 영상을 나누고 싶진 않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영상기자들이 체력적 부담과 어려움을 감수하고 ENG 촬영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걸려온 취재기자의 전화로 알게 된 협회 풀 출장. 기자는 내게 말했다. 일 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순번의 출장이라고. 그럼 다음 순번은 십년은 넘어서 오겠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출장을 한 번도 가지 않고 영상을 문제없이 그림을 받아온 회사들이나 영상기자 문제로 출장 자체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 취재기자에게는 이러한 문제 제기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단순한 몽니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풀 출장은 문제가 많음을 부정할 수 없다.    회원사 협회원들, 협회보를 읽는 동료 영상기자 중에 이런 출장에 대해 정확한 유형조차 모르고 현장에 가서 당황하거나 기자와 갈등이 생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방송시장의 변화라는 미명 아래 여러 환경, 노동의 조건들이 변해왔다. 영상기자들의 노동 터전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물론 개중엔 받아들여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개선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협회원 모두가 관심을 갖고 토론하여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갔으면 한다. 다수의 관심이 모인다면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을 고쳐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될 테니까.     최준식 / SBS       
    2019-07-02
  • 아리랑 ‘영상기자’만이 갖는 독특한 영역
    아리랑 ‘영상기자’만이 갖는 독특한 영역     ▲ 아리랑국제방송 스튜디오    ‘아리랑국제방송’은 국내에서 ‘국제방송’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방송 중인 거의 유일한 채널이다. 어느덧 개국한 지 20여년이 흘렀다. 긴 세월이 말해주듯, 의미 있는 성과들을 얻기 위한 ‘현재 진행형’ 중인 방송사이기도 하다.    ‘아리랑국제방송’ 채널에서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1일 6회에 걸쳐 생방송 뉴스가 편성된 것만을 보더라도, 채널의 뉴스 중요도가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다.    ‘아리랑’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소식을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하는 채널 특성상, 뉴스 아이템을 선정하고 뉴스의 밸류를 판단하는 것에 국내 방송사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AP, 로이터 등 유수 뉴스통신사들에 의해 전 세계에 전달되는 국내발 뉴스와 차별화하여, 자국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대해 좀 더 실질적이고 심층적인 입장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아무래도 국내 이슈 중 국제방송 뉴스로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이른바 ‘선별’해서 취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엄연한 현실이면서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국내 사건·사고 현장에서 이것이 국가적 이미지와 어떻게 결부되는지, 또는 국제방송 뉴스로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게 된다. 특히 이미지로 보이는 영상취재이기에 그러한 경향이 더 짙다. 통념상 부정적인 뉴스 이슈가 생길 경우, 이것을 어떻게 영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 난감하다. 우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만한, 부정적인 이슈라 하더라도 뉴스 가치가 높다면, 그에 걸맞게 더 적극적으로 영상취재를 하고 기사화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 아무리 크게 이슈가 된 사건·사고라 하더라도, ‘로컬’ 소식일 경우에 상대적으로 크게 다루지 않는 경향도 있다.    국내 보통의 타사 영상기자들과는 달리 채널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취재 과정에서도 다소 동떨어진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어 ‘로컬’한 국내 이슈 현장에서는 아리랑의 영상기자를 보기 힘들 것이다. 앞서 말한 이유로 말이다. 또 타사들이 덜 관심을 가지는 이슈라 해도 우리 판단에 국제 이슈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취재를 한다. ‘아리랑 영상기자’만이 갖는 독특한 상황이다. 그러나 뒤집어 본다면‘, 국제방송 영상기자’로서 특화된 영역을 구축할 수 있고, 나아가 여전히 새롭게 구축이 진행 중인 하나의 영역 확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국내 방송 뉴스에서 보기 힘든 아이템이지만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전달되는 리포트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리랑만의 특수성을 잘 살리면서 대한민국 뉴스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국제방송 영상기자로서의 사명이자 임무라고 생각한다. 국내외의 다양한 시청자들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슈들이 어떤 식으로 발생되고 진행되는지를 영상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것. 국제방송의 영상기자로서 매진해야 할 포인트가 아닐까?     임현정 / 아리랑국제방송       
    2019-07-02
  •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현재의 MNG(Mobile News Gathering)는 고화질 원본 영상을 HEVC 코덱(H.265)으로 압축한다. 모바일 통신망(LTE, 3G 등)을 통해 송출하는‘ 저용량 고효율’ 방식을 사용한다. 불과 1~2Mbps의 대역폭에도 화질과 관계없이 연결 가능하고, 3Mbps 이상의 대역폭에는 방송 가능한 고화질 영상을 실시간으로 연결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SNG를 100% 대체할 수 없지만, 비용과 편의성 측면에서 강점이 뚜렷하다. 연결 안정성이나 화질 또한 점점 개선되고 있어 긴급한 재난·재해 및 사건·사고 현장에서 적극 활용되는 추세다. 특히 북미정상회담,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등 현장 생중계에 적극 활용되면서 해외 중계를 위한 핵심 솔루션이 되고 있다.    MNG는 2010년 3월 29일 ‘천안함 침몰 사고 해상 연결’을 시작으로 중계차 및 OFDM 장비를 활용할 수 없는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3G 통신망을 통해 (저화질이지만) 생중계가 가능했다. LTE 통신망 개통으로 인해 가용 대역폭이 증가하면서 고화질 영상 전송 가능, 연결 안정성 상승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MNG를 이용한 실시간 영상 송출 수요 역시 급증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생중계보다 실시간 송출 목적의 사용이 더 많다. 영상취재 워크플로우도 이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취재 시점부터 여러 가지 송출 과정을 거쳐 뉴스에 반영되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차가 존재했지만, 이제는 취재 현장을 연결해 뉴스에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만 MNG 송출 장비와 수신 서버가 한정되어 이를 운용하는 영상 데스크의 부담이 높아졌다.    KBS 보도본부는 5대의 MNG를 운용 중이다. KBS의 경우 특정 기간 (2018년 10월 1일~2019년 4월 13일) 중 평일과 대형 이벤트가 발생한 주말(141일) 간 사용된 횟수는 639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1일 사용 횟수는 4.53회에 이른다. 운용 장비의 사용 횟수가 증가하면서 장비가 급속하게 노후화되고 고장 빈도도 역시 더 늘어났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KBS는 신규 장비 5대를 추가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7월 중 도입 예정이다.)    MNG는 ‘저용량 고효율’ 방식으로 고화질 영상을 송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비이지만, 아직은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 현장 모바일 통신망 사정을 예측할 수 없어서 음영지역이나 오지에서는 연결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현장의 영상기자가 이러한 위험 부담을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것 역시 문제다. 현장에 파견된 영상기자 1인이 delay, bit rate 등을 조절하여 최적의 운용 조건을 맞춰 가며 장비 단점을 극복해야 하는 실정이다. MNG 운용과 관련된 모든 직종 관계자들의 장비에 대한 이해도가 장비를 실제로 윤용하고 사용하는 영상기자들에 비해 여전히 많이 떨어진다. MNG 사용의 현실적 문제점들에 대한 인지 역시 부족하다. 이러한 환경이 영상기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장비 자체의 기능적 한계로 인한 방송 사고의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둬야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책임이 현장 영상기자 1인에게 전가되는 실정이다. 방송사고 시 현장 영상기자를 질책하고 운용 미숙을 의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했다. 향후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전원 공급 문제 역시 현장의 영상기자들을 괴롭힌다. 항공기 탑승 시 160Wh 이하의 배터리 기내 반입을 1인당 2개로 제한(ENG 부착 배터리 제외)하고 있어서 해외에서 MNG를 장시간 사용해야 하는 생중계 시에는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고화질 영상의 실시간 송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곧 카메라에 MNG 기능이 부착되는 것이 가능해지리라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현실화되었다. SONY는 이미 4K 카메라에 Dual Link Streaming 기능을 적용한 제품(PXW-Z450, Z280 등)을 출시했다. 유심 2개를 장착한 XDCAM Air를 이용해 영상을 실시간으로 연결할 수 있다. KBS 제주방송총국이 이미 2019년 4월 1일 ‘4·3 기획-일본 오사카 코리아타운 연결’에 XDCAM Air를 이용해 일본을 현지 연결했다. 아직 MNG에 비해 화질이 낮고 연결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추후 유심 슬롯이 많아지고 5G 통신망을 활용하게 된다면 MNG의 강력한 대체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MNG가 모든 영상기자 개인에게 지급되는 날도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모든 기술의 발전이 그렇지만 MNG 역시 영상기자들에게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이 진보된 기술 장비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컨대 영상기자 개개인의 취재 자율성은 상당히 큰 위험을 직면해야 할지 모른다. 일반론이지만 데스크와 현장 영상기자의 관계는 구조적으로 대등하지 않다. 데스크나 책임자, 혹은 상급자가 모든 취재현장에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중앙 집권적 성격의 업무 형태를 불러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영상기자들이 자칫하면 오퍼레이터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MNG가 영상기자를 단순 오퍼레이터로 전락시키는 도구가 되도록 해서는 곤란하다. 영상기자 스스로 현장을 취재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윤대민 / KBS       
    2019-07-02
  • 기억의 상처를 안고
    기억의 상처를 안고     ▲ 한강에서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시커멓게 변한 한강은 점점 수위를 높이며 주변 공원들을 삼켜나갔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폭우에 취약시설이 붕괴되고 저지대가 침수되는 사고가 이어졌다. 턱 밑까지 물이 차오른 팔당은 견디다 못해 수문을 열었다. 커다란 입에서 쉴 새 없이 흙탕물이 뿜어져 나왔다. 방류를 시작한 댐과 침수 위험에 노출된 주변 마을... .    취재를 위해 차에 올라탔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강을 거슬러 한참을 올랐다. 거센 빗줄기가 차창을 때렸다. 늘 보던 한강의 모습이 아니었다. 공원의 농구 골대엔 수림만 겨우 보였다. 비가 얼마나 내린 걸까? 겁이 덜컥 났다.    땀이 난 손으로 카메라를 부여잡고 2시간쯤 달려 댐에 이르자 응급구조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얼른 내려 구조대원에게 물었다. 그는 별 말없이 손가락을 쭉 뻗어 시커먼 강가 수풀 쪽을 가리켰다. ‘등’이었다. 사람의 등. 발뒤꿈치부터 정수리까지 모든 세포가 빳빳하게 서는 기분이었다.    물 위에 둥둥 뜬 등은 중년 남자의 시신이었다. 곧이어 또 한 대의 구급차량이 도착하고 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황급히 강가로 갔다. 댐에서 가까운 유속이 빠른 상류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구조대원들까지 전부 휩쓸려 내려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시신 수습에는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 물을 잔뜩 머금은 시신은 무겁고 미끄럽다고 했다. 구조대원들이 로프로 시신의 허리와 팔다리를 감아서 뭍으로 간신히 끌어올렸다. 거대한 나무줄기를 당겨 올리듯 구조대원 대여섯 명이 맞잡고 안간힘을 썼다.    뭍으로 올라온 시신은 익사 후 시간이 꽤 흐른 듯 보였다. 시신은 사후 경직으로 인해 팔을 앞으로 곧게 뻗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에 빠질 당시에 입고 있던 반팔 상의와 짧은 바지 그리고 샌들까지 그대로였다. 마네킹처럼 핏기없는 새하얀 팔다리가 옷가지 사이로 삐져나와 있었다. 카메라 영상으로 담기는 했지만, 뉴스로는 내보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에 고개를 돌렸다.    과학수사대의 간단한 현장 부검과 사망 판정 후 시신은 구급차에 실려졌다. 경찰은 며칠 전 가평에서 불어난 강물에 실족으로 인해 휩쓸려 실종된 50대 남성이라고 추정했다. 구조에서 시신 수습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내가 본 장면들이 너무도 강렬하게 남았다. 주변에 최초 목격자와 경찰을 인터뷰 했다. 어느 순간 발을 떼려는데 카메라에 얹은 손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부지불식 간에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갔던 모양이다.    차를 돌려 서둘러 서울로 복귀하는데 허탈감이 밀려왔다. 비에 젖은 옷가지는 금세 말랐지만, 현장의 끔찍한 기억이 한동안 머릿속을 헤집으며 나를 괴롭혔다.    이듬해 여름, 결혼을 앞두고 와이프와 신혼집 청소를 하기로 했다. 청소도구를 사서 약속 시각보다 한 시간 먼저 아파트로 향했다. 주차장 출구 쪽 화단 앞에 경찰들과 주민 몇몇이 모여 있었다. 슬쩍 끼어들어 살펴보니 투신 현장이었다. 아파트 10층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자신의 집 테라스에서 몸을 던진 것이다. 추락하면서 부딪혀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시신은 화단에 쓰러져 있었다. 1년 전 팔당에서 본 시신이 생각났다. 트라우마 탓인지 (카메라도 쥐고 있지 않은) 오른손이 또 다시 굳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주변 상황을 찍고 최초 발견자와 평소 가깝게 지냈다던 지인들을 인터뷰 했다. 휴대전화기를 쥔 손이 계속 떨렸다. 투신자는 통장으로 활약할 만큼 평소 동네에서도 활달한 성격이었지만 근래 들어 급작스럽게 우울증을 호소했다고 했다. 아마도 끝내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목숨을 끊은 듯했다.    당직자에게 내용을 보고하고 신혼집으로 올라왔다. 투신 사고 취재가 처음은 아니다. 아주 끔찍한 사고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도 사고 직후에 모든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을 몰랐다.    그곳에서 2년을 살면서 그 화단을 지날 때마다 과거가 소환되었다. 팔당댐 익사사고와 투신사고와 겹쳐져 투영됐다. ‘그냥 지 나칠 걸, 못 본 척하고 가던 길을 갈 것을......’ 끔찍했던 당시 기억이 떠오를 때면 후회도 했다.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귀가 때마다 화단을 빙 돌아서 가기도 했다.    ‘트라우마’는 의학적 용어로 큰 범주의 ‘외상’을 의미한다. 심리학에서는 트라우마를 ‘정신적 외상’, 즉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으로 규정짓는다. 강렬한 경험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내상을 입는 것.    참혹한 사건 현장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영상기자들은 늘 ‘트라우마’ 가운데 살아간다. 비슷한 취재 환경에 놓이거나, 훗날 사건 현장을 다시 지날 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런저런 기억의 퍼즐들로 힘겨워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사그라져 갔을 생명들. 그들을 제때 도와주지 못한 도의적 책임, 혹은 죄의식. 눈을 감기엔 너무 이른, 꿈과 미래가 창창한 가녀리고 여린 생명들, 그들을 떠나 보내는 슬픔. 남겨진 가족들의 찢어지는 고통....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사라질 줄 알았던 기억 조각들은 가슴 깊숙이 박혀서 때가 되면 또다시 아물지 않고 욱신거린다. 영상기자들 중엔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들도 다수 있다. 현장을 거부하거나 마다할 수가 없어 생긴 상처들 때문이다. 영상기자들의 직업적 숙명이기도 하다. 기자는 힘과 용기가 있어야 하며 현장에 대한 목격자로서 기민해야 한다고 배웠다. 현장을 거치며 생긴 마음의 상처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씨앗이라고 생각하라고. 그 씨앗이 지금은 싹을 틔우기 위한 몸부림으로 힘겹지만, 분명 밝은 미래로 아름답게 꽃 피워 보답해 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밖에. 조각조각 쓰라린 가슴 한편으로 우리는 또 다른 트라우마를 심는다.     김원 / MBN             
    2019-07-02
  • 뉴미디어 새내기가 본 영상기자의 역할
    뉴미디어 새내기가 본 영상기자의 역할        뉴미디어 부서 생활 6개월, 이곳에 있다 보니 영상기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 고민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뉴스 영상을 책임진다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우리가 만들던 뉴스가 TV를 벗어나 여러 형태로 확장되면서, TV뉴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영상기자의 역할도 변화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TV 앞에서 뉴스를 기다리던 시청자들은 이제 스마트폰을 들고 뉴스를 선택하고, 조회수나 구독자 수로 그 매체를 평가한다. 시대가 변했고, 뉴스도 변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기자의 역할에도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대체로 부족했다. 아마도 매체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일하고 있는 <비디오머그팀>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뉴미디어 플랫폼에 데일리 뉴스 영상을 재가공하거나,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업로드 한다. 이곳에서의 제작은 기존의 뉴스 제작 시스템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우선 보도국보다 훨씬 다양한 구성원들이 제작과정에 참여한다. 취재기자, 영상기자, 작가, 편집 PD, 디자이너, 에디터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콘텐츠에 참여해 서로 소통하며 콘텐츠를 만든다. 제작 과정은 심플하지만 더 세밀하고 깊이가 있다. 조직의 문화도 사뭇 다르다. 보도국에서는 대부분의 결정을 간부들이 모인 편집회의에서 하지만 이곳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아이템 결정에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콘텐츠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비디오머그>에는 3명의 영상기자가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콘텐츠 제작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고 있다. 먼저 데일리에서 취재된 영상으로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고민해 아이템을 발제한다. 언제든 영상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다른 구성원에게 공유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이슈를 팔로우하고 있어야 하는 작업이다. 또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때는 기획부터 섭외, 영상구성, 촬영 등 모든 부분에서 영상 코디네이터로서 참여한다. 인터뷰 싱크를 풀거나, 구성상 필요한 연기도 하고, 내레이션을 읽는 등 세세한 업무까지도 역할을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어떤 역할을 더 할 수 있을지는 현재도 여전히 탐구 중이다.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에서 기존 뉴스 형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게 나야’ 같은 시리즈물은 예능적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때로는 ‘Scope’ 같이 아주 진지한 다큐적 성격의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곳이 작은 방송사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예능도 하고, 교양도 하고, 뉴스도 하는 것이다. 매번 달라지는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영상기자들의 역할도 다양하게 변화한다. 영상취재에는 ENG 한 대보다 간편하고 단순한 장비를 여러 대 사용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기사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영상과 싱크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구성에 맞추려면 여러 상황을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지만 무엇이 정답인지는 단정 지을 수 없다.     ‘영상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일’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다른 직군과 마찬가지로 영상기자 직군에도 불안감을 준다. 뉴미디어 시장에서 ‘영상기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내린 나의 결론은 영상기자로서의 강점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소통과 경험, 그리고 노하우의 측면을 들 수 있다.    첫째 소통의 측면. TV뉴스와 마찬가지로 뉴미디어에서도 영상기자가 취재한 영상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된다. 결국 콘텐츠의 핵심이 되는 영상은 현장의 영상기자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현장의 영상기자와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영상기자이다. 청와대, 국회, 검찰 등의 출입처나 사회, 경제, 스포츠뉴스 등의 현장에 있는 영상기자와 현장 상황을 즉각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뉴미디어 다른 구성원들에게 이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콘텐츠 제작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더 나아가면 현장의 영상기자에게 뉴미디어의 필요를 전달함으로써 원 소스를 생산하는 사람과 가공하는 사람을 이어주는 필수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보도영상에 대한 이해력. 뉴미디어 특성상 영상취재를 나가는 시간만큼 인제스트 된 영상을 확인하는 시간이 많은데, 영상기자는 같은 영상을 보더라도 누구보다 현장 상황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볼 수 있다. 직전까지 본인이 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어떤 생각으로 이것을 촬영했는지, 영상에 나오지 않는 주변은 어떤 상황인지 잘 알 수 있다. 풍부한 현장의 경험에서 나오는 통찰력은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아이템을 선별하고 제작하는데 큰 역량이 된다.    세 번째, 영상제작의 노하우. 보도영상 촬영의 특성상 갑작스러운 변수에 대처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제작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제아무리 촬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사전에 세팅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신속하게 판단하며 촬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뉴스를 예능 혹은 다큐처럼 촬영하면서 취재원에 대한 배려와 취재에 대한 윤리적인 부분도 함께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영상기자만큼 역량을 확보한 제작진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강점들이 향후 영상기자만의 역할로 남으리라는 법은 없다. 뉴미디어 환경은 생물과 같이 계속 변하고 있고, 어떤 변수가 우리를 위협할지 모른다. 현재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지금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결국 정답은 도전이고 시도이다. 영상기자라는 직군이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남고, 역할을 계속 진화시켜 가려면 할 수 있는 어느 길이든 도전해 봐야 한다. 나아가 할 수 없는 어떤 길도 개척하려는 시도와 용기가 필요하다. 도전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고 변하는 시간 속에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니까.     김승태 / SBS       
    2019-07-02
  • [고성 산불 취재기] 화마와의 사투
    화마와의 사투     ▲ 지난 4월 강원도 고성군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사진)    그동안 수많은 화재현장을 취재해 봤지만 이처럼 빠르게 번지고 피해지역이 광범위한 경우는 처음이다. 처음 인제에서 실화로 산불이 발발했고, 고성군에서 다른 산불이 또 붙었다. 고온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인해 불은 삽시간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 붙었다. 급기야 속초 도심까지 불이 번졌고 주변 다른 지역도 화마가 휩쓸었다. 하룻밤 사이 주민 수천 명이 피난길에 나섰고 수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화재가 있었던 4월 4일 오후, 압수수색 취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메인뉴스 모니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부서 전화기가 울렸다. 취재기자가 다급한 목소리가 말했다.    “지금 빨리 고성에 가야 해요. 산불이 계속 번지고 있어요.”    퇴근 한 시간 전이었는데. 야근 근무자는 출근 전이고 강원에 지사도 없었기에 갈 사람은 나뿐이었다. MNG, 사다리, 안전모, 조명을 부리나케 챙겼다. 보도차에 몸을 던져넣었다. 고속도로 달리는 중간중간 실시간 재난상황을 체크하며 산불이 번지는 곳을 체크했다.    화재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핸드폰에 ‘대피 안내’ 문자가 더 자주 날아왔다. 어디서부터 취재를 시작해야 할지 마음이 조급해졌는데 차는 벌써 속초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인근 산에서 능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산불이 보였다. 마치 화산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처럼. 하늘엔 도깨비불처럼 불씨가 날아다니고, 나무 타들어 가는 소리, 사이렌 소리가 뒤섞여 고막을 때렸다. ENG 카메라 모니터 창이 타오르는 붉은 화염으로 가득 찼다. 시내로 이동하자 LPG 충전소 뒤로 불이 옮겨 붙고 있었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소방대원들이 필사적으로 화재 진압에 나서고 있었다. 나도 그 장면을 담기 위해 뛰어갔다. 하지만 열기와 연기로 눈은 뜨기 힘들었고 날아드는 불씨에 머리카락 타는 냄새도 났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순간 산에서 타고 내려온 연기로 가득 찼다. 시야 확보도 어려운 데다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고 있어 호흡도 어려웠다.    “여기로 빨리 나오세요!!”    누군가 소리쳤다. 그쪽으로 뛰어나가자 겨우 호흡할 수 있었다. 위험한 상황이기에 원거리 촬영을 할 수도 있지만 야간인 데다 소방대원이 화마와 싸우는 모습을 줌(Zoom)을 당겨 담을 수는 없었다. 영상기자의 숙명이다.   ▲ 산불현장 일대 곳곳에서 차량이 불에 타는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    시내는 가옥과 차량들 심지어 라디오 방송국도 전소되었다. 폭격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취재가 끝나고 산불을 피해서 주민들이 대피한 임시 대피소를 찾았다. 고성과 속초 각 마을과 아파트 단지 인근까지 번진 불길에 대피한 주민들의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힘들었다. 현장에서 꼬박 밤을 새우고 동이 트자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시커먼 재가 된 현장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이재민들의 한숨소리만 남았다.    동해안은 매년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산불은 규모 면에서 피해가 컸다. 해마다 반복되는 산불을 막을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그나마 초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뻔했던 산불이 빠르게 진압될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온 소방관, 군인,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산불 취재를 하면서 몸은 고달팠어도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생생한 사건 현장을 담고,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책무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조영민 / MBN       
    2019-07-01
  • [고성 산불 취재기] 고성 산불 그 후
    고성 산불 그 후     ▲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집을 떠나지 못한 피해주민이 망연자실하고 있다(사진).   ▲ 그을린 나무와 잿더미를 뚫고 대나무 죽순이 다시 자라나고 있다(사진).    산림 2천832ha를 잿더미로 만들고, 1천289명의 보금자리를 앗아간 동해안 산불.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에게도 악몽 같은 하루였는데 이재민들과 피해 주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무너져 내린 삶의 터전에 현재도 복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기를 포기하지 않듯 사람들은 산림을 복원시키고 무너진 집을 일으켜 세우는 노력에 매진하고 있다. 전국에서 성금이 모이고, 자원봉사자는 1만 3천여 명이나 됐다. 관광이 곧 자원봉사라는 지역민들의 외침에 관광객들이 다시 이 지역을 찾고 있다. 고무적인 광경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해안 산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친정아버지께 물려받은 집이 잿더미로 변한 모습을 보며 울고 계셨던 어머니, 옷이며 신발이며 맨발로 뛰쳐나와 목숨은 부지했는데 라면하고 물은 이제 물려 그만 드시고 싶다는 할아버지, 틀니를 집에 두고 나와서 그나마 지원되는 라면도 드실 수가 없는 할머니. 이분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미래가 불투명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출하를 앞둔 물건들이 전부 다 타 버렸고, 영업장은 물론 거래처까지 잃은 상인들과 외상장부가 다 타버린 도매업자, 횟집 수족관에 있던 대게가 전부 쪄진 상태로 바닥에 나 뒹굴던 모습. 그러한 단상들이 이전의 평화로웠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험난한 난관과 고비를 넘겨야 할 것 같다.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더해졌다. 아직 피해 원인과 보상에 대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가족사진 하나 찾으려 타버린 집기를 뒤지던 피해주민들에게 일단은 치우고 보자는 식의 무심한 행정이 지속되고 있다. 물적 지원도 문제가 많다. 터전을 잃은 이재민의 슬픔은 모두 같고 그 끝을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작은 집을 잃으신 할머니와 수십억의 영업장을 잃으신 상인, 반파된 집이라 복구지원도 되지 않는 아버님 모두 같은 지원금이 통장에 들어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한데 물적 지원에 온도차도 존재한다. 복구도 해주고 집도 마련해주고 돈도 줘서 우리나라 좋다는 할머니가 있지만, 정확한 원인규명과 약속 없이는 안 된다며 무너진 집을 걷어내려는 포크레인을 막으며 한숨을 토하는 어르신도 있다. 길거리로 나와 속초 한전 지사 앞에 비상대책위를 차려 매일같이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화재가 있었던 곳은 이전의 금수강산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어졌다. 마치 삭막한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다. 코끝에 전해져 오는 재 냄새가 아직도 진동한다. 다 타버린 산림을 보고 있노라면 남대문이 타들어갈 때 느꼈던 울컥함과 비통한 감정이 재현된다. 2017년 강릉 대형 산불의 복구도 여전히 완결되지 않았는데 2019년 산불로 재가 된 산림은 언제쯤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산불 피해자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조속한 보상과 원인 규명이다. 그리고 책임있는 결론이다. 그래야 미래에 대한 설계가 가능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당국자들의 굳은 약속도 필요하다. 반드시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 국가가 마지막까지 애정의 손길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    그을린 나무와 잿더미를 뚫고 대나무 죽순이 다시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화마의 아픔을 뚫고 다시 새 희망이 싹트기를 기대한다.    두터운 잿더미를 뚫고 새 순이 나오고 있다. 미약하기는 하나 초록이 다시 산을 물들이고 있다. 다시 찾아본 마을에 이장은 ‘그래도 살아야지’ 라며 삽을 들었다. 희망의 싹트고 있다. 정부 대책 역시 그러한 봄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홍성백 /  G1강원민방       
    2019-07-01
  • 해양 탐사선 ‘이사부 호’ 동승 취재기
    해양 탐사선 ‘이사부 호’ 동승 취재기     ▲ 남태평양 항해 중인 이사부호(사진)    미국령 괌에 가는 출장이 갑작스럽게 잡혔다. 경남 거제항에서부터 북위 6도 부근 적도 해역까지 항해하며 연구 활동을 한 대양 탐사선 ‘이사부 호’의 전 일정을 동승 취재하게 되었다.    괌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닌, 12일이라는 긴 일정을 배를 타고 간다는 것에 덜컥 겁이 났다. 물론 ‘답은 현장에 있다.’ 영상기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말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직접 그 일을 감행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생각이 들었다.    첫 촬영은 드론이었다. 출항하는 배를 하늘 위에서 담고자 했다. 달리는 배에서 드론을 올리고 내리는 것도 문제지만 드론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내가 원하는 구도를 잡는 것이 어려웠다. 아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은 모르시리라.    출항을 시작으로 태평양 바다를 달리는 배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다섯 번의 항공촬영이 있었다. 드론이 배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드론을 잃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식겁해야 할 위기들의 연속이었다.    무사히 12일간의 항해 일정과 영상 기록을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괌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가야 하는 미크로네시아 연방 축(chuuk) 주의 우에노 섬이었다. 축 주는 2차 세계대전의 전쟁터였으며 세계 최대 환초지역으로 바다 아래 전쟁 당시의 배들과 추락한 비행기와 함께 산호초 군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출발하기 전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해양을 주제로 하는 다큐멘터리에서 바닷속 영상이 없다면 전달력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고 고민한 끝에 직접 들어가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위해서는 스쿠버 다이빙 교육이 필요했고 수중 촬영 장비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나에겐 큰 난관이 아닐 수 없었다.    출장을 다녀오고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방송이 나갔다. 촬영 당시 현장에서도 느꼈지만 방송을 보면서 확실한 깨달음을 얻었다. 영상기자도 전문성을 키워야겠다는 것. 항공 및 수중 촬영 분야에서도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이 있다면 어떠한 상황이든 대처할 수 있고 영상 기록이 가능할 것이다. 이번 특집 촬영을 통해 수박 겉핥기 수준의 항공 및 수중 촬영을 해본 것에 불과하지만 큰 경험이 되었다.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쌓아가야 하리라. 화이팅!     최진백 / KBS       
    2019-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