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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년…‘다사다난’은 ‘현재진행형’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년… ‘다사다난’은 ‘현재진행형’ ‘12.3 비상계엄’, ‘대통령 구속과 탄핵 심판’, ‘서부지법 폭동사태’, ‘제주항공 참사’, 그리고......   의대 증원 논란, 아리셀 화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2024년이 지나 다시 새해가 밝았지만, 취재현장은 대형취재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3일 있었던 비상계엄 사태를 시작으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한국 사회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극우 세력은 서부지법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켜 헌정 질서를 유린했고, 헌재 판단에도 불복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한해 동안 현장의 영상기자들을 진두지휘해 온 영상취재 사회데스크(영상 캡)들은 일련의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지난 17일 서울 은평구에서 간담회를 열어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다음은 간담회 참석자 명단이다. - 편집자 주   MBC 현기택(협회보 편집장) SBS 양두원 YTN 윤원식 MBN 변성중 OBS 이시영   ‘비상계엄’이 불러온 살인적 업무 강도… 밥 굶고 차디찬 거리에서13시간 취재해도‘교대 불가’  현기택 : 늘 그랬지만 아리셀 화재부터 시청역 역주행 사고, 12.3 내란에 여객기 사고까지 정신없던 한 해였다. 평소 내가 캡이 되면 후배들에게 시간을 좀 더 많이 줘서 미리 작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 동안 나름대로 프로젝트를 몇 개 진행했는데,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니 모든 게 다 ‘리셋’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항공기 사고까지 터지면서 12월 3일부터 쉬지 않고 업무가 돌아가다 보니 몸살도 자주 걸렸다. 양두원 : 1월 13일에 캡이 되었는데, 15일에 윤 대통령이 체포됐다. 회사를 20년 다녔는데, 설날 전까지의 2주가 회사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만약 이 노동 강도로 계속 일하면 진짜 잘못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까지 물리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압박받던 시기가 있었나. 예전 광우병 사태 때도 힘들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시영 : 12월 3일 밤에 뉴스를 보고 바로 회사에 들렀다가 국회에 갔다. 원래는 회사 내부에서 라이브를 걸고 조정을 하는데, 내가 현장에 나가면 안에서 라이브를 조정할 사람이 없으니 노트북을 들고 나갔다. 국회 앞에서 카메라에 연결해 유튜브 라이브 걸고, 백팩 메고 취재와 라이브를 다 했다.   윤원식 : 정신없는 상황에서 국회 팀이 전체 풀로 간다고 결정하더라. 전체 풀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순발력 있게 초유의 사건을 커버해 주었다. 국회 풀팀, 그날 야근자들이 제일 고생 많았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초반까지는 전 기자들이 총출동한 상태라 교대도 못 해줬다. 지금은 집회가 8번 정도 반복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오전-오후로 나눠 일한다.   변성중 : 추가 근무가 최근에야 없어졌다. 3주 전까지만 해도 한두 명씩은 꼭 나왔다. 추가 근무는 지원자를 먼저 받고, 지원자가 없으면 그냥 순번대로 짜는데, 근무자는 당일 날 불려나올 것을 예상하고 아무 곳도 못 가고 ‘대기’ 상태로 있었다. 현기택 : 예전에는 대형 사건이 생기면 서로 취재 경쟁을 했는데, 이번에는 포인트별로 경쟁을 해서 특종을 하기 보다는 전체 풀로 운영했다. 풀 취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원식 : 풀을 안 하는 게 좋지만 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인원이 부족하거나 제한된 공간인 경우가 그렇다. 풀단이 있으면 방송사 입장에선 취재 인력 1~2명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코리아풀하고 6개사 풀단이 더 고마운 것 같다.   “현장 그래도 보여주는 것 의미 있지만 라이브 늘면서 다양한 취재 못한 점은 아쉬워”   양두원 : 라이브를 많이 하니까 그쪽에 투입되는 인원이 많아져서 정작 현장을 다양하게 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다. 또, 대형 이슈가 있을 땐 특보가 들어가는데, 하루에도 특보가 4~5번씩 들어가게 되면 영상기자들이 특보 자리에서 위치를 지키고 있어야 해 다른 취재를 할 수가 없다.   현기택 : 전엔 라이브에 대한 수요가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요즘은 취재 인력이 제한적인데 라이브 수요가 워낙 많다보니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물론 상황이 벌어지는 것 자체를 보여주는 역할도 분명히 중요하다. 실제로 이번에 국회에서 라이브가 없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지 그림을 찍어서 보내주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취재’를 좀 더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시영 : OBS는 취재를 하고 나서는 휴일 스케치 같은 영상은 편집을 직접 하고 있다. 특히 요즘 우리가 유튜브에서 팀 채널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촬영해 온 영상을 뉴미디어용으로 편집할 수 있도록 각자 편집을 배우고 있다. 우린 지역방송이다 보니 콘텐츠가 많이 들어와도 내부에서 소화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10분의 1도 못하고 있는데 지역 방송들 보면 요즘에 뉴미디어를 엄청 강화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촬영 못하게 한 법은 문제… 현장기자 개인에게 법적 대응, 취재자유 위축케 해   현기택 : 이번에는 대통령 관저 촬영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다. (대통령실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불법 촬영했다며 JTBC, MBC, SBS 등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권력에 대한 감시는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현행법상 관저 촬영이 불법인 것은 맞지만, 대통령실의 얘기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는지 따져보고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매일 파파라치처럼 취재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스스로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두원 :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관저 촬영은 불법이니 하지 말라고 분명히 공지가 왔고, 여러 차례의 경고를 듣지 않고 취재를 하다 누군가가 연행이 된다면 그 당사자와 취재 지시를 내린 데스크는 어떻겠는가. 다른 건으로 소송이 진행 중인 후배들이 각 사별로 있을 텐데, 회사 법무팀에서 도와준다지만 몇 년 동안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크다. 이제는 소송을 제기하는 쪽도 영리해져서 회사를 상대로 하지 않는다. SBS MBC KBS를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개인한테 건다.   변성중 : 소송을 당한 기자가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으니까, 상대방을 시달리게 하려는 목적으로 소송을 내는 것 같다.   양두원 : 관저 촬영을 못하게 한 현행법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후배들에게 하라고 할 수는 없다. 누가 개인한테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라고 할 수 있겠나. 위법성 조각 사유가 인정된 전례를 믿고 취재하고 있는 상황인데, 취재 건마다 법적 해석이 다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윤원식 :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시도 때 YTN 국장단은 정문만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방송사 입장은 어떤가?   양두원 : 처음에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타사에서 어떤 그림이 나가면 바로 연락이 오고, 취재기자들도 그림을 쓰기를 원하니 안할 수가 없다. 현기택 : 관저 라이브 당시 우리는 내부적으로 해당 사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현장 장면이 국민들이 알아야 될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찍어놓고 안 쓴 영상이 꽤 있다. 예전 같으면 그림이 있는 걸 알면 바로 연락와서 영상을 쓰자고 했을 텐데,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기로 우리가 결정했다. 그런 판단을 취재기자들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하기 시작했다. 예전하고 조금 달라진 분위기다.   변성중 : 처음엔 불법 촬영이라 다 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3관문이 밀착 취재된 장면이 나오고 아파트에서 부감 찍은 게 올라오고 하니까 우리가 법을 지키겠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부감 장소를 섭외해 놓고 대비를 하고 있다. 현기택 : 영상기자들에게 현행법을 어기고 취재하라고 시키려면 취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가 모든 걸 끝까지 책임진다는 내용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지금은 개인을 대상으로 소송이 제기되는데, 전혀 다른 성향의 사장이나 보직자가 오면 결국 힘든 건 당사자뿐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기자에게 소송과 법적 처벌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취재자유의 위축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헌재 선고일 앞두고 ‘초긴장’… 양두원 : 헌재 최종 변론 기일을 앞두고 준비하고 있다. 계엄 당일이나 윤 대통령 구속 당시에 비하면 조금 덜 긴장하고 있지만, 헌재 탄핵 심판 선고일은 사실 벌써 걱정된다.   현기택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에 압사 사고 등으로 사망자가 여럿 나왔다. 헌재 선고일도 그렇고, 탄핵심판 청구가 인용돼 조기 대선을 치를 경우 그 상황도 걱정이다. 윤원식 : 군중심리가 정말 무섭다. 박근혜 탄핵 때 헌재 앞을 취재했는데, 탄핵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눈빛이 변하더니 “헌재로 몰려 갑시다” 하면서 군중을 선동하더라. 그때 사람들이 흥분해서 버스를 흔들고 그러다 스피커가 떨어져 2명이 깔려죽기도 했다. 양두원 : 특히 지금은 유튜버가 있다. 유명한 극우 유튜버 몇몇이 사람들을 선동하면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비상계엄’에 가려진 아리셀 화재・여객기 참사・환경 뉴스… 지역방송에선 한때 지역 뉴스 사라지기도 현기택 : 비상계엄 때문에 가려진 사안도 있었다. 아리셀 화재가 발생하고 일주일 뒤에 시청역 교통사고가 터졌다. 사망자는 아리셀 화재가 훨씬 더 많은데, 외국인노동자들이어서인지 뉴스가 묻힌 느낌이다. 내란 사태 와중에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도 내란 사태가 없었다면 좀 더 집중 보도되고 있을 것이다.   양두원 : 환경 뉴스도 사라진 아이템 중 하나다. 역대급 폭염에 11월 폭설이 있었지만 기후와 관련한 아이템을 거의 보도할 수가 없다.   변성중 : 노벨문학상도 상대적으로 조명을 못 했다. 당시 현지 취재를 다녀왔는데, 국내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언제 들어가야 하나 불안하기도 했다.   양두원 :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이 다 이쪽에서 취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요즘 사건 뉴스가 없다. 사회에서 미담이나 의미있는 일을 취재해서 보도할 여력 자체가 지금은 없는 상황이다.   이시영 : OBS는 지역 방송이기 때문에 항상 메인 뉴스에 경기・인천 뉴스가 3~4 꼭지씩 나갔다. 그런데 비상계엄 이후 지난 두 달 동안 지역 뉴스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중앙에서 발생하는 리포트를 쓰다 보니 지역 뉴스가 다 없어졌다가, 요즘 다시 지역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워낙 큰 이슈이다 보니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지역 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지역 뉴스를 다뤘어야 했다. “영상기자 르네상스 시대… 취재부터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장점 살려 성장하길” 이시영 : 신입 때부터 영상기자는 촬영, 편집, 구성 등 다 잘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후배들에게도 같은 얘기를 해주고 있다. 요즘 유튜브나 뉴미디어 쪽을 하다 보니 편집에 종편 과정까지 다 한다. 영상기자라면 소스를 생산하고 가공해 내보내는 것까지 전부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는 뉴스 편집 위주로 배웠는데, 요즘에는 후배들이 편집, 디자인, 자막, 제목 달기 등 모든 과정을 다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   양두원 : 항상 가르쳐야 하고 부족함이 느껴지는 그런 후배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큰 사건을 닥쳐보니 되게 믿음직스러운 부분이 있어 놀랐다. 특히 라이브, 드론 같은 장비에 대한 습득력 등은 젊은 기자들이 더 좋다. 현장에서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훨씬 더 다이나믹하게 잘 하고 있더라. 이 친구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안 들 정도로 시스템 내에서 잘 성장했다.   현기택 : 올해 들어 후배 영상기자들에게 ‘제2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다. 하는 일이 다양해졌고, 우리한테 거는 기대도 생겼다. 장비도 다양해지고 사건도 많이 벌어지고 유튜브도 생기면서 한때 취재 부문의 스텝 역할 정도로 생각했던 영상기자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재능있는 후배들이 한국에서 영상기자라는 직업이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   정리=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5-02-27
  • 12.3 계엄·탄핵의 현장에서 담아낸 국민승리의 역사
        [계엄·탄핵 현장기자 긴급 간담회]   12.3 계엄·탄핵의 현장에서 담아낸 국민승리의 역사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부터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14일까지 한국 언론들은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었다. 가족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기자도, 지인들과 회포를 풀던 기자도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한밤중에 소속 언론사와 현장으로 집결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로 급박했던 상황이 일단락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지난 14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시민들의 염원은 이뤄졌고, 언론도 비상 근무 체제를 마무리하고 헌법재판소 판결과 대통령 수사 등 새로운 국면을 맞아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긴박했던 11일 동안 현장 곳곳을 지키며 역사를 기록한 영상기자들에게 당시 상황과 소회 등을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계엄-탄핵 사태 간담회는 지난 16일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의 사회로 온라인 줌(Zoom)으로 진행됐으며, 8개 방송사 기자 13명이 참여했다. 다음은 간담회 참석 기자 명단이다. - 편집자 주     <국회 출입기자> 현세진(OBS) 박현철(SBS) 임채웅(MBN) 박재현(JTBC) 박장빈(KBS) 이정석(G1)   <국회 밖 취재 및 탄핵 시위> 지선호(KBS) 윤형(SBS) 최대환‧전인제(MBC) 김대호(JTBC)   <지역 취재> 진은석(MBN) 박은성(KNN)     ▲ 12월 3일 밤과 4일 새벽, 국회본관으로 들어 오려는 계엄군을 국회 보좌진들이 막고    있고, 이 상황을 영상기자와 취재진들이 취재하고 있다. G1방송 이정석 기자 제공     나준영: 지난 3일부터 오늘까지 2주 동안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간담회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비상계엄 사태 속에서 영상기자들은 굉장히 바쁘게, 위험하게, 또 어렵게 취재를 해왔다. 계엄 사태가 지난 14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1차적으로 마무리된 만큼 우리가 이 상황을 논의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안팎에서 현장 취재를 하셨던 분들부터 당시 상황을 말씀해 달라.   말로만 듣던 계엄 소식에 바로 국회로… 경찰 피해 담장 넘어 들어가   박현철 : 대통령이 주요 발표가 있다고 해서 방송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계엄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국회반장에게 전화해 우리가 국회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하고 김포 집에서 바로 국회로 갔다. 국회에 도착하니 벌써 시민들이 와 있고 머리 위에는 헬기가 떠다니고 특전사 병력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도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해 상대적으로 담이 낮은 곳을 찾아 넘어들어갔다.   박재현 :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다가 계엄 소식을 듣고 국회 2풀단 전체 방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오라고 공지한 뒤 바로 국회로 출발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국회 후문 쪽은 출입증만 있으면 용이하게 들어갈 수 있어서 나는 본청 외부 상황을 맡고, 2진은 로텐더홀 내부 상황을 맡았다. 미처 들어오지 못한 두 명은 장비가 없어 밖에서 휴대폰으로 촬영하다가 한 경찰이 담이 낮은 쪽으로 넘어가라고 알려줘 안으로 들어와 취재를 했다.   임채웅 : 마포 쪽에서 회사 선배들과 모임을 하다 연합 기사를 봤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걸 보고 이게 이 시대에 과연 어울리는 단어인가? 처음엔 안 믿어졌다. 영상에서 본 80년 계엄군 이미지가 생각났고, 본능적으로 국회로 가야 한다고 판단해 지하철을 타고 갔더니 정문을 통제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통제 현장을 스케치하는데, 한쪽에서 담을 넘고 있더라. 그래서 취재기자랑 국회 관계자가 서로 도와 같이 담을 넘는데, 취재기자는 경찰에 잡히고 나만 안으로 들어왔다. 소통관으로 달려가보니 문이 잠겨있었고, 열쇠를 들고오는 KBS 박장빈 기자를 만났다. 박 기자와 둘이 기자실 문을 열고 장비를 챙겼는데, KBS 오디오맨이 우리 장비도 같이 챙겨줘서 본청으로 출발했다.   박장빈 : 집에서 갓난아기를 재우고 밥을 먹으려다 최대한 빨리 국회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다. 기자들이 드나드는 3문 쪽은 이미 경찰차벽으로 다 막혀있고 혼잡한 상황이었다. 회사에 차를 놓고 국회로 뛰었고, 아직 경찰 통제가 심하지 않을 때라 운 좋게 국회 출입기자임을 밝히고 들어갔다. 국회 정문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국민의힘 당사로 가라고 해서 국회를 나왔다. 하지만 당사 상황이 다 끝나 국회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는 문이 막혀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국회 밖에서 문별로 상황 스케치를 하는데, 국회의원도 못 들어가게 막는 걸 봤다. 90년대생인 내 입장에선 처음 겪는 계엄인데, ‘이런 게 계엄이구나, 계엄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석 : 집에 있다 계엄 기사를 보고 택시타고 국회로 갔다. 서울교 쪽은 진입이 불가해 여의하류 쪽으로 방향을 틀어 국회 뒷문으로 들어갔다. 소통관에서 장비부터 챙겨 오디오맨 없이 국회 정문, 헬기, 계엄군 진입 등을 촬영했다.   언론통제내용 담은 포고문에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들어   나준영 : 국회팀은 아무래도 국회 일을 취재하다 보니 비상계엄의 심각성을 잘 알고 그래서 급하게 국회로 온 것 같다. 그 외 사회나 경제팀 기자들은 비상계엄 상황을 접했을 때 회사가 안전한지 등 여러 걱정이 들었을 것 같다.   지선호 : 집이 국회 앞이라 데스크 전화를 받고 회사로 가 MNG(영상무선송출장비)를 챙겨 국회 정문을 커버했다. 시민들은 속보를 보고 몰려오고 있고, 경찰이 정문을 통제하면서 시민과 대치하고 있는데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이 사태를 내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뭘 어떻게 찍어야 할지, 국회 정문이 아직 열려 있을 때 내가 들어가서 내부 취재를 도와야할지, 그냥 바깥쪽을 커버해야 할지 등 상황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엄이라는 얘기를 듣고 회사에 도착했을 때 KBS가 국가기간방송사고 국회 바로 옆에 있으니 계엄군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군인들 모르게 숨겨서 찍기 좋은 ‘오즈모 포켓 3’를 몰래 품에 넣고 있었다. 그런데 KBS가 계엄사령부의 주요 타깃 언론사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부끄럽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윤영 : 막내급 취재기자와 국회 앞으로 가면서 긴장감 속에 계엄 포고령을 봤다. 언론을 통제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우리 취재활동을 어떻게 제한할까 조금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환: 집이 멀어서 다음날 나오라고 했는데, 포고령을 보니 언론도 통제를 한다고 해서 혹시나 군대가 방송사에 오지 않을까 해서 자발적으로 나갔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계속 특보를 보면서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전인제 : 관악서 음주단속을 취재하고 복귀하는 길에 최대현 기자가 링크를 보내줘서 상황을 알게 됐다. 북한과의 전쟁이 일어났거나 독재를 위한 수순일 텐데, ‘종북 반국가 세력 처단’이라는 내용을 보고 독재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정문은 아직 철문이 닫혀 있지 않았지만 경찰들이 스크럼을 짜고 막고 있었는데, 모여있던 시민들이 ‘출입기잔데 들여보내줘라’라고 하면 간간이 들여보내주는 상황이었다. 나도 안에 들어가서 취재해야겠다고 판단해 안쪽을 커버했다.   나준영: 지역에서도 상당히 놀랐을 것 같고 다음날까지 상황이 이어졌을 것 같은데 어땠나.   진은석 : 계엄 선포 직후 장갑차가 어디에 있다더라 하는 얘기가 돌았다. 실제 확인해 보니 다 가짜였다. 다음날부터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경남·창원에서는 서울처럼 계엄 찬성 대 반대가 아니라 모두 계엄은 잘못됐다는 의견이었다.   박은성 : 부산은 국회랑 거리가 멀다보니 회사로 집결하지 않고 각자 새벽까지 상황을 모니터링했다. 계엄령이 철회되고 부산도 이튿날부터 바로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취재를 나가면서도 인원이 얼마나 모일까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라. 국민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나왔구나 생각했다.   무장한 군인들과 마주치자 계엄 실감…두려움‧공포 속에 “내가 기록하는 모든 게 역사가 될 것” 사명감으로 촬영   나준영 : 계엄 직후 현장에서 계엄군이 들어오는 걸 직접 보고 이를 저지하는 시민들과 본관을 지키려는 상황 등을 취재하면서 두려움도 느꼈을 것 같다. 혹시 위험했던 상황은 없었는지 얘기해 달라.   임채웅 : 담을 넘을 때부터 두려움을 느꼈다. 계엄이 성공해 담 넘은 사람들, 언론사나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다 처벌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야 한다는 게 더 커서 담을 넘었다. 정문을 사이에 두고 바깥쪽을 보고 있는데, 시민들이 빠르게 모이고 있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본청에 가보니 계엄군들이 본청 밖을 다 둘러싸고 있었다. 미친 군인이 사다리에 올라가서 취재하는 나한테 총을 쏘는 건 아닌가, 카메라를 향해 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이정석: 국회 정문에서 취재 중인데 헬기 소리가 들려 본청으로 부랴부랴 뛰어가면서 ‘이런 상황 자체가 미친 거 같다’는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본청 앞에 도착한 뒤 군인들이 몰려오면서 시민들, 보좌진들과 과격하게 몸싸움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공포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고, 내가 기록하는 순간마다 모든 것이 역사가 될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촬영에 임했다.   박재현 : 본청 정문 쪽 외곽을 취재하는데 군인들이 몰려왔고, 이게 진짜 계엄이라는 걸 그때 실감했다. 일반 군인이 아니라 특수부대원이 오니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총 종류가 너무 많고 내가 보지 못한 총도 있어서 이걸 보줘야겠다는 생각에 무기나 몸에 지니는 탄창 같은 걸 계속 촬영했다. 잠깐 쉴 때면 총을 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겼지만 이 상황을 빨리 찍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계속됐다.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드디어 국회에 진입하는구나, 진짜 큰일나겠구나 싶었다. 발포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많이 두려웠다. ‘빨리 찍어서 송출해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뭘 했는지 모르게 몰입해서 취재했던 것 같다.   임채웅: 나도 취재할 때 군인들 장비에 집중했는데, 이게 정말 위험하고 자극적이고 나중에 중요한 그림이 되겠다 싶어 무기를 하나씩 일일이 스케치했다. 아카이브에서 기사를 쓰는 분들은 탄약통도 찾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병사 한 명 한 명, 또 그룹이 있으면 그룹별로 웬만하면 다 스케치하려고 노력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취재한 것 중에 김현태 단장 그림도 있어 뒤늦게 보도되는 걸 보면서 보람도 느꼈다.   현세진 : 본회의장을 혼자 맡아, 표결 상황을 취재하고 실시간 송출했다. 처음엔 계엄군이 장비를 다 갖추고 문을 사이에 두고 보좌진들과 대치중인 상황이어서 자칫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엄군이 밖에서 문을 잠그고 서성이는 모습에 적극적으로 진압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처음엔 본회의장이 막혀 있었는데 의원들이 들어가면서 취재 허가가 나서 급하게 본회의장에 자리를 잡고 취재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쪽 의원석은 거의 다 찬 상태였고 국힘 쪽은 한동훈 대표를 포함해 10여 명 정도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계엄 해제 표결이 만장일치로 끝나는 걸 취재해 송출하게 됐다.   나준영: 계엄군이 적극 진압을 할 의도가 없어 보인다고 했는데 취재 사다리를 걷어차 취재를 못하게 된 상황도 있었다고 들었다. 혹시 그런 상황을 겪은 분들이 있나.   전인제 : 군인들 일부가 창문 안쪽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더니 갑자기 조금 깨진 창문을 완전히 다 깨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창을 넘어 국회로 진입하는 계엄군과 이를 막으려는 시민들이 뒤엉킨 상황을 취재 중인데, 계엄군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다리를 빼앗아 도망가 버렸다. 사다리를 타고 취재진과 시민들이 국회 안으로 들어올까 싶었던 것 같다. 계엄이 결국 군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니 군인들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뒷문으로 계속 들어오는 군인을 취재하다가 군용물품을 적재하는 모습을 촬영하게 됐다. 찍지 말라고 내 카메라 앞을 손으로 움켜쥐기도 하고, 라이트를 쏴서 아예 못 찍게 하거나 군인들로 벽을 만들어 가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현장엔 나 혼자여서 연행을 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너무 겁 없이 취재했나 싶기도 하고, 80년대 계엄이었다면 계속 취재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한테 했던 계엄군의 행동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였던 것 같다.     ▲ 12월 3일 밤 계엄군이 국회본관 진입을 위해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의 창문을 깨고 있다.  사진제공 MBC 전인제 기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엄군을 몸으로 막은 시민과 보좌진들, 계엄사태 세상에 전한 영상기자들, 내란을 막은‘숨은 주역(Unsung Hero)’     나준영: 취재하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말씀해 달라.   박장빈 : 국회 정문으로 군용 미니버스가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 시민이 겁도 없이 차량 바퀴 앞에 눕더라. 어떤 두려움 없는 용기가 났는지, 우리나라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주저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보고 시민의식을 느꼈다.   박현철 : 국회방송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시간, 국회 담당 영상기자들이 MNG송출장비를 소지하고 안에 들어가서 국회에서 계엄 해제 투표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단독생중계했다. 방송을 보고 계엄사령부에서도 계엄이 해제됐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했다고 본다. 계엄군들도 자기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모습을 라이브방송을 통해 보고 과연 명령만을 따를 것인가, 지금까지 배우고 체득한 민주주의에 대해 떠올리고, 계엄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것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카메라 뒤에서 우리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태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역할을 한 숨은 주역 ‘Unsung Hero(자기희생적 행위를 통해 훌륭한 업적을 이루고도 유명세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정석: 빠르게 진입하는 계엄군을 막으려고 보좌진들이 테이블로 문을 막고 내 뒤편에서는 한 보좌진이 소화기를 발사했다. 그 손만은 꼭 촬영하자는 마음에 카메라에 소화기 분말가루가 묻었지만 계속 찍었다. 군인들이 잠시 뒤로 물러나자 남성 보좌관이 여성 비서관한테 ‘위험하니 피해 있으라’고 했는데, 그 여성분이 ‘함께 싸워야죠. 민주주의를 지켜야죠.’라고 얘기하는 걸 보고 여러 보좌진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국회 1,2,3풀 기자단, 경쟁 넘어 ‘전체 풀’ 결의 …“위기 상황인 만큼 경쟁보단 협업”   나준영: 취재한 영상들을 1, 2, 3풀이 다 풀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던데.   이정석: 본청 진입하니까 기자단 안에서 전체 풀로 간다면서 본관 정문을 지켜달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풀단 사이에 단독보도 경쟁을 할 텐데 이날은 급박하고 위기 상황인 만큼 협업을 하자고 해서 취재위치와 영상을 전체풀(pool)하기로 했다.   나준영: 계엄 사태가 해제되고 4일부터 시민들이 응원봉과 촛불을 들고 나와 거대한 항쟁을 시작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면서 받은 느낌이나 생각을 말해 달라.   윤영: 국회 앞에 여러 번 취재 갔는데 아이돌 공연장같이 노래가 들리고, 젊은 층, 여성 비율이 약간 높았다. 그래서인지 2030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사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젊은층과 학생들이 많이 나왔고, 그래서 청년과 여성의 정치 참여가 새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언론이 이들의 정치참여와 사회적 목소리에 관심두지 않다가) 이런 현상이 새로운 것처럼 얘기되는 건 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호: 2주 연속 여의도 국회 앞에 취재를 나왔는데, 평소 취재하던 집회보다 규모는 훨씬 크지만 경력은 적고, 평화로운 분위기라고 느꼈다. 다른 집회에서는 가요를 개사해서 트는 경우가 많은데 케이팝을 그대로 트는 걸 듣고 처음엔 두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이것도 새로운 하나의 시위 문화로 정착하는 거 같아 소중한 경험을 했다.   최대환: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컸지만 충돌 없이 지나가는 걸 보면서 그걸 표출하는 방식이 성숙하지 않았나 싶어 인상깊었다. 인터뷰할 때 ‘탄핵될 때까지 끝까지 계속 나오겠다. 우리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 시민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지선호: 이번처럼 상황이 가장 안 좋고 극단적이었음에도 시민들이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한 적은 없었다. 전엔 흥분한 시민들이 평소 맘에 안 드는 방송사의 카메라를 보고 달려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모습이 굉장히 적었고, 서로 자제하면서 취재진을 보호해 주는 모습도 있었다. 왜 이럴 수 있었는지 원인을 생각해 보면, 박근혜 탄핵 때와 달리 시민들이 유튜브나 방송사를 실시간 시청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의원들이 담을 넘어 국회로 집결하고 있고, 의결 정족수를 채워가고 있고, 뭔가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알고 정보가 차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의 계엄해제안이 가결되겠다는 희망을 갖고 차분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계엄사령부가 전략적으로 통신을 끊는다면 그래도 이런 시위 문화가 가능할지 질문해 본다.   박은성:부산 시민도 굉장히 많이 모였다. 우리 팀 내에서도 영상취재하면서 많이 놀랐다. 부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모인 게 고무적이었다. 박근혜 탄핵 때와 다르게 응원봉을 갖고 나와 신나는 분위기로 어울리는 게 새로웠다. 즐기면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기회가 되었는데, 지역에서 이런 경우가 없다 보니 우리도 크게 다뤘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영상기자 존재 의미 증명…일상 취재에서의 차별성 고민해야 나준영: 1980년 5.18, 그 전에 있었던 12.12와 5.17의 경우엔 직접 영상으로 현장을 담는 게 차단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외신이 취재한 영상을 통해 진실을 알아내고 그 분노가 모아져 87년 6월 항쟁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우리가 영상을 통해 비상계엄 상황이 생중계되고 계엄 해제와 시민항쟁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었다. 현장의 영상기자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느낀 영상 저널리즘의 가치와 영상기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말해 달라.   전인제 : 계엄 방송 전에는 기성언론이 위기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번 상황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훨씬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현장에 가기 때문에 더 깊이, 더 다양하게, 더 넓게 볼 수 있는 게 우리다. 아무리 디지털 플랫폼이 성장해서 개인화된다 하더라도 주요 언론들이 남아낸 영상들은 계속해서 역사적 자료로 잘 활용될 것이다.   김대호: 몸은 힘들었지만 역사적 순간에 시민들과 함께 있어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이런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 존재 의미가 증명되지 않았나 싶다.   박은성: 현장의 모습을 거짓 없이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영상기자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윤영: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못 들어가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현장을 지키고 취재보도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선호: 국회의장이나 야당 대표가 직접 담을 넘는 것을 셀프중계하거나 보좌진이 찍어준 그림으로 보도가 많이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직접 찍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현장을 수집만 잘 한다고 될 것인가 고민이 들었다. 또, 사후 취재를 하는 상황에서 영상취재가 두드러지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역설적으로 영상취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박장빈: 기자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현장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기자 생활하면서 영상기자로서 이보다 더 가치있는 영상에 대한 기록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한 마음으로 열심히 기록한 시간이었다.   나준영: 마지막으로 앞으로 상황에 대한 전망이나 바람을 밝혀 달라.   박재현: 국힘은 상당히 어수선한 상황이고, 국회도 어지러운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급박한 상황을 많이 겪으면서도 이번에 조금 흥분하고 냉정하지 않은 면이 있었던 것 같아 앞으로 그런 역량을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국회도 차분하게 흘러갔으면 한다.   현세진: 계엄이 발표되고, 국회에서 해제 표결이 1시쯤 이뤄지고 군인들이 물러나면서, 이렇게 쉽게 계엄이 끝날 걸 왜 했나 의문이 남는다. 이제 법적 절차에 따라 신속한 헌재 판결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임채웅: ‘국민의 힘’이 질서 있는 퇴진을 얘기했는데 과연 질서라는 게 무엇인가. 국회에서 탄핵안을 가결했으니 헌재로 공이 넘어갔고, 법에 명시된 대로 절차를 따라가는 게 질서 있는 퇴진이라고 생각한다. 대선을 언제 다시 치를지 어떨지 모르지만, 법에 따라 질서 있는 모습대로 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때를 대비하고 취재해야 할 것이다.       정리=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12-20
  • 시민이 지킨 민주주의, 그 현장에 영상기자가 있었다
    시민이 지킨 민주주의, 그 현장에 영상기자가 있었다 목숨 걸고 영상으로 알린 ‘12.3 비상계엄’                                     ▲ 지난 12월 14일 오후 국회본회의장. ‘12.3계엄내란사태’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2차 탄핵소추안투표가 진행되었고, 이어진 개표작업을 국회출입영상기자단이 취재하고 있다.   ▶ 충격, 분노, 공포, 그리고 희망.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밤 10시28분의 특별담화부터 탄핵안이 가결된 14일 오후 5시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이 느꼈을 심정이다. 계엄 선포 직후부터 지금까지 시민들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시민들의 ‘승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장영상의 중요성과 영상기자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 을 내놓고 있다.  ▶ 계엄의 밤…담 넘어 국회로 간 영상기자들, ‘통풀(전체영상풀)취재’ 결의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이 타전되자마자 방송사 보도국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특히 계엄 선포와 동시에 들이닥칠 계엄군의 모습 등 현장을 담아야 하는 영상기자들의 움직임은 더욱 바빴다.영상기자들은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가 모두 끝난 시간이라 대부분 퇴근해서 집에서 쉬거나 연말 모임 중이었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영상취재 데스크는 “‘내용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뭔가 급하게 발표하는 것 같다’고 해서 집에서 나와 회사로 가는 도중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걸 알게 됐다”며 “회사로 가는 차에서 각 출입처부터 연락을 돌려 ‘계엄이 선포됐으니 출입처별로 정위치하라’고 지시하고, 회사에 도착해 영상취재부 전체 카톡 방에 ‘계엄으로 전원 출근 요청하니 현재 위치에서 회사에 복귀해 달라’고 긴급 공지를 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로 가면서 ‘혹시 장갑차나 탱크가 와 있으면 어쩌나’, ‘계엄군이 회사에 들이닥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회사에 들어갈 방법을 고민하면서 갔다”고 당시 소회를 털어놨다.   종합편성채널의 영상취재 데스크도 “대통령 팀에서 담화 발표가 있다고 보고가 올라와 준비하고 있는데, 계엄 발표를 보고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며 “재난이 터지면 기본적인 매뉴얼이 있는데 계엄 상황은 처음이라 영상기자 전원과 오디오맨, 취재차량 기사분들에게 출근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회사에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전송 장비를 지참시켜 주요 포인트에 내보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국회, 대통령실, 국방부, 광화문, 서울역, 남태령 등 주요 취재 포인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현장은 국회였다. 기자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 병력이 스크럼을 짜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고, 시민들이 운집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계엄군도 진입했다. 장비 없이 도착한 영상기자들은 우선 휴대전화로 현장 상황을 촬영하면서 국회로 진입할 방법을 모색했고, 상대적으로 경비 가 허술한 쪽의 담을 넘어 들어가기도 했다.  한 영상기자는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과 국회 관계자들, 계엄 소식을 듣고 나온 시민들, 계엄군 등이 뒤엉켜 있었다”며 “경찰이 정문 철문을 닫고 국회의원들까지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취재팀 4명 중 두 명밖에 못 들어갔다”고 전했다.   비상계엄이라는 사안의 중대함, 기자들이 현장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 등을 고려해 국회 영상기자단은 결단을 내렸다. 바로 각사에서 취재한 영상을 모두 공유하는 ‘통풀(1,2,3 풀단 전체풀)'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국회를 담당하는 SBS 박현철 기자는 “국회는 원래 1, 2, 3풀이 다 따로 취재하는 게 원칙인데 그날은 국가적으로 너무 중대한 상황인데 반해 (취재 인력이) 소수 인원만 있었다”며 “현장을 감당하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풀단 총간사를 비롯해 전체 풀로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 방송사 데스크는 “국회 출입기자들이 모두 라이브를 하는 상황에서 영상기자들이 전체 풀 시스템을 가동했다”며 “각사의 이익을 배제하고 전체 풀이 되었기 때문에 상황마다 현장 그림들이 많이 들어왔고, 당시 상황을 국민들에게 잘 알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각, 대통령실 상황도 급박하게 돌아갔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한 영상기자는 “긴급 담화가 있다고 해서 각사 영상기자들이 나와 있었는데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해 출입기자들이 나온 회사들부터 생방송을 시작했다”며 “계엄 직후엔 출입 통제를 하지 않았는데 자정 즈음부터 기자들도 출입을 통제해 그 시간 이후로 온 기자들은 아예 들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MBC의 경우 국방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잠깐 나갔던 기자가 출입 통제로 들어오지 못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출입 통제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된 뒤 풀렸다.  ▶ 계엄 내란사태에 가려진 한국최초 노벨문학상 취재   한편, 해외에서 계엄 소식을 접한 기자들도 있었다. 특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을 취재하기 위해 출장 중이던 여러 방송사의 취재진은 해외에서 갑작스레 전해진 계엄령 발표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출장 취재진의 한 명이었던 MBC 김희건 기자의 경우, 스톡홀롬으로 향하던 중 경유지인 뮌헨에 내려 계엄 소식을 접했다. 김기자는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현장취재하기 불과 몇 시간 전인 3일 낮, 서울을 출발해 동료들과 스웨덴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 기자는 “뮌헨 공항에서 계엄 소식을 접하고 한국으로 바로 복귀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다행히 스웨덴에 도착하니 계엄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언제라도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한강 작가의 취재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또 “계엄 사태로 스웨덴 총리와의 회담이 무기한 연기되어서인지 MNG용 유심카드를 사러들어간 핸드폰 통신사 관계자가 우리에게 ‘괜찮냐?’고 물을 정도로 현지인들이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잘 알고 걱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문학팀에서 굉장히 공들여 사전취재준비를 많이 했고, 개별기획아이템을 위해 섭외해 놓은 것도 많았는데, 특보 체제여서 뉴스 말미에 한 두 개 정도 리포트만 방송되어 개인적으로 아쉽다”면서 “디지털 뉴스로라도 소화해 보려고 했지만, 화장실도 못갈 정도로 인력이 부족해 특보 외에는 편집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일부 콘텐츠만 현지에서 가편집해 디지털 뉴스로 내보냈다”고 전했다.  ▶ 총리실 출입기자단 ‘대통령급 취재체제’로…대통령실 기자단은 헌재로    국회는 지난 14일 본회의를 열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재적 의원 300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세 번째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비상근무 체제로 긴박하게 움직이던 언론사들도 평시 체제로 전환되고 윤 대통령 수사 상황과 헌법재판소 동향 등에 주목하고 있다. 또, 윤 대통령의 업무 정지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으면서 총리실 취재분 위기는 대통령급 취재체제로 전환되었다.   총리실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총리실 영상기자단은 평소 1풀 6명, 2풀 4명, 3풀 2명 등 3풀 12명으로 운영해 왔다”며 “한 총리의 지위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격상되면서 경호 체제가 대통령급으로 바뀌다 보니 출입기자와 오디오맨 등의 신원조회를 다시 실시했고, 경호 인력이 늘면서 외부로 나가는 경호 관련 엠바고가 많아졌다”면서 “총리 시절엔 주간 일정이 미리 올라왔는데 지금은 일정 조율할 곳이 많아 수시로 변동되는데, 총리실 쪽에서도 기자들에게 당분간 일정과 관련한 부분을 미리 공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업무 정지로 관저에 머물게 되면서 취재 인력 일부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대통령실을 취재하는 한 영상기자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청와대 출입기자단 일부를 헌법재판소에 배정했었다”며 “이번에도 12개사 36명이 3풀로 운영해 오던 대통령실 기자단을 나눠 현재 12명이 헌재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 ‘위기의 역사’ 한가운데서 영상기자의 존재와 역할 재조명   비상계엄 상황을 사회적 혼란 없이 막아내고 탄핵안까지 가결할 수 있었던 힘은 시민들로부터 나왔다. 시민들은 계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국회의사당을 직접 찾아 기자들과 함께 현장 상황을 전했고, 현장에 나오지 못한 시민들은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계엄군 국회 진입 등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계엄 철폐를 촉구했다. 시민들은 계엄 해제 직후 여의도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열린 시위에 참석해 대통령 탄핵 가결을 촉구했다. 비상계엄 국면에서 디지털을 통한 시민 참여와 함께 언론의 영상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비상계엄 선포 직후와 윤 대통령 탄핵안 투표일에 MBC, JTBC, 오마이TV 등 언론사는 유튜브에서 상위를 차지했다. 특히 MBC는 이 기간 ‘뉴스특보’ 수도권가구시청률이 11.4%, 순간시청률은 27%까지 오르기도 했고, JTBC 역시 메인 뉴스 ‘뉴스룸’ 시청률이 6.7%로 올라  201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MBC 정우영 뉴스영상2팀장은 “TV로 뉴스를 시청하지 않는 시대임에도 국가적인 큰 이벤트나 사건이 발생하면 아직은 TV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며 “문자 매체와는 달리 방송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 현장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인데, 가장 생생한 모습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 열심히 뛰었고 이런 부분이 잘 발휘되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다른 방송사의 영상기자도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상황에서도 방송 뉴스와 유튜브를 통해 계속 라이브를 진행했다”며 “현장을 담아야 하는 영상기자는 이런 상황에서 제일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언론학회는 16일 낸 입장문에서 “탄핵소추안 가결은 국민이 이겼고, 민주주의가 이겼고, 언론의 자유가 이긴 것”이라며 “계엄 순간부터 탄핵 결정에 이르기까지, 폭력의 억압에 저항하며 치열하게 진실을 기록하고 증언한 언론인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밝 히기도 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영상기자들이 영상을 통해 사안의 핵심과 중대성, 심각성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시민들의 힘이 결집되고 발휘될 수 있었다”며 “1인 미디어를 비롯한 시민 미디어의 정보 생산과 유통 및 공유가 전통적인 영상기자의 고유한 역할과 더불어 시민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어 육군 특수전사령부 김현태 707특임단 단장이 지난 9일 전쟁기념관 앞 거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 “비상상황에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기자회견, 즉 영상기자의 카메라 앞이었다는 점은 미디어 환경이 변해도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 저널리즘의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 영상기자의 존재와 역할은 여전히 의미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이번 사태는 영상기자란 누구이고 어떤 사회적 책무를 갖느냐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사건”이라며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했을 때 영상기자들은 가장 위험한 현장의 최전선에서 취재 보도하면서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저널리즘을 위해 고 군분투했다”고 밝혔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12-20
  • 2024년,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는 영상기자’
    2024년,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는 영상기자’   몇 년 전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영상기자’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탈고를 마칠 즈음, 책의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뉴스 현장의 최일선에서 이 시대 사람들이 겪고 느끼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영상으로 기록해 전달하는 우리 직업을, 사람들의 가슴 속에 탁 와닿는 한 두 마디의 말로 조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뉴스의 전달, 소비 방식이 TV에서 온라인, 모바일로 크게 변화했고, 우리의 업무도 다양하게 확장, 변모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포괄하는 하나의 개념을 찾아 표현하는 것이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때 떠오른 단어가 ‘역사’였습니다.    신입 영상기자로 보도국에 처음 출근한 날 어느 선배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여러분이 매일 매일 카메라로 담아내는 뉴스가 오늘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선배의 근엄한 말씀에 ‘예술적 특성을 가진 ‘촬영’이라는 행위와 그 결과물인 ‘영상’을 ‘뉴스’라고 하는 ‘저널리즘’과 연관시키기 위해, ‘역사’라고 하는 너무나 거창한 단어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영상기자로 일하다보니, 어느 순간 그 선배의 말씀이 우리 직업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설명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루를 기록하는 일기의 의미를 갖는 라틴어‘디우르나(diurna)’ 라는 말에서 기원한 ‘저널리즘(Journalism)’은 오늘을 기록하고 전달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기록의 나라-조선’을 만든 ‘조선왕조실록’은 매일매일 왕과 신료, 정부의 활동과 조선팔도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사초(史草)에 기반 해 정리되고, 편집되었습니다. 사초를 쓰고 정리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왕에게 백성의 목소리를 전하고, 관료들의 부패와 실정을 알림으로서 왕의 통치행위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기관을 언론삼사(言論三司)라고 불렀고, 그 임무를 받은 자들을 통칭해‘언관(言官)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활동을 시스템으로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민심을 전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역사의 기록자들이 진실에 눈을 감고 붓을 꺾을 때, 또, 이들을 왕과 권력의 힘으로 억누르고 탄압할 때, 그 결과는 시대의 비극으로 끝났음을 조선왕조실록은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2024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동과 혼란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故채해병사망사건의 진상규명 요구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인한 특검법의 잇단 좌절’, ‘이종섭 전 장관 호주대사 임명 논란’, ‘명태균씨 폭로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무혐의 종결’,  ‘22대 총선, 여소야대와 잇단 청문회’, 그리고, ‘12.3 계엄내란사태와 국민저항’,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까지, 어느 하나도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대격변적 사건들을 뉴스 현장의 한가운데서 마주하며, 영상기자 한 명 한 명은 굽힘없이 ‘오늘’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12.3 계엄 내란 사태’상황 속에서, 무장한 계엄군의 총과 무력에 주눅 들지 않고, 현장의 영상기자들이 함께 연대해 계엄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며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실시간으로 그 진실을 세상에 고발했습니다. 이런 우리의 용기와 노력이 2024년 12월을 1980년 ‘오월광주’로 되돌리지 않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체제를 지키고, 자유와 인권, 평화를 갈망하는 광장의 불꽃으로 살아나는  강력한 동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2024년,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고 전달하는 영상기자’로서 우리가 기록하고 세상에 알린 ‘오늘의 역사’, ‘대한민국의 집단기억’은 다가오는 2025년, 우리 사회가 정의를 바로 세우고, 안정과 평화, 도약과 발전을 만들어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2025년 푸른 뱀의 해, 우리의 카메라에 희망차고 담대한‘오늘의 역사’들이 차곡차곡 담기기를 기원합니다.  회원 여러분, 전국의 영상기자 여러분, 올 한해도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 준 영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  
    2024-12-20
  • 피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피를 잊은 사람들
    [현장에서]           피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피를 잊은 사람들     ▲12월 3일 밤 계엄군이 국회본관 진입을 위해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의 창문을 깨고 있다.  사진제공 MBC 전인제 기자          12월 3일 밤 두 시간 반의 계엄 국회를 다시 떠올려 본다. 국회를 떠나와서도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들이 있다. 경찰이 국회 정문 앞에서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도 갈등을 최대한 잠재우며 통제하던 모습. 군인이 국회 본관 앞에서 내 카메라 렌즈를 움켜쥐던 모습과 함께 촬영하지 말라고 요청하던 모습. 그리고 처음 국회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수십 명의 시민이 두 시간 만에 수천 명의 시민으로 변화하여 국회대로를 가득 채우고 계엄 해제와 대통령 퇴진을 외치던 함성.    이 모습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듣고 읽어서 기억하는 80년 계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던 2024년 계엄은 내 안에서 계속해서 질문이 생겨나게 했다. 과연 80년 계엄이었다면 내가 국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군인들이 국회 본관 창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을까? 천 명의 시민들이 깊은 밤 국회대로 앞에 두 시간 만에 운집할 수 있었을까? 질문하다 보면 항상 아니라는 답을 내리게 됐다. 1980년의 계엄과 2024년의 계엄은 확실히 달랐고 분명히 우리는 과거에서 많이 나아왔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과거 계엄 시기의 피를 기억하는 우리들은 다시 한번 나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스스로가 피 흘리고 쓰러지고 희생되지 않아야 하므로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날 국회에 있었던 군인과 경찰 그리고 시민들까지 모두 충돌이 격해지는 것을 조심했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썼다. 이미 역사 속에서 계엄은 우리 사회에 큰 흉터를 남겼고 이 흉터를 기억하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과거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2시간 37분 만에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됨으로써 과거의 폭력을 기억하고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간절함은 증명됐다.     이 변화를 만들어 낸 중심에는 과거의 흉터를 기억하는 우리의 간절함과 더불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소셜미디어와 스마트 폰이 계엄 국회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이 모습 전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 언론인과 시민들의 카메라가 전파를 타고 흩어져 있는 우리에게 실시간으로 닿았다. 평소 디지털 매체의 발전이 기성 언론에게는 위기라는 말을 들으며 일 해왔지만, 이번 계엄의 상황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위기이기보다 기회였다. 계엄 소식을 빠르게 공유하고 다 함께 극복하기 위한 기회로서 기능했다. 과거 계엄군의 통제로 계엄의 소식을 전달받지 못했던 시기와는 전혀 달랐다. 실시간으로 전달된 국회 하늘 위로 헬리콥터가 날아들고 군이 투입되는 모습, 군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안 복도에 담을 쌓는 모습, 시민들이 하나둘 국회 정문 앞으로 모여들던 모습. 이 모습들은 우리가 서로 힘을 모을 수 있게 만들었고, 지금은 당시의 영상이 내란죄 피의자들의 진술이 사실인지 검증하는 자료로도 쓰이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변화했다는 사실을 서서히 체감하는 며칠 동안 변하지 않은 것 또한 알게 되었다. 12월 3일 계엄 이후 시민들은 다시 한번 선포될지도 모르는 계엄을 두려워하며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매일 거리로 나왔다. 계엄이 해제된 이후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는 대통령을 두려워하며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상정되는 날까지 4일간 시민들은 두려움에 국회 앞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본회의가 열리기 전 대통령은 첫 번째 담화를 발표했고 “임기와 정국 안정 방향을 당에 일임하겠다.” 말했고 시민들은 더욱 불안한 눈으로 국회를 지켜봐야만 했다. 여당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탄핵 표결에 대한 입장을 뒤집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민들의 불안함을 비웃는 듯 여당 국회의원들은 전원 퇴장이라는 방식으로 시민들을 배신했고, 첫 번째 탄핵소추안은 폐기되었다. 집단으로 퇴장해 당내의 소수의견까지 억압하는 폭력적인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의문이 생겼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과거 계엄을 직접 겪은 이들이 어떻게 계엄에 대한 두려움과 평화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간절함을 못 본 척할 수 있었던 걸까? 본회의장을 우르르 떠나는 의원들을 보며 그들이 과거의 계엄에서 우리가 흘린 피를 잊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했다.    군과 경찰, 시민들이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 줄기 희망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전 연락이 닿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흘러가는 말이긴 했지만, 사내에서 집회에 나가는 것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그 말을 듣고 힘이 세고 큰 것들이 그러하듯이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작고 사소한 것에는 무감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일이 단지 국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숨어있고 어떤 순간에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회에서 응원봉과 독특한 깃발들이 등장하며 과거와 달라진 활기찬 집회의 모습을 취재하는 동안 이 행렬에 참여하는 것조차 통제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추운 거리에서 서로 핫팩과 단 것을 나누어 가지고 눈을 마주 보며 공감하는 순간에 함께 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 그와 동시에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 여전히 우리에겐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를 대리해 투표권을 행사해야 했을 의원들이 우리를 대표하지도, 대리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들었지만, 우리를 무능하게 만든 사람들이 우리를 절대 과잉 대표하지 않도록 카메라를 들어야겠다. 며칠 전 국회대로에서 인터뷰 한 어머니가 지하철의 무정차와 버스의 우회에도 유아차를 끌고 나와 아이와 둘이 차가운 거리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정말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좌절 속에서도 일어나 서로를 지키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사실이 증거로서 남을 수 있도록 현장을 기록해야겠다.         MBC 전인제 기자       
    2024-12-19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별세미나-  ‘전쟁 너머 또 다른 전쟁 : 분쟁저널리즘과 언...
    지상중계)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별세미나- ‘전쟁 너머 또 다른 전쟁 : 분쟁저널리즘과 언론 자유’   이스라엘, 폭격·취재 봉쇄로 ‘목격자 없는 전쟁’ 이어가... 한국 언론은 여권법에 묶여 ‘이중봉쇄’유례없는 언론인 희생자 속출에 “기자 안전 대책 마련 시급”   ▲지난 11월 5일 서울 MBC 골든마우스홀에서 개최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특별행사 2부 세미나 <전쟁 너머 또 다른 전쟁: 분쟁저널리즘과 언론자유>의 한 장면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을 앞둔 지난 11월 5일, 올해 수상자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한국의 언론인과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취재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이들은 이어 서울 상암동 MBC에서 국제 분쟁 보도의 현장을 직접 취재한 국내외 언론인과 언론학자가 함께하는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이번 특별 행사는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 주한독일대사관, 에스토니아대사관, MFC(Media Freedom Coalition)이 공동주최하고 MBC와 방송저널리즘연구회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전쟁 너머 또 다른 전쟁 : 분쟁저널리즘과 언론 자유’ 세미나에서 첫 번째 주제 발표를 맡은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는 이스라엘-가자 전쟁을 “목격자 없는 전쟁과 임베드 저널리즘의 최악의 조합”이라고 비판했다. 2009년 스리랑카 내전 당시 정부가 언론의 접근을 차단하며 ‘목격자 없는 전쟁’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을 이스라엘이 적극 수용했다는 게 이 기자의 생각이다. 이 기자는 1년 동안 130~180여 명의 언론인 희생자가 발생한 데 대해 “전쟁 수행자들이 자기들이 저지르는 전쟁 범죄를 감추기 위해 목격자들(언론인)을 제거하고 있다”며 “이는 역사상 두 번째로 언론인 사상자가 많았던 2006년 이라크전의 56명보다 2~3배 이상 많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자 지역에 외신 기자들의 접근이 사실상 차단된 상황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종군기자가 동행취재하는 ‘임베드 프로그램’에 대해 “분쟁 취재에 임베드가 주요 (취재) 수단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전쟁 상황에 대한 내러티브가 수행자들이 주도하는 내러티브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자는 “분쟁 저널리즘의 키는 독립성”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독일 슈피겔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특파원인 토레 슈뢰더 기자도 임베드 취재의 문제점에 동의했다. 슈뢰더 기자는 “지난 10월 말 지상 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임베드 방식으로 기자들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때는 (기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며 “기자들은 북쪽에서 수십만 명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접근하거나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저널리즘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서방 기자로서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점”이라며 이스라엘의 취재 봉쇄를 비판한 뒤 “우리 기자들은 (현장에서) 그 상황을 세상에 전하고 이스라엘이 그 책임을 지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거기에 들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미 분쟁전문PD는 “한국 언론은 이스라엘의 봉쇄에 한국 여권법까지 더해져 (현장 취재가) 이중 봉쇄를 당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개전 초기 현장에 들어가지 못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프로파간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는데, 한국 언론이 지금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프로파간다를 증명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하지만 마틴 레인 기자는 러시아에 가지 않고 러시아 부패를 폭로하는 데 성공한 경험담을 들어 “공개 정보를 사용하거나, 위성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현지 기자들이 만든 자료를 사용하거나, 현지 기자를 고용”하는 등 “먼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슈뢰더 기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의 시민들을 살해한 사건이 뒤늦게 기자들에 의해 현장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드러난 점을 들어 “우리가 하는 일은 서로를 보완한다”며 “(현장 기자가 하는 일은) 먼 거리에서 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므로 둘 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분쟁보도의 역할: 전쟁과 갈등 지역에서 겪는 고통과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것 ‘전쟁 보도와 저널리즘: 현장성, 선정성, 편향성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종혁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 7일부터 2024년 10월 7일까지 1년 동안 국내외 주요 방송사인 CNN, FOX, BBC, 알 자지라, CCTV, NHK, KBS의 가자 전쟁 관련 보도 영상 2,373건을 수집해 171,922 건의 아이프레임을 추출, 분석했다. 이 교수는 현장성을 분석한 결과 알 자지라는 피해자에 대한 클로즈업 영상을 강조하는 반면 CNN과 FOX는 해설 중심 보도에 집중했고, 내용 프레임을 분석해 보니 파괴와 이주 관련 프레임의 비율이 높은 반면 인도적 지원이나 재건에 대한 보도는 낮았다고 밝혔다. 또, 주요 인물 29명의 등장 빈도를 분석한 결과 이스라엘과 미국 인물이 많이 등장하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인물의 보도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CNN과 FOX는 이스라엘 관점에 집중하는 반면 알 자지라는 중동 인물과 인도적 위기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MBC 영상뉴스국 현기택 기자는 언론의 선정 보도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한 국가의 이익을 위한 참혹한 학살 현장을 보여줘서 전쟁의 부정적 영향을 알리고 국제사회에 평화를 염원하는 여론을 조성해 전쟁 상황을 빨리 종료하도록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너무 정제된 이미지만 보도한다면 과연 전쟁의 참혹함을 전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슈뢰더 기자도 “전쟁에서 일어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매우 이례적이어서 본질적으로 선정적이기 마련”이라며 “우리가 이런 이미지를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선정주의일 수 있지만, 그것은 평화와 번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과 갈등 지역에서 겪는 고통과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터에서 보도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못된 정보와 정보 전쟁에 대한 전문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에스토니아 분쟁전문기자 마틴 레인은 “거짓을 만드는 것은 매우 쉽지만, 진실을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여러분이 가자에 접근할 수 없을지라도, 외국 기자로서 우리는 진실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레인 기자는 소셜 미디어가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가짜 뉴스’ 현상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계정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시리아의 영상을 올리는 등의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며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진실을 말하는 기자들이 있는 한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외신이 현장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자 지구 내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에 대한 안전 문제도 논의됐다. 김영미 PD는 “로컬 기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장치가 없다”며 “이번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계기로 현지 기자들의 안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홍성필 전 UN자의적구금 워킹그룹의장은 “자의적으로 갇힌 분들의 유형을 5개로 나눴는데, 언론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 탄압으로 인한 구금이 놀랍게도 증가하고 있고, 특히 여성 저널리스트가 구금되는 증가 추세가 확연하다”며 “지금은 (언론사 소속)언론인과 개인 저널리스트, 개인 미디어 종사자, 내용을 송출하지 않아도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어 보호 범위도 포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가자 전쟁은 민간인과 전투원, 전시와 평시의 구분이 없어지는 등 그동안 국제법에 의한 전통적 보호 체계를 다 무너뜨리고 있다”며 “우리나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UN과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은 것은 여성 인권을 보호하자는 모멘텀이 생겨 가능했던 것처럼 이번 사태가 분쟁지역 저널리즘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해 모멘텀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이유경 기자는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은 완전히 다른 경우”라며 “전쟁을 끝내는 것만이 기자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일침했다. <지금 가자에선>으로 뉴스상을 수상한 유세프 함마쉬는 “우리(팔레스타인) 언론을 의심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의심할 권리를 드리겠다. 그러니 외신 기자들이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실을) 목격할 수 있도록 (현장 취재를) 허용해 달라”며 “우리는 살아남고 싶다. 국제 사회와 세계 지도자들이 책임을 지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거듭 호소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12-19
  • 2024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 지난 11월 7일 광주전일빌딩서 열려
    2024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 지난 11월 7일 광주전일빌딩서 열려 -목숨 걸고 진실 전하는 팔레스타인 언론인 모두에게 주는 상”기로에선 세계상(대상) 수상 살라 알 하우 기자 외 뉴스상, 특집상, 오월광주상(공로상) 수상자들에게 시상 -12월 12일부터 내년 3월까지 광주서 수상작 전시회 개최 ▲ 지난 11월 7일 광주 전일빌딩 245 다목적강당에서 열린 <2024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와 참석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80년 5월, 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민주화 운동을 취재했던 광주 금남로에 올 한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기자들이 모였다.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와 5.18기념재단(이사장 원순석)이 주최하고 광주광역시가 후원하는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이 지난 11월 7일 광주광역시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열렸다.  올해 경쟁부문 대상인 ‘기로에 선 세계상’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가자지구 내부의 민간 구조대와 소녀의 눈으로 본 전쟁 상황을 취재한 <가자로부터 온 목소리(Vocies from Gaza)>에 돌아갔다.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캐시 개넌(前 AP통신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보도국장)은 <가자로부터 온 목소리>에 대해 “가자의 응급 구조원의 시점에 이어 순수함과 공포가 대비되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정말 뛰어난 보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수상자 결정문 발표에 앞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족을 잃고 자신들 또한 표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도 (팔레스타인의 동료 기자들은) 꿋꿋하게 보도를 이어나가고 있다”며 경의를 표했다. <가자로부터 온 목소리>의 취재진 가운데 한 명인 마르완 알 사와프 기자는 작품을 취재하던 도중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부모와 형제자매 등 48명의 가족을 잃고도 취재를 이어가다 본인도 대인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모하메드 사와프 기자와 살라 알 하우 기자 역시 이번 전쟁으로 수십 명의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대표 수상자로 시상식 연단에 오른 살라 알 하우 기자는 “오늘 저는 팔레스타인 언론인 동료를 대표해 그들의 피와 희생으로 그 땅의 일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해 왔다”며 “이 상은 비단 우리 팀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폭격 속에서, 죽음의 위험 속에서 가자 지구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의 노력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살라 알 하우 기자는 이어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은 세계 어느 언론인도 겪지 않았던 일을 겪고 있다”며 “(이에 대해) 세계는 연대 성명을 발표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언론인을 보호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널리스트의 역할,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저항하는 일 뉴스부문 역시 전쟁 상황을 보도한 팔레스타인 프리랜서 영상기자 유세프 함마쉬의 <지금 가자에선(Inside the Gaza Siege)>에 돌아갔다. 함마쉬 기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첫날인 2023년 10월 7일부터 사흘 동안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발생한 가자 지구의 민간인 피해 상황을 취재했다. 심사위원들은 “인터뷰 중이던 여성의 머리카락이 폭발의 충격으로 휘날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폭탄이 폭발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보도하는 엄청난 용기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유세프 함마쉬 기자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단순히 사건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저항하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면서 “20만 명 이상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끝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 무릅쓴 이란인권시위,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 상기시켜 특집부문에는 이란 히잡 시위를 통해 여성의 인권 문제를 보도한 <인사이드 이란: 자유를 위한 투쟁(Inside Iran: The Fight for Freedom)>이 선정됐다. 게스빈 모하마드 등 4명의 기자들은 지난해 히잡 착용 문제로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과 이란 시민들의 투쟁, 정부의 탄압을 현장 취재했다.  심사위원단은 “감옥에 끌려가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대를 인터뷰하고 촬영한 매우 용감한 기자들의 작품”이라며 작품 제작에 기여한 영상기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네 명의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네치르반 만도 기자는 “용감한 이란 여성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시위에 나선 모습은 우리에게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곧 자유를 얻기를 희망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공로상인 오월광주상은 베트남 전쟁을 현장 취재한 NBC 전 영상기자 보 수, 딘 푹 레와 영국 ITN 영상기자 故 알랜 다운스 등 3명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베트남전의 한 가운데에서 TV 저널리즘과 영상 저널리즘의 새로운 위상과 영향력을 세상에 인식시키고, 이를 세계적 관심이 쏠린 문제들에 대한 여론과 정책적 변화를 만들어 낸 현장의 개척자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작가가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며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며 “힌츠페터 기자의 영상 보도와 유영길 기자의 영상이 한강 작가의 글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함께 기념하고 격려하는 수상자들의 영상보도들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생생한 역사적 증거이자 소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힌츠페터상국제보도상 조직위원회는 올해의 수상자가 참석하는 수상작 상영회를 11월 12일과 13일 서울 국회와 대구, 부산에서 각각 열었다. 또, 오는 12일부터 내년 3월30일까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3층 기획전시실과 영상실에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작 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올해 수상작 뿐만 아니라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 이후 지금까지 4년 동안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수상작 상영회는 영상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민주주의·인권·평화의 발전을 위해 싸우는 현장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영상기자를 발굴하고, 1980년 군부독재에 의한 시민 학살의 참상을 기록해 전세계에 알린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21년 제정됐다.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광주광역시(시장 강기정)가 후원한 올해 행사는 주한독일대사관과 광주광산구청 등이 특별후원했다.  힌츠페터상 수상자들에게는 상금 1만 달러와 트로피가 수여되었으며, 짝수 해인 올해의 시상식은 광주에서, 홀수 해에는 서울에서 열린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4-12-19
  • 영상 기록, 내란을 막아 내다
    영상 기록, 내란을 막아 내다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 비상계엄 포고령이 공표되던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날 포털 뉴스 댓글 창은 다 막힌 데다 네이버 카페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도 먹통이었다. 계엄을 실감했다. 인터넷도 끊길 수 있다는 생각에 텔레비전을 켰다. 일부 방송사들은 태연히 정규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보도 통제가 이미 시작된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마치 80년 광주처럼.  하지만 이내 안도했다. 계엄기획자의 작전 시계가 1980년도에 멈춰있는 것이지, 2024년의 미디어 환경은 그때와 달랐다. 계엄군이 설령 방송사들을 점령한다 해도 개인 미디어와 유튜브 라이브와 같은 실시간 소통 채널 통제를 어찌 감당하랴.   완전무장한 계엄군의 국회 난입 실시간 방송은 911 쌍둥이 빌딩 테러 중계만큼이나 충격이었지만, 시민들을 행동으로 이끌었다. 이날 생중계로 현장을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다. 국회 앞 도로에서 검정 롱패딩을 입은 한 청년이 장갑차를 가로막고 서 있던 모습, 그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달려와 함께 맞섰던 모습, 심지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몸을 던져 계엄군 차량의 국회 진입을 막던 시민들의 모습, 계엄군들이 버스에서 하차하려 하자 시민들이 다독이며 다시 버스로 안으로 돌아가게 한 후 다 함께 스크럼을 짜고 버스를 에워쌌던 모습을.  진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당시 병력 규모를 보면 ‘중과부적이었다’는 김용현의 말이 얼마나 후안무치한 거짓말인지 알 수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계엄에 동원된 경찰은 4,200명, 군병력은 1,700명에 달했다. 그중 국회 주변에만 경찰 1,900여 명, 계엄군 906명이 투입됐다. 최소 2,700명의 병력이 국회에 한꺼번에 몰려든, 입법부를 완전히 마비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다. 무장 상태는 더 충격적이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은 소총과 권총, 저격총 등 187정의 무기를 휴대했고, 최소 9천 발 넘는 실탄이 지급되었다는 사실이 방송보도로 밝혀졌다. 긴급했던 상황 뒤에 혹시라도 끔찍한 학살이 계획되었던 건 아닌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 각인된 1980년 5월 광주의 계엄군 모습과 2024년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의 모습은 너무 비슷했다. 일각에서는 시민들이 갑작스럽게 몰려오자 계엄군이 당황해 주춤했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엄군이 시민을 물리적으로 해치지 않은 점은 천만다행이다. 목숨을 걸고 싸운 5월 광주의 용감했던 시민들은 그 상황을 외부에 알릴 방법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던 반면, 2024년 12월 국회에 모인 시민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무기 삼아 계엄군의 일거수일투족과 현장의 진실을 기록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시민사회와 즉시 공유해 국회를 지킬 수 있었다. 5월 광주는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게 해준 용기의 원천이었을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와 기록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내란의 진실을 기록하고 알린 영상기자와 오디오맨들의 용기와 헌신   그날의 현장을 용기 있게 기록한 언론인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일부 기자들은 계엄군을 촬영 대상으로 삼는데 그치지 않고, 몸싸움까지 벌이며 이들의 국회 진입을 저지하고 설득하려 했다. 당시 취재 활동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국회 CCTV 영상이 이를 증명한다. 계엄군 십여 명이 국회 정현관 진입에 실패하자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창문을 깨고 난입을 시도했을 때였다.   영상기자와 오디오맨이 이들을 뒤쫓아가 촬영하기 시작하는데, 한 계엄군이 오디오맨이 들고 있던 사다리를 위협적으로 강탈해가는 장면과 또 다른 계엄군이 이 오디오맨을 막아서며 방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누군가 계엄군들에게 뛰어가 국회 진입을 막으려 하자 영상기자들과 계엄군 사이에 몸이 부딪치는 충돌도 발생한다. 포고령이 공표된 위험한 상황임에도 영상기자들은 물러서지 않은 채 촬영을 이어갔고, 오디오맨들은 끝까지 영상기자들의 곁을 지켰다.   이들의 용기와 헌신은 진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법무부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김석우 법무부 차관은 12월 17일 국회 법사위 현안 질의에서, 내란 당시 군인들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이 담긴 TV 생중계 영상과 언론보도에 대해 그 자체로서 현장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중요한 증거라고 말했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터에 직접 가보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그 참상을 세세히 말하는데 정통한 사람은 진실해질 가능성을 비웃도록 단련된,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폭력의 소비자들”이라고 지적하며 방관과 무감각한 태도를 지적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비상계엄 내란 사태는 스펙터클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일상의 일부이자 전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기록할 용기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비상계엄 이후 TV방송사들은 뉴스 속보와 긴급취재 형식의 기획을 통해 내란의 진실을 신속하게 심층 보도하고 있다. 매일 새롭고도 놀라운 사실과 진실을 알아가는 중이다. 오랜만에 지상파 방송을 많이 시청하고 있다. 뉴스 때문에 홈쇼핑 매출도, 넷플릭스 시청도 줄었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이 방통위, 방심위 반칙 운영을 통해 망가뜨리려 했던 방송계가 권력 감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때다. 최선영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2024-12-19
  • 박장범 사장 내정에 KBS 안팎 반발
    박장범 사장 내정에 KBS 안팎 반발 언론노조 KBS본부, 7년만의 파업…KBS 기자들, 기수별 반대 성명도 잇달아 언론현업단체 “방송3법 개정해 방송장악 악순환 고리 끊어야”   박장범 KBS <뉴스9> 앵커가 차기 사장에 내정되자 KBS 안팎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KBS 이사회는 지난 23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박장범 앵커, 박민 사장, 김성진 방송뉴스주간 등 세 후보에 대한 면접과 표결을 거쳐 박 앵커를 제27대 사장 최종 후보로 임명 제청했다. 박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대통령의 임명재가를 거쳐 차기 사장에 임명된다. 제27대 KBS 사장 임기는 12월10일부터 2027년 12월9일까지 3년이다.   박 앵커의 내정을 둘러싸고 KBS 안팎에서는 정치적 편향성과 절차의 위법성 등을 들어 선임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이날 사장 선임 절차에 반발해 하루 총파업에 돌입했다. KBS본부는 사장 선임에 참여한 KBS 이사진이 ‘2인 체제’로 운영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 이사들이라는 점을 들어 선임 절차 자체가 무효라는 입장이다. 야권 성향 이사 4명도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이사회 의결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방통위) 2인 구성원은 방통위법이 정한 정원 5인의 절반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다수 구성원의 존재’라는 합의제 행정기관의 본질적 개념 표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2인 체제 방통위 의결의 위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KBS본부는 “위법한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의 추천으로 임명된 KBS 이사 7명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조합원탄원서를 받아 조만간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내부에서는 박 내정자가 KBS의 신뢰성을 훼손해 왔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KBS 기자협회, KBS PD협회, KBS같이노조가 박 내정자의 임명 제청 반대를 천명했고,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수별로 박 내정자에 대한 반대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28일 현재 사내 게시판에는 31기부터 50기까지 17개 기수의 취재 및 영상기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반대 성명을 올린 상태다.    기자들은 성명에서 “박장범 앵커는 자리를 위해 저널리즘을 내팽개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그가 우리 뉴스의 얼굴인 9시 앵커를 책임지는 동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언론사로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과 죄책감 뿐”(37,38 기 성명), “아무리 피땀흘려 취재해도 이제 시청자들은 이를 용산을 겨냥해 보낸 메시지로 읽는 지경”(45기 성명), “존경할 수 없는 선배이자, 따를 수 없는 리더인 그에게 KBS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등 박 내정자에 대한 임명 제청을 반대했다. 기자들은 박 내정자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신년 대담에서 국민적 의혹에 대한 질문 대신 대통령을 비호해 ‘용산 방송’이란 흑역사를 남겼고 △리포트와 무관한 내용을 앵커 멘트에 넣거나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왜곡했으며 △수신료 분리 징수 정국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KBS의 한 기자는 “박민 사장이 선임된 1년 전만 하더라도 박 사장이 혹시나 수신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고, 회사가 어려우니 좀 참아야지, 버텨봐야지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지금은 1년 동안 KBS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문제 있는 사람이 사장으로 와서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게 만드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역의 한 기자도 “박민 사장 이래 메인 뉴스에서의 아젠다 선정에서 안팎으로 문제제기가 많이 되어온 게 사실”이라며 “박 후보자가 사장이 되면 지역에서도 전국 뉴스를 내보내고 있는 입장에서 데스킹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크다”며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없어 경영 상황이 악화될 거라는 것이 많은 직원들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한 관계자는 “박 후보자가 사장이 된다면 앵커라는 자리를 KBS 사장으로 직행하는 교두보로 활용한 역대 최악의 사장이 될 것”이라며 “그래서 후배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후에 찾아올 불이익까지 감내하면서 반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사회도 박 내정자의 임명 제청을 반대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9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2인 체제 방통위 하에 임명된 7명의 불법 이사들이 결정했기에 원천 무효”라고 강조했다.   전규찬 언론연대 공동대표는 “공영방송에서 닻을 내리고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는 9시 뉴스 앵커의 첫 뉴스 진행을 보면서 자칫하면 박장범 앵커가 KBS를 정권의 홍보와 선천 채널로 만들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있었다.”며 “이런 사람이 사장이 되지 않도록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일반 시청자와 대중이 반응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7개 언론현업단체는 28일 공동성명을 내어 “현업 언론인들은 지난 십 수 년 동안 반복되어온 집권세력의 공영방송 통제와 장악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 사장 선임 구조의 개혁을 요구해 왔다”면서 정치권을 향해 △국회의장이 제안한 범국민협의체 안을 수용해 △연내 방송3법 개정안을 도출하고 △방통위의 중립성 확보를 위한 개편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영상기자 152호 (10.30발행)>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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