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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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재난 현장에서 본 공영방송의 딜레마
    대전 안전공업 화재를 취재하며  KBS 대전방송총국 안성복  1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시작된 불은 빠르게 번졌고,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는 제보 영상이 속속 접수되면서 방송사 취재진이 일제히 현장으로 향했다.  KBS는 재난방송주관방송사답게 초동 대응은 빠르게 이뤄졌다. 안전 문자가 발송되기 몇 분 전, 제보 영상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취재팀이 현장에 도착했다. 드론 촬영으로 화재 전경을 즉각 확보했고, ENG 카메라와 MNG 현장 중계가 동시에 가동됐다. 촬영기자 세 명이 교대로 현장을 지키며 속보를 끊임없이 내보냈다. 재난 발생 시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피하는 데 필요한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다.  다만 아쉬움도 남는다. 실시간 특보 연결에 집중하다 보니 당일 저녁 9시 뉴스에서의 심층 보도가 다소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속보 위주로 취재 인력이 분산된 탓에 피해자 가족이나 회사 관계자와의 접촉이 충분하지 못했다. 타사는 속보보다 저녁 종합뉴스에 무게를 두면서 상대적으로 깊이 있는 보도가 가능했다.  이것은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현장 영상기자들이 겪는 딜레마다. 시청자의 대피를 돕는 실시간 재난방송에 집중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건의 맥락과 원인을 짚는 심층 보도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 재난방송주관방송사라는 역할과 종합 저널리즘 사이의 긴장은 이번 화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피해는 돌이켜보면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번 참사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현장을 지킨 취재진이 바라는 것도 결국 그것이다.  
    2026-04-28
  • 프레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전투
    “진실마저 생성한다”… 보도영상 파고드는 AI 가짜 영상의 습격 ▲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 해외 언론은 가짜영상을 검증하는 팀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KBS는 AI를 활용한 영상으로 이란 전쟁 뉴스를 보도했다. 사진 출처: KBS  미사일이 오가는 전장보다 더 치열한 전쟁이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두바이의 명물 부르즈 할리파가 폭격에 무너지고, 미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이 화염에 침몰하는 장면,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잔해에 피를 흘리며 깔려 있는 사진과 영상들. 얼핏 보면 진짜처럼 보이는 이 영상들은 AI가 만든 가짜뉴스다. 이란 대사관이 공식 계정에 올린 '피 묻은 아이의 가방' 사진조차 AI 생성 이미지로 드러났다. 이란전이라며 현지에서 찍은 영상이라는 가짜 꼬리표가 붙은 영상들은 빠르게도 퍼져나간다. 조회수는 유가보다 더 빠르게 치솟는다.    사실 영상기자 입장에서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진짜가 아닌 단서들은 참으로 많다. 항공모함이 불에 타고 있는 상황에서 여유롭게 바다 한가운데에서 드론 영상을 찍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란 최고지도자가 피를 흘리며 건물더미에 깔려 있는 사진은 그럴싸하다. 그런데 하메네이의 얼굴만 신기하게도 잔해더미 밖으로 나와 있는 것 하며, 구조대원들이 하메네이를 구출하지 않고 병풍처럼 서 있는 것이 참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연출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가짜 영상이 늘어나면서 속는 사람도 늘어나지만 진짜 영상마저 못 믿게 만드는 진실성의 동반 하락이 더 큰 문제다. 가짜가 넘쳐나면 진짜마저 의심받는다. '리얼리티 콜랩스(Reality Collapse)'. 가짜를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 어떤 증거도 효력을 잃는 세계. 어찌 보면 AI 심리전의 최종 목표라고도 할 수 있다.    가짜뉴스가 넘치는 상황에서 외신들은 사전에 준비한 조직을 빠르게 가동시켰다. 이 혼란 속에서 BBC는 검증팀 BBC Verify를 전면 가동했다. 약 60명의 전문가들이 지오로케이션, 위성 이미지 분석, 역방향 이미지 검색으로 영상의 진위를 가리고, 그 검증 과정 자체를 뉴스로 내보냈다. "우리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알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것." 투명성이 신뢰를 만든다는 철학이었다. AP는 수년 동안 기자들과 개발자들이 함께 만든 플랫폼인 AP Verify를 런칭하고 회원사들이 가짜뉴스를 걸러낼 수 있는 서비스를 공개했다.    같은 시기 KBS는 다른 선택을 했다. KBS 뉴스9는 이란 전쟁 미군 구출 작전을 보도하면서, 1분 54초짜리 리포트 중 약 1분을 AI가 만든 가상의 영상으로 채웠다. 제목은 '빈 라덴 잡은 최정예 부대 투입… "God is good"'. KBS는 "사실에 입각해 상황을 재구성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청자는 그것이 재구성인지, 현장인지, AI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더 문제다. 지난해 9월 KBS 뉴스9는 북·중·러 정상의 회동 장면을 AI로 합성해 보도했다. 화면 구석에 'AI 제작 영상'이라는 자막이 달렸지만, 그 자막을 보는 시청자가 몇이나 될까. 언론계는 즉각 반응했다. "BBC는 가짜 영상을 골라내기 위해 별도 팀을 운영하는데, KBS는 스스로 가짜 영상을 만들고 있다.“    제도적 대응도 미흡하다. MBC는 "가짜 전쟁 가려내느라 또 전쟁"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한국 팩트체크 체계의 공백을 지적했다. 가짜 영상은 빠르게 퍼지는데, 검증은 느리고 인력도 없다.    결국 이 문제의 답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영상과 이미지에 전문성을 갖춘 영상기자들이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각 소속사가 제도적 토대와 실질적 역량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지오로케이션을 읽고, 메타데이터를 분석하고, AI 생성 영상의 흔적을 포착하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BBC Verify가 60명의 전문 인력으로 운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검증은 의지의 문제이기 이전에, 투자의 문제다. AI가 전쟁의 무기가 된 시대에, 영상기자의 전문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언론이 진실의 편에 설 수 있는 마지막 조건이다. KBS 신봉승
    2026-04-28
  • “10분만 취재하라”던 BTS 광화문 공연, 공적 영역 취재 제한 논란 ‘촉발’
    협회 “공적 공간 취재는 언론 자유이자 의무…사기업 통제 안돼”  가이드라인 완화 이끌어    ▲ 3월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빅히트 뮤직과 하이브가 주최하고 넷플릭스가 독점 중계한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광장 컴백 공연이 과도한 취재 통제 논란을 겪은 끝에 가이드라인을 수정했다. 당초 ‘10분 촬영’이라는 엄격한 제한을 뒀던 주최 측은 “공적 공간 취재는 언론의 자유이자 의무”라는 한국영상기자협회의 문제제기로 가이드라인 수정에 나섰다.  논란의 시작은 주최 측이 3월21일 공연을 앞두고 언론에 배포한 취재 가이드라인이었다. 넷플릭스는 독점 중계를 이유로 공연 시작 직후 10분만 촬영을 허용하고 전문 장비 반입을 제한했다. 이를 두고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는 “광화문 광장은 공적 공간이고 대규모 인원이 모여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취재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최연송)는 3월 20일 ‘공적 공간의 가치와 시민 안전을 위해, 보도의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성명을 냈다.  협회는 성명에서 광화문 광장은 시민 모두의 소중한 공적 자산이라는 점을 명백히 한 뒤 “공공장소에서의 영상취재를 단 '10분'으로 한정하고 취재 장비도 제한하는 조치는 공적 공간의 개방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주최 측은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이 갖는 공공성을 존중하고, 언론이 이를 기록할 권리를 마땅히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현장을 취재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협회는 “26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연 전 과정에 걸친 영상취재는 현장의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필수적인 안전 장치”라며 “취재 시간을 제한하여 현장의 기록을 단절시키려는 시도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회는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를 향해서도 “거대 자본에 의한 취재 통제를 방관하지 말고, 공적 장소 운영의 책임자로서 실효성 있는 중재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협회의 문제 제기 이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이 중재에 나섰고, 주최 측은 결국 공연 당일인 21일 오전 새로운 취재 가이드라인을 언론에 전달했다. 수정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공연 시작 후 10분 동안만 촬영이 가능했던 시간 제한이 풀렸고, 프레스석 외의 공공 구역과 무대도 개수나 분량 제한 없이 촬영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넷플릭스가 독점 생중계하는 행사인 만큼 프레스석에는 노트북, 카메라 등 전문 촬영 장비 반입은 여전히 금지됐고, 실시간 중계와 공연 전체를 게시하는 것도 불허했다.  영상기자협회 최연송 회장은 “글로벌 SNS, OTT 기업의 급속한 팽창으로 우리나라 방송산업의 구조가 취약해지면서 취재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회장은 이어 “이번 사태는 예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앞으로 더 큰 도전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면서 “이번 사태의 해결에 안주하지 말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들을 막아내기 위해 언론계 전반이 경각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BTS 공연은 공적 공간에 대한 사기업의 취재 통제 논란을 불러왔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6-04-28
  •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왜 만들었는가(中)
    한국민주화운동의 국제네트워크와 조직적 연대 한원상 / 제25대·26대 한국영상기자협회장  “역사는 권력 편이 아니고 정의의 편이다” “부끄러움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역사는 미래에 더 가혹하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정의의 편에서 세계의 시민과 연대한 운동이다” ▲ 70~80년대 ‘한국기독자민주동지회’는 2003년 7월 29일 서울시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T·K생」의 필명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왼쪽부터 오재식(전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산업선교부 간사, 전 월드비젼 한국 총재), 이한영, 강문규(전 세계학생기독교연맹 아시아 사무총장, 전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 전 한국기독학생총연맹 이사장), 박형규(전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위원장,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 당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상증(전 세계기독교협의회 선교위원회 간사, 전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총무, 전 민주동지회 사무국장, 당시 참여연대 대표), 지명관(당시 한림대 석좌 교수), 이인하(전 재일대한기독교회 가와사키교회 목사 및 재일대한기독교회 의장, 전 일본교회협의회 의장 역임), 쇼지 츠도무(東海林勤, 전 일본기독교협의회 총간사), 폴 슈나이스(Paul Schneiss, 전 독일 동방(東方)선교회 선교사), 페리스 하비(Pharis Harver, 전 퀘이커 선교사) <사진 촬영=한원상> 해외에서 한국민주화운동의 배경    1960년대의 한·일협정 비준 반대 운동, 동백림 사건,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반대 운동 등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했다. 해외에 있는 한국의 민주 인사들은 군사정권에 대한 위기감에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그 인식은 이미 6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구체적 행동을 계획하고 실천한 것은 70년대 이후이다.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박정희와 신민당 김대중이 각각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기독교 성직자들은 선거일 며칠 전부터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성직자 선거인단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박정희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정희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1972년 10월 17일 유신헌법을 공포했다, 국회는 해산되고 정당 활동도 금지되었다. 긴급조치와 계엄령이 선포되어 군사 독재 정권하에 국내 언론은 거의 정권의 강압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박정희의 3선 개헌에 의한 장기 정권에 각계각층이 저항했다. 이에 감리교 소속 김정락 목사, 수도권도시선교회 김진홍 전도사, 서울 한빛교회 이해동 목사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한국NCC)에 모여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해 11월 말 성직자들은 한국NCC에 모여 금식 기도회를 가졌다. 이것이 1970년대 들어와서 첫 비공식적인 한국 민주화운동의 시작이었다.  국내 기독교 지도자들은 유신 체제하에서 권력으로부터 억압받는 것을 가만히 지켜 볼 수 없어 ‘기독교인은 침묵을 깨고 행동해야 한다’며 1973년 4월 22일 남산 야외 음악당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신 체제를 반대하는 항의 메시지가 담긴 전단지를 배포했다(이하, 남산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남산부활절연합예배는 1947년 시작한 이후 서울에서 한국NCC와 대한기독교연합회(이하, 예총회)가 17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와 보수가 함께한 연합예배이다.  이 사건으로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위원장 겸 서울 제일교회 목사 박형규(2023년 사망), 동 교회 전도사 권호경(전 한국NCC 총무, 전 기독교방송 사장), 전 신민당 조직국 제2부 차장 남상우 등, 15명이 ‘국가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로써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orea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이하 KSCF) 회원, 빈민선교 활동가, 전 신민당 당원 등이 구속되었다. 1심 판결에서 박형규와 권호경은 각각 징역 2년, 남상우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남산부활절연합예배 사건은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공식적인 한국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교회 대학생의 기도회와 가두시위가 등장하고 마침내 10월 2일에는 서울대 문리대 학생 250여 명이 4·19기념 탑 앞에서 자유민주체제의 확립을 요구하는 시위로 번졌다. 이로써 남산 부활절 사건과 10‧2시위 이후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인권운동이 조직화되기 시작하여 1974년 4월 한국NCC 산하에 인권위원회가 신설되었다.  당시 한국 민주화운동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기독교운동이 중심이었다. 그중에 국제 네트워크를 조직적으로 구성해서 활동할 수 있었던 단체는 기독교밖에 없었다. 박정희 정권은 기독교만은 ‘빨갱이’라고 꼬리표를 붙일 수 없었다. 이외 다른 단체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어 활동하는 데 한계가 이었다. 기독교는 세계를 연대하는 조직과 자금이 있어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지하 비밀 조직의 국제 네트워크를 조직할 수 있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첫 서막을 알리는 선전포고 …‥ ‘한국기독자선언’ 발표    1973년 초, 한국NCC 총무 김관석(전 CBS방송 사장, 전 새누리신문 사장, 2002년 사망) 목사는 도쿄에 있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의 ‘도시산업선교회’(CCA-URM) 간사 오재식(전 월드비젼 한국 총재, 2013년 사망), 동경여자대학교 객원교수 지명관(전 한림대학교 석좌교수, 2022년 사망), 민중신학 연구자 김용복 목사(전 한일장신대학 초대 총장, 2022년 사망)에게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라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세 사람은 도쿄에서 민주화운동의 사상적 핵심을 세우고 세계교회로부터 관심과 지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국어, 영어, 일본어 3개 외국어로 ‘한국기독자선언’(일명 ‘신학선언’)의 초안을 비밀리 작성했다. 동시에 이들은 2000달러를 모금해 한국NCC에 보냈다.  도쿄, 서울을 왕복하며 만들어진 ‘한국기독자선언’은 유신헌법 체제에서 침묵을 깨는 지하선언으로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한국NCC)’ 총무 김관석 목사,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위원장 박형규 목사, 에큐메니컬사회선교협의회 사무총장 조승혁 목사 등의 동의를 얻어 인쇄되었다. 1973년 5월 2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서 ‘한국기독교유지교역자일동’의 이름으로 ‘한국기독자선언’이 발표되었다.  이 선언은 당시 학생과 시민, 그리고 언론까지도 침묵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발표되었다. 그 기초자는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후일 민중 신학자가 된 김용복 목사다.  신학선언은 신학적인 설득력이 있어 일본 및 세계의 기독교인과 시민들을 움직였다. 이는 일제 식민지 지배에 저항했던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해 그리스도가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소외된 동포들과 함께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고 역사의 변혁에 관여하는 것이야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된다는 확신이 가득 찬 메시지였다.  이 선언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를 ‘국민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하고 기독자의 사회 참여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국민의 요청이자 교회의 역사적 전통’이다 정의했다. 한국의 민주화 투쟁이 정치적 투쟁이 아닌 ‘기독교적 투쟁’이다 주장하고 한국의 민주화 투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동시에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와 연대해서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첫 서막을 알리는 선전 포고였다.  이 선언은 1934년, 나치 정권에 저항한 기독교 신학자들이 교회의 본질과 신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세계 에큐메니컬(Ecumenical) 운동에서 ‘제2의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으로 평가될 만큼 오늘날 기독교 민주화·인권운동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토대가 시작된 중요한 문서로 평가되고 있다.  유산 체제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독재 권력을 쥔 군사정권이 야당, 노동운동, 학생운동뿐만 아니라 언론, 문학자, 종교인 등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을 엄단함으로써 유혈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이 상황에서 지명관, 오재식, 김용복은 ‘한국기독자선언’이 익명으로 발표되는 것은 오히려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며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미국NCC)의 보증을 받아 도쿄에 있는 각국 언론들에게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억압적이다”고 호소했다. 선언문은 1973년 7월 9일에 미국의 기독교 잡지 크리스찬・크리시스(Christianity and Crisis)에 게재되었다.  이 선언은 익명으로 유포돼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기독교의 투쟁과 신앙적 각오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와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도 한국기독자의 투쟁에 큰 관심을 가졌다.  1973년 5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회에서 ‘한국기독자선언’이 배포되었다. 한국NCC에서 파견 된 WCC선교위원회 간사 박상증(훗날 아시아기독교협의회총무) 목사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총회에서 발표한 ‘한국기독자선언’을 WCC에 가져가서 미국, 유럽의 교회 기관과 한국에 관심 있는 인권단체에 배포해 한국 민주화에 대한 세계교회의 협력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 관계자와 미국, 독일, 호주의 선교사들은 한국의 정세와 ‘한국기독자선언’을 해외에 알리는 데 노력했다. 한국민주화운동 기독자들은 한국NCC에 이어서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연대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한국민주화운동의 국제네트워크 구축 ‘한국문제기독자긴급회의’ 결성    ‘한국기독자선언(신학선언)’은 그 행동에 대한 신학적 의미의 부여를 담고 있어 일본기독교협의회(일본NCC)는 ‘한국기독자선언’에 감명을 받아 한국민주화운동의 지원에 적극 나섰다.   이전까지 일본NCC는 196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과 한국인의 배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기독교가 한일협정에 강하게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에 충격을 받아 65년, 66년에 이어 한국 교회의 교류와 사과를 위한 방문에 힘썼다. 이어서 1967년 부활절에는 일본기독교단 의장의 명의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기독교단의 죄책 고백’을 발표했다.  이 와중에 중앙정보부(KCIA, 현 국정원)는 1971년 3월 재일 동포 2세인 서승, 서준식 형제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일명 ‘서승(徐勝) 서준식(徐俊植) 형제 학내 침투 스파이단 사건’이다. 서승은 고문당하다 거짓 자백을 피하기 위해 난로를 뒤집어쓰고 분신을 시도하였고, 동생 준식은 51일간 단식 농성을 벌이다가 화상을 입었다. 이로써 서 씨 형제 간첩사건은 한일 간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1973년 8월 8일 한국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은 일본 도쿄의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한국 중앙정보부(KCIA)에 의해 납치되었다.  1972년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체류 중이던 김대중은 유신 체제가 선포되자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포기하고 1973년 7월 재미동포 반체제 단체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이하, 한민통)’를 결성하는 등 해외에서 반 유신 활동을 벌여오던 중이었다.  이 무렵 일본에서는 ‘서군 형제를 구하는 모임’, ‘김대중 구출운동’과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가 옥고를 치른 시인 ‘김지하 구명운동’이 전개되면서 갑자기 이웃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NCC는 ‘한국기독자선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한국의 민주화 세력과 접촉하기 위해 한국NCC와 연대가 필요했다. 일본NCC 총 간사 나카지마 마사아키(中嶋正昭, 96년 사망) 목사는 한국 내부의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한국NCC 총무 김관석 목사를 만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양국 교회의 신뢰 관계 속에 1970년대 이후의 한국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연대가 마련되었다.  한일협정(1965년)로부터 8년이 되는 1973년에 일본NCC는 비로소 일본과 한국의 시민이 불행한 상태에서 만나 군사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한국의 정치인, 종교인, 문학 작가, 언론, 학생,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1974년 1월 15일, 일본기독교단 시나노마치교회(信濃町教会)에 160여명의 일본인 기독자가 모여 한국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문제기독자긴급회의(이하, 긴급회의)’를 결성했다.  ‘긴급회의’ 실행위원은 7인으로 구성하고 ‘긴급회의’의 대표는 일본NCC 총 간사인 나카지마 마사아키 목사를 대표로 했다. 사무소는 도쿄 니시와세다(西早稲田)의 ‘일본기독교회관’에 있는 일본NCC 안에 두기로 했다.  긴급회의는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세계에 호소하기 위한 일본 내 자발적 연대 조직이다. 이들은 서로 연대하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일본에 체류하는 한국인 기독자 멤버들과 함께 한국의 정보를 세계에 발신하는 ‘정보’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기독자선언’, 뉴욕타임스에 전면 광고 게재    일본 기독자들은 ‘한국기독자선언’의 행동 제안을 실천하기 위해 1974년 5월 5일 뉴욕타임스에 ‘한국기독자선언’을 지지하는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이 광고에는 일본인 기독자 5명이 실명으로 발표해 신뢰를 주었으며 광고료 모금은 즉시 모여 목표치를 넘을 정도였다.  발표자는 교토대학 조교수 이이누마 지로(飯沼二郎, 2005년 사망), 도시샤대학 신학부 교수 다케나카 마사오(竹中正夫, 2006년 사망), 마쓰모토(松本)그리스도교회 목사 와다 다다시 (和田正, 1993년 사망), 기타시라카와(北白川, 1995년 사망) 교회 목사 오쿠다 나리타카(奥田成孝, 2007년 사망), 일본 가톨릭교회 보좌 주교(나중에 주교) 하마오 후미오(濱尾文郎, 2007년 사망)이다. 이 다섯 명이 1973년 ‘<한국기독자선언>을 지지하는 일본위원회’의 이름으로 44개의 교단과 다수의 서명을 대표해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는 일본 정부가 더 이상 한국 정부를 지지하지 않도록 요구 한다”며 “미국의 기독교인 형제자매들도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한 지지와 금융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일본의 ‘긴급회의’의 결성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더욱 조직화 하였으며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긴급회의’ 활동과 일본의 조직적인 연대운동    ‘긴급회의’는 당시 한국 내의 계엄령과 대통령 긴급조치로 인해 민주화 투쟁의 상항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극비리로 전달되는 정보를 일본 및 전 세계에 발신하는 역할을 맡았다.   ‘긴급회의’는 한국 내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과 성명서 등을 기자회견에서 발표하기도 하고 긴급회의 기관지 월간 ‘한국통신’에 한국의 상황을 일본에 알렸다. 그리고 영문판 ‘한국 소식(Korea Communique)을 매월 정기적으로 발간하여 한국의 상황을 해외에 알렸다. 또 가톨릭과 개신교 합동으로 전국 각지에 시민 모임 등을 추진하여 한국의 군사 정권을 비판하고 민주화세력을 지지하였다. ▲ 긴급회의에서 모은 기부금을 1975년 5월 26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위원장 권영자에게 전달한 영수증(사진 제공= 한원상). 동아투위는 1975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와 동아일보사의 경영진에 의해 해직된 기자들이 복직과 언론의 민주화 및 자유언론을 실천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이다.    이로써 긴급회의는 일본 지식인들과 시민들을 조직적으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한국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또 긴급회의는 자체에서 모은 기부금과 일본의 시민단체 ‘동아일보를 지원하는 모임’의 쿠라츠카 히라(倉塚平, 당시 메이지대학 교수, 2011년 사망) 도쿄 대표와 이이누마 지로(飯沼二郎, 당시 교토대학 교수, 2005년 사망)교토 대표가 모은 기부금을 모아 지속적으로 한국에 보냈다.  그리고 일한연대연락회의 사무국장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당시 도쿄대학 교수, 현 도쿄대학 명예교수), 시미즈 토시히사(清水知久, 일본여자대학 교수, 2010년 사망)와 나카노 요시오(中野好夫, 당시 도쿄대학 교수, 무당파 시민운동 대표, 1985 사망),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일본의 소설가, 후에 노벨문학상 수상, 2023 사망), 나카야마 치나츠(中山千夏, 일본의 배우, 가수, 소설가, 당시 참의원 의원) 등 많은 일본 지식인들이 긴급회의의 중심에서 조언을 하거나 협력했다.  (다음호에 계속)  
    2026-04-28
  • 변화를 향한 뷰파인더, 시대의 기록을 깨우다 제39회 한국영상기자상 시상식 개최…'제주 산림...
    변화를 향한 뷰파인더, 시대의 기록을 깨우다 제39회 한국영상기자상 시상식 개최…'제주 산림훼손'·'기술탈취 추적' 등 8개 부문 수상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뉴스 소비의 변화 속에서도 묵묵히 역사의 현장을 렌즈에 담아온 영상기자들의 성과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최연송)는 오는 3월 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 ‘제39회 한국영상기자상’ 시상식을 연다. 올해 수상작들은 드론을 활용한 입체적 취재, 과학적 분석 기법, 그리고 서정적인 영상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지역뉴스 특종 단독보도 부문은 KBS제주 고진현·양경배 기자의 ‘제주 산림 훼손 실태 추적 보도’가 차지했다. 드론 촬영과 6개월의 장기 취재를 통해 불법 산지 훼손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사후 관리의 문제점을 짚어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뉴스 탐사기획보도 부문 수상작으로는 SBS 최대웅 기자의 ‘기술 탈취 분쟁, 그 후…’가 선정됐다. 해당 작품은 중소기업이 기술 탈취 문제로 겪는 구조적 어려움을 심층적으로 다루며, 복잡한 법적 쟁점을 시청자가 이해하기 쉬운 영상 언어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뉴스 탐사기획보도 부문에서는 KCTV 제주 김용민 기자의 ‘항포구 다이빙, 왜 위험한가’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관광지 항구에서 반복돼 온 다이빙 사고의 위험성을 과학적 기법과 영상으로 분석하며,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공익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환경과 지역 문화를 다룬 부문에서도 수작들이 쏟아졌다. 환경보도 부문 수상작인 JIBS 강명철 기자의 ‘생태리포트 - 침입자의 경고’는 외래종의 위협을 오랜 시간 끈질기게 추적해 생태계 균열의 심각성을 경고했으며, 해외 사례 취재를 통해 정책적 대안까지 제시했다. 포항MBC 박주원 기자는 <특집 다큐멘터리 '100년의 바다, 감포'>에서 자연광을 살린 서정적 촬영과 절제된 화면 구성으로 지역의 역사와 생태를 깊이 있게 직조해 냈다는 평가를 받아 보도특집 다큐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두 작품은 모두 장기간의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환경과 지역의 역사·생태를 깊이 있게 조명한 점이 주목받았다. 멀티보도 부문은 MBC경남 한연호 기자의 ‘오늘의 영상’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지역 이슈를 짧고 간결한 영상 뉴스 형식으로 전달하는 ‘오늘의 영상’은 지역 방송의 새로운 보도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 시선 부문은 SBS 이승환 기자의 특별기획 ‘손끝에서 시작한’이 선정됐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 행사를 독려하는 내용으로 제작해 방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영상미로 풀어낸 시도가 의미 있게 평가됐다. 올해 수상작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법조영상기자단의 특별상 수상이다. 기자단은 대법원의 법정 촬영 불허 방침에 맞서 끈질긴 재신청 끝에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재판 법정 촬영’을 성사시켰다. 심사위는 "영상미 자체보다 시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훗날 역사적 기록으로서 남을 사실적 가치를 실현한 공익적 책무를 높이 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번 제39회 한국영상기자상은 2025년 한 해 동안 방송 및 온라인으로 송출된 수많은 보도물 중 총 70편의 엄선된 작품이 경합을 벌였다. 심사위원회(위원장 서태경)는 지난 1월 17일 심사회의를 통해 “영상기자가 단순한 촬영자를 넘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현장의 기록자'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심사를 진행했다. 서태경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비록 이번 회차에서는 아쉽게 대상작을 선정하지 못했으나, 수상작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영상의 힘과 언론 본연의 가치를 훌륭히 증명해 보였다"며 "영상을 어떻게 접근해 풀어갔느냐는 시각의 차이가 수상의 당락을 갈랐다"고 밝혔다. 영상기자협회 최연송 회장은 “치열한 선정 과정을 통과한 한국영상기자상 수상작들은 영상기자가 영상취재의 영역을 넘어 뉴스 콘텐츠의 기획부터 최종 단계까지 모두 담당하는 뉴스의 주요한 ‘키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AI 시대에도 저널리스트로서 영상기자의 역할은 더 확대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2025년 결산과 2026년 협회 활동 계획을 논의하는 정기총회가 26일 오후 7시 30분에 온라인으로 개최된다. 올해 여섯 돌을 맞는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6월 공모를 시작으로 11월에 광주에서 시상식을 연다. 협회는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작들이 더 많은 시민들과 만날 수 있도록 광주와 서울에서 열리는 시사회를 지난해보다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협회의 얼굴인 홈페이지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협회원 사이에서는 그동안 서버가 불안하여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일이 잦고, 홈페이지 디자인이 오래되어 촌스럽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협회는 이러한 의견을 수렴하여 홈페이지 전체 디자인을 개선하고 페이지 수도 줄이는 등 복잡했던 구성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회원들의 사용 편의성을 개선할 계획이다. 새단장한 홈페이지는 3월 말~4월 초 만날 수 있다. 협회는 또 영상기자들이 기술 변화 속에서도 공공성과 전문성을 갖춘 취재 역량을 개발하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협회는 AI와 위성 인터넷 등 최신 기술을 영상취재에 적용하여 보도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높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6-02-27
  •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어떻게 만들었는가 (上)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어떻게 만들었는가 (上)   -한국민주화운동, 세계적으로 확산 필요   한원상 / 제25대·제26대 한국영상기자협회장    한국의 현대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 한국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격동기를 거쳐 민주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국가조차 완전한 민주화를 이룬 국가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민주화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제정했다. 이 상에 대한 의미와 제정 과정, 앞으로 방향에 대해서 연재를 하고자 한다. <편집자>   ‘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해 협회장 선거에 세 번 출마 오랫동안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문제 의식을 안고 고민한 끝에 2004년 11월, 제9대 한국영상기자협회(이하 협회) 회장 선거에 첫 출마했다. 당시 ‘국제보도상 제정 이외에 ‘멀티기자 육성과 기자와 취재원을 보호하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등을 제정해 강한 협회를 만들고 위상을 높여 “영상이 펜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2004년 12월, 처음으로 협회 회장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하는 바람에 ‘국제보도상’ 제정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2014년 제24대 협회장에 두 번째 출마했으나 또 낙선했다. 공정방송 수호의 목소리가 높았던 데 반해 우리 스스로 내부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없었다. 감시와 비판도 없었다. 타 협회보다 직선제를 먼저 도입했지만 협회 운영은 실제 지상파 중심이고 기득권과 권위주의가 남아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25대 협회장 선거에 세 번째 출마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12년 만에 당선되었다.   취임 후, 협회의 재정은 파탄이었다. 4대보험이 직원 50%, 협회 50%를 부담하는 것이 정상인데, 협회가 100% 부담하고 있었고 직원 임금도 체불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 협회 재정이 파탄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운영위원회, 감사도 있지만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의 기능이 없었다. 협회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려고 했지만 일부 회원사에서 당선자를 끌어내기 위해 총회를 열었다. 이에 물러서지 않고 내부 감사보다 외부 특별감사를 통해 책임을 물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확산이 유신정권의 원인이었다. 유신 체제를 비판하지만 협회가 30년의 역사를 이어 오면서 협회장 선거 3선을 막는 규정이 없었다.   우리는 과거에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현재와 미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반적인 모순에 협회의 대개조(大改造)가 필요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현대사에 있어서 많은 국란을 겪어온 나라로서 사회가 온통 경제 발전에 집중해 왔다. 그러면서 빈부의 격차도 커지고 사회의 안전 시스템에 등한시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협회에서 시상하는 영상기자상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권과 환경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어 인권부문과 환경부문, 국제부문, 멀티부문을 추가했다. 특히 멀티부문과 인권부문, 국제부문은 국제보도상과 연관되어 있다.   내부의 경직된 조직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원칙을 세워 개혁한 후, 오랫동안 고민해 온 ‘국제보도상’ 제정에 힘을 쏟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국제보도상’ 제정 추진 국내외 언론, 전문가, 국제보도상 제정 높이 평가     ▲ 지난 2021년 10월 27일 서울시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첫 ‘힌츠페트국제보도상 시상식’에 참석한  수상자 및 내 빈객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영상기자협회).     2017년 1월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이하 협회)에 취임한 후 선거 공약대로 강한 협회를 만들고 민주, 인권, 평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국제보도상’ 제정에 몰입했다.   전국운영위원회 제1차 회의가 3월 3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에 있는 세종스파텔 세미나룸에서 열렸다. 협회장 선거 때 공약사항인 ‘아시아국제보도상’ 제정을 회의 안건에 붙여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시아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보도상’은 언론 검열로 취재‧보도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세계 도처에 민주, 인권 평화를 이루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세계 언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보도상’ 제정이 필요했다.   세계적으로 대표하는 언론상은 △신문 분야의 퓰리처상 △국제 영상저널리즘상인 로리펙상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 등은 현재 영국과 미국이 독과점하고 있는 ‘세계 3대 언론상’이다. 로리펙상은 1993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10월 쿠데타를 취재하다 숨진 영국의 영상기자 로리 펙(Rory Peck)을 기리기 위해 1995년 제정된 상으로, TV보도영상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세계 각국에서 시상하는 105개 국제언론상을 분석했다. 국제언론상은 대체로 종합적인 부문의 상과 평화, 인권상이 많았다. 특히 힌츠페터국제보도상과 경쟁력이 있고 국제보도상 중에 전문적이고 특화된 상은 로리펙상(Rory Peck Award)이었다. 이 상에 버금가는 국제보도상을 제정하기 위해 국내외 언론, 연구자 등에게 확인 조사를 했다.   한국은 시민이 독재 정권과 싸워서 민주화를 이룬 국가이고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미국에 의해 민주화가 된 나라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에서 독재 정권과 싸우고 있는 국가들에게 ‘5‧18광주민주항쟁’의 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민주, 인권, 평화에 기여하는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은 큰 의미가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문적이고 특화된 국제보도상을 제정하는 것은 앞으로 미국, 영국이 독과점 하고 있는 세계 3대 상에 버금가는 국제보도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평가에서 전문적이고 특화된 국제보도상의 명칭은 멀티 영상기자로서 민주언론 창달에 기여하고 ‘영상이 펜보다 강하다’는 깊은 인상을 남긴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Jürge Hinzpeter, 1937~2016) 기자의 이름을 딴 ‘힌츠페터국제보도상’으로 하는 것이 적합했다.     ▲ 2005년 5월 19일 본 협회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한 위르겐 힌츠페터(사진=한국영상기자협회)   협회는 2005년 5월 19일 ‘5‧18광주민주항쟁’을 세계에 알린 공로로 힌츠페터 기자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그는 2016년 1월 25일 7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힌츠페트는 독일 제1공영방송사(ARD) 소속 영상기자로 일본 특파원으로 있던 1980년 5월 당시 ‘5‧18광주민주항쟁’에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으나 국내 언론은 신군부의 언론 검열 강화 등의 조치로 자유롭게 보도할 수 없었다. 광주의 비극을 취재한 영상을 삼엄한 신군부의 단속을 피해 일본으로 반출한 후 독일 제1공영방송사(ARD)에 전달하여 수차례 보도했다. 해외 언론도 이 영상을 받아 보도함으로써 ‘5‧18광주민주항쟁’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전 세계의 양심적인 세력들은 광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들은 국제연대를 결성해 한국의 독재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협회는 2017년 11월 20일, 제25대 전국운영위원회 제4차 회의에서 ‘5‧18광주민주항쟁’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국제보도상의 명칭을 ‘힌츠페터국제보도상(가칭)’으로 변경하고 국제보도상 제정을 추진하가로 했다.   광주광역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에 반대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전 세계적으로 민주, 인권, 평화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기자를 매년 4개 부문을 수상자로 선정하고 예산 2억 원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광주광역시가 5‧18기념재단이 매년 주최하는 ‘5‧18언론상’과 ‘5‧18인권상’을 후원하고 있어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추가로 후원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과 ‘5‧18언론상’, ‘5‧18인권상’의 차별화를 강조했다. ‘5‧18광주민주항쟁’의 정신이 국내에 갇혀 있는 것보다 해외에 널리 알려 광주를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광주광역시와 광주광역시의회‘에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제정에 대한 목적을 이해시키는 데 주력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제정 목적 힌츠페트 기자 정신 기리고 ‘5‧18광주민주항쟁’ 정신 알려.... 민주, 인권, 평화 이루는 것   ‘5‧18광주민주항쟁’은 유신체제 연장을 추진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과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는 광주시민 및 전남 도민을 중심으로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싸운 민중항쟁이다. 항쟁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5‧18광주민주항쟁’은 1987년에 일어난 6월 항쟁에 많은 영향을 미쳐 한국과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시아에서 국민이 독재 정권과 싸워서 민주화를 이룬 국가는 한국이 최초이다. 우리보다 선진국인 이웃나라 일본도 아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전후 미국에 의해 민주화가 된 나라이다.   따라서 ‘5‧18광주민주항쟁’의 운동은 국내에 갇혀 있는 것보다 세계적으로 민주화운동을 알리고 확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전 세계 시민들이 연대한 운동이다.   오늘날 민주 국가라고 하지만 민주, 인권, 평화를 완전하게 이룬 국가는 없다. 그래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제정은 의의가 있고 세계를 향해 더욱 빛날 것이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제정하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상이 펜보다 강하다’는 업적을 남긴 힌츠페트 기자의 정신을 기리고 세계 곳곳에서 민주, 인권,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취재하는 영상기자를 발굴하고 ‘5‧18광주민주항쟁’의 정신을 전 세계에 알려 민주, 인권,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둘째,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 광주를 알리고, 각 나리의 시민들이 광주를 찾아 ‘5·18광주민주항쟁’의 역사를 배우고 기록하는 것이다.   셋째. 세계 각국의 독재 정권 속에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 지도자들에게 한국의 민주화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토대로 세계에서 독재 정권과 싸우고 있는 나라들에게 ‘5‧18광주민주항쟁’의 역사를 확산시켜서 민주화를 이루는데 기여하는 동시에 한국의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힌츠페터국제보도상’   2018년 5월 10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서초동에서 당시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이승열 아리랑TV 사장, 세계일보 황정미 부사장(현 주필)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은 “한국의 공공외교 확대 차원에서 필요한 사업이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국내적인 공감과 국제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견이 있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제정에 많은 사람들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 의회가 적극적이지 않은 가운데 2018년 6월 13일 지방자치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과 의회 의원이 교체되면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했다. ▲ 지난 2018년 9월 7일 당시 한국영상기자협회 한원상 회장(사진 가운데)이 광주광역시를 방문해 이용섭 시장(사진 오른쪽)에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광주MBC 이영범 국장(사진 완쪽)이 동행했다(사진=광주광역시)   2018년 7월 1일, 지방자치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취임했다. 9월 7일 광주광역시를 방문해 이용섭 시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힌츠페터 기자 정신을 기리고 ‘5‧18광주민주항쟁’의 정신을 세계에 알려 자유 민주, 인권, 평화를 이루는 데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의회가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에 부정적이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외적인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했다.   2018년 10월 18일, 당시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프란시유스코 칼리(Francisco Cali) 부의장(과테말라위원)과 정진성 한국위원(전 서울대 교수)이 광주포럼 참석을 위해 광주를 방문했다. 포럼이 끝나는 20일 광주광역시를 방문해 이용섭 시장을 만나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세계적으로 민주, 인권을 확산시키는 데 필요하다”며 상의 제정에 협조를 당부했다.   이 시기에 당시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도 광주광역시를 방문해 이용섭 시장을 만나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상이 제정될 수 있도록 부탁했다.   이후,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에 광주광역시의 예산 지원과 행정적 지원을 위해 광주 5‧18재단과 협의가 필요했다. 2018년 1월 24일부로 재단 이사장이 공석이었다. 그동안 협의를 하지 못하다가 2018년 5월, 이철우 제13대 이사장이 취임한 후, 11월 22일 광주5‧18기념재단을 방문해 이철우 이사장과 이기봉 사무처장 및 실무진을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이 이사장은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해외 민주화운동 역사의 이해가 높아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에 적극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5‧18광주민주항쟁의 정신은 국내에 갇혀있는 것보다 국제적으로 넓혀 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며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운영 방향과 제정 목적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한국영상기자협회와 광주5‧18기념 재단 공동주최로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먼저 갖고 예산 2억원 목표로 하여 시상식은 2020년에 개최하자”고 협의했다.   ▲ 지난 2019년 8월 28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한국영상기자협회,  5·18기념재단 공동 주최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 한원상).   2019년 8월 28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 공동 주최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은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 제안을 크게 환영했다. 힌츠페터가 목숨을 걸고 광주의 참상을 취재·보도한 기자 정신과 한국 민주화의 원동력이 된 ‘5‧18 정신’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세계에 알린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며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당시 김학실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사진=한원상)   먼저 재정 문제와 관련해 당시 김학실 광주광역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은 “광주시의회에서 힌츠페터 상의 존재감과 위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상의 제정 확보에 노력할 것”이라며“ 예산이나 조례를 제‧개정하는 문제 등 광주시가 도와줄 부분이 있다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고비의 순간   2020년 11월쯤,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예산 확보를 위해 마지막 관문을 남겨 놓고 어려움이 있었다. 외부 개입으로 광주광역시가 눈치를 보고 있었고 지방자치제 선거가 1년 7개월 남겨 놓은 상태였다.   김학실 광주광역시의회 의원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을 놓고 걸림돌이 생겼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5‧18기념재단 이철우 이사장과 이기봉 사무처장, 광주MBC 김영범 국장이 광주광역시 실무진을 만났다. 필자는 당시 협회의 바쁜 일정으로 광주MBC 김영범 국장이 대신 참석했다. 하지만 결과는 순탄하지 않았다. 김영범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희망이 없는 답변이었다.   일주일 후,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과 관련해 담판을 짓기 위해 광주광역시를 방문했다. 이날 실무진을 만나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에 있어서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주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힌츠페터는 영상기자이다. ‘영상은 펜보다 강하다’. 멀티기자로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5‧18광주민주항쟁’을 취재해 전 세계에 알려 한국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는 데 기여했다.   둘째, 퓰리처상, 피버디상, 로리펙상이 세계 3대 언론상이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내용적으로 의미 있는 상이므로 전문가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영상 기자들이 세계 3대 언론상에 버금가는 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미얀마, 벨라루스 등의 세계 국가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5‧18광주민주항쟁’의 정신이 국내에 갇혀 있는 것보다 세계에 확산시켜 민주, 인권,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힌츠페터와 같은 멀티 기자들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이 제정되어야 하고 영상기자 단체인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주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 광주광역시 실무진은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의 의의를 깊이 이해했다.   광주광역시의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예산 통과 김학실 의원, 고 이홍일 의원의 노력이 빛났다 ▲ 지난 2020년 7월 2일,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을 위해 당시 한국영상기자협회 한원상 회장(사진 왼쪽 첫 번째)과 5‧18기념재단 이철우 이사장(사진 오른쪽 가운데)이 광주광역시의회를 방문해 김학실 의원(사진 오른쪽 첫 번째)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5‧18기념재단 이기봉 사무처장(사진 오른쪽 세 번째)과 김영범 광주MBC국장(왼쪽 두 번째)이 동행했다 (사진=5‧18기념재단).   2020년 12월 9일, 광주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관련 예산 안이 통과되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주최는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 후원은 광주광역시가 맡기로 했다.   당시 광주광역시의회 김학실 의원은 “코로나19 정국으로 기존 예산도 모두 20% 삭감되는 상황이라 신규 사업인 ‘힌츠페터국제보도상’도 원래 금액보다 많이 감축됐다”며 “내년 3월 추경 때 나머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예산은 1억 7천만 원으로 확정되었다.   김 의원은 “광주 5·18 정신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국제보도상인만큼 피버디상, 로리펙상과 같은 세계적인 상과 어깨를 견줄 수 있게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이홍일 광주광역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2025년 2월 6일 사망)은 2020년 11월 광주매일신문에 기고한 칼럼 ‘40년 만에 명예 회복하는 5‧18민주화운동’에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며 “‘세계 3대 언론상’, 특히 ‘로리펙상’에 버금가는 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첫걸음 시작 시상은 경쟁 부문과 비경쟁 부문.....총 4개 부문 시상   2020년 12월 23일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한원상·아래 협회)와 5‧18기념재단(이사장 이철우)이 4년 동안 추진 해온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이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협회와 5‧18기념재단은 “세계의 민주‧인권‧평화를 위해 취재하다 사망하거나 민주화 확산에 기여한 영상기자를 수상자로 선정하여 5‧18광주민주 항쟁의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릴 것이다”고 밝혔다. 시상은 경쟁 부문과 비경쟁 부문으로 나누고 총 4개 부문을 시상하기로 확정했다.   경쟁 부문은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인도주의적 영상에 수여하는 임팩트상(나중에 기로에 선 세계상으로 변경), 시의성에 초점을 둔 우수 영상에 시상하는 뉴스상, 탐사 보도 영상에 수여하는 특집상 등 3개 부문으로 나누고, 비경쟁 부문은 민주·인권·평화에 크게 기여한 영상기자 또는 사망자에게 수여하는 공로상이 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이 확정되자, 그동안 국내와 해외에서 자문해 줬던 지지자, 언론들이 잇따라 환영했다. 특히 힌츠페터 기자에게 ‘5‧18광주민주항쟁’을 취재하는 데 처음 알린 파울 슈나이스(2022년 2월 사망) 목사는 “매우 기쁘다”면서 “이 상이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라이펜 슈툴 주한 독일대사는 2021년 3월 5일,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조직위원회가 주한 독일대사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동안 광주에서 열리는 5.18 관련 행사에 참여해 왔다”며 “힌츠페터의 활약과 정신을 기리는 국제보도상이 제정돼 감사하고 기쁘다. 반드시 시상식에 참여할 것이다”고 밝혔다. “ARD방송사에서 심사 참가는 물론이고, 독일의 언론단체, 기자단체 등이 ‘힌츠페터국제보도상’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5월 18일, 5‧18민주화운동 41주년 SNS 메시지를 통해 영화 <택시 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떠올리면서 “오월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키며 기록했던 그의 뜻을 기려, 오는 10월부터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시상한다”면서 “광주가 성취한 민주주의 가치를 세계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면서 “오월 광주와 힌츠페터의 기자정신이 미얀마의 희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2021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첫 시상식 열려   2021년 10월 27일.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 코바코홀에서 2021년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첫 시상식이 열렸다. ‘기로에 선 세계상’에 벨라루스의 메케일 아르신스키, 뉴스부문에 미얀마의 노민과 콜린(가명), 특집부문에 이탈리아의 브루노페데리코, 비경쟁부문에 대한민국의 고 유영길 영상기자(미국 CBS방송)가 각각 수상했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세계 곳곳에서 정의와 민주, 인권과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취재현장에서 수많은 ‘힌츠페터’ 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진실을 취재해 세상에 알리고 있다”고 밝히고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 작품에 대해 소개했다. 특히 일본 교도통신 및 지역신문, 싱가폴CNA, 폴란드 벨사트TV(Belsat TV), 아프리카 가나신문, 아리랑TV 등에서도 보도해 국제적인 반향을 이끌었다.   이날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은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이 오월 광주정신과 함께 세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면서 “우리 광주는 앞으로도 정의를 지켜내는 민주시민들, 현장에서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는 기자들과 함께 할 것이다”며,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이 민주‧인권의 가치를 담은 대표적 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서면 축사를 통해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며 “80년 광주의 진실은 그의 기록에 의해 힘을 얻었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한 오월 영령들의 뜨거운 심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기록하는 세계 언론인들에게 큰 용기와 격려가 될 것이다”며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제정에 앞장선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역사의 기록에 남긴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제정은 지난 4년간 포기하지 않고 긴 여정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광주광역시와 광주시의회가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새로운 논리로 상대를 설득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서 인내와 도전으로 부딪히면서 제정되었다. 여기에 많은 협조와 지원이 있었다.   당시 광주광역시에는 이용섭 시장, 윤목현 민주인권평화국장(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최종 결정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5‧18기념재단에는 이철우 이사장, 이기봉 사무처장,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이미경 이사장, 재외동포재단 한우성 이사장,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한국위원 정진성 (서울대 교수),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프란시유스코 칼리(Francisco Cali) 부의장(과테말라위원), 언론인 아리랑TV 이승열 사장, 한국일보 이준희 사장, 세계일보 황정미 부사장(현 주필), 방송통신위원 김창룡 상임위원 (전 인제대 교수)의 관심과 협조가 있었다.   ‘힌츠페터상국제보도상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광주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이 통과되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준 당시 광주광역시의회 김학실 의원과 이홍일 의원(2025년 2월 사망)이 있었다. 그리고 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의회에 예산안이 통과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당시 더불어민주당, 광주 동구지역 이병훈 국회의원이 있었다.   또, 문재인 정권 당시 대통령 비서실 이기헌 시민참여 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상훈 홍보기획 행정관도 많은 도움을 줬다.   영상기자 김영범 전 광주MBC 국장과 서재덕 전 KBS 부장은 당시 광주광역시와 광주광역시의회를 방문할 때마다 항상 건물 입구에 기다려 동행했다.   이외에 자유, 민주, 인권 평화에 관심 있는 연구자 및 단체, 퓰리처상 수상자, 국제보도상 연구자, 국내 언론사 기자, 외신 기자 및 해외 동포들의 관심과 협조가 있어서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이 제정되었다는 것을 역사의 기록에 남긴다.
    2026-01-20
  • AI와 함께 늙어가는 시대, 돌봄을 다시 묻다
    AI와 함께 늙어가는 시대, 돌봄을 다시 묻다  영상기자의 방송대상·광고대상 수상기MBC충북  김병수  다큐멘터리 이론의 창시자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 1898–1972)은 다큐멘터리를 ‘현실의 창조적 처리(creative treatment of actuality)’라고 정의했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단순히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선택적으로 구성하고 재현함으로써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고 재구성하는 적극적 실천 매체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기록물이 아니라, 제작자의 문제의식과 해석, 그리고 선택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의미화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관점은 영상 기자로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나의 작업 방식과도 일맥상통하며, 현장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어떻게 질문하고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의 출발점이 되어왔다.기술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을까?MBC충북 창사 54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AI 돌봄〉 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의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에서, 흔히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로 이야기되는 AI가 실제 노인 돌봄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고자 한 실험적 다큐멘터리였다. 이 작업은 AI 기술의 효율성이나 가능성을 입증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AI 돌봄 인형과 함께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일상,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서서히 변화하는 감정과 삶의 결을 밀도 있게 관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기술 그 자체의 성능 이 아니라, 말을 걸고 응답하며 교감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삶이었다. 기술이 인간의 일상에 스며들었을 때 드러나는 미묘한 감정과 현실을 영상 기자의 시선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접근을 인정받아, ‘2025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창의혁신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창의혁신 부문은 단순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넘어, 기존의 형식과 관행을 넘어서는 도전과 실험을 통해 미디어의 지평을 확장한 프로그램에 주어지는 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영상기자로서 이처럼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깊은 경험이다. 방송 현장에서 웬만한 PD들도 받기 쉽지 않은 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번 수상은 개인의 성과라기보다, 영상 기자가 기획·연출·촬영·편집 전 과정을 책임지며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실천적 역량이 하나의 결과로 인정받았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디지털 수눌음, ‘해녀 세이프 버디’ 〈AI 돌봄〉 2부에서 다룬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를 넘어 또 다른 실천으로 확장되었다. 생계를 위해 고령의 몸으로 바다에 나서야 하는 해녀들의 현실, 그리고 매 순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의 시간은 돌봄이 개인이나 특정 공동체의 책임으로만 남겨져 온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문제의식은 국내 유수의 광고업체와 함께한 공익 캠페인 ‘해녀 세이프 버디(Haenyeo Safe Buddy)’로 이어졌다. 해녀 세이프 버디는 고령의 해녀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로, 해녀들이 바다에서 동료들과 소통하기 위해 내는 수눌음을 디지털 신호로 전환해 위급 상황을 공유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기술을 통해 해녀 공동체의 전통적 돌봄과 연대 문화를 재구성한 사례로, 아날로그적 수눌음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 캠페인은 ‘2025 대한민국광고대상’ 이노베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방송 영역에서만 활동해 온 영상 기자가 광고 분야까지 작업을 확장해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AI 돌봄〉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한 질문과 문제의식이 공익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적 평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두 작업은 분리된 성과가 아니라 연속된 실천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은 어느 한순간의 성취가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아 온 질문과 실천의 결과였다. 기획과 연출, 촬영과 편집, 그리고 현장을 해석하는 감각까지, 영상기자로서 축적해 온 모든 역량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값진 성과였다. 기술을 다뤘지만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질문은 언제나 현장에서 시작됐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영상 기자의 역할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질문을 구성하고 메시지를 설계하는 주체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작업이 영상기자가 촬영과 편집 뿐만 아니라 콘텐츠 기획과 연출 그리고 사회적 담론 형성의 핵심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기를 바라며, 끝으로 늘 현장에서 함께 고민해 온 동료 영상기자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2026-01-20
  • 생성의 시대, 영상 저널리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생성의 시대, 영상 저널리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KBS 선상원 카메라는 자고로 빛을 담아내는 가장 대표적인 '기록의 도구'였다. 적어도 AI가 우리들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렌즈 앞에 존재한 사건과 인물을 빛으로 받아 적는 행위, 그것이 영상 저널리즘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 전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영상은 더 이상 '포착된 기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예측하고 생성한 이미지가 실제 기록처럼 소비되는 시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말 갑자기.   문제는 기술의 발전 속도다. AI 영상 기술은 이미 현장의 판단과 검증 속도를 앞질렀지만, 이를 다루는 문화적 합의와 법, 윤리적 기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학자 윌리엄 오그번이 말한 '문화지체(cultural lag)' 현상이 영상 저널리즘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면서 이 논쟁에 틀걸이 안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모를 크나큰 질문들을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무엇이 가능한지는 빠르게 생겨나고 있지만,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질문들이 쌓여가고 있다.   OOOO의 기준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적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구분이 된다. 흐릿한 CCTV나 오래된 영상을 선명하게 만드는 '강화, 복원', 화면 속 요소를 삭제하거나 추가하는 '변형,편집', 정지 사진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재현하는 '이미지의 동영상화', 그리고 텍스트 입력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생성하는 '텍스트의 동영상화' 단계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알고리즘이 적용되지만, 동시에 사실과 맥락을 구분해 온 저널리즘의 영역에서는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따른다.   그러나 보도영상을 업으로 하는 영상기자의 입장에서 이 생성형 AI가 무엇보다도 위험한 지점은 시청자가 이를 실제로 있었던 사실로 오인하는 순간이다. AI로 보정된 얼굴, 또는 일부만 수정한 누군가의 프로필 사진, 낮은 CCTV 영상의 해상도를 올려 4K급으로 만들어주는 AI. 이런 영상들에 자세한 설명이 없을 경우 computure-generated image들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담아낸 저널리즘 영상으로 소비되기 십상이다. 기술은 저 멀리 앞서가지만, 이를 판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소비하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아직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 법과 제도 역시 '사용 가능 여부'만을 묻지,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에 대한 논의는 접근조차 못 하고 있다. 이 간극이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문화지체의 핵심이다.   국제 사진 대회에서 AI 생성 이미지를 출품한 작가가 "AI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다"라며 수상을 거부한 사례는 이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적으로는 완성도 높은 이미지였지만, 그것이 기록의 영역에 들어오는 순간 사진의 정의와 윤리가 붕괴한다는 판단이었다.   해외 언론사들의 대응은 참고할 만하다. BBC와 CBC는 딥페이크 기술을 피해자 보호나 익명성 확보라는 공익적 목적에서 검토했지만, 동시에 '완전한 공개(disclosure)'와 인간 편집자의 감독을 절대 원칙으로 삼았다. CBC는 더 나아가 "시청자가 뉴스가 실제인지, AI 생성물인지 의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선언까지 내놓았다. 신뢰 붕괴의 위험을 기술 효율성보다 앞에 둔 선택이다.국내 언론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기술을 외면할 수는 없다. 복잡한 구조를 설명하는 시각화, 접근 불가능한 공간의 재현, 기획 단계에서의 아이디어 도출 등은 분명 유용하다. 그러나 '가능해졌기 때문에 사용한다'는 논리는 문화지체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다. 기준 없는 도입은 결국 뉴스와 합성물의 경계를 흐리고, 그 비용은 시청자의 신뢰로 지불된다.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을 어디까지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뉴스 소비자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좋고 편해도 하지 않겠다’라는 대원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1차 자료의 가치, 원본 형식에 대한 존중, 그리고 시청자에게 솔직하게 설명할 책임은 기술 발전 속도와 무관하게 지켜져야 할 저널리즘의 최소 조건이다.   생성의 시대, 지속 가능한 영상 저널리즘은 기술을 따라가는 경쟁이 아니라, 기술을 늦춰 바라볼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문화와 법, 윤리가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 시기에, 언론은 속도의 편이 아니라 신뢰의 편에 서야 한다. 그것이 기록자로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어본다.
    2026-01-20
  • [2025힌츠페터 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소감]
      ▲ 2025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아녜스 나밧, 마리안 게티 (글) 이처럼 권위 있는 상을 받게 되어 매우 큰 영광입니다. 특히 이 상이 우리에게 뜻깊은 이유는, 이 영상보도가 제작된 근본적인 목적인 티그라이(Tigray) 전쟁 중 대규모로 자행된 조직적 성폭력 피해자들의 침묵을 깨뜨리는 일과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작업을 인정해 주심으로써, 여러분은 이 중요한 과업에 의미 있는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티그라이의 경우, 그것은 잊힌 전쟁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이 지역은 남쪽에서는 에티오피아 군, 북쪽에서는 에리트레아 군에 의해 거의 1년 반 동안 봉쇄되었습니다. 이 포위로 인해 인도적 지원은 차단되었고, 언론인들은 진입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2년 전 휴전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언론 통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 중 자행된 성폭력의 규모는 전례 없고 상상조차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추산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단 8개월 만에 12만 명의 여성, 즉 티그라이 여성의 10명 중 1명이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끔찍한 범죄들은 에티오피아군과 에리트레아군, 그리고 암하라 민병대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그 모든 일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닿지 않는 침묵 속에서 벌어졌습니다. 전쟁에서 성폭력을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전체 사회를 붕괴시키려는 전략입니다. 이 영상을 통해 우리는 티그라이 여성들도 우크라이나, 콩고, 이스라엘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관심과 연대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를 가장 충격에 빠뜨린 것은, 전쟁 후 지역이 재개방되면서 드러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성폭행 실태와 언론 보도에서의 거의 완전한 부재 사이의 간극이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토록 성폭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참혹함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고통 속에 홀로 남겨져 있는가?” 티그라이, 더 넓게는 에티오피아 전체는 성 역할이 엄격히 규정된 가부장적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은 “더럽혀진 자", 불결한 자로 낙인찍히고, 공동체에서 배척당합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세 겹의 고통을 짊어집니다. 첫째, 평생 지속될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 둘째, 공동체로부터의 배척. 셋째, 가족과 사회의 냉대입니다. 남편은 그들을 버리고, 친척은 외면하며, 이웃은 비난하고, 그들의 자녀들은 결혼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강간을 저지른 군인들과 민병대원들은 피해자들을 일부러 살려두었습니다. 때로는 피해자 본인이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었을 만큼 끔찍했지만요. 그들의 목적은 굴욕과 파괴였습니다. 사회 전체의 근간인 ‘어머니들’을 공격함으로써 티그라이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을 우리에게 수여해 주신 것은, 사실상 이 영화 속 두 여성의 용기와 헌신에 대한 찬사이기도 합니다. 티그라이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음악가 메세렛 하두시(Meseret Hadush) 와 공공병원 간호사 물루 메스핀(Mulu Mesfin) 입니다. 물루 메스핀은 아이더(Ayder) 병원에서 근무하며 전쟁 발발 이후 수천 명의 여성 환자를 치료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전쟁 중 자행된 성폭력의 증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메세렛 하두시는 피해자들이 경제적 자립과 사회 복귀를 이루도록 돕는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수천 건의 증언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들은 군인들과 민병대에 의해 성폭력을 겪은 수많은 생존자들이 회복하기까지 끝없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티그라이 여성들의 고통에 목소리를 부여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들을 괴롭히고 지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질문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잊은 건가요?” 여러분 덕분에 이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니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두 여성의 헌신을 비추며, 도움이 가능하며 동시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프랑스에서, 유럽에서, 아시아에서 우리가 이 문제에 주목하고 관심을 보인다면, 재건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국제 NGO와 재단들이 현지에서 대규모 의료 지원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의 실현을 위한 투쟁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물루 메스핀은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에게는 어머니도, 자매도 없는 걸까요?” 이제 지역 차원에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군이나 민병대에게 명시적인 명령이 내려졌던 것일까요? 그리고 여성의 몸에 자행된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 끔찍한 범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가 현장에서 수집한 일부 증거는, 일부 교전 세력이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성폭력을 통해 사실상 ‘집단학살적 의도’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몸에 가해진 참혹한 범죄의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독립적인 국제 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에티오피아 정부는 여전히 전쟁의 결과나 국내 정치적 긴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티그라이 전쟁 중 자행된 범죄를 규명하기 위해 파견된 유엔(UN) 조사단조차 현지에서의 활동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에티오피아 정부의 압력으로 그들의 임무는 갱신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보상과 정의 없이는 피해자들의 치유 또한 시작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난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희망도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죽기 한 시간 전이라도 정의를 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렇게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제작은 근본적으로 공동 노력의 결과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함께 들어주고 조언해 주며, 지식을 나누어준 모든 기자와 연구자들 특히 노에 오셰 보댕(Noé Hochet Bodin), 앙투안 갈린도(Antoine Galindo), 미티쿠(Mitiku) 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현지에서 통역을 맡아준 분의 이름은 보안상 공개할 수 없지만, 그의 용기는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또한 우리 제작사 크라켄 필름(Kraken Films), 방송사 ARTE Reportage, 그리고 이 상으로 우리의 노력을 인정해 주신 심사위원단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