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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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촛불이 모이면 거대한 불기둥이 된다.
    촛불이 모이면 거대한 불기둥이 된다.   광우병 파동이후 다시 수백만 국민들은 촛불을 잡아들고 거리로 나갔다. 나라를 파탄으로 빠트린 대통령과 그 대통령의 힘을 이용해 온갖 비리를 저지른 최순실과 그의 일당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처참하게 짓밟힌 민주주의에 대한 분노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으며 탄핵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이 나라가 어쩌다가 이정도로 망가졌을까!” 한해를 잘 마무리 하고 새해의 목표를 세워야할 중요한 시기에 국민들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허탈감에 무기력해진 모습이다. 글로벌 기업이라 자칭하던 재벌들은 사욕에 눈이 멀어 누구라 할 것 없이 뇌물을 바쳤고 그 어느 곳보다 공정하고 양심적여야 할 대학은 입시비리와 특혜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는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설들로 무성했지만 드러나지 않고 수면 밑에 존재하고 있던 부정과 부패가 한 언론사의 보도로 부터 밝혀지며 시작된 일련의 일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힘을 보여준 특종 이였다. 뒤늦게 뛰어든 언론사들은 이른바 낙종을 만해하려고 고군분투하며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과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취재와 보도로 연일 단독의 타이틀을 내걸고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 단독보도라고 하는 기사를 들여다보면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와 같은 내용이 부지기수다. 오히려 경쟁 속에 의혹과 오보만을 양산해 놓고 있다. 팩트 확인은 둘째 치고 오보로 확인된 사실조차 바로 잡지 않으며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게 부끄러운 현실이다.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날카롭고 차갑다. ‘너희들도 공범들’이라며 배신감에 야유를 보냈고 급기야 현장취재를 준비하던 기자들이 쫓기다 시피 자리를 떠나야 했던 안타까운 상황도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권력과 부조리를 감시해야할 언론이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다가는 어느 순간 머지않아 퇴출되고 말 것이다. 이렇기에 특정 언론과 언론인에 대해선 무조건적인 환영과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번 사태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게 뭘까,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한 어떤 노력을 했을까...   사회관계망인 SNS가 활발한 지금 이 시대는 더 이상 음모와 비밀이 숨어 있을 수 없다. 잠시 눈을 피하더라도 어느새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젠 언론은 더 이상 여론을 이끌고 가는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여론을 이끌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거리에 모인 촛불들을 보며 진실을 추구하는 마음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힘으로 모이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반드시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한다.  
    2017-04-20
  • 취재진의 정당한 취재 활동을 방해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
    취재진의 정당한 취재 활동을 방해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서울 도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와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집회 현장에서 카메라기자들은 공정한 보도를 위해 국민의 눈과 귀가되어 사회적 공기로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달 21일 서울광장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YTN 취재진 3명이 일부 집회 참가자들에 의해 수십 차례 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YTN 취재진을 30~40m 가량 밀치고 몰아가며, 취재진의 신체와 카메라를 손바닥과 주먹, 그리고 들고 있는 태극기로 밀고 치는 폭행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사태를 파악하고 중재에 나섰음에도 집회 참가자들은 태극기 봉으로 오디오맨의 안면을 폭행했다. 이 뿐만아니라 최근 벌어진 탄핵 반대 집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은 지속적으로 취재진을 향해 폭력을 가하고 갖은 욕설과 협박으로 취재를 방해하고 있다. 뉴스 현장에서 취재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은 국민을 대신해서 역사적 진실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며 기록하는 역사의 기록자들이다. 정당하고 역사적인 취재 활동은 어떠한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 취재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정당한 취재 활동을 방해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가 계속 된다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 할 것이다. 2017년 2월 6일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2017-02-16
  • <민중총궐기집회> 새내기 기자의 첫 취재 현장속에서
    11월 13일, 입사하지 얼마 되지 않아 매일 양복을 입고 다니는 제게 선배가 퇴근하기 전에 와서 말했습니다. “내일은 무조건 편한 옷으로 입고 와라. 많이 뛰어야 할 테니까” 2008년 광우병 집회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가 될 것이라는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이었을 때는 집회 장소에 가더라도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이면 그만이었지만, 기자가 된 지금은 내가 보고 있는 현장이 시청자가 보는 현장이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가 시작됐고 서울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전 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저는 대학로로 향했습니다. 집회 장소에 도착해서 일단은 사전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모여 있는 엄청난 사람들 수에 놀랐고,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다양성에 놀랐습니다. 하나의 장소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국정교과서, 쌀 개방, 고용 문제, 세월호 인양 등 각기 다른 문제 아울러서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이들이 이 문제를 두고 거리에 나왔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이 문제들은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다뤄온 문제들입니다. 물론 언론이 정책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저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본래의 역할을 다 했는데 저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온 것인지, 우리가 언론인으로서 저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 거리로 나온 것인지 현장에서 즉시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 있는 현장에서 만큼은 후자의 경우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사전 집회가 끝난 후 행진을 따라 도착한 광화문 광장은 혼잡 그 자체였습니다. 대규모의 집회 참여자와 그에 맞먹는 수의 경찰이 대치하며 날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카메라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도 고민이 됐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집회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지 모를 정도로 눈앞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둔기를 들고 경찰 차량을 파손하는 등 과격한 양상을 보이는 일부 참여자들, 그리고 과격한 행위를 하지 않는 일반 참여자들에게도 구분 없이 물대포를 직사하는 경찰들로 인해 집회는 점점 과열되고 있었습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 속에서 모두가 흥분하며 감정을 앞세우고 있을 때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대치가 극에 달해 있을 때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KBS의 촬영기자처럼 물대포를 정통으로 맞은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카메라 쪽으로 날아오는 최루액과 물대포는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쌓인 일부 과격한 집회 참가자들의 취재 방해는 현장에 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정말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깐 힘이 들기도 했지만, 애초에 누군가에게 환영받기 위해 간 자리가 아니었고,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순간 공정한 취재에 방해가 될 것이란 생각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집회 전 날 선배가 했던 말처럼 이 날 만큼 카메라를 들고 많이 뛰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와 현장에서 찍었던 영상을 확인해보니 많이 뛰어다닌 만큼 찍은 양도 많았습니다. 첫 대규모 집회 취재에서 예상보다 많은 인파 앞에 당황해 갈팡질팡 하기도 했고, 순간의 상황 판단 실수로 필요한 영상을 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취재 능력은 이 날보다 더 향상시켜나가겠지만, 이 날 느꼈던 언론인으로서 역할과 책임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공정한 취재를 위해 냉정을 유지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김세호 / YTN
    2015-12-28
  • <나의 취미> 바다를 낚으러 간 사나이
    바다를 낚으러 간 사나이 - 바다낚시 남자들이 망하는 취미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라고 한다.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낚시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KBS 김진환 기자의 주장이다.이제 그의 취미 낚시를 만나보자.어릴 때 벌교 냇가에서 낚싯바늘에 밥알을 메달은 막대기로 붕어를 많이 잡던 기억이 아직 남아서 그런지 지금도 낚시 갈 때는 설레고 밤잠을 설치고 떠난다.오늘은 서해안 침선(沈船 : 가라앉은 배) 낚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우럭 침선 낚시 준비물은. 선상 낚싯대, 전동 릴(보통 30만 원 이상 비쌈) 대여도 할 수 있음,미끼(오징어채, 루어, 미꾸라지) 우럭바늘 6호, 쇠추 100호, 납추는 환경오염으로 금지되어 있다.그리고 중요한 소득 결과물을 가지고 올 아이스박스 얼음 먹을 간식 등.부르릉~~ 출발!!! 새벽 01시 00 집에서 출발.우우~~!! 자다가 나가서 정신이 없다......새벽 안흥항에 도착했다....이른 새벽인데 사람들이 많이 왔다.여러  배들이 준비에 불을 밝히고 있다.실제로 배낚시에는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이유는 선장의 특성에 따라 배를 어떻게 대는가에 많이 잡을 수 있고 적게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요즈음은 선장에 따라 자리배정을 추첨을 통해서 결정하기도 한다.낚시를 도와주고 매운탕을 요리해주는 사무장이라는 분도 함께 탑승한다. 총인원 (선장, 사무장 포함 22명)동트기전인 새벽 4시에 출항한다. 요즈음은 얼마 전 가짜 탑승기록 사고 이후 인원점검도 확실히 한다. (해경이 한명씩 호명을 하면  김진환 ” 예~) 해야 떠난다.드디어 탔다. 배에는 전동 릴을 가동할 전원 장치와 첨단 어류 탐지기와 GPS 장비로 무장하고 선장은 그날의 조류와 우럭이 많이 나오는 포인트로 전속력으로 출발한다. 무려 3시간 반 이상 나가야 하기 때문에 선실에서 쪽잠으로 눈을 붙인다. 자다가 나왔는데 해가 저만치나 떠있다.... 망망대해.... 진짜 아무것도 없다....부르릉! 부릉! 좌로~ 우로 ~ 앞으로, 뒤로 엔진 소리가 요란하다. 선장의 실력에 따라서 아이스박스 속의 결과물이 다르다. 능력이 뛰어난 선장의 배는 2달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탑승하기 어려울 정도이다.서해안 낚싯배는 조류가 한 달에 2번 사리 물 때와 조금 물때로 나누어진다.보통 서해안 낚싯배 물때는 한 객기, 두 객기, 조금, 무시, 1물, 2물, 3물, 4물때까지가 낚시가 잘되는 물때다. 이유는 조류의 세기. 조류가 빠르면 포인트에 접근하는 시간도 짧고 선장님도 배를 포인트에 진입하기도 어렵고 낚싯줄도 수직으로 뻗기보다는 옆으로 연 날리듯 늘어진다. 전에는 3물때를 선호하는 꾼들이 많았으나 개인적으로 봤을 땐 서해안 낚시 배에서는 사리 끝나고 첫 물때인 한 객기나 두객기를 선호한다.사리 때 물이 뒤집어지고 물이 맑아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 한 객기다 두 객기이다."근데 침선 낚시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배낚시 자리가 배정된 곳에는 전동 릴을 공급받을 전원과 바닷물을 펌핑해주는 물통도 준비돼 있다.낚시 준비는 제일 하단에는 100호 추를 달고 그 위에는 생미끼(미꾸라지, 오징어채) 단다. 우럭이 주 어종이지만 보너스로 바닥 층에 딱 붙어서 서식하고 마치 호 떡을 길게 늘려서 눈만 두 개 붙어 놓은 듯 한 광어를 잡기 위해서다.그 위에 루어 웜 등을 바늘에 꿰면 (보통 2단) 모든 준비된 것이다.이때부터 선장의 방송이 시작된다.부저음 한 번 띠!, "자~! 낚싯줄은 내리세요" "낚싯줄 올리세요."  띠! 띠! 신호가 두 번 울리면 다음부터는 이 신호에 따라 일사천리 진행된다.이제 낚시 시작이다. 꾼은 저마다 남들은 못 잡지만 나는 대물을 잡을 거야하는 기대 심리가 있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띠 하는 부저음과 함께... '우왕~'휙! 풍덩! 소리. 보통 50-80미터 수심 굉장히 깊다.선장은 어탐기를 보면서 방송을 한다.“침선 높이 5미터입니다.”"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면 1미터만 감아올려서 들고 계세요" 라고 하는 요령도 잊지 않는다.가만히 들고 있으면 파도가 출렁 출렁 자연스럽게 배가 움직여 고저로 미끼가 움직여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인 것처럼 된다. 물고기가 입질을 시작한다. 이때부터가 중요하다.첫 배에서 낚아오는 우럭이 미끼로 무엇을 먹다가 나오는가를 주변 낚시꾼과동료가 잡은 우럭으로 재빨리 확인도 해야 한다. 만약에 나의 미끼와 다르다면 교체하는 것도 요령이다.우럭낚시에서 챔질 방법은 처음은 툭 툭 하구 건들다가 쿡 꾸욱하고 낚싯대 끝에 강한 전율과 함께 휘어지기 시작하면 이때 챔질을 해야 하는데 챔질에 따라 우럭낚시에서는 물고기를 잡기도하고 못 잡기도 한다.초보들은 이놈이 미끼만 먹고 도망갈까 봐 조바심에 강하고 빠르게 챔질을 한다. 우럭 낚시에서는 절대 금물이다. 이럴 때 놓칠 확률이 대단히 높다.물고기가 입질을 하면 전에 고패질 할 때 보다 약간만 빠르게 해서 낚싯대 끝이 하늘을 볼 때까지 들어 올리면 된다.릴 감는 속도는 안전하게 10이하로 맞추고 천천히 손맛을 느끼면서 걷어 올리면 된다.입질이 약할 때는 입언저리에 걸리는데 입어 저리 가 약해 강한 챔질은 입언저리가 찢어져서 바늘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기가 물었으면 긴장하지 말고 챔질도 또한 천천히 낚싯대 끝이 하늘을 볼 때까지 들어 올려 주면 안전하게 잡을 수 있다.고기 잡히는 수심은 포인트에 따라서 다르지만 같은 장소에서 계속 고기가 나오면 수심 층을 전동 릴에 재빨리 입력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진입할 때 조금 전 고기를 잡았던 수심을 그대로 맞추고 진입하면 거의 확실하다. 이런 요령 또한 남들보다 더 잡을 확률이 높다.단 주의할 점은 저수온기는 평소와 공략 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바닷물의 수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고기들은 먹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때문에 생미끼 낚시를 할 때는 고패질 하는 것보다는 미끼를 바닥 근처에 가만히 두는 게 유리하다. 약한 예비신호가 전해지면 아주 천천히 미끼를 움직여 본신을 유도하면 된다. “으라차차!”이런 화이팅과 함께 대물을 꿈꾸어 본다.귀항 시간도 보통 2시간 이상 소요된다. 다시 선실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선장은 방송을 한다. “오늘도 조사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많이 잡으려고 여기저기 다녔지만  쉽지 않네요.""저기, 육지가 보인다!"지루하고 멀미만 날줄 알았던 침선 배낚시."정말 즐거운 바다체험!""아! 또 가고 싶어~ 좋아 좋아~ 아주 좋아!"김진환 / KBS 영상특집부
    2015-12-28
  • <청와대 순방 출장> 중국의 밧줄 포토라인과 상처뿐인 백악관 취재
    지난 12월 초 나는 2년 동안 청와대 출입의 익숙한 옷을  벗고 경제문화 취재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처음 청와대 취재기를 부탁받았을 때 망설였지만 나의 작은 글이 청와대 영상취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청와대 영상 1풀은  KBS MBC SBS OBS YTN MBN  KTV로 구성되어있다. 청와대 출입의 꽃은 전용기인 Air Force One을 타고 대통령 해외순방 취재가 아닐까 싶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대통령 해외출장을 동행해 13번 총 29개국을 다녀왔다. 물론 나보다 더 많은 순방을 다녀온 선후배들도 많이 있어서 조금은 이런 글을 쓰기가 쑥스럽지만 본인이 느낀 점만 쓰는 것임을 밝힌다. 해외순방기간 중에 취재는 국내취재여건과 다르고 상대국의 의전과 취재방식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해야 하고 순간은 놓치면 물먹는 상황이기에 항상 새롭다. 해외순방은 대한민국 풀로 구성되어 대통령 일정을 취재하기에 처음 청와대 출입하여 대통령 모습을 취재했을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손끝이 떨렸던 기억이 난다.대통령해외순방 취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작년 11월  북경에서 한중 FTA협정식과 지난 10월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이 아닐까싶다. 영상기자로 대한민국을 대표로해서 중국인민대회당과 미국 백악관에 들어가 정상회담을 취재한다는 것은 행운이고 선택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중정상회담 취재 당시 처음에는 상당히 긴장했다. 중국취재진과 치열한 자리싸움도 그렇고 중국의 악명 높은 밧줄포토라인 때문이다. 처음에 중국취재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밧줄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제대로 취재도 못하고 나온 경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한중정상회담과 FTA협정식에서 중국이 우리 취재진을 많이 배려해 주었다. 중앙자리와 취재할 수 있는 상당한 시간을 준 것이다. 한중정상간의 우호적인 분위기와 중국이 FTA협상 타결 목적으로 우리를 많이 배려했고 취재진을 자극하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는 정상회담과 한중 FTA협정식 취재는 역사의 현장에서 기록자로 있었던 자체가 영광이고 행운이다. ▲지난 11월 APEC 정상회담 단체기념촬영 두시간째 기다림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출장은 백악관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한미정상회담 취재다. 미국대통령 접견살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 한미정상회담을 풀로 들어간다고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얘기를 듣고 조금은 부담이 되어 그동안의 한미정상회담 자료그림을 찾아보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해 미국방문에서는 사진만 공개하고 영상이 없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에는 전속이 오벌 오피스에 들어가 잠깐 스케치하고 나온 게 전부였다. 이번 정상회담처럼 대통령 전속이외 영상기자가 들어가는 경우는 이례적이고 드문 일이였다. 그런데 자료그림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정면에서 찍은 그림은 없고 주로 측면에 위치에서 취재한 영상들이 대부분이었다. 외신영상도 찾아보았다. 아베 총리 미국방문 때 일본 풀 그림을 보니까 중앙 바로 옆쪽에서 엄청 흔들리며 풀샷 10초만 있었고 중국 시진 핑 그림도 마찬가지었다. 자리싸움이 장난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속으론 백악관 출입 기지들이 청와대에 왔을 때 그래도 우리는 중앙 한자리는 그들에게 양보했기에 그들도 양보하겠지 하는 생각뿐이었고 별일 있겠어.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나중에는 이러한 안일한 생각이 엄청난 오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드디어 대통령 미국순방 마지막 날 회담시작 네 시간 전에 백악관에 가서 검색을 받고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처음 1분 공개한다고 했다가 3분으로 시간이 조금 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백악관 브리핑 룸에서 기다리면서 사진도 찍고 여유가 있었다. 그러다가 백악관 공보담당자가 준비하라는 말이 떨어지자 미국취재진이 벌써 오벌 오피스로 들어가 입구 앞쪽에 서있었다. 우리통역에게 회담장에  우리 쪽도 먼저 들어갈 수 있게 얘기하도록 했다. 그 유명한 백악관 메리할머니는 올봄에 그만두고 새로운 30대 여자 공보관계자가 한미 양국 취재진 순차적으로 들여보낸다고 걱정 말라는 이야기만 했다. 그저 말 뿐이었다. 오벌 오피스 문이 열리자 백악관출입기자들은 잽싸게 그들의 익숙한 위치로 찾아갔다. 거기에는 대한민국 풀 취재진에 대한 배려와 양보는 없었다. 그 순간부터 몸싸움이 시작되었고 중앙에서 풀샷, 양국 정상 원샷 한컷, 모두 3컷 그것마저도 흔들려 난감하고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옆에 있던 후배가 "선배 눈에서 피가 나요."  몸싸움을 하다가 카메라에 부딪친 것 같았다. 낭패감과 창피함이  마음 한편으로 밀려왔다. 나의 안일함과 부족함을 자책했다. 전속 포함 영상 3팀이 들어갔는데 쓸 그림이 1분도 안됐다. 상처뿐인 백악관 취재였다. 사전에 충분한 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었는데 백악관담당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한 점과 상황 예측을 안일하게 한 것은 되풀이하지 말라고 다음에 백악관에서 취재할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다. ▲오벌오피스 들어가기전 여유로운 모습 또한 청와대 해외출장에서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은 정상 간의 양자 정상회담 이외에  APEC, G20, ASEAN+3 같은  다자간 국제회의이다. 세계 각국에서 취재진들이 몇 시간 전부터 와서 자기네 정상을 취재하기 위해 치열하게 서로 좋은 위치를 잡으려고 자리싸움을 하는 모습은 청와대출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는 항상 국제회의에서 일본취재진과 많은 몸싸움을 한다. 최근 불편한 한일관계 만큼 양국 정상의 만남에서의 표정.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 표정 한컷 한컷이 양국 관계의 단면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양국 취재진의 자리싸움은 치열하다. 취재현장의 분위기는 영상취재  한일전인 셈이다. 지난 2년간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국내외 취재 무엇하나 놓칠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그러한 기회를 준 SBS영상취재선후배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특히 같이 출입한 장운석 차장, 박현철 차장, 김세경 기자에게 2년간 옆에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내년 한해 청와대 출입 영상취재팀들의 건투를 기원한다. ▲에어포스원 앞에서 청와대 출입 영상기자들 김원배 / SBS   
    2015-12-28
  • <IS 파리테러 취재기>
    파리 테러 그 후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주말을 앞둔 파리지앵들이 긴장을 풀고 파티를 즐기던 그날 밤. 파리 시내 한복판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의 표적이 되었다. 불길의 상징인 13일의 금요일이 현실이 될 것이라 생각한 파리 시민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130명의 사망자를 낸 연쇄 테러가 일어난지 한 달이 지났고 파리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증오, 분노에 맞서며 악몽의 흔적들을 지워가고 있는 중이다.  테러 발생 이후 취재를 통해 만났던 다양한 파리지앵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아 보았다.  scene # 1  11월 15일 일요일.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바타클랑 극장 인근 리퍼블릭 광장.  프랑스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대중이 모이는 집회나 행사를 금지시켰고 가능하면 집에서 나오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였고 함께 기도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시민들은 저마다 가져온 촛불을 밝혔고 그 주위를 꽃다발로 에워싸며 거대한 추모의 제단을 만들어갔다.- 시민: “작은 초를 켜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희생자들도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었고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었겠죠”scene # 2  리퍼블릭 광장 구석의 기다란 벽이 원색의 페인트로 채워지고 있다.  서너 명의 청년들이 ‘파리, 너를 사랑한다.’라는 문구를 그라피티로 표현하고 있다. 이전 같으면 파리시의 골치 덩어리 낙서였겠지만 오늘은 그라피티가 시민들을 하나로 묶는 연대의 끈이 되었다.- 그라피티 작가: “우리가 비록 서로 다른 민족 구성원이지만 지금은 같은 프랑스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라피티는 이번 사건에 대항하는 연대감의 표현입니다.”scene # 3  5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카페에서 수 백 미터 떨어진 소극장.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지나 조그만 문을 밀고 들어가자 benny goodman의 ‘sing sing sing’이 흘러나온다. 배우들은 스윙재즈에 맞춰 춤을 추고 관객들은 흥에 겨워 박수를 친다. 잠시 후 본격적인 코미디 쇼가 시작되고 관객의 입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국가적 재난과 참사 앞에서는 나라 전체가 숙연해지는 대한민국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달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 관객: “그들(테러리스트)에게 우리가 평소처럼 여기에 계속 있고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두운 분위기로 몰고 가선 안됩니다. 계속해서 삶을 끌고 나가야죠.”scene # 4 5명의 희생자가 있었던 카페 ‘라 본 비에르’가 3주 만에 다시 문을 연다고 해서 아침 일찍  찾았다. 다시 찾은 카페 앞에는 여전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메세지 등이 걸려있었지만 끔찍했던 테러의 흔적들은 거의 사라진 모습이다. 핏자국이 선명하던 카페 입구의 바닥은 깨끗했고 총탄 자국이 선명했던 유리창은 새로 교체되어 있었다. 종업원들은 단골인 듯한 손님들에게 익숙한 아침인사와 미소를 건넸고 손님들도 카페 앞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카페 간판위에는 현수막 하나가 걸려있다. “je suis en terrasse(나는 테라스에 있다)” 공포 속에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테러에 대한 그들만의 저항 방식이다.  -카페 사장: “우리 카페는 사람들이 서로 오고 가며 정을 나누는 곳입니다. 그 것이 저희의 목적이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매우 감동적입니다.” -손님: “제가 여기 오는 것은 익숙한 습관 때문이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scene # 5 파리 북부 18구 barbes. 중동계, 북아프리카계 무슬림을 포함해 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파리시의 변두리이다. 취재 중에도 경찰차와 무장 경찰의 순찰이 수시로 보인다. 대로변에서는 무슬림으로 보이는 남성의 가방과 옷을 경찰이 샅샅이 뒤지고 있다. 이슬람 사원 촬영을 위해 동네 중심으로 들어가자 무슬림 노인 한명이 노여운 표정으로 당장 나가라고 소리친다. 무슬림의 입장을 듣고 싶어 왔다는 설명도 소용이 없다. 주변 무슬림들의 표정도 싸늘하기만 하다. 테러가 있을 때 마다 무슬림 전체를 범죄자로 모는 따가운 시선과 공권력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한계에 달한 듯 했다. 테러 이후 이슬람 혐오 범죄가 작년 같은 시기와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는 통계가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무슬림 청년: “페이스북만 봐도 밖으로 나가서 히잡을 쓴 여성과 수염을 기른 이슬람을 쏴 죽이자는 식의 선동이 많습니다. 국가가 이슬람혐오와 관련된 범죄는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이슬람교를 따르는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니까 우리들은 피해를 받더라도 신고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적이 누구인지에 대해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취재 중 파리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일상은 계속 되어야한다”, “우리의 삶은 지속 되어야 한다”이다. 테러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일상을 유지하며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폭력과 테러는 과연 끝난 것일까, 프랑스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맴돈다. 테러 이후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이전보다 강한 연대감이 생겨났다고 하지만 그 프랑스인들 속에 다양한 이민자들과 프랑스 국적의 무슬림들도 공존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추가 테러를 예방한다는 구실로 국가비상사태를 지속시키며 무슬림에 대한 국가적 폭력을 공공연하게 행하고 있으며 유럽 각국은 국경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비록 결선 투표에서 패하긴 했지만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는 반이민자 정책을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 국민전선이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공권력에 의한 자유의 제한을 수용할 수 있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었다. 타문화에 대한 관용은 점차 차별과 증오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 분위기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자유, 평등, 박애를 어떠한 가치보다 최우선에 둔다는 관용의 나라 프랑스의 현재 모습이다.  최근 아프리카를 방문한 프란시스코 교황은 “폭력과 테러는 공포와 불신, 가난한 삶에 대한 절망과 좌절에서 비롯된다.”면서 공동체 의식을 통해 극복할 것을 강조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차별과 빈곤에 신음하고 방치되어진 사람들 속에서 폭력의 씨앗이 조용히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생각해 볼 문제다. 이영재 / KBS 파리지국  촬영기자     
    2015-12-28
  • <YS장례 취재기>
    첫 국가장 그 취재현장 속에서지난 11월 22일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로 서거했다. 혈압 등 지병으로 19일부터 입원치료를 받아오던 중에 상태가 악화돼 숨을 거뒀다. 고인이 입원했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지고 국, 내외 많은 언론들이 그의 서거 소식을 속보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고인에 대한 평가야 다양하겠지만,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흔적을 남긴 김영삼 전 대통령에 관한 기사가 5일장을 치르는 기간 동안 쏟아져 나왔다. 고인의 삶을 다루는 기사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게 된 이유, 어떤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왔는지, 장례 절차는 앞으로 어떻게 밟을 것인지 등등 기사의 내용도 다양했다. 방송 뉴스를 만드는 카메라 기자로서 이런 기사들을 제작하는 현장에 있다 보면, 다른 취재 현장에서보다 여러 가지 경험들을 압축적으로 하게 된다. 고인이 서거한 뒤 장례기간을 포함해 영결식이 치러지기까지 총 5일이 걸렸다. 취재를 해야 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종료 될 때까지 걸린 시간도 5일 이라는 뜻이다. 굵직한 취재 이벤트 치고는 시간이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고인의 빈소와 상도동 자택, 그 인근에 건립중인 김영삼 대통령 기념 도서관, 영면에 들 국립 현충원 묘역 등 취재를 해야 할 포인트는 많았다. 더불어 다뤄야하는 기사의 양과 종류도 많다보니 카메라 기자가 해야 하는 역할도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였다. 그러다보니 취재 방식이 다양해졌다. 일반적으로 취재하는 방식 외에, 어떤 현장에선 풀(Pool) 팀을 만들어서 취재를 했고 또 다른 현장에서는 LTE 송출 장비를 이용해서, 현장에서 취재하는 영상을 라이브로 중계하기도 했다. 각각 충분한 현장 경험이 필요한 일들이다.풀(Pool) 취재는 여러 방송사가 각각 취재할 시간이나 위치 등을 정한 뒤에, 나눠서 취재를 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는 취재 방식이다. 풀 팀을 만들 때 정한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하는데, 이 원칙을 정하는 게 취재 상황마다 달라질 수 있어서 충분한 경험이 필요하다. 나는 이번에 24일 새벽에 고인의 빈소에서 풀 취재를 했었는데, 오가는 조문객들 스케치도 해야 하고 그 중에 누군가가 멘트를 하면 그것도 챙겨야했다. 그래서 매 2시간마다 2개사가 돌아가면서 스케치와 인터뷰를 나눠서 취재했었다. 고인의 빈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길게 취재할 때 적합한 방법 중의 하나다.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발인이 있던 날에, 고인의 운구 차량은 영결식이 치러진 국회를 거쳐 상도동 자택을 지나 국립 현충원에 도착했다. 거의 모든 방송사에서 고인이 가는 이 마지막 길을 동행 취재했었다. 나도 뚜껑이 열리는 차를 타고 달리면서 고인의 운구 차량을 취재했다. 달리는 자동차에서 몸을 밖으로 빼고 카메라를 어깨에 올려서 영상을 취재 하다보면 영상이 많이 흔들리고 안전상 위험도 높다. 게다가 그걸 LTE 송출 장비로 라이브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더해지면 취재 난이도는 더 높아진다. LTE 라이브는 현장의 생생함은 잘 전달이 되지만 통신 환경이 나빠지거나 장비 세팅에 문제가 생기면, 송신중인 영상이 끊어지거나 화질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등의 방송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가능하면 리허설도 충분히 하고 장비 점검도 꼼꼼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에선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 LTE 중계 그림을 대신해서 보여줄 수 있는 자료화면도 미리 준비해둬야한다. 실제로 이번에 고인의 운구 차량을 동행 취재하면서 LTE로 라이브를 했던 방송사 중에 다수가 현장에서 보내는 영상이 끊어지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었다.취재 현장에서 한 사람의 카메라 기자는 자기 방송사를 대표해서 뉴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어떤 현장에서 필요한 영상을 카메라 기자가 담아오지 못하면, 그 방송사에서는 그 현장과 관련된 제대로 된 뉴스 영상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카메라 기자에게 현장 경험은 특히 중요하다.그래서 4계절을 겪으면서 계절별로 날씨와 재난 현장을 경험하고, 경찰서 문을 수없이 드나들며 증거품과 피의자들을 스케치하기도 한다. 집회나 각종 사건 사고 등 여러 가지 취재 현장을 경험하면서 상황에 맞는 취재 방식들을 익힌다. 그런데 5일 이라는 시간에 다양한 취재 경험을 압축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큰 사건이면서 유족들에겐 매우 큰 슬픔이겠지만, 동시에 치열한 취재의 현장이기도 했다.박주영 / MBC
    2015-12-28
  • <YS장례 취재기>
    거산(巨山)의 마지막을 함께하며..오랜만에 근무가 없는 주말. TV 전원은 꺼두고 편히 쉬기로 마음먹은 지 이틀째 날. 조용하던 핸드폰에서 뉴스 속보가 연이어 울렸다. ‘[속보]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얼마 전만 해도 SNS를 통해 병상에서 V자를 그리며 건강히 퇴원하는 모습을 보여준 당신이, 이리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함께 당분간은 조문 행렬 취재로 바쁜 한 주를 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기자가 된 이후로 김영삼 대통령까지 포함하면 세 분의 대통령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빈소와 장례 과정을 현장에서 취재하긴 했지만, 카메라기자협회 풀로 국장의 마지막 과정인 ‘안장식’을 취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대한민국의 문민정부를 이룩한 국가 지도자의 마지막 모습이기에 더욱 어깨가 무거웠고, 오랜만에 검은 정장을 꺼내 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낮 동안은 세찬 눈이 쏟아졌다. 새벽에 약간 왔다 그친 며칠 전의 눈을 제외하면 낮에 제대로 본 눈으로는 첫눈인 셈이었다. 항상 서민과 함께하며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던 당신이었기에 국가장 행사에 눈까지 더해져 그의 마지막 길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국회에서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상도동 자택과 기념 도서관을 거쳐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현충원에 도착했다.김 전 대통령의 묘역은 현충원 내 북동쪽, 장군 3 묘역 능선에 자리를 잡았다. 평생의 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위쪽 300m 지점에,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왼쪽 300m 지점에 있어 김영삼 전 대통령은 돌아가시고 나서도 삼각 편대로 긴장구도를 유지하는 듯했다. 입구에서 간단한 안장 의식을 치르고 나서 운구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 묘소로 진입했다. 그가 대한민국 역사에 남긴 흔적에 비하면 다소 작게 느껴지는 묘소였다.정치적 아들이라 자칭하는 유명 정치인들을 포함해 250여 명의 유족과 지인들이 그리 넓지 않은 묘소를 가득 채워 추운 눈밭 위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충격 속에 하관이 이뤄지는 동안 계속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장례 기간 내내 냉정을 잃지 않았던 차남 현철씨도 마지막 순간에는 굵은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88년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카메라기자 선배들이 담아왔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내가 마지막으로 기록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숙연해졌다.돌아가시기 전에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화합과 통합’이었다. 생전에도 전국이 다 내 고향이라 말씀하셨던 터라 봉분의 흙도 고향의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서거 직전 극적으로 화해하시며 몸소 화합과 통합을 실천하셨다. 그의 언행이 갈등과 반목을 반복하고 있는 정치권과, 보수와 진보가 끝없이 대립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듯하다. 지도자이기에 앞서 인생 대선배의 마지막 유언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귀 기울이고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강광민 / OBS
    2015-12-28
  • 취재방해감시단 운영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이중우)와 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등 현업 언론인단체들은 지난 11월 18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경찰의 취재 방해 행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1월 14일에 열린 1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은 시민들을 물론 KBS 취재진의 머리를 겨냥해 물대포를 발사하는 등 취재 방해 행위를 했다. 언론인단체와 언론관련 시민단체는 1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취재 방해가 있었지만 경찰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없었다며 취재진 안전과 안전한 취재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2차 대회가 열린 지난 12월 5일에는 취재방해 감시단을 운영했다. 향후 감시단은 취재진 등 시민을 상대로 한 물대포 공격이나  불법채증 등 경찰의 모든 공권력 남용 행위를 감시하고 기록한다는 계획이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평화롭게 끝난 것으로만 알려진 지난 12월 5일 2차 민중총궐기 현장에서도 취재방해감시단은 경찰의 불법채증,  또는 불법채증 의심 사례를 여러 건 파악해냈다.  협회는 향후 경찰의 취재 방해와 위법행위가 재발될 경우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한편,  시민사회단체와 연대를 통해 책임을 끝까지 물을 방침이다. 
    201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