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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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입처 탐방 -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되는 곳
    국회 출입처 탐방  지난 호 국방부에 이어 대한민국의 입법기관, 국회 출입처 기자들을 만나보았다. 국정감사가 끝나지 얼마 안 된 국회는 그 여파가 가시지 않은 듯 여전히 많은 인파들로 분주했다. 국회 카메라기자실을 방문하고 왔다. Q.국회 출입처의 특징?타 출입처와 비교해서 보면 제일 다르다고 생각 하는 것은 국회는 출입기자 6개사 24명의 카메라 기자가 항상 상주하고 있다. 이 곳은 출입처 중에 제일 체계적이고 조직화 되서 20명이 국회 전반적인 취재를 커버한다. 전체적으로 국회 전반의 취재를 한다. 국회라는 곳 자체가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이고 법을 제정하는 곳이라 중요한 이슈들이 많다. 특히 국회의원 밀착취재를 할 때 느껴지는 현장감과 생동감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적 흐름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국회이다.Q. 국회 취재하면서 어려운 점? 정치인들을 하염없이 쫓아다녀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뉴스가 되는 곳이니깐 항상 예의주시해야 한다. 대부분 미리 짜여져 있는 일정대로 움직이지만, 예외적인 부분이 항상 있어서 일정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허겁지겁 쫓아다닐 때도 있다. 또 정치적 사안,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무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무 소득 없이 허탕만 치는 것이다. 좋게 말하자면 밀착취재로 정의할 수 있지만 가끔 하염없는 기다림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긴 기다림 끝에 중요한 멘트나 뉴스거리를 취재하고 나면 정말 큰 성취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또 다른 고충으로는 너무 협소한 공간에 많은 취재진들이 있다는 것이다. 종편이 생기면서 부피가 커진 카메라, 트라이포드가 더욱 많아졌고 국회에 있는 사진기자들도 굉장히 많다. 간혹 가다 부딪치는 경우가 생기면 정말 힘들다. 아시다시피 카메라기자들은 풀을 해서 제약을 두지만, 사진 기자들은 풀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방송사, 신문사, 인터넷, 종편 등 많은 매체들을 포함해 취재를 할 때면 힘든 것 같다.  Q. 선거 취재? 선거 때 취재를 할 때는 본인이 맡은 후보와 한 몸이 돼서 1분 1초를 쫓아다녀야 한다. 이번년도는 지방선거, 보궐선거, 당 대표 선거가 큰 이벤트였다. (지방선거와 보궐선거는 야당의 참패로 끝났지만) 그 이후 일련의 사태들이 마무리가 되면서 정리가 되는 수순이었다. 취재할 때 가장 유의하여 하는 것은 여당과 야당 대립하는 곳 상황에서 그림 하나하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선거 때는 심지어 화면 사이즈까지 똑같이 비례하게 맞춘다. 선거 유세때 한 쪽에서 시장을 가면 이 쪽도 시장을 가야 한다. 장면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써서 맞춰줘야 한다. 모두 따라다니면서 동원 취재를 할 순 없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아주 공정하게 취재를 해야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치열한 시기이기 때문에 최대한 공정성과 형평성에 맞춰 그림을 찍는다. 당 쪽에서도 굉장히 민감해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쩔 때는 클레임이 들어오기도 한다. Q. 국회의원들이랑 친할 것 같다. 카메라기자들을 가장 많이 의식하고 존재를 인정해주는 곳이 국회이다. 국회의원들은 카메라기자들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인정한다. 자신들의 의정활동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영상’의 파급력이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기자들은 정치색 드러낼 수 없다. 그림을 갖다 몰입시키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된다. 그림을 한 쪽이 유리하게 찍는 것, 혹은 불리하게 찍는 것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일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고 항상 신경을 쓴다. 하지만 이런 점은 있다. 이왕이면 같이 생활하고 같이 뛴 후보가 이겨주면 기분이 좋다. 한 달 가까이 같이 생활하고 힘들 때,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니까. 같이 취재다니고 고생한 후보들이 이겨주면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다. 장유진 / 취재 및 정리
    2014-11-17
  • <방종혁의 씨네노트>혼란스런 시대를 산 작가의 내면을 기록하는 영화 - 황금시대
    <황금시대>-혼란스런 시대를 산 작가의 내면을 기록하는 영화  영화의 첫 장면은 죽은 사람의 독백이다.“나는 1911년 헤이룽장 해란에서 태어나 1942년 홍콩에서 병원의 임시 병상에서 죽었다.” 영화 ‘황금시대’는 위 독백의 주인공 샤오홍의 일대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심각하게 가부장적인, 그렇지만 당시 중국 동북지방의 평범한 가부장일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있는 집에서 두 번이나 가출하고, 여관에서 굶어죽기 직전에 편지 보낸 신문사에서 만난 연인인 샤오쥔의 도움으로 작가가 된 이후, 루쉰과 같은 대가들과 교류하면서 중국 문단 중심에서 활약하다 국공내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시대를 만나 어디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홍콩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작가인 샤오홍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샤오홍의 마음에 새겨준 고향의 이미지를 따라 전개된다.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던 고향은 눈에 덮인 북국, 서리가 낀 창백한 유리, 온몸을 감고 움직이기 힘들게 만든 두꺼운 옷, 여관에서도 감출 수 없는 입김, 연인의 끈 없는 구두를 위해 자신의 신발에서 끈을 잘라 매어주는 가난 등으로 채워진 추운 나라이다. 하지만 고향집 마당의 꽃, 루쉰의 집에서 본 푸른 화초, 거기에서 그녀가 입었던 붉은 상의, 우한에서의 결혼식, 가난한 노동자들의 속을 채워주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국물 요리 등 힘들게 산 생애에서도 화사한 봄날과 여름이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풍상을 겪고 살아온 작가를 그리기 위해 허안화 감독은 색다르게 접근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죽은 주인공이 자신의 생몰일을 말하게 하고, 주변의 인물들이 순간순간 카메라 정면을 응시하며 자신이 봤던 샤오홍을 증언한다. 전체가 생애의 순서대로 진행되다가도 지인의 입을 통해, 때때로 샤오홍의 입을 통해 직전에 관객이 봤던 장면들을 설명하게 만드는 유사 다큐멘터리적인 장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감독은 그녀가 생전에 발표했던 ‘생사의 장’, ‘후란강 이야기’ 등에서 한 부분들을 인용하여 관련 장면에서 관객들이 그녀의 마음 한 부분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지닌 독특한 장치들이 관객에게 주인공의 완전한 내면을 알게 해 주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관객들은 그녀의 전 생애에 걸친 고난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지만, 그 시대의 샤오홍처럼 영화를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영화 중간에 동료 작가들이 항일전쟁시기 참여 문학으로 빠져들거나, 실제로 총을 잡고 전선으로 달려갈 때 그녀는 자신이 가진 문학의 의미를 고수하느라 항상 동료들과 어긋난다. 그녀의 유일한 멘토이자 지음(知音)이었던 루쉰의 죽음 이후 이와 같은 고독은 점점 심해진다. 그녀가 평생을 사랑했던 샤오쥔도, 그녀의 유일한 법적 배우자인 두완무도, 그와 함께 그녀의 임종을 지켰던 전기 작가도 온전히 이해시키지 못한 채 그녀는 홍콩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이와 같은 불이해는 긴 러닝 타임과 더불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샤오홍의 일생에 바친 탕웨이의 탁월한 연기와 영화에 인용된 그녀의 서늘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관객은 미처 알지 못했던 순수한 내면을 지닌 인간을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2014-11-17
  • [나의 취미] 아빠의 인형놀이 - 방송국 장난감의 행복
    아빠의 인형놀이 - 방송국 장난감의 행복  “여보, 나 장난감 좀 살게.”“응. 지유 장난감 벌써 사게? 얜 아직 장난감이 뭔지도 모를텐데?”“아니. 그게 아니라 내꺼...”“응????” 나를 닮은 따님이 태어나신지 한 달쯤 되었을 때 한 침대를 쓰는 여자사람과 나눈 대화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닮은 무언가를 또 찾기 시작했다. 둘째를 갖기엔 너무 일러서 였을까. 이번엔 나를 닮은 장난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내가 든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있었던 부인님과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 집 안 어딘가에 세워두고 싶었다.  어떤 종류의 장난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아이를 막론하고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L사의 블록 장난감을 시작으로 그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O사의 블록 장난감, 실제 사람과 거의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각종 크기의 피규어까지. 어렸을 적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본 기억은 많지 않은 아빠의 인형놀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카메라를 든 인형과 마이크를 든 인형이 세트로 있는 것이 1순위였다. 국내외 장난감 관련 홈페이지며 동호회 사이트들을 며칠동안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찾은 장난감들은 잊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저장해뒀다. 일단 마트에 가서 당장 살 수 있는 것들은 제쳐두고,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제품이나 국내에 있더라도 단종되어서 쉽게 구하기 힘든 제품을 위주로 구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국산 장난감 O사의 블록 제품. ‘ENG카메라를 든 인형이 있고, 마이크를 든 여자 인형도 있고, 세트, 조명, 중계카메라, 주조정실에 중계차까지...우와...이거다...O사에서 만든 방송국 장난감이라 이름도 OBS다...내 운명의 장난감이야...’ 하지만 이미 10년 전에 단종된 상품이란걸 알게 됐고, 중고물품을 잔뜩 모아놓은 그 인터넷 카페를 며칠간 지켜보던 어느날!  ‘방송국 장난감 팝니다.’ 곧장 연락을 취하고 대구에 있다는 판매자와 가격을 협상한 뒤 받아본 장난감은 정말 대만족이었다. 방송국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모습이며, 카메라를 든 남자 인형과 마이크를 든 여자 인형까지. 부인님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장난감! 조립하는 내내 10년이 넘은 장난감 블록의 부품이 온전히 남아있을까 하는 걱정은 점점 사라져 갔다. 오히려 완성 후에도 남은 블록 몇 개.. 오랜 시간 잘 보관해 준 판매자에게도 감사했다. 그리고 내 장난감의 전시를 위해 테이블의 한 쪽을 내어준 부인님께도 감사를 전한다.  나의 다음 워너비 장난감은 ENG카메라를 들쳐 매고 전쟁터를 헤집고 다니는 종군기자 피규어다. 크기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한국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10년 전 장난감도 뿅 나타났듯이 내 손에 언젠가 들어오리라. 아빠의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며 즐거워 할 꼬맹이 따님의 모습도 상상해 본다.  정형민 / OBS 보도영상팀 
    2014-11-17
  • 정년퇴직 KBS 송학필 선배 인터뷰 - 고즈넉한 정취와 평화로움이 좋다
    강화도 오두리에 위치한 송학필 기자의 하얀 벽돌집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아파트들이 빽빽이 즐비해있던 서울과 달리 각양각색으로 논과 밭을 주변으로 집들이 멀찍이 떨어져있다. 하얀 벽돌집에 들어서자마자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아기자기한 팻말들이 붙어있는 닭장과 개집이다. 송학필 기자님이 환히 반겨주셨다.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다.  Q.수십년간의 회사생활을 뒤로 한 소감은? 아직은 잘 실감이 안 난다. 33년 동안 KBS에 출근했는데 이제는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 현재로서는 매우 편하고 좋다. 여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다들 쉬고싶어할 것이다. 이제 고정수입이 연금수령밖에 없어서 덜 쓰려고 노력 중이다. 사회생활 할 때보단 불필요한 지출이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주어진 한도 내에서 알뜰 살뜰히 살고 있다. Q.귀촌을 하게 된 계기는? 평생 서울에서 자란 지라 어렸을 때부터 농촌생활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정년퇴직하면 꼭 귀촌을 해서 살아야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전격적으로 지지해줘서 큰 어려움 없이 자리 잡게 되었다. 5년 전에 강화도로 이사를 오면서 적응하기까지의 기틀을 마련했다. 타지에서 온 터라 기존 주민들의 텃세(?)가 심할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마을사람들한테 먼저 찾아가 인사 하고, 마을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 경로잔치 같은 곳에 가서 손 걷고 나섰던 노력들이 진정한 강화도 주민으로 인정 받게 되었다.   Q.장단점? 퇴직을 하고나서 제일 걱정했던 것이 일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루종일 집에서 TV보면서 빈둥빈둥 시간만 하릴없이 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귀촌을 하게 되니 해야될 일들이 많아서 좋다. 일단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보람차다. 농사를 생업이라고 생각하면 힘들텐데 조금씩 여러 작업을 하니깐 부담감도 없고 힘들지도 않다. 한 작업을 오래하면 힘드니깐 땅콩밭에 있다가, 화초 물주고, 고추 땋고.. 한꺼번에 일을 하려고 하지 않고 조금씩 매일 하다 보니깐 지금은 적응도 되었고 굉장히 재밌다. 조그만 농사를 지은 것들이 수확되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행복하다. 서울에서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구입을 했지만 여기선 하나하나 직접 내가 만들게 되었다. 작업실을 만들고, 연못을 만들고, 텃밭을 가꾸고, 이렇게 뚝딱뚝딱 만들다 보니까 손재주가 좋아졌다. 순간 지나가는 시간들도 햇살에 바람 산뜻 하니 조용히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런 고즈넉한 정취와 평화로움이 좋다. 단점은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병원이 멀어서 불편하다. 더 나이가 들면 병원 근처로 이사 가서 살 예정이다. 지금은 이 곳에서 경험을 쌓는 단계이다.  Q.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건강해야 뭐든 도전을 해도 할 수 있다. 카메라기자 업무 자체가 야외에서 위험한 현장에서 일을 하니깐 다칠 위험이 많다. 일 욕심도 중요하지만 안전 문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 의견으로는 진급도 소용이 없는 일 같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절박히 자리에 연연해할 필요 없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Q.개인적인 바램? 여태까지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민요를 배우고, 피리도 연마를 하고, 차밍댄스를 배우려고 한다. 시간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배워야겠다. 자식한테 물려준다는 생각은 없다. 아내와 함께 남은 시간을 즐기며 보내고싶다. 장유진 / 취재 및 정리
    2014-11-17
  • <CS칼럼> 남의 실수가 교훈이 되는 세 가지 이야기
    남의 실수가 교훈이 되는 세 가지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쥐도 새도 모르게 바뀐 항공권   몇 해전 휴가를 맞아 친구들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할 때 일이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서 여러 여행사 사이트를 비교하여 친구의 노력으로 할인왕복 항공권을 구입했다. 그러자 여행사 측은 예약된 일정을 메일로 보내주었고 잠시 후 예약일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항공편 시간이 당초에 우리의 요청시간과 다른 것을 발견했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결제까지 완료를 한 상황이라 당연히 불길한 기분이 들었고 즉시 잘못의 원인을 알아 보기 위해서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직원은 고객님이 그 날짜에 말씀을 하셔서 예약을 해 드린 것이지 저희가 잘못할 리는 없다고 했다. 고객의 입장을 경청하지 않고 자기입장만을 주장하는 직원은 발권 후 항공권을 취소하면 고객님이 수수료를 내야 하므로 웬만하면 예약한 일정을 따르시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주는 척, 내키지 않는 조언을 했다. 상식을 벗어난 태도의 직원과 급기야  큰 소리가 오고 갔고 결국 상냥한 목소리의 팀장이 전화를 넘겨 받아 즉시 사과를 하며 고객님의 상황을 재확인할 것이며 더불어 변경된 예약시간으로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과 의논한 결과, 출발 전부터 기분 상하지 말자는 입장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바뀐 항공편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흔히 있는 경험은 아니었지만 항공권에 대한 피해 사례가 늘어가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제를 하기 전에 항공권 일정을 잘 살펴 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항공권 구입이 많은 부담이 되므로 저렴하게 항공권을 구입하고 싶다면 다음의 방법을 알아두면 편리하다.  ① 미리미리 발권한다. 미리 발권할 수록 가격의 혜택도 크다 ② 편도항공권보다는 왕복항공권으로 구입한다   ③ 경유지를 활용하라. 직항보다는 경유지를 거치면 저렴하다   ④ 프로모션, 이벤트 기간을 활용하라  ⑤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땡 처리 항공권’을 잡자    ⑥ 패키지와 자유여행 상품을 활용 해 보자  두 번째 이야기,  관광객 티를 내야 하나? 연간 관광객이 3000만 명이 넘는 세계 1위의 관광도시 파리! 파리 샤를르드골 공항은  기분 좋지만  그와는 달리 파리 시내에서의 경험은 아직도 아찔하다  친구와 함께 파리 시내 관광을 하기 위해서 메트로를 타고 오페라 역으로 향했다.  오페라 역에 도착하여  출구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좁은 에스컬레이터가 보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중간쯤 올라왔을 무렵에 뒤에서 바짝 따라오던 친구가 “ 아아악 ~~~ “하는 비명을 질렀다.  친구는 허리 춤에 작은 벨트 가방을 매고 있었는데  그 가방을 보고 소매치기가 어디서부터 따라오고 있었나 보다.  친구는 누군가 자기를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허리벨트 가방에 손을 넣었고 동시에 소매치기의 손을 잡게 된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소매치기 손을 잡은 순간 소매치기도 깜짝 놀라고 친구도 깜짝 놀란 사이에 에스컬레이터는 정상에 올라왔다. 소매치기는 친구의 손을 뿌리쳤고 순간 벌어진 일에 당황한 우리와 달리 그들은 경험이 많아서인지 자연스럽게 유유히 사라졌다.  그 때 그 인간들을 잡았어야 했는데… 라고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지만 두려운 경험이었다.친구에게 관광객 티 낼 일 있느냐면서 허리가방에 경고 사인을 보냈지만 말을 듣지 않았었다.   그런 결과가 ‘그 놈(^^)의 가방때문에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안전이 최고의 해외 여햄임을 기억해야 하며 귀중품이 있다면 호텔의 security box를 이용하면 된다.  세 번째 이야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베트남 호치민으로 강의하러 갔을 때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늘 하던 대로 컨베이어 벨트에서 가방을 내리고 카트에 가방을 올려 밖으로 나갔다.  마중 나온 교육 진행팀은 택시를 타고 호텔로 안내를 하겠다고 했다.  그곳의 공항분위기는 한국과 달리 택시 승강장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택시를 잡아 타는 것처럼 보였다. 택시가 한참 잡히지 않자 손에 들고 있던 내 핸드백을 카트에 올리고 마중 나온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에 갑자기 땡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전이 우수수 주변에  떨어지고 굴러갔다. 순간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서 떨어지는 동전인 것 같아 함께 주워줄 생각으로  허리를 굽히는 순간….  ‘앗! 카트 위에 있는 내 핸드백~  혹시 !!’ ’ 잽싸게  카트를 바라보니 핸드백은  눈깜짝할 사이 사라져 있었다. 땅에 주저 앉고 싶은 그 순간에 갑자기 신기 내린 사람처럼 주저함없이 휴지통을 열었다.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그 곳에 내 가방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고 워낙 빨리 눈치를 핸 상황에서 당황한 소매치기들은 바로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가방을 일단 던져 놓았던 것이다.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이었다.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한심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고 그와는 반대로 공감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잠시만  올려 놓는다는 게 고개를 돌려 보면 몸처럼 아끼는 카메라가 분실되어 있고 햄버거 집에서 가방을 올려 놓고 콜라를 가지러 간 순간에 잃어 버릴 수 있다.  특히 공항은 우리나라 분위기와 다른 첫 관문의 장소이므로 사람들과 인사하고 다른 분위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면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동안 해외경험이 많은 나는 수십 개국을 다니면서 누구보다도 공항의 출입국 절차, 해당 국가의 특성을 잘 안다고 생각하여 긴장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해외여행에서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교훈과  돌 다리도 두들기면서 건너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강희선 / 한국 서비스에듀센터 원장 
    2014-11-17
  • <스위스취재기>
    “빅토리녹스 작지만 커다란 꿈을 만드는 공장“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알프스산맥의 능선에 걸쳐있고 고원과 깊은 계곡, 호수가 많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관광지가 발달되었으며 세계 최고의 관광산업국가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보니 누구나 죽기 전에 한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로 스위스를 꼽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광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시계, 공구 등 정밀기계 산업이 발달되었다. 어린 시절 주말마다 넋을 잃고 보았던 TV 시리즈 영화였던 맥가이버, 위기의 순간,   요긴하게 사용했던 칼이 있었다. 여러 가지 도구들이 결합되어져 있던 맥가이버칼, 바로 스위스 아미나이프다. 스위스 아미나이프의 대표적인 제조회사로 빅토리녹스가 있다. 취재차 스위스 빅토리녹스를 찾아갔다. 간단히 빅토리녹스의 역사를 더듬자면, 빅토리녹스는 창업주 칼 엘스너(Karl Elsener)가 1884년 24세의 나이에 스위스 슈비츠에 회사를 설립했다. 초기에 주방용 칼, 면도칼, 외과 수술용 칼 등을 만들던 그는 1891년에 독일제 졸링겐 칼만을 사용하던 스위스 군대에 칼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1897년 6월 12일에 칼, 캔 오프너, 스크루 드라이버, 코르크스크루 등으로 구성된 '스위스 오피서스(Swiss Officer's)'와 '스포츠 나이프(Sports Knife)'로 특허를 받았다. 창업주 엘스너의 어머니 빅토리아가 사망하자 회사명과 브랜드명을 빅토리아(Victoria)로 변경했다. 1921년에 칼 재료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회사명과 브랜드명을 빅토리아와 이녹스(inox:프랑스어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뜻하는 아시에 이녹시다블'acier inoxydable'의 약자)를 합하여 만든 빅토리녹스(Victorinox)로 변경했다. 취재진이 방문한 빅토리녹스는 생각과는 달리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작지만 세계적인 회사가 된 이유는 거창한 게 아니었다. 바로 기본에 충실하고 기술을 인정하는 스위스 교육의 힘에 그 원천이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매년 10여명의 고등학생을 훈련생으로 선발해 오랜 경력을 가진 이 회사의 마이스터가 훈련생들을 가장 기초적 기술부터 가르쳐 실력 있는 기술자로 양성하고 있다. 훈련생들은 취업과 장례에 대한 걱정이 없어 보였다. 인터뷰를 했던 마이스터 토니 블라저씨의 아들 역시 이 회사에서 전기기술자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스위스 부모들은 자녀가 기술을 배우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실제로 세계적인 스위스의 기업에는 기술자 출신 최고 경영자도 많이 있다. 장래에 쓰이지도 않을 공부를 오로지 대학입시 때문에 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실제로 만나본 훈련생은 대학을 가질 않고 왜 기술을 배우냐는 질문을 이해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에게 대학은 기술자로서 본인의 실력향상을 위하여 가는 곳이지 우리처럼 학벌을 위해 가는 곳이 아니었다. 실력 있는 기술자의 가치가 인정받기에 뛰어난 품질의 고부가가치 제품이 만들어 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작은 나라 스위스가 손꼽히는 세계적인 부자나라가 된 것은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원동력이다. 노사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9.11테러이후 전 세계 공항의 면세점에서 빅토리녹스 칼의 판매가 중단이 되면서 회사의 매출액이 30%급감하는 위기가 닥쳐 생산라인의 감축으로 인한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하던 시기에도 해고가 아닌 주변 회사에 그들을 재취업시키고 그 급여를 빅토리녹스가 주웠고 회사의 경영이 정상화 되었을 때 직원들은 단 한명도 빠짐없이 돌아왔다고 한다. 직원들의 애사심과 자부심은 엄청났다. 이런 마음을 보여주듯 슈비츠의 빅토리녹스 앞엔 오너일가에 대해 직원들 스스로 세운 감사의 탑도 자리하고 있었다. 경영위기가 찾아오면 인력부터 조정하고 해고시키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와는 너무 달랐다. 직원을 존중하는 회사의 가치관이 오늘날 회사를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우리사회에서 추구하는 과장된 스펙은 스위스의 겸손한 노력과 인간존중의 가치 앞에선 한낮 허황되고 부질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과 스위스를 모범적인 국가로 바라보며 롤 모델을 삼고 있는데 현 정부에서 가장 크게 비중을 두는 창조경제와 청년실업의 해결법은 거창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와 그들의 존엄성을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되는 게 맞다고 본다. 정현석 /  KBS 보도영상국 특집부 
    2014-11-17
  • MBN수습취재기 - 종이와 펜을 든 수습촬영기자
    종이와 펜을 든 수습촬영기자                                                                 “마포라인 수습 양현철입니다. 현재 위치 마포경찰서이고 23시 보고하겠습니다.” 일주일 간 진행되는 경찰서 생활의 첫 보고가 그렇게 시작됐다. 경찰서 생활의 대해서는 선배들이나 주변에서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투입 며칠 전부터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했다. 하지만 경찰서는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걸 깨닫게 된데는 투입 후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포경찰서 형사과에 처음 들어가기 전 나에게 있었던 것은 ‘명함’과 ‘수습으로서의 패기’ 그것 뿐 이었다. 형사과에 들어가 명함을 내밀며 신분을 밝힌 후 사건사고 정보를 요구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오늘 조용합니다. 오늘따라 조용하네요.”경찰서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새벽 형사로부터 “같이 담배나 피러가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사실 처음부터 형사들을 대하는 나의 컨셉은 ‘예의를 갖추자’였다. 정보꺼리를 찾지 못하더라도 웃으며 예의를 갖추고 간혹 비타민 음료로 성의를 표시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딱딱하고 말 수 없던 형사들이 나에게 차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건 알려줘도 뉴스에 못나가. 그래도 알려줘야 선배한테 보고할게 있을 테니까 받아 적어봐” 형사들은 수습기자의 경찰서 생활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아니 훤히 꿰뚫고 있었다. 형사생활을 하며 얼마나 많은 수습기자들을 접했을까. 간혹 내 이름을 기억하고 먼저 불러주며 그만 좀 오라며 타이르던 형사들도 있었다. 그 수많은 수습기자 가운데 나를 기억했던 건 아마도 항상 웃으며 “이따 또 뵙겠습니다.”로 일관했던 나를 좋게 봐주었던 것 같다.어느 덧 투입 이틀 째. 새벽1시. 위치는 공덕역. 선배로부터 지시가 떨어졌다. 새벽 2시까지 6하 원칙에 맞춰 사건·사고 한 개 이상을 디테일하게 보고하라는 것. 남은 시간은 1시간. 순간 낮에 지하주택공장에서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화재사건을 취재 하던 중 다른 지시를 받아 화재사건은 잠시 접어놨던 기억이 스쳤다. 나는 바로 택시를 타고 무작정 마포소방서로 향했다. 시간은 새벽 1시 20여 분. 만약 마포소방서에서 취재를 거절당한다면 보고누락이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고 소방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신분을 밝히고 종합상황실에서 취재를 하고 싶다는 요청을 했다. 그리고는 속으로 ‘제발..제발..’을 외쳤다. 그 외침이 통했던 것일까. 소방관은 나에게 많이 피곤해 보인다며 오히려 위로를 하고 종합상황실의 위치를 친절히 안내를 해주는 것이었다. 의외였다. 재빨리 종합상황실에 올라가 낮에 발생했던 화재사건에 대해 취재를 했다. 주인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사건이라는 것을 파악했 때 시간은 1시 55분. 밖으로 나와 5분 동안 지금까지 취재한 내용들을 정리해서 보고했다. “통과!” 기자실로 복귀해서 5시에 첫 보고 하라는 다음지시를 받았다. 5시에 보고하려면 3시에 일어나야 한다. 1시간 잘 수 있다. 다행이다. 그렇게 경찰서 생활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마포구, 은평구의 경찰서장을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었다. 선배는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귀신같은 선배에게 서장을 만나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현재 위치는 서부경찰서. 서부경찰서장실이 있는 층으로 역시 무작정 올라갔다. 처음 투입 전 마음먹은 것과 같은 ‘수습으로서의 패기’를 보여줘야 나를 만나줄 것만 같았다. 서장을 만나기 위해 비서에게 나를 소개하던 하던 찰나 서장실에 문이 열리면서 서장이 잠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안녕하세요. MBN촬영기자 양현철이라고 합니다. 커피한잔 할 시간 잠깐만 주십시요” 서장은 흔쾌히 허락을 했다. 자신이 서부경찰서로 취임을 하고 처음으로 기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것도 촬영기자는 더더욱 처음이란다. 그 말과 함께 나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것이었다. 명함을 서로 주고받고 서장실을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꺼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행이다.일주일간의 경찰서 생활이 끝나고 현재 나는 다시 수습촬영기자로서의 생활로 돌아왔다. 비록 일주일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기자로서 취재하는 방법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종이와 펜을 들고 취재를 하던 중에도 촬영기자로서 이 현장에서 영상취재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순간순간 고민하려 했고 그 고민들은 선배들이 취재한 영상을 보며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현장에서 나는 종이와 펜 대신 카메라를 짊어지고 취재를 하는 촬영기자이다. 경찰서를 돌면서 또 현장을 취재하며 생활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앞으로 취재력 있는 촬영기자라는 평을 받을 수 있게 발에 땀나도록 현장을 뛰겠다고 다짐한다. 양현철 / MBN 영상취재1부 
    2014-11-17
  • MBN 신입 카메라기자를 소개합니다.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새로운 기술을 능숙히 익혀 시청자들에게 좀 더 효율적인 메시지 전달을 하는 촬영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촬영기자로서의 사명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는 고발자이자,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 세상과 시청자 사이에서 소통의 매개가 되는 전달자라는 소명의식을 항상 마음 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먼저 수습 촬영기자로서 매사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선배님들의 따뜻한 조언은 물론 따끔한 질책 역시 제가 진짜 촬영기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삼겠습니다. 어느덧 입사한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촬영기자가 되었다는 처음의 기쁨과 설렘보다는 내가 촬영기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ENG카메라를 들 때마다 그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상점 주인이 여비를 모아 피라미드로 떠나는 주인공에게 '마크툽'이라 말을 해줍니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라는 뜻입니다. 많은 고생과 배움 끝에 주인공은 결국 피라미드에 도달하고 자아의 신화를 이뤄냅니다. 저 역시 2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있었지만 결국 촬영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설프고 부족한 ‘수습’이지만 결국 현장을 누비며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을 다 할 ‘진짜’ 촬영기자가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묵묵히 내공을 쌓으며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공정하고 품격 있는 뉴스영상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진짜 촬영기자로 성장하겠습니다.라웅비 / MBN 영상취재 1부 안녕하십니까. MBN 수습촬영기자 양현철 인사드립니다. 촬영기자 준비시절 매 번 선배님들의 ‘신입촬영기자 소개코너’를 접해왔습니다. 이 코너를 읽을 때마다 항상 헝클어져있는 저를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가 되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 코너에 제가 직접 글을 올리게 되어 정말 영광스럽습니다.언젠가 면접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양현철씨가 만약 이번 면접에서 합격하지 못한다면 플랜B가 무엇입니까?”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꾸밈없이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 “부족했던 부분을 되돌아보고 그 부분을 채운 후 다시 면접관님들을 뵐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저는 촬영기자 외에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저의 플랜B는 다시 도전하는 것입니다.”그 후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른 뒤 저의 플랜B는 현실이 됐습니다. 저는 앞으로 센스 있는 촬영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촬영기자는 단지 현장에서 카메라의 REC 버튼만을 누르는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촬영기자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표면적인 것 외에도 내면의 그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하는 역할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인가가 보는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전달될 때에 비로소 영상을 통해 진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사실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풍부한 감성을 갖고 또 자신이 맡은 취재의 목적을 정확히 표현해 사실을 미화시키지 않는 센스 있는 촬영기자가 되겠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지망생 시절 네임수퍼로만 접해왔던 선배님들을 직접 현장에서 뵙고 있다는 것과 비록 아직은 풋내기 촬영기자이지만 그런 제가 선배님들 틈 사이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앞으로 저는 많은 산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촬영기자로서 그 산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양현철 / MBN 영상취재 1부 
    2014-11-17
  • KBS 전문가 파견교육 후기 -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연변에서의 강의
    KBS 전문가 파견교육  후기 촬영기자 생활을 하면서 출장을 많이 다녔지만 늘 출장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가게 되죠.이번에도, 여러번 갔던 중국으로의 출장명령을 받았습니다. 북한 일차 핵실험 때 북 중 국경에서 중국 측에 억류 됐던 좋지 않은 추억이 있는 중국으로 또 출장을 가라니..출장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일상적인 취재 출장도 아니고 강의를 하라니.. 9월16일부터 9월25일까지 연변지역의 한민족 방송인들을 대상으로 뉴스영상제작 관련 강의를 오더 받은 것입니다.얼떨결에 가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막막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해야 하는지 또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거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동안 강의를 해야 한다니..혼자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는데 .연변 측에서 강의 요청서가 날아왔습니다. KBS 전문가 파견교육 희망내역 (중국 연변TV방송국) 김철호(金喆鎬)보도영상국촬영기자- 특종뉴스, 집중취재의 기획으로부터 현장촬영과 후기제작경험을 위주로 강의 바람. - 특히 적발프로그램촬영시 임기응변의 방법과수단 등등 1.     새로운 TV촬영제작기술 소개 및 그 전망2.     카메라렌즈 언어 기교를 어떻게 장악?3.     TV 촬영기술 및 카메라의 이펙트에 대한 해석4.     카메라 줌렌즈의 사용기교5.     TV촬영의 구도원칙 및 기교6.     TV촬영의 이동 구현수단7.     뉴스주제에 대한 카메라맨의 영상표달수법8.     다큐촬영및 대형회의,이벤트의 촬영9.     뉴스촬영의 광선사용 및 광선을 예술적으로 처리한 실례10.  HD촬영의  기술 및 예술11.  HD촬영에서의 주의점12.  HD카메라의 보조변수 조절 및 영상화면 질에 대한 영향이런 강의 요청서를 받아보고는 더 암담했습니다.요청내용을 보면 아주 초보적인 사항부터 요청이 들어온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뉴스제작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어떤 눈높이로 강의를 해야할지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평생 해온 촬영기자의 일이라 ‘일주일 썰 못 풀까’ 하고 편히 생각했었는데 막상 강의를 준비하려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어찌 어찌.. 현업을 하며 강의준비를 했고..연변에 도착해서 첫날. 현지에서 만난 담당직원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강의를 듣는 분들이 대부분 방송경력 5-10년차 이상이라는 겁니다..거기다 생각보다 현지방송환경은 우리의 방송환경과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아직 정부의 통제가 심했고..대부분의 아이템이 일주일 전부터 정해진다는 겁니다. 데일리 뉴스를 하는 사람이 일주일 전에 아이템이 정해진다니..나로서는 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였지만 현지에서는 그게 정상이였습니다. 거기다 연변조선어방송채널, 연변텔레비전뉴스종합채널, 연변위성중심,연변텔레비전방송국, 도문텔레비전방송국, 용정텔레비전방송국, 왕청텔레비전방송국 7개 회사에서 종사하는 64명이 강의를 듣겠다고 신청했다는 것 이였습니다. 많은 인원에 놀랐고 그분들의 경력에 놀랐고. 저 같은 사람의 강의를 듣겠다고 멀리에서 오신 그분들의 열정에 놀랐습니다. 강의를 앞둔 첫날 잠꾸러기인 제가 잠을 설칠 만큼 긴장이 됐었습니다. 드디어 첫 강의 시간. 제가 준비해 간 첫 강의는 HD시대의 영상문법이었습니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분들의 반응이 묘했습니다. 다 아는걸 다시 듣는 건지 아니면 몰랐던 새로운 걸 접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질문도 없고 내가 질문을 해도 답도 없고..답답한 첫 강의가 지나고 이튿날..최대한 제가 준비해간 뉴스영상을 보여주며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역시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지 좀 무뚝뚝하던 이분들도 이틀이 지나니 좀 친해졌는지 질문도 하기 시작하고 쉬는 시간에 서로 담배를 권하기도 하면서 급격히 가까워졌습니다. 아마도 같은 일을 한다는 공감대가 작용했나 봅니다. 제가 준비한 강의 진도에 방해가 될 만큼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방송환경에 대한 논쟁도 벌이게 되구요. 심지어는 온에어 방송된 것을 모니터 해달라는 부탁도 받았습니다. 그쪽 방송을 모니터하다보니 대략 우리방송보다 10년쯤 뒤져있는게 느껴지더군요. 카메라는 HD를 쓰면서도 막상 방송은 SD로 하는  것이나..좀 작은 규모의 방송국에서는 6mm카메라를 쓰고 있었구요.. 심지어는 이미지라인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고. 또 우리가 보기엔 편집이 안되는 컷들을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원샷들을 계속 연결해서 편집할 걸 보고 왜 이렇게 편집하냐고 핀잔을 주니..그 쪽에서는 주요인사는 이렇게 원샷으로 방송해야한다고 하더군요..그 어떤 방송편집이론이 무색해지는 말에 씁쓸한 웃음도 나더군요. 특히 강의하는 동안 그쪽에서 쓰는 방송용어와 영어와 일어가 많은 우리의 방송용어가 달라서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일단 방송용어는 중국어가 대부분이었는데요, 미속촬영은 거기서는 간격촬영이라고 하는 등 우리말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남짓 그들과 함께한 시간동안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래 해온 일에 대한 관성적 타성에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그분들에게 가르침을 줬다기 보다는 배우고 온 느낌입니다..정신없이 발전하는 방송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또 공부를 하자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해봅니다. 한국에는 아직 오지 않은 가을을 연변에서는 이미 가을이 가득하더군요.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 사이 어느새 한국도 가을이 지나고 있네요.김철호 / KBS 보도영상국 영상취재부 
    201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