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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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기자 협회보

NEWS

지속가능경영
  • 취재현장에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MBN 영상취재부 카메라기자 최선명   입사를 한 후 처음으로 현장에 동기와 둘만 나가게 됐습니다. 그 현장은 영등포 집창촌. 갑작스럽게 가게 된 현장에선 이미 여성들의 시위가 진행 되고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시위는 처음에는 과격하지 않은 시위였기 때문에 다행히 저와 동기는 당황하지 않고 영상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여성들은 시위를 마치는 듯하다 갑자기 옷을 벗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모든 방송사 카메라기자들이 그 여성을 따라서 뛰고 경찰들과의 몸싸움 현장에서 저와 동기는 집창촌 여성들과 경찰사이에 껴서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그 현장을 취재하게 됐습니다. 그 후 여성들은 자기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분신까지 시도했습니다. 그 당시 현장에서는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어떻게는 생생한 영상을 찍으려 노력했지만 제가 생각하고 그린 영상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현장이 마무리 된 후 동기와 나의 옷에 묻은 기름과 집창촌 여성들에게 잡혀 단추가 없어진 셔츠와 땀을 보면서 저는 촬영기자가 됐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뉴스를 보면서 저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여 다시 그런 현장에 나간다면 내가 생각하고 그린 영상취재를 ENG와 함께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그 현장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 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제 입사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기에, 아직까지는 실수도 많이 하고 모든 게 어색하지만, 실수를 겪지 않고서 내가 진정한 카메라기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그건 내 욕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실수를 알고 고치면서 생활한다면 언젠가는 진정한 카메라기자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늘도 어떤 현장에 나가서 취재를 할까? 라는 기대감과 긴장감을 가지고 취재현장에 뛰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 그대로 5년, 10년이 지나도 지금 느낌과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카메라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2011-11-18
  • 숨어있는 진실을 영상에 담고싶다
    MBN 영상취재부 카메라기자 진은석   발로 담아낸 영상의 힘은 이 세상을 움직이리라!! 펜은 칼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 펜보다 강한 것은 영상의 힘이다. 세상에 보이는 모든 일들의 이면에 숨어있는 진실을 영상에 담아냈을 때 비로소 이 세상은 진정한 민주화를 이룰 것이다.   제가 바라는 카메라기자로서의 이상입니다.   명예카메라기자로서의 신분에서 “명예”라는 수식어를 땐지 이제 갓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저는 뼈저리게 느끼고 다짐을 반복합니다. 제가 꿈꿔오던 기자로서의 삶을 진정으로 이루고 싶다면 우선 카메라와 한 몸이 되어라!! 머리로 판단하고 눈으로 세상을 봤다면 그것을 내가 느낀 대로 카메라에 옮겨 담아라.   아직 수습의 신분으로 현실의 높은 벽을 매일 같이 실감하며 좌절과 극복을 반복하고 있지만 분명히 시간이 지난 어느 시점에 지금 신적으로 느껴지는 선배들의 위상에 한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며 쫓아가겠습니다.   제 인생의 길고 긴 마라톤 경주에서 4월 18일은 단지 물 한 모금 마시며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었던 기회로 생각하고 항상 초심 잃지 않는 그런 명예스러운 카메라기자가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11-17
  • 제대로 된 메시지 전달하고 싶어
    MBN 영상취재부 카메라기자 조계홍   안녕하십니까!! MBN 신입 카메라기자 조계홍입니다!!   촬영기자를 꿈꾸며 준비해 오던 저에게 2011년은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을 나의 힘으로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기자라는 직업이 좋아 선택하고 준비해 왔지만, 영상취재기자라는 직위가 주어지기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온 오늘, 전 자랑스러운 ‘카메라기자’라는 직함이 주어졌고 오늘도 수습촬영기자로서 취재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넌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니? 아직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기만 한 지금, 현장에 투입되고 나서도 실수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하루하루 느끼며, 배워가며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수들을 발판삼아 항상 겸손한 자세로 임한다면 6개월, 1년 후의 대답은 자신 있게 ‘예’로 바뀔 것입니다.   이제 저의 목숨이 된 ENG카메라의 무게만큼, 카메라 기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면서, 여러 선배님들이 이루어 놓으신 업적들에 누가 되지 않는 후배가 되도록 하루하루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7
  • 측정 불가능한 초심 잃지 않을터…
    MBN 영상취재부 카메라기자 박인학   짧지만 긴 시간이었습니다. 8명의 동기들 그리고 최고의 선배님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종편방송 매일방송의 중심이 되기 위해 단련하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단단해 질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무한정 단단해지기 위한 노력 많은 하지 않겠습니다. 뜨거운 용광로와 같았던 수습으로서 열정과 기개를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매일방송의 역사를 만든 선배님들의 가르침을 소화하기에 제 자신이 부족한 점이 많아 자책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선배님들의 뜨거운 열정에 단 한순간도 차가움을 느끼지 못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뜨거운 열정의 바탕은 선배님들이 늘 강조하신 초심이라 확신합니다. 그 초심 이어가겠습니다. 지금 제 열정의 색온도는 측정 불가능합니다. 측정 불가능한 초심 잃지 않겠습니다. 매일방송 촬영기자의 열정 색온도를 측정한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무한정 열려 있다고.
    2011-11-17
  •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달구벌 뜨거운 열기에도 나의 열정은 식어있었다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달구벌 뜨거운 열기에도 나의 열정은 식어있었다. A, “야! 가지고 있는 카메라, 망원렌즈, 트라이포드, 스트로보 모두 꺼내고 짐이 많은 것 처럼하고  뛰어 들어가자.” B, “입구는 한 곳인데 경찰이 저렇게 열을 지어 있는데 저기로?” A, “어떡하노,,, 부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순 없잖아. 그냥 들이데 보는 거지...” B, “에라이 모르겠다. 가자.” 그리고 나선 우린 마치 사진기자처럼 보이기 위해 비록 보잘 것 없는 촬영 장비였지만 한 꺼 폼을 내고 20여 미터 일렬로 입구에 서 있는 경찰들 사이로 돌진했다. 경찰, “(나를 잡아채며) 뭡니까?” A, “(소리치며) 이거 놔! 시간 늦었다고, 빨리 뛰어!” 웅성웅성 거리는 경찰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냅다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경찰; “뭐 야”      “기잔가 봅니다.” 한 30여 미터를 달렸나, 우리를 잡는 경찰은 없었고 무사히 경기장 내부로 들어 갈 수 있었다. 2002년 10월 부산아시안게임 대한민국 대 북한의 농구 경기가 있었던 금정체육관 앞에서 벌어 졌던 일이다. 북한과의 경기여서인지 청명한 가을 하늘과 싱그러운 공기와는 다르게 체육관 앞은 난생 처음 보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찬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으며, 경기장 외각은  많은 경찰과 국정원 직원들로 메마른 사막의 공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보도사진연구회 정기 전시회를 앞두고 2001년부터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을 중심으로 사진전을 준비 하고 있었다. 부산, 울산, 대구, 서울까지 많은 경기장을 찾아 다녔고 그 때마다 금정체육관에서 벌어졌던 일과 비슷한 경우가 많았었다. 때로는 TV중계라인이 연결된 뒷문으로 스탭인 척 들어가 보기도 하고, 졸업한 기자선배께 무리한 부탁도 해보고...  그 때마다 AD카드를 목에 메고 자유롭게 경기장을 드나드는 기자들을 그냥 바로보고 있노라면 AD카드 한 장은 나에게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2011년 8월 27일 3대 스포츠 대전이라 일컫는 세계육상선수권 대회가 뜨거운 대지의 열기가 아우르는 인구 2백 5십만 인 이곳 달구벌에서 열렸다. 그 중심이 되는 대구스타디움에 지금의 나는 중계라인이 연결된 뒷문을 기웃 거릴 필요도, AD카드를 빌리 필요도, 입장권을 살 필요도 없어졌다. 나는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내 이름이 적힌 AD카드를 목에 걸고 당당히 IBC와 MPC거쳐 경기장으로 향했다. 사실 1년차 2년 차 때 세계육상대회 준비 과정인 대구국제육상경기 취재 시 그 설렘과 흥분은 대단했다. 설익은 카메라 기자로 뷰파인더를 보고 셔터를 누를 때엔 학창시절의 모습이 스쳐 지나서인지 그 전율이 발끝에서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벌써 5년차 인가, 십 수년 경험한 여러 선배들께는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제 그런 흥분과 떨림은 없어져버렸다. 열정이 식어버려서인지 아님 한계에 부딪힌 것인지...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202개국 참가 3500여명의 선수, 임원 등 규모면에 대회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002년 월드컵, 2003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겪었지만 단일 대회로는 대구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대회이기도 했다. 육상대회조직위는 대회 사상 처음으로 선수촌을 건설하여 선수단 및 미디어의 숙소를 지원했고, 역대 최고의 대회답게 연일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과 미소를 잃지 않은 6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에 그 빛을 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회 조직위의 운영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셔틀버스가 크게 부족한데다 시간마저 들죽 날줄 하여 불만이 터져 나왔으며, 스타디움 쇼핑몰이 공사 지연으로 제때 문을 못 여는 바람에 몇몇 식당만 운영되면서 음식이 형편없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그리고 대회 초반에는 보안을 이유로 밤에 스타디움을 폐쇄해 외신 기자들이 갇히는 소동도 있었다. 내가 속한 KBS는 주관방송사로써 116대의 중계카메라, 3D카메라, 스파이더 캠 등 최첨단 방송장비를 동원하여 국제신호로 제작 하여 전 세계에 전파를 쐈다.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4년간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선수 움직임 하나하나를 포착할 수 있는 영상구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개막초기에는 국내 TV중계를 하지 않아 총국으로도 시청자의 많은 항의가 있었다. 완벽한 대회를 꿈꿀 순 없지만 대회사상 최고, 최초 여러 미사여구가 등장한 만큼 작은 부분의 미숙함은 아쉬움에 남는다.   육상대회취재 시 만났던 지역 선배들로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었다. “KBS는 주관 방송사인데 뭐 할게 많이 있나?” 사실 녹화 데크만 두 대였다면 거의 모든 중계화면을 녹화를 해 뉴스영상에 사용 할 수 있으므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도 이런 생각이 독이 된 듯 했다. 경기결과에 대한 아이템인 경우 문제 될 것이 없으나 경기 외적인 경우와 한 선수의 내용을 담는 취재의 경우는 중계영상으로 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스스로 ‘빨리 복귀해 편집해야지.’ ‘내일 또 해야 할 것을...’이런 생각들이 내 머리를 지배한 건 사실이다.   ‘주관방송 KBS’ 그건 아마 본사의 이야기 일 것이다. 조직위와 본사 육상방송기획단이 중심이 되다 보니 총국 보도국에서는 미디어 주차장 출입증 하나를 얻지 못했고, 선수촌, 보조경기장 등 취재를 하고자 할 땐 많은 어려움과 취재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지역 언론의 일원으로서 이번 대회에서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대회소식이 전국뉴스에 과연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했냐는 부분이다. 뉴스의 질을 빈도수로 따지는 것이 무의미 할 수 도 있지만 주관방송인 KBS뿐만 아니라 대부분 방송사 메인 뉴스에서 대회소식은 두 꼭지에서 세 꼭지 정도에 불과 했다.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 지역뉴스에서만 이슈가 되었지 전국뉴스에서는 그저 대구에서 육상대회가 있다는 것에 불과했다. 언론은 세계 3대 스포츠 대전이라 스스로 칭하면서 그 가치를 아시안게임보다 못하다 여긴 것 같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언제 또 대구에서 이런 큰 대회가 있을지, 언제 또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이런 대회를 취재할 수 있을지 지역에서 이런 경험을 다시 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8월 여름이 다갈 무렵 202개국에서 모여든 전 세계 사람들로 잠시 식었던 달구벌의 열기는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음에도, 부끄럽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의 한계를 느끼며 내 마음속의 열기는 2003년 금정체육관 앞보다 식어 있었다. KBS 대구총국 김동욱
    2011-11-17
  • '뜨거운 눈물'을 잊지 않겠습니다
    KBS 카메라기자 이창준 ‘뜨거운 눈물’을 잊지 않겠습니다. 최종면접 합격자 명단에서 ‘4000085’를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 졌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는 ‘뜨거운 눈물’이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던 ‘KBS 촬영기자’에 최종 합격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맛보았던 낙방의 쓰라림과 오랜 준비의 시간들이 한순간에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촬영기자라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남들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저를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의 영광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가 흔들리지 않고, 촬영기자라는 방향성을 잃지 않은 것은 그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배님들은 그동안 무수한 뉴스현장을 직접 몸으로 겪으시면서 KBS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켜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KBS의 촬영기자로서 뉴스현장에 설 수 있다면, 저 또한 KBS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제가 최종면접장에서 마지막으로 면접관님들에게 드린 말씀입니다. 항상 KBS의 가치를 잊지 않는 촬영기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공영방송 KBS의 촬영기자로서 무한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현상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바라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2011-11-17
  • 직구를 던져라
    KBS 카메라기자 최상철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합격자 명단에서 저의 번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긴장으로 경직된 마음은 설렘과 환호로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간절히 원했던 목표가 손 안에 잡히는 것 같았습니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던 지하철 안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KBS의 촬영기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 날의 감동과 울림은 제 마음속에 평생 기억될 것입니다. 입사시험은 단 시간 안에 자신의 장점과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트라이아웃과 같았습니다. 트라이아웃에 선발되어야 실전 마운드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앞으로 펼쳐질 각종 현장이라는 마운드위에서 영상이라는 공을 던지는 뉴스의 투수가 된다니 꿈만 같습니다. 그리고 책임감의 무게가 더해져갑니다. 동시에 정직한 땀을 흘리는 저의 모습을 기분 좋게 상상해 봅니다. 트라이아웃에서 많은 지원자들과 경쟁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 막 한 발 전진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저 스스로와의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뉴스의 핵심이 되는 영상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올바른 촬영기자의 자세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묻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대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얼마 전, 교육시간 중에 제 어깨위에 카메라를 처음으로 올려봤습니다. 카메라와의 첫 대면에 낯설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가볍다고 느꼈습니다. 아직은 캐치볼을 하기위해 처음 공을 만져본 호기심 가득한 연습생에 불구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카메라의 무게와 책임감이 얼마나 묵직한지 느낄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야구는 투수놀음입니다. 이와 같이 방송뉴스에서 촬영기자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좋은 투수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직구를 잘 던져야 합니다. 촬영기자도 영상이라는 직구를 잘 던지기 위해서는 많은 점들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과 진실된 마음, 겸손한 자세가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묵직한 직구를 던지기 위한 공잡이를 시작했습니다. 실전 마운드에 등판하는 그 날, 제가 흘린 땀방울이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대신 할 수 있도록 발로 뛰며 노력하겠습니다.                                                             
    2011-11-17
  • '좋은 발(足)'을 지닌 기자가 되겠습니다
    KBS 38기 카메라기자 지선호 예전부터 촬영기자를 준비하며 많이 참고했던 책이 있습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서 발간한 <현장기자가 발로 쓴 영상저널리즘>이라는 책입니다. 각사에 계신 선배들께서 합동 집필하신 보도영상 개론서입니다. 이 책을 볼 때마다, 위트있으면서도 심오한 제목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왜‘손으로 쓴’이 아닌‘발로 쓴’일까? 카메라기자에게 있어, ‘발’보다는 뷰파인더를 보는‘눈’이 먼저 아닐까?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어떤 직종보다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현장을 뛰어다니며 생생히 호흡해야하는 직업적 특성. 그리고 그저 선 자리에서 막연히 뜬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부지런히 자기 눈의 위치를 옮겨가며 때 론 높은 곳에서, 때론 낮은 곳에서, 때론 한 발 물러선 곳에서, 때론 가까이 다가선 곳에서 시민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아무리 좋은 눈을 갖고 있어도 그 눈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배들의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영복 선생의 에세이 ‘처음처럼’이라는 책의 <발>이라는 글에 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며,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하다”고 신영복선생은 말씀하십니다. 저 역시 좋은‘발’을 가진 촬영기자가 될 것임을 다짐합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을 던지는 보도영상인이 되겠습니다. 온갖 현장에서 구르고, 부딪히고, 뛸 생각을 하니 설렙니다. 제 어깨에 짊어질 카메라의 무게가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무거운 책임의식을 지닌 카메라기자가 되겠습니다.
    2011-11-17
  •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KBS 38기 카메라기자 고형석 우여곡절 속에 드디어 고대하던 카메라기자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방송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준비하고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상 입사 준비를 못하다가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결국 한국방송에서 카메라기자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입사를 준비했던 과정을 돌이켜 보면, 결국 제 운명이 정해진 길을 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주간의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KBS 영상보도국에서 OJT를 받은지 1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실무적인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고대하는 일을 직접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ENG를 이론이 아닌 실무에서 배우면서 ‘“이제 정말 내가 카메라기자가 되었구나!” 하는 것을 조금씩 실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멋진 선배님들 밑에서 배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조선시대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을 사관(史官)이라고 했습니다. 촬영기자는 역사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영상사관(映像史官)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KBS에서 촬영기자가 되어 영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2011년에 다시 태어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잘 하겠습니다.
    201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