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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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편 채널, 취재윤리는 커녕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졌는가?
    종편 채널, 취재윤리는 커녕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졌는가? ‘포토라인’의 사전적인 의미는 ‘과열 취재경쟁으로 인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신문/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더 이상 취재원에 접근하지 않기로 약속한 일종의 취재경계선’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포토라인의 사전적 의미를 좀 더 확장해 보면 이것은 사진,영상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저널리스트들의  ‘취재윤리’를 가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표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기자들끼리 합의된 이 선을 지키는가 아닌가야 말로 카메라기자로써  최소한의 소양과 자질이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해보자. 단순히 취재진이 많이 몰린 취재현장에서의 포토라인 개념은 일회적인 것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을 각 출입처와 기자실로 확대해보자. 취재대상과 출입처의 성격에 따라 기자들끼리 취재 순서와 방법 등을 정하는 출입처, 기자실 역시 그 구성원들끼리 자율적인 룰을 통해 정해진 원칙을 지키는 상시적이며 광의적인 의미의 ‘포토라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정해진 룰을 존중하고 지키는 것 역시 포토라인 정신에서 출발한 저널리스트 간의 ‘취재 윤리’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포토라인 정신에 기반한 서로간의 룰 존중 의식과 취재윤리가 없었다면 지금 매일 매일의 취재현장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의 연속일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요사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에 놓쳐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이러한 ‘포토라인’ 룰을 마련하고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대립, 조정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인류역사의 모든 ‘합의정신’이 극심한 대립과 파국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 처럼 지금은 당연스럽게 보이는 ‘포토라인’의 룰 역시 그 틀을 마련하는데 적지 않은 댓가를 치러야 했다.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서로가 야수같이 달려 들어봐야 특종은 커녕 모두가 아무것도 찍지 못하고 돌아서야 한다는 지옥같 은 ‘경험’을 수십 차례 반복한 뒤에야 얻은 소중한 ‘교훈’이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뼈를 깎는 교훈을 바탕으로 서로간의 합의정신을 통해 취재윤리를 지키자는 구성원들의 노력과 의지가 없었다면 포토라인의 지속은 불가능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십 수년간 어렵게 이룩해 놓은 ‘포토라인’정신이 이제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태생부터 합의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던 종편채널들이 마구잡이식으로 현장에 취재진을 쏟아 부을 태세다. 아니 벌써 현장 곳곳에서 속속 포토라인이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재연되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취재윤리는 커녕 최소한의 트레이닝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종편인력들이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우리에게 돌아온 건  조,중,동 신문의 영향력을 앞세워 출입처 공무원들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기자실 문을 열어줄 것을 종용하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뿐이다. 앞서 언급했듯 기자실이란 공간은 출입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자들 자율적으로 정한 룰을 준수하며 취재행위를 하는 곳이다. 그래서 특히 카메라 기자들에겐 상시적이며 확장적인 개념의 ‘포토라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처럼 소중한 우리직업 정신의 보루를 가뜩이나 고용과 처우에 있어 카메라기자의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종편채널이 깨뜨리려 한다면 이것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저널리스트로써의 최소한의 취재윤리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처음 가는 남의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행위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짓이다. 그런 짓을 자행하는 집단이 굳이 언론을 자처하며 도도하게 이어온 포토라인의 정신을 훼손하려 한다면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를 저지할 것이다.
    2011-09-21
  • 여야 미디어렙 합의 도출 실패
    여야 미디어렙 합의 도출 실패 종편 광고영업, 지역 언론에 직접 타격   10월 6일부터 종편채널사업자가 프로그램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회 미디어렙 논의가 답보상태로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종편이 방송광고 직접 영업에 한 발작 다가 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의 방송광고 판매대행(미디어렙) 법안 논의가  도출한 결정은 종편을 미디어렙 업무영역에 포함시키는 것이 위헌의 소지가 없는지 법무법인 세종에 의뢰하는 것이 전부였으며 여야 간 현격한 입장차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디어렙 법안은 방송광고판매제도에 관한 것으로 지상파 방송사나 종편채널 사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지역방송사나 종교 방송 등 취약 매체와 신문 등을 포괄해 여론 다양성을 훼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광고ㆍ미디어 시장을 전망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근거로 미디어렙의 틀을 결정할 것을, 민주당은 종합편성채널을 미디어렙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지난 16일 서강대학교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김승수)  2차 기회연구과제 중간발표회가 ‘한국 매체산업 지형 변화와 저널리즘의 위기’란 주제로 개최됐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으로 대표되는 한국 언론의 구조 변화가 매체산업의 왜곡을 초래하고 나아가 저널리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진단 아래 기획 연구 과제를 공모 해 중간성과를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4섹션 <지역미디어시장의 붕괴와 지역저널리즘의 위기> 발제를 맡은 우석대 김은규 교수는  종합편성채널도입으로 인해 광고시장 경쟁과 지역 언론의 경제적 위기가 도래하며 친시장적 방송 콘텐츠와 지역 프로그램의 위축과 회사의 이익과 저널리즘 갈등이 심화 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종편채널 1개 당 연간 5천억 원의 광고매출을 올려야 생존이 가능한데, 2011년 방송광고 증가량은 3천4백8억 원으로 종편 채널 1곳의 생존을 담보하기도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광고시장을 키우기 위해 1990년부터 금지돼온 의료기관 및 전문의약품의 방송광고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토론자로 나선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정부광고가 주력 수입원인 신문사는 종편의 광고영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언론정보학회는 이날 중간 발표회가 “2년간, 그리고 향후 이어질 일련의 정치적, 법적, 정책적 변화가 매체산업의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고 정책입안자들은 주장하지만, 이 변화가 결국 매체여론시장의 독과점, 언론권력의 집중,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학계와 업계의 비판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고 밝혔다.
    2011-09-21
  • 멀티형 기자되기 교육 후기
    멀티형 기자되기 교육 후기 지난 5월 23일부터 이틀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주관의 멀티형 기자되기 교육에 다녀왔다. ‘멀티형 기자’가 무엇인지 아직 잘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방송기자’로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점검하고 배우는 기회였다. 앞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분들을 위해 교육 후 느낀 점들만 간략히 정리했다. - 방송기사 작성법 MBC 보도국 김학희 부국장께서 두 번의 강의를 담당하셨다. 방송 기사의 유형과 실제 방송 단신 기사 작성, 연합뉴스 기사를 방송용으로 고치는 방법을 실습해보고, 리포트의 기획과 실제 사례 등을 살펴보았다. 실제로 우리 동료인 보도국 취재기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살짝 맛보는 정도였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뉴스를 생각하는 것은 입사 이후 처음이어서 신선했다. 기사를 직접 작성하는 것은 눈으로 읽는 것과 천양지차의 느낌이었고 취재기자들이 왜 자꾸 기사의 토씨 하나를 고치거나 혹은 지키려고 애를 쓰는지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아주 간단해 보이던 세 문장짜리 단신 하나에도 나름의 원칙과 규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되새겨 보았고 막상 방송에 나간다는 가정하에 기사를 작성해보니 간단한 문장 하나를 작성하는 데도 여러 번 문장을 뜯어보며 신경을 쓰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취재기자들이 영상취재 교육을 받는 기회가 있다면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 방송 언어 방송 언어에서 흔히 있는 실수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었다. 강의 내용 자체도 의미가 있었지만 강사인 OBS 유형서 아나운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자체가 훌륭한 콘텐트라고 할 수 있었다. 강의 시작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수강자들은 유아나운서의 흡인력에 빨려 들었다.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을 유쾌한 강의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것이 방송 콘텐츠가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 리포팅과 인터뷰 실습 성연미 봄온 아카데미 원장의 진행으로 직접 마이크 잡고 말하기,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기를 체험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녹화된 영상을 통해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가 말하는 모습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말하는 자세와 버릇, 말투, 목소리를 직접 보는 것은 살짝 충격적인 일이었다. 인터뷰 과정은 더욱 재미있었다. 항상 카메라 뒤에서 프레임과 음질을 신경쓰며 지켜보던 인터뷰. 막상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해 보니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일 모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이 매우 어색했는데 이번의 짧은 체험이 업무나 개인적인 측면 모두에서 두고두고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취재기자들의 리포팅 스타일을 나만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 소셜미디어 활용하기 최근 다양한 소셜미디어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어떤 Tool들이 등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수강생 모두가 아이폰, 갤럭시 S, 아이패드, 맥북에어 등의 기기쪽으로 몰려가 구경하고 질문하며 많은 관심을 쏟은 시간이었다. 강사가 주로 보여준 것은 요즘 많이 회자되는 클라우딩 서비스에 관한 것이었다. 주로 MAC 기기들까리 동기화를 통해 클라우딩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대강 개념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테크니컬한 강의였다. 그 외 여러가지 어플리케이션에 대해 소개해 주었는데 이 모든 서비스와 어플들을 익혀 두면 편리할 수는 있겠지만 무엇으로 내용을 채울 것인지 그리고 거기에 투입하는 시간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이번에 서울디지털포럼으로 방한한 CNN의 전 방송진행자 래리 킹은 ‘아무리 디지털시대라고 해도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취재기자의 입장에서 되새겨 보면 ‘세상이 바뀌어도 누군가는 현장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다시 한번 강하게 하는 조언이었다. 현장에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야 한다면 그는 영상기자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가 ‘멀티 플레이어’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범 SBS 영상취재부
    2011-08-22
  • <2009년 5월>저자 김정은 기자를 만나다
    저자 김정은 ; 1976년 출생.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2007년 카메라기자로 KBS 보도 본부에 입사했다. 보도영상국 소속으로 변양균&신정아 사건,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숭례문 방화 사건, 용산 철거민 참사, 신종 플루 대재앙 등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을 취재하면서, 전직 대통령이 1년 만에 피의자로 전락한 희대의 사건과 마주하게 되었다. 5월 23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하자 법무부 장관은 수사 종료 성명을 발표했고, 전직 대통령의 뇌물 스캔들과 관련된 의혹들을 영구 미제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검찰이 먼저 제기한 권력형 비리 사건은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끝나 버렸다. 저자는 당시 검찰 수사 과정과 서거 국면을 보도했던 한 사람으로서,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책임을 고민하다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년에 걸친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2009년 5월'을 집필했다. 1. <2009년 5월>을 썼습니다.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기억에 남는 일 등 소회를 말한다면?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가장 먼저 하시는 질문이 “혹시 노빠세요?”입니다.(웃음) 우리 사회 정치 논쟁이 그만큼 단순합니다. 어떤 분은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느냐?”, “그분을 지지하고 변론하기 위해 책을 썼느냐?”고 묻습니다. 책을 쓴 것이 그분을 지지하기 위한 행위라면 책을 쓰지 않는 것은 그분을 반대하는 행위가 되나요? 우리 사회가 모든 행위와 언론을 그처럼 이분법적으로 해석하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썼던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가물가물합니다. 다만 매일 매일 책에 대한 압박과 불안에 시달렸던 생각만 납니다.(웃음) 당시 제가 기록했던 집필일기를 보면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흘러갔던 게 다시 떠오릅니다.(웃음) 제 글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관련 인사들의 인터뷰가 없으면 안 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저는 출판사에서 그래도 어떤 도움을 줄 것이라고 약간의 기대를 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가장 힘들었던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구성>일 것입니다. <구성>이 나와야 집필을 시작할 수 있는데 <구성> 초안이 서너 달이 가도록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제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1차 구성안이 나온 게 2010년 8월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책을 써보자고 출판사와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게 2월이니까 약 6개월이 걸린 것입니다. 집사람이 임신해서 서울 친정에 있었고 저는 태백에 있으면서 매주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왔는데 서울 가는 길 위에서, 그러니까 운전하다가 구성 초안이 갑작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때 차 안에서 혼자 운전하다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모릅니다.(웃음)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무슨 복권에 당첨됐나 싶었을 겁니다. 2.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무엇보다도 사회적 과오에 대한 채무자로서의 부채의식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마치 요즘 장마나 태풍처럼 매우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순식간에 우리 사회 한 부분을 휩쓸어버리고 망가뜨린 후 사라져버렸습니다. 막상 검찰 수사가 진행중일 때에는 당시 상황이 몹시도 강력하고 당황스러워서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놓치지 않고 검증해야 될 사실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따져서 정리하고 처리할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당시를 되돌아보면서 허탈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역사이고 지나가버린 사실에 불과합니다만 사회 차원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본다면 그러한 사실은 한 사회의 부채가 되고 과오가 됩니다. 저는 바로 그러한 부채, 과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언론은 그 부채나 과오에 대한 제1순위 채무자입니다. 언론은 당시 상황에 커다란 책임이 있는 당사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부채의식이죠. 한 사회가 어떤 상황을 핸들링하는 과정을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스트로스 칸  IMF 총재에 대한 수사가 제2의 국면을 맞고 있는데 과연 비슷한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혹은 과거에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이나 빌팽 전 프랑스 총리의 사르코지 음해 의혹 같은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기를 바라고 또 거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3. <2009년 5월>의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제가 책에는 썼지만 편집 과정에서 빠진 것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로맹 롤랑의 말인데요. ‘패배자들로부터 그들이 불공평한 실패에서 얻은 일종의 구원의 권리, 즉 모욕을 당하고도 자부심을 가지고 운명에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권리까지 빼앗으려고 하지 말라.’ 이것이 제 책의 주제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글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정치적인 표현인데요.(웃음) 당시 사건을 보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습니다만 검찰 수사가 몹시 무리했고 정치성을 띄었다는 데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정 정치 세력이 권력을 사유화하려고 시도하더라도 성숙한 사회는 그러한 전횡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러한 논의 이전에 근대적 과제였던 <공포주의>, <광기>의 청산부터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향후 계획에 대해 간략히 말한다면? 지금 제가 5년차인데 한참 일을 많이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들께서 저를 볼 때마다 태백에서 많이 쉬었냐고 물으시는데 사실 저는 지옥 속에서 1년을 보냈거든요.(웃음) 그런데 어쨌든 서울에서 벗어나서 한적한 곳에 와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재충전의 시간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군 제대한 게 25살 때였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집에서 가장 노릇 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일이 없습니다. 다만 일상 속에서 짬짬이 쉬는 노하우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웃음) 책을 읽는다든지 카페나 극장에 자주 간다든지. 당분간 글은 쓰지 않고 일하고 취재하면서 그렇게 좀 시간을 보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난 이후 연말쯤에는 소설 단편집을 쓸 계획입니다. 장편에 대한 구상도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단편집을 먼저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동료, 선후배 분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게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 조승연 KBS 보도영상국
    2011-08-22
  • 미디어가 만들어낸 유럽 신한류 열풍
    K팝의 고향, 멍게와 번데기를 먹는 나라 미디어가 만들어낸 유럽 신한류 열풍 최효진 (미디어아이 프랑스통신원) “한류, 제니스에 몰려들다” 지난 달 10일과 11일 양일간 파리 제니스 공연장에서 열린 SM타운 파리 콘서트를 앞두고,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 지(紙)가 콘서트와 프랑스에서의 한류 열풍 현상에 대해 소개하고자 앞세운 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을 위시하여 이번 파리 K팝 공연에 관한 현지 언론 보도는 다분히 자극적이고, 심지어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르몽드와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한국전쟁과 특히 “인천상륙작전”을 의식한 듯, K팝과 한국 드라마 등 한국대중문화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도 상륙했다 혹은 정복했다는 식의 기사가 많다. 그리고 그 문화적 흐름의 근원지인 서울 SM기획사를 찾아, 한류 스타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했다. 수년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기계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들을 문화상품으로 제작해내는 스타시스템과 그로부터 생산되는 문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프랑스 현지 언론들도 프랑스에서의 한류 열풍을 대서특필했다고 알려진 듯 한데, 각 매체 문화 면은 현지에서의 한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층적으로, 그리고 신랄한 비판으로 파고 든다. 일례로 한 민영TV매체인 M6의 매거진 프로그램에서는 이번 콘서트를 이끈 큰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한류팬 50여 명의 한국단체관광을 동행취재했다. 약 10분 내외의 분량으로 한류를 소개한 이 프로에서 취재진은 이들 소녀팬들이 K팝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담는 한편,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프랑스 소녀들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에 한국 문화를 발견하는 과정을 같이 담았다. 이들은 낮에는 남대문, 인사동과 같은 서울 시내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국내 주요 방송 3사의 음악프로그램 녹화장을 찾는다. 그런데, 이들이 새로이 문화적 발견이라고 소개한 아이템은 민박집 화장실에 설치된 비데, 재래시장에서 먹는 비릿한 멍게와 징그러운 번데기, 이런 것들이다. 한국을 조금 아는 시청자들은 한국 음식 중에 맛있는 것도 참 많은데, 왜 하필 저런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반응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취재진 역시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급하게 취재일정이 잡힌 터라 한국 문화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족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 프로는, K팝과 한류를 소개하기 보다는 거기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십대 소수 마니아들의 현상 보도에 그쳤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소소한 논쟁이 오가고 있다. 한국전쟁이 났을 당시, 프랑스 참전 군인들이 한국이 베트남 옆에 붙어 있는 나라인 줄 알고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부산항에 도착했다는 시절이 있었는데, 불과 반세기 만에 우리 말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프랑스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말그대로 한류 열풍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0일 공연 직후, 기자회견에서 슈퍼주니어 리더 이특이 “10년 전 프랑스 꼬마 조르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큰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프랑스팬들이 우리 노래를 따라 불러준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말처럼, 분명 몇 십 년 사이 한국문화는 특히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현지에 무섭게 상륙하고 있다. 주불한국문화원 등에서 사물놀이나 판소리와 같은 일회적인 전통문화공연에 그쳤던 현지 한국문화 소개는 이제, 유투브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온라인 세상에서 현지 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급속도로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온라인 세상에 모인 유럽 한류팬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기회는 어쩌면 지난 달에 있었던 콘서트가 보여준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10여분 만에 매진된 이틀 간의 공연 티켓 1만 4천여 석을 메운 소수 마니아들의 문화가 우리가 말하는 유럽 한류의 전부라는 분석도 있다. 300 여개가 넘는 파리 공연장 중에서, 그것도 7천여 석에 불과한 작은 공간에서 개최된 콘서트를 두고 우리는 신한류라는 너무 과장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번 파리 K팝 공연은 규모 면에서 보면, 같은 가수들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개최하는 콘서트에 비하면 너무나 작다. 예를 들어, 왠만한 한류 스타들이 일본의 도쿄돔에서 공연을 할 때, 이 객석을 채우는 한류팬들의 수가 2만 여명이 넘는다. 프랑스 인기 가수들이 주로 공연하는 파리 베르시 공연장이 이와 비슷한 규모로, K팝 공연을 여기서 개최할 경우 이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발짝 더 뒤로 가서 보면, 프랑스에서의 신한류 열풍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영화 등을 위시하여 한국 대중문화에 푹 빠진 몇몇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에 불과하다. 여러 이민사회가 모여사는 프랑스가 이른바 “똘레랑스(관용)”으로 하나 둘 자신들의 문화에 흡수해가는 다양한 문화적 흐름 중에 한류가 있다. 프랑스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에 북아프리카식 덮밥요리인 쿠스쿠스가 생활화된 것처럼, 일본 망가에 빠진 프랑스 젊은이들이 자주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처럼, K팝과 한류 콘텐츠는 이제 점차 일부 프랑스 젊은이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있다. 이들이 한국 대중가요와 드라마를 접한 시기를 물어보면,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소녀팬일 경우 대부분 적어도 5년에서 6년은 되었다고 답한다. 일본 드라마와 J팝, 그리고 망가 등을 보다가 한국 것들을 접하게 되었다고. 비록 시작은 타 문화에서 흘러들어왔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최신 K팝을 듣고 가사를 배우는 일, 엊그제 지상파 방송 3사에서 방영된 트렌디 드라마를 섭렵하는 일, 각종 국내 연예뉴스 스크랩 등은 이제 한국인들과 같은 일상이 됐다. 최근 무섭게 불어닥치는 바람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유럽땅에 조금씩 스며들어온 가랑비 같은 것이 우리가 말하는 유럽 신한류이다. 우리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을 아시아가 아닌 다른 땅에서 만났다고 자축하는 분위기는 이쯤해서 접어두고, 한국 언론은 이들 한류팬들이, 그리고 그들 주변의 친구과 가족 등이 K팝으로 알게 된 한국이라는 나라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모험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이 멍게와 번데기 같은 희한한 음식을 먹는 나라라는 식의 인식에서 벗어나 K팝이 보여주는 역동적이고 다양한 한국문화의 진면목을 그들의 생활 속으로 끌어가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11-08-04
  •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취재 후기
    돌잡이로 ‘초심’을 잡아본다!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취재 후기- 뜻밖의 만남   “형!” 누군가 날 형이라 부르며 내 팔을 건드렸다. 집회 현장에서 날 형이라 부를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의아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게 웬걸. 대학교 후배였다.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친구들과 광장에 왔는데 내가 보여 반가워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카메라가 신기하다는 둥, 화면발이 안 받으니 자긴 찍으면 안 된다는 둥, 농 섞인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나 곧 후배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형, 좋겠어요. 직업도 있고 보람된 일도 하시고 요즘 우리는 등록금 때문에 장난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후배는 약간 기가 죽은 모습으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 난 다시 뷰파인더를 바라봤다. 조금 전과 비교해 현장이 다르게 느껴졌다. 학생들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광장에 모여 목청을 드높였다. 그리고 난 그들을 기록하려고 현장에 와있다는 것을 후배를 통해 새삼 다시 느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REC버튼을 누르는 엄지손가락엔 힘이 들어갔다. 현장 분위기를 전하다   주인공들은 축제를 즐겼다. 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간 파도타기로 흥을 돋우었다. ‘노찾사’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는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또한, 무대 앞에서 학생대표가 연설할 때는 이내 진지해졌다. 학생 대표의 말에 동의하며 박수를 보내는 순간엔 비장함까지 묻어나왔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아주머니, 그리고 나이 든 할아버지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열기는 더해갔다.   집회 후, 학생들은 청계천에서 시청으로 거리행진을 했다. 약 1시간 가까이 계속된 행진이었지만 큰 이탈 없이 시청까지 이어졌다. 시청에선 수백의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경찰의 방송에 삼엄한 분위기가 흘렀다.   ‘폭력사태가 벌어진다면…?’이란 가정을 해가며 머릿속이 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냉정하게 관찰하자는 주문을 외우면서 사방을 주시한 긴장된 순간이었다. 다행히 학생들은 도로에서 구호한 번 더 외친 후, 거리행진을 마쳤다.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 긴장했지만 평화롭게 끝난 집회였다. 현장에서 생각하다   등록금은 비싸다. 많은 국민이 나와 같은 생각일 거로 생각한다.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비싸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알바를 하느라 학업에 지장을 받는 대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생들과 비교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게 되어 취업 경쟁력도 잃게 될 우려까지 생긴다. 또한, 등록금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 중,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졸업 후에도 비정규직에 저임금이라는 덫까지 걸려 신용유의자로 전락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등록금이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관여했다는 사실을 면하긴 어렵다.   반값이다! 30%인하다! 숫자놀음은 중요치 않다. 다만,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사라질 수 있는 현실적인 등록금 책정으로 대학생이 대학생다운 생활을 해야 한다. 이제 갓 돌잡이 한 촬영기자   집회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 오늘 취재하며 느꼈던 것을 되돌아본다. 아직 경험이 미천한 신참 촬영기자인 나에게 이런 작업은 매우 어렵다. 후배를 만난 날이어서 그런가. 후배 눈에 난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집회의 본질을 그대로 담아내는 열정적인 기자로 비쳤으면 좋겠다. 그러나 금세 자신이 없어졌다. 기계적으로 소위, ‘그림이 될 만한 곳만 찾아다니진 않았는지.’ 반성이 밀려온다. 그러고 보니, 7월이 됨으로써 촬영기자가 된 지 정확히 1년이 흘렀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던 다짐을 한 지도 1년이 된 셈이다. 그러나 그 간에 난 초심을 잃고 흔들린 적이 몇 번 있었다. 촬영기자를 준비할 때의 확고했던 믿음이 현직에 와서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아기는 태어나서 처음 맞는 생일에는 돌잡이를 한다. 나 역시 촬영기자로 태어난 첫 번째 생일인 만큼 스스로 돌잡이를 시켜본다. 무엇을 잡을까? 특종을 잡는 내는 ‘예지력?' 욕심이 굴뚝이지만 참는다. 고민 끝에 다시 한 번 ‘초심’을 잡아본다. 초심을 잡고 진실을 포착하고자 노력하는 촬영기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이번엔 죽을 때까지 안 놓을 작정이다. MBN 영상취재부 배완호
    2011-08-04
  • 동아일보,
    동아일보, "YTN돌발영상 연출" 결국 정정보도 내 동아일보의 연출영상이란 표현은 부적절 지난해 안상수대표의 보온병 포탄 발언을 방송한 YTN돌발영상에 대해, 연출된 것이라 보도했던 동아일보가 결국 정정보도를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는 화해권고의 형식으로 동아일보의 정정보도를 결정했고, 이에 동아일보는 지난 7월8일자 신문지면과 인터넷에 법원결정에 따른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보도문에서, "YTN이 취재당시 안대표의 포탄발언을 방송카메라기자가 연출없이 촬영한 것임을 알려왔고, 본보의 연출영상이란 표현은 부적절했기에 이를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1일자 "연평도 간 안상수, 보온병 보고 '포탄'- 알고 보니 방송사의 '연출 영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장면은 포탄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방송사 카메라기자들이 안 대표에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해 촬영한 '연출영상'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또한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을 빌어, "방송 기자들이 자신들의 요청으로 '그림'을 '연출'하다가 빚어진 실수인데 전후 과정을 밝히지 않은 채 방영한 것은 방송윤리상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YTN은 취재과정에서 연출은 없었다며 즉각 반발했고, 언론중재위에 동아일보를 제소했다. 당시 언론중재위원회는 직권조정으로 동아일보의 정정보도를 결정했지만 동아일보가 이에 불복, 이의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은 직권조정을 거부하면 자동 민사재판으로 넘어간다는 원칙에 따라 법정공방으로 비화됐다. 하지만 여러 차례 재판이 열린 과정에서 동아일보가 YTN과의 조정을 신청했고, 재판부가 최종 화해권고결정을 함으로써 언론사간 일었던 다툼은 동아일보의 정정보도로 일단락됐다. ▼ 바로잡습니다 ▼ YTN은 지난 12월1일자 본지 A8면 “연평도 간 안상수, 보온병 보고 ‘포탄’ 동영상 알고 보니 방송사의 ‘연출 영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관련하여, “취재 당시 방송사 카메라 기자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안 대표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더니 안 대표가 문제의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연출 없이 그대로 촬영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본지의 ‘연출 영상’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표현이기에 이를 바로 잡습니다. ======================== 동아일보의 정정보도 게재로 법정공방은 끝이 났지만, 남긴 문제점들은 뒷맛을 개운치 않게 했다. 영상취재기자 역할에 대한 몰이해와 팩트확인의 절대부족, 잘못된 기사표현과 자신들의 잘못을 끝까지 인정치 않던 오만함까지.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위에 열거한 문제점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개선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정남 기자
    2011-07-26
  • SNS시대 영상저널리즘
    SNS시대 영상저널리즘                                            비는 무섭게 퍼붓고 있었다. 지상파 방송, 뉴스채널, 통신사 등에 폭우와 관련된 예보나 특보는 없었다. 반면 트위터 타임라인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첨부된 멘션들이 그득했다. 밖에 내린 빗방울이 트윗으로 오롯이 환생하는 듯 했다. 광화문차선이 없어진 3~4시간 후에야 지상파는 특보를 시작했고, 이보다 1~2시간 이른 시간 뉴스채널들은 특보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추석 때 일이다. 트위터는 단순정보에 그치지 않았다. 우회를 유도하고 침수 피해시 안전수칙과 사후관리 등에 관한 내용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기존 미디어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정보보다 더 세분화되고 적확한 내용들이 실시간으로 교류되었다. 추석 연휴라지만 제대로 물먹은거다. 이튿날 언론사들은 ‘트위터의 힘’이라는 아이템으로 스스로를 위안 삼았다. 뉴스소비시대에서 뉴스생산시대로 헤게모니가 옮겨가고 있다. 기존의 막대한 비용과 매개체를 이용해야만 가능했던 메시지의 전달과정이 기술진화에 힘입어 누구나 쉽게 생산ㆍ유통ㆍ공유가 가능해졌다. 소수에 의한 정보 독점의 카르텔은 분화되는 반면 개방성에 중심을 둔 플랫폼 서비스에는 다수가 참여한다. 영상저널리즘도 매한가지다. 고가의 장비와 일부 훈련된 기자들만이 향유했던 영상독점시대가 저물고 있다. 모바일 기기만으로 불특정 다수가 Anytime, Anywhere에서 취득한 정보들이 네트워킹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산되고 확산된다. 특히 각종 사건·사고의 최초접근이 가능하고 최초 영상과 사진들에 대한 확보도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뉴스가치가 높은 결정적 영상들의 대부분은 제보자들에 의해 채워진다. 앞서 언급한 수도권 폭우사태, 연평도 포격현장, 지하철 성추행, 부산오피스텔 화재 등 그 사례는 부지기수다. 수용자들의 진화는 거듭되고 있다. 단순 정보제공자를 넘어 아젠다를 사회에 던져 변화를 이끈다. 신지수 사건이나 신라호텔 한복사건 등의 시발은 SNS였다. 하지만 이런 SNS콘텐츠들은 소위 아마추어나 일반인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공유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정보에 대한 검증과 확인의 게이트 키핑과정이 필요하다. 파급력이 큰 영상정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디지털 시대에 가공, 연출 및 재연 등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언론사입장에서는 보도에 신중성을 기해야한다. 속보경쟁에서 즉흥적으로 인용보도 되는 경우 오보에 노출될 가능성은 커진다. 또한 대부분의 영상들이 저화질의 낮은 품질이고 촬영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보니 구성 또한 옹골지지 못하다. 따라서 뉴스가치가 높은 최초영상에 언론사 내부적으로 고품질의 안정적인 영상취재를 더해 구성력과 전달력을 높이는 후반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의 권리침해, SNS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등의 법적문제도 인용보도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저렴하면서도 고화질, 그리고 컴팩트한 광학장비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며 이로 인한 보도영상의 일반화는 심화될 것이다. 변화는 불가피 하다. 하지만 원칙이 우선이다. 수십 년간 한국보도영상이 지켜온 공정성, 객관성, 정확성은 영상기자가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다. 이부분에 마지노선을 명확히 긋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일 것이다. 뉴스의 전달력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제작능력 배양(NLE, 보도그래픽 등), 보도영상의 스토리텔링化, 고도화된 장비의 도입과 운용, 자체적인 콘텐츠 제작능력 배양, LTE(Long-Term Evolution) 상용화로 도래할 상시 생중계시 프로듀서로서의 연출ㆍ기획력 등 뉴스제작의 최일선에서 그 역할은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해 지고 있다. 귀결은 전문성이다. 전문성 강화는 영상기자 안팎으로 지속적으로 주창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과거 보도영상의 독점적 지위에서는 생존에 별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무시돼 왔다. 전문성은 일부기자와 학자의 몫이고 영상저널리즘은 뉴스를 쉽게 전달하는 것이 임무라는 인식이 불과 몇 해전만해도 기자 사회에 만연되어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한 면 혹은 두면이나 털어 수놓았던 사진르포기사는 깔끔한 그래픽과 삽화로 대체되었다. 신문사에서 신입사진기자를 선발하는 채용공고는 씨가 마른지 오래다. 포토저널리즘의 쇠퇴. 이제 시대는 영상기자에게 영상저널리즘의 역할을 묻고 있다. 김재헌 MBN 영상취재부
    2011-07-21
  • 평창올림픽 유치 취재기(남아공 더반)
    감격의 순간을 담느라 감격을 억눌러야 했다 평창,,,, 자크로케 IOC위원장의 발표순간 모든 유치위원회 관계자와 평창 서포터스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유치위원회 관계자와 기자단 숙소인 리버사이드 호텔에 마련된 야외 응원 장소에서 취재중이던 나도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평창의 도전과 나와도 인연이 깊다. 2003년 7월 프라하에서 열렸던 115차 IOC 총회도, 2007년 과테말라에서 열렸던 IOC총회에도 취재를 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평창의 첫 도전무대였던 프라하는 KOREA POOL로, 두 번째 도전 장소인 과테말라시티는 청와대 기자단으로 패배의 고배를 마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만 했다. 이번 세 번째 도전은 그래서 남다른 마음이었다. 투표가 진행된 6일, 총회장에선 투표가 진행되었고, MPC(Main Press Center)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기자실이 술렁거렸다. 접전이 예상되었으나 1차 투표에서 개최지가 결정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평창이 과반이상의 표를 획득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발표는 현지시간 오후 5시, 나는 서둘러 평창서포터스들이 야외응원을 하고 있는 리버사이드 호텔로 이동했고, 숨죽여 발표순간을 기다리는 서포터스들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자크로케 위원장의 손에 들려진 개최도시 쪽지가 펼쳐지고 평창,,,발표가 되는 순간, 숨죽여 기다리던 관계자와 서포터스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울리며 기쁨에 눈물을 흘리고 평창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고, 이 감격의 순간을 영상에 담느라 나는 감격을 잠시 억눌러야 했다. 123차 IOC 총회가 열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반은 남아공의 남부에 위치한 무역항이다. 남아공으로 출발 전 걱정거리였던 인터넷 송출 속도는 MPC 에서는 속도가 500Kbps 정도로 그림을 보내기엔 안정적이었다. 또 무선인터넷 모뎀의 속도도 300Kbps의 속도가 나와서 MPC가 아닌 다른 현장에서도 영상을 파일 변환 후 송출할 수 있었다. 평창의 환호와 감격은 이제 조용히 성공적인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변해야 하고 나라와 유치위 그리고 언론사도 7년 앞으로 다가온 동계 올림픽의 알차고 내용있는 준비를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송록필 MBC영상취재부
    2011-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