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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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실질적인 방송인 재교육 이뤄져야
    방송 뉴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선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카메라 기자들의 역할도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카메라 기자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교육 연수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의 회원 재교육 사업에 재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 동안 협회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발전기금을 주요 재원으로 협회 회원 재교육(디지털영상편집교육, 수중촬영교육, 암벽등반촬영교육, 항공촬영교육, 영국 적대적 험지 교육 등)을 실시해왔으나 방송발전기금의 언론직능단체 지원 연수 중단으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방송발전기금은 방송 콘텐츠 생산의 핵심인 ‘인력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직접적인 방송인 연수가 없어 방송인 재교육 프로그램을 확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007년 연수사업을 주관하면서 현업 방송인, 방송학계 및 방송관련 기관 종사자에 대한 재교육을 통해 방송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디지털방송 등 새로운 방송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지원을 위해 연수교육을 실시한다 고 사업목적을 밝힌바 있다. 방송발전기금의 전문 인력 연수 사업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방송위원회가 주관해 실시해왔다. 방송위의 방송인 전문연수ㆍ교육 지원 사업은 2005년 처음 실시되어 점차적으로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 했었다. 그러나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후  한국전파진흥원으로 이관되어 실시해 왔던 것을 지난해에는 단체 연수 지원 사업을 없애고 한국전파진흥원 IT사업부에서 교육 연수 부분을 직접 위탁 실시했다. 올해는 한국전파진흥협회로 위탁하여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파진흥협회에서 실시하는 방송연수 부분은 방송에서 활용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현재 방송 부분에 활용될 수 있는 교육은 파이널컷 편집교육과 3D 입체영상 촬영 교육 정도로 그나마 인원과 교육회수가 적고 수강하기에 복잡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더욱이 이런 부류의 교육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구 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오히려 전통과 노하우를 갖고 교육하고 있다. 이처럼 각 직능별 전문 교육은 그 직능단체에서 실시해야 된다는 의견이 중론이지만 방송발전기금의 방송인 연수교육은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기술인연합회와 PD연합회만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지원으로 자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와 올해 각 직능단체 별 교육이 없어진 이유로 인해 타직종과 카메라기자의 재교육이 전무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특히, 협회가 공공적 성격의 기금 혹은 기관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지만 연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재원이 사실상 방송발전기금을 기반으로 한 한국전파진흥원과 한국언론진흥재단 두 곳뿐이다. 더욱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올해부터 신문의 기능을 강화해 방송인들에게 연수 기회는 그만큼 적어졌다. 뉴스영상의 영향력이 늘어가는 현대의 뉴스시장에서, 뉴스영상을 생산하는 방송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연수교육은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 및  프로그램의 차별화와 고급화로 경쟁우위를 점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할 수 있다. B방송사의 한 카메라기자는 “ 방송발전기금이 콘텐츠와 전문인 육성이라는 명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방송발전기금의 지원이 없어도 가능한 연수에 재원을 쏟아 붓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며 ”빠른 시일 내 각 직종별 맞춤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교육내용이 변화돼야 한다. “고 지적했다. 올해 방송발전기금에서 조사연구, 연수교육비로 책정된 예산은 73억이며 방송인프라구축 130억 원 방송기술 개발 39억 원, 방송교육사업 86억 원 디지털방송전환 융자 120억 원 등이다. 방송발전기금 어떻게 조성되고 어디에 사용되나 기금이란 국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자금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로써 설치하여 운용하는 재원이다.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진흥기금, 영화발전기금, 축산발전기금 등 모두 62개의 기금이 있다. 기금 전체 운용규모는 대략 422조원 정도인데 방송발전기금은 약 2,900억 원 전체 기금 중 41번째 운용규모가 된다. 방송발전기금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직접 운용하는 기금으로, 방송진흥 및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2000년 방송법에 따라 설치하였고, 주요 재원은 방송사업자로 부터 징수하는 법정부담금으로 충당된다. 방송사업자가 한정된 자원인 주파수를 독점적으로 사용하여 사업을 하거나, 홈쇼핑 등을 통해 영업을 하면서 얻은 이익의 대가를 거둬 방송발전을 위한 재원으로 재투자하기 위해서다. 방송발전기금은 지상파방송사업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 홈쇼핑방송채널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등으로 부터 한해 약 1,600억 원 정도가 징수된다. 또한, 국회는 2월 26일 본회의에서 방송통신발전기금 조성과 관련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은 물론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사업자에도 연 방송광고 매출액의 6% 범위에서 분담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8월 시행령을 내고 내년 1월1일부로 이 법안을 고시할 계획이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으로 방송통신위원회는 매년 “교육방송 등 공공목적의 방송지원”, “방송프로그램 및 영상물 제작”, “장애인 등 방송소외계층 지원”, “디지털 방송전환 지원” 등 방송발전과 공익을 위한 40여개 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향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발전기금을 확대·개편하여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운용할 예정으로, 동 기금을 통해 방송콘텐츠 지원 등 방송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촉진하여 방송통신이 우리경제의 재도약을 이루는데 앞장서도록 할 계획이다. 이정남 기자
    2010-09-28
  •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지난 7월 28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취재를 위해 급히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한국 선수단이 머물고 있는 보훔에 도착했다. 보훔은 독일의 북서부 지역의 광공업 도시로 정대세가 속해있는 ‘VfL보훔’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실제로 독일과의 경기가 있던 날, 정대세 선수가 관중석에서 한국팀을 응원했다. 독일과의 경기 전날, 한국 선수들의 동정을 취재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여름비 치고는 적지 않은 양의 비가 내리는 와중에 최인철 감독과 지소연 선수를 비롯한 한국 대표팀을 만날 수 있었다. 주최국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도 긴장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씩씩하고 자신감 넘쳤다.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인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월드컵 사상 최초로 4강을 넘어 우승이라는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독일과의 준결승전, 사실상 결승전과 같은 홈팀과의 경기. 준결승전만 이긴다면 우승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문턱은 높았다. 체격, 체력, 발놀림, 스피드 등 모든 면에서 독일이 우세했다. 거기에 응원열기까지 더해지면서 우리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전후반 60여분 동안 무려 4골을 내주며 독일의 파상 공세에 무너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후반 19분, 날쌘돌이 지소연의 슈팅이 독일의 골문을 갈랐다. 한국팀이 살아있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 것이다. 지소연의 골은 3-4위전 승리를 보여주는 복선과 같은 골이었다. 그러나 심판의 종료 휘슬과 함께 전광판에는 5:1의 점수가 보였다. 한국 선수들은 억누르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냈다. 함께 위로하던 코칭스태프도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선수들을 다시 만난 곳은 다음 경기가 열릴 빌레펠트 경기장이었다. 독일에 지고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선수들 얼굴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날은 따로 연습 경기를 하지 않고 체조와 달리기로 컨디션을 조율했다.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코팅 스태프의 배려라고 했다. 콜롬비아와의 경기가 열리는 빌레펠트 구장, 3-4위전과 결승전이 함께 열리기 때문에 관중석은 경기 시작 훨씬 전부터 만원이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주도권을 잡은 한국은 경기 내내 콜롬비아를 몰아 붙였다. 독일전과는 사뭇 달랐다. 모든 것이 한국팀 위주로 돌아갔고, 콜롬비아는 한국팀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후반 3분, 지소연의 발끝에서 승리를 알리는 쐐기골이 터졌다. 6경기 동안 8골을 뽑아낸 지소연은 득점 2위상인 실버 부츠를 받은데 이어, 기자단 투표에서도 최우수 선수 2위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우리팀은 깔끔한 경기매너를 보여준 팀에게 주어지는 페어플레이상을 받기도 했다. 세계 3위라는 초유의 성적을 거둔 대표팀이 귀국하는 날, 인천공항 입국장에는 100여명의 취재진이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렸다. 청와대는 대표팀을 초청해 홍보성 이벤트를 진행했고, 경북의 모 지자체장은 지역 출신 선수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황무지같은 환경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 더 큰 보상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일회성, 전시성 행사에 선수들을 불러 사진만 찍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어느덧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린 동계올림픽의 영웅들을 생각해보면 심히 걱정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 사상 첫 동메달의 쾌거, 그것은 선수, 코칭스태프, 국민 모두가 하나되어 이룬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 관심이 좀 더 활활 타올라 여자 축구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김태훈 / SBS 영상취재팀
    2010-09-27
  • 프랑스 기자교육양성센터(CFPJ) 방문기
    프랑스 기자교육양성센터(CFPJ) 방문기 난 2일, 프랑스 파리 2구에 위치한 기자교육연수센터(Centre de Formation et de Perfectionnement des Journalistes, 이하 CFPJ)에 다녀왔다. 이는 릴(Lille) 저널리즘고등교육원(Ecole Supérieure de Journalisme), 리옹정치대학(Science-po de Lyon) 내에 위치한 저널리스트과정(Institut d'Études Politiques), 파리9대학 저널리즘연구소(Institut Pratique de Journalisme), 그리고 파리 근교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 위치한 정보통신과학고등교육원(CELSA)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저널리즘그랑제꼴이다. 프랑스기자연합(SNJ)과 AFP연합통신 등 각종 언론기관이 모여있는 파리 한복판 루브르 가(街)에 위치한 CFPJ는, 실무경험이 많은 미디어교육가들로 하여금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최근에는 웹 분야에서 기자가 되고자 하는 대학생들은 물론, 이미 현업에서 종사하고 있는 여러 기자들에게 다양한 취재노하우를 전수하도록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프랑스 언론인들에게 정통성있는 “학문의 전당”으로 통하는 CFPJ에서는 특히 촬영기자 양성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교육철학을 들어봤다. FPJ는 사실상 두 교육기관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저널리즘 관련 학문일체를 가르치며 예비저널리스트를 양성하는 2년제 그랑제꼴(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 이하 CFJ)이고,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 국내외 각종 미디어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이들에게 각종 단기실무재교육을 제공하는 연수센터(Centre de Perfectionnement des Journalistes, 이하 CPJ)이다. 2차대전 직후, 1946년 프랑스 레지스탕스 언론인단체였던 “프랑스국방(Défense de la France) » 출신 두 기자 필립 비아네(Philippe Vianney)와 자크 리셰(Jacques Richet)는, 새 시대에 맞는 미디어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하는 우수 언론인 양성을 위해 정통성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CFJ를 창립했다. 창립 이래 이 곳 « 루브르 가(街) 학교 » 졸업생들은 약 2000여 명 정도로, 이들 중 대부분이 프랑스 주요 매체에서 기자 및 주요 편집장들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4년동안 젊은 언론인들의 저널리즘정신을 기리기 위해 수여하는  언론상인 « 알베르 롱드르상 » 수상자도 이 학교에서 4명이나 배출되었다고 한다. 현재 매년 40여명의 예비 저널리스트들이 이 학교의 엄격한 입학기준을 통과해 언론학 이론 및 실기 수업을 거쳐 현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역사적인 언론교육기관임을 증명하듯, 학교 건물 입구에는 이 학교가 창립될 무렵 사용되었을 신문 인쇄기가 CFPJ 로고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맞는 새 언론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는 이 곳 CFPJ는 쉴새없이 변화하는 미디어환경 속에서도 이 기계의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저널리즘 정신만큼은 변함없는 교육철학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한편, 기자연수센터(CPJ)는 각종 매체에서 현재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현장실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년 다양한 연수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이 날 학교 안내를 맡았던 베로니크 갸르(Veronique Gare, CFPJ인터네셔널)씨에 의하면, 현장실무경험이 많은 강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곳 연수센터는 일종의 ‘취재노하우 전수기관’으로 불린다고 한다. 매년 2500여명의 기자들이 이곳을 거쳐가는데, 이들은 실제 취재를 하면서 축적된 기자 각자의 개성과 전문성은 살리면서, 부족한 점들을 재교육을 통해 조금씩 보완해간다. 교육내용은 각 분야에 따라 특성화되어 있는데, 촬영기자교육과정을 보면, TV저널리즘기초, 카메라실무, 디지털편집, 영상언어교육, 기사작성, 멘트녹음, 데일리 및 특집 르포제작 실제 등이다. 방문 당일, 촬영기자교육 현장을 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학생들은 이미 현장 촬영을 나가고 없었다. 촬영을 갓 마치고 돌아와 다른 학생들을 기다리던 한 여학생과 충전 중인 카메라 배터리들, 그리고 남은 ENG카메라 몇 대가 보관되있던 캐비넷만이 마치 한 방송사 영상취재국을 연상시킬 뿐이었다. 랑스에서는 JRI -영상리포터기자(Journaliste Reporter d’Image)- 로 불리우는 촬영기자는 아이템구상, 촬영, 편집, 기사작성, 마이크스탠드 등을 모두 수행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로서, 우리나라의 촬영기자들의 업무와 크게 다른 부분은 없다. 하지만 ‘만능꾼’이 되어야 하는만큼 촬영기자가 되기까지 이곳 CFPJ와 같이 권위있는 교육기관에서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른바 ‘일용직 카메라기자’로서 장기간의 현장실무경력이 있어야 각 방송채널 보도국 정규직 촬영기자로 고용된다. 앞서 설명한 CFJ에서도 언론학 일반을 배우는 1학년을 마친 후에는, 학생들이 각각 세부전공을 정하게 되는데, 이때 ‘촬영기자과정’을 선택하면 현장에서의 촬영기자교육을 받는다. 이처럼 기자들의 전문지식과 실무능력을 중요시 하는 프랑스 미디어 환경에서 이 연수센터는 앞으로 다가올 HD시대에 대비하여 새로운 촬영장비나 편집소프트웨어가 나오면, 촬영기자들이 이를 잘 다루어 실제 취재활동에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또한, 라디오나 TV취재기자들이 촬영기자로 전업하고자 할 경우, 그들에게 맞는 촬영 및 편집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특히, 이 연수센터의 국제팀은 외국인 기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는 데에도 주목할 만하다. 1965년 알제리에서의 현지 기자연수를 시작으로, CFPJ는 1970년대 초반부터 국제팀을 신설하여 이곳의 저널리즘 교육노하우를 세계적으로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갸르 씨는 « 우리는 이미 약 40여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미디어환경의 변화속도가 동일하지 않으며 따라서 외국 기자들의 실무재교육 상황 또한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많은 나라에서 언론인 관련 교육이 지나치게 이론 위주의 수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외국인 기자들을 위한 현장교육을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라고 하며, CFPJ인터네셔널의 기본취지를 밝혔다. 그녀는 « 이곳 파리에서 외국인 기자교육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경우에 따라 외국의 주요 대학 언론관련학과 및 저널리즘스쿨과 파트너쉽 계약을 체결해 현지에서도 우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캄보디아, 베트남, 레바논, 이집트 등 프랑스어권 국가들에서 이런 현지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비프랑스어권에서 이런 교육의뢰가 들어올 경우는, 필요에 따라 통역사의 도움 아래 수업을 진행시키는 경우도 있죠. »라고 하며, 구체적으로 외국인 기자들을 위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CFPJ 국제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목표는,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선진국 기자들의 취재경험 및 전문성을 여러 개발도상국 및 저개발 국가의 기자들과 공유하여, 이들 국가의 미디어환경 발전에 기여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함께 지켜나가고자 하는데 있다. « 작년에는 중국에서 언론관련학과에 다니는 대학생과 촬영기자 등 두 팀이 우리 수업을 듣기 위해 파리에 왔었는데, 이들에게는 약 일주일간의 시간이 말하자면 ‘디지털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직 아비드와 같은 편집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줄 몰랐습니다. 따라서 우리 측에서 이 교육을 담당했었지요. 단 일주일만의 시간이었지만, 우린 그 경험이 그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시대에 맞는 언론인으로서 성장해나가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바야흐로 미디어환경 역시 글로벌시대가 되었다. 이에 맞게 국내 각 방송사는 선진국의 우수한 촬영장비와 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부지런히 배우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촬영기자들 각자가 가진 개성과 전문적 능력은 살리면서, 실제 취재현장에서 계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문제점은 각종 재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보완해가며 진정한 멀티플레이어 촬영기자가 되는 것이 ‘글로벌저널리스트’가 되는 길이 아닐까. 이를 위해 각사와 본 협회가 좀더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더 많은 회원들이 좋은 경험을 쌓도록 노력할 것을 기대해 본다. 또 CFPJ인터네셔널의 교육철학과 같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수한 취재노하우를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아시아의 저개발 지역 언론인들에게 전수하여 이들의 미디어환경 발전을 돕는 것 역시 본 협회가 향후 기획해볼만한 글로벌 프로젝트일 것이다.  
    2010-09-27
  •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지난 7월 28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취재를 위해 급히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한국 선수단이 머물고 있는 보훔에 도착했다. 보훔은 독일의 북서부 지역의 광공업 도시로 정대세가 속해있는 ‘VfL보훔’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실제로 독일과의 경기가 있던 날, 정대세 선수가 관중석에서 한국팀을 응원했다. 독일과의 경기 전날, 한국 선수들의 동정을 취재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여름비 치고는 적지 않은 양의 비가 내리는 와중에 최인철 감독과 지소연 선수를 비롯한 한국 대표팀을 만날 수 있었다. 주최국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도 긴장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씩씩하고 자신감 넘쳤다.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인으로서 동질감을 느꼈다. 월드컵 사상 최초로 4강을 넘어 우승이라는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독일과의 준결승전, 사실상 결승전과 같은 홈팀과의 경기. 준결승전만 이긴다면 우승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문턱은 높았다. 체격, 체력, 발놀림, 스피드 등 모든 면에서 독일이 우세했다. 거기에 응원열기까지 더해지면서 우리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전후반 60여분 동안 무려 4골을 내주며 독일의 파상 공세에 무너져 가는 듯 했다. 그러나 후반 19분, 날쌘돌이 지소연의 슈팅이 독일의 골문을 갈랐다. 한국팀이 살아있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 것이다. 지소연의 골은 3-4위전 승리를 보여주는 복선과 같은 골이었다. 그러나 심판의 종료 휘슬과 함께 전광판에는 5:1의 점수가 보였다. 한국 선수들은 억누르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냈다. 함께 위로하던 코칭스태프도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선수들을 다시 만난 곳은 다음 경기가 열릴 빌레펠트 경기장이었다. 독일에 지고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선수들 얼굴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날은 따로 연습 경기를 하지 않고 체조와 달리기로 컨디션을 조율했다.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코팅 스태프의 배려라고 했다. 콜롬비아와의 경기가 열리는 빌레펠트 구장, 3-4위전과 결승전이 함께 열리기 때문에 관중석은 경기 시작 훨씬 전부터 만원이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주도권을 잡은 한국은 경기 내내 콜롬비아를 몰아 붙였다. 독일전과는 사뭇 달랐다. 모든 것이 한국팀 위주로 돌아갔고, 콜롬비아는 한국팀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후반 3분, 지소연의 발끝에서 승리를 알리는 쐐기골이 터졌다. 6경기 동안 8골을 뽑아낸 지소연은 득점 2위상인 실버 부츠를 받은데 이어, 기자단 투표에서도 최우수 선수 2위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우리팀은 깔끔한 경기매너를 보여준 팀에게 주어지는 페어플레이상을 받기도 했다. 세계 3위라는 초유의 성적을 거둔 대표팀이 귀국하는 날, 인천공항 입국장에는 100여명의 취재진이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렸다. 청와대는 대표팀을 초청해 홍보성 이벤트를 진행했고, 경북의 모 지자체장은 지역 출신 선수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황무지같은 환경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에게 더 큰 보상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일회성, 전시성 행사에 선수들을 불러 사진만 찍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어느덧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린 동계올림픽의 영웅들을 생각해보면 심히 걱정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 사상 첫 동메달의 쾌거, 그것은 선수, 코칭스태프, 국민 모두가 하나되어 이룬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 관심이 좀 더 활활 타올라 여자 축구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김태훈 기자 / SBS 영상취재팀
    2010-09-07
  • 손명환 기자 추도사
    보고 싶은 선배. 선배를 좋아하던 이들이 이렇게 많고 선배를 평생 그리워 할 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선배는 늘 말이 적었습니다. 그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곤 했습니다. 후배들도 싫어하는 일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고, 힘든 취재가 있으면 먼저 나서서 앞장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도 상하고 마음도 피곤했겠지만 선배는 늘 따뜻한 미소로 후배들을 이끌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가 무척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젊은 후배들도 따라가지 못하는 지리산 자락을 산사람처럼 누비고 다니며 무너진 산을 찍고, 버려진 쓰레기들을 찍고, 멧돼지들을 쫓아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다 몸이 상해 수술까지 하면서도 여전히 힘든 일에 앞장을 섰고 자신보다는 조직을 먼저 생각하고, 후배들을 먼저 생각하고, 또 KNN의 뉴스와 프로그램들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 선배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일은 저희를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손 선배, 선배의 고향은 언제나 지리산이었습니다. 취재라도 할 일이 있어 그 곳에 가면 선배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환해졌고, 길을 가다가도 선배를 알아보는 이들에게는 차에서 내려 일일이 인사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 그 고향 지리산을 선배는 마음껏 오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멱 감던 시내를 지나 토끼며 노루를 쫓던 계곡들, 또 선배의 손길을 기다리는 감나무 밭까지 늘 돌아다니며 잘 있는지 찬찬히 둘러보시겠지요. 선배, 이제는 그렇게 편안히 계십시오. 선배가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던 카메라와 영상들은 이제 우리가 맡겠습니다. 선배, 이제 카메라를 움켜쥐었던 손을 편안히 놓으십시오. 그리고 조금 먼 곳으로 조금 일찍 떠나더라도 우리를 사랑했던 따뜻한 마음과 환한 미소는 거두지 말고 남겨 두시기 바랍니다. 그 대신 먼 훗날 다시 만나면 꼭 선배에게 묻겠습니다. 뭐가 그리 급해서 먼저 떠났는지…. 선배를 사랑하는 후배들이 올립니다. 2010년 8월 13일 선배를 사랑하는 KNN 후배 일동
    2010-08-19
  • 슬픔을 같이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저희 KNN카메라기자 고 손명환 기자는 8월 10일 새벽 4시경, 태풍 "뎬무"취재차 민락동 어촌계에서 취재하던 중 바다에 빠져 119구조대에 구조됐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8월11일 아침 7시 운명했습니다 고인은 사고 당시에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습니다 8월 13일 아침 9시, 동료들의 슬픔과 오열속에 KNN본사에서 회사장으로 영결식을 마친후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사무실과 편집실을 둘러본뒤 오후 1시경 영락공원에 고인을  모셔놓고 범어사에서 이뤄진 49제를 위한 반혼제를 마치고 내려왔습니다 협회장님이하 각계각층에서 빈소를 찾아 주셨고 모든분들께서 물심양면으로 배려해주신 덕분으로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슬픔을 같이 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 2010. 8. 15 영상제작팀 올림.
    2010-08-15
  • 고 손명환 기자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고 손명환 기자 빈소가 있는 부산의료원 영안실에 부산 문화방송 보도국 국장님 ,장기홍 영상취재팀장과 함께 보도국을 대표해서 먼저 다녀왔습니다. 오후 4시 경 도착했는데 겨우 빈소가 마련되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노모가 목 놓아 울고 계셨고 두 딸과 막내인 아들은 그냥 멍하니 정신을 놓고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목이 메여서 말이 나오지 않아 초등학생인듯한 아들만 조용히  안아주었습니다. 부산지역 기자들도 속속 문상을 왔고 부산 지역신문사 사진기자회, 진주, 부산문화방송,한국방송 등 타사가 보낸들의 화환들이 보였습니다. 한국기자협회장도 방문하기로 했다고 하네요.. knn영상취재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반갑게 맞이 해주셨지만  충격과 슬픔에 말씀들이 없어서 ...... 마음은 있지만 올수 없는 분들은 아는 영상기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전화나 문자가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2010-08-11
  • 손명환기자의 순직을 바라보며.....
    손명환 기자의 순직을 바라보며..... 힘들 정도로 질긴 무더위에 태풍이 온다기에 조금 기다려졌습니다. 오늘도  부산 경남지역엔 비바람이 아침부터 더 세게 몰아칩니다. 어제부터  잠도 오지않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제 아침 일찍 손명환 기자의 사고 소식을 듣고 절망하다가  호흡은 한다는 소식에 간절히 기도 했습니다 .제발  무사하기를  .. 오늘  아침 잠도 오지 않고 해서  일찍 출근해서 바다로 태풍 취재를 혼자 나갔습니다..사무실에 있으면 더 슬프고 힘들 것 같아서... 마침 대구 문화방송 마승락 선배의가  전화왔습니다. 어떻게 되었고 ..사실이냐고. 참았는데 ..갑자기 울음이 나올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사 일이지만 정말 자기 일처럼 걱정 해주고 위로 해주는 선배가 고마웠습니다.. 잠시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겠습니다 .월요일 ,어제는 제 숙직근무였습니다. 폭우와 낙뢰로 지하철이 운행 정지되는 일이 있어 사고 역에서 밤 12시경에 우연히 만났습니다. 평소 같으면 인사도 하고  서로 짧은 격려도 하는데 그날따라 태풍 스케치 하는라 짧게 손만 흔들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그 게  마지막이 될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다음날 새벽 광안리 수변에서 태풍 취재하다가 그만 파도에 휩쓸려서 ....119구조대에 의해서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이미 위중한 상태 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항상 우리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그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이 소속된 회사마다 제각각 상황이 다르고 시스템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디오맨 문제는논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오맨 문제는 영상기자의 안전의 문제고 생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1인 1오디오맨이 정착된 회사가  KBS,MBC,SBS 본사 및 주요 지역사 정도이고 대다수 지역 민방 및 뉴스 전문 체널은 오디오맨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역 민방 중 제일 규모가 크고 수익이 좋다는 KNN을 보면 부산지역에 8의 영상기자가 있는데 4명의 오디오이 낮에는 근무하고 야간 숙직시엔 기사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어쩌면 당연하지만  부산MBC, KBS부산은 1인 1오디오맨이 정착되어 있어서 현장에서 KNN 만날때 마다 안전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고 했었습니다. 실제로 몇년  전 폭우취재 때에도 영상기자가   오디오맨없이 취재하다 맨홀에 빠져서 입원하는 등 안전사고 의 위험성이 제기되었는데 ....결국 이런 큰 사고 까지 발생하니까 더욱더  마음이 아프고 답답합니다. 사람의 생사는 하늘의 뜻이라고 하지만 예견되는 위험을 없애는 건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카메라기자 협회도 영상기자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와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손명환 기자의 순직은  나의 일이며 모든 동료들에게도 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글의 쓰는 동안에 대구 경북 카메라기자회에서 전화가 왔네요 ..마음을 전하겠다면 계좌번호을 물어 왔습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손명환 영상기자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도 손명환기자의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동료로 기억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고  손명환 기자의 명복을 빌며 ...회원님들의 따뜻한 관심도 감사합니다. 부산 문화방송 이윤성 올림
    2010-08-11
  •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 축구 가능성 보여줘
    2010 남아공 월드컵 인천에서 두바이를 경유해 24시간 만에 도착한 요하네스버그는 서울보다는 조금 서늘한 날씨였다. 낮엔 반팔 차림도 가능하지만 저녁이면 쌀쌀해졌다. 그래도 겨울이라기보다는 늦가을정도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에 태양이 눈부셔 선글라스를 껴야했지만 땀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개막식전 북한과 나이지리아 평가전을 요하네스버그 인근 빈민촌 안에 있는 탬비사지역에서 개최했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일단 현지 흑인기사와 함께 미니버스로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2시간이 지나 결국 현지 경찰의 도움으로 마쿨롱 경기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은 벌써 마을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줄로 휘감겨있었다. 도저히 국제적 경기가 열릴 것 같지 않은 빈민촌에선 입구에 즐비한 사람들과 경찰들이 입장권을 확인하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구경하러온 관중은 3만 명이 넘는데 1만6천장의 입장권을 판매했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몰려든 사람들에 밀려 정문이 열렸고 밀려드는 인파에 넘어지고, 깔려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경기 중엔 관중석 난간이 파손되어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지만 경기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2:2 무승부) 며칠 후 북한팀 공개훈련 및 기자회견 취재차 도착한 탬비사에서는 같은 Korea라는 이유로 북한축구에 대한 평가와 정대세선수에 관한 질문을 외신으로부터 많이 받았다. 나도 북한 팀을 취재 온 기자인데, 북한팀 공식기자회견이 끝나고도 많은 시간동안 외신들의 질문공세를 받은 나는 지칠 정도였다.   요하네스버그에서 1600Km가 넘는 거리로 비행기로는 1시간 40분 정도로 소요되는 포트엘리자베스는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다. 호수를 끼고 있는 넬슨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은 아름다워보였다. 한국의 예선 첫 경기인 그리스전 경기 당일 매일 구름이 잔뜩 껴 있던 하늘은 모처럼 파란하늘에 동그란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도 동그란 태양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벅에서 차량으로 18시간 만에 도착한 교민들은 꽹과리와 태극기를 앞세우고 붉은악마응원단과 함께 넬슨만델라 베이 경기장을 향해 현지인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한민국의 12번째 선수로서 향하고 있었다. 비록 필드는 아니었지만 선수들 보다 더 많은 열정을 쏟아냈다. 전반 7분 이정수의 골에 환호하던 관중들은 4만 7천이 입장하는 경기장을 붉은악마로 만들어 버렸다. 웅웅거리던 부부젤라 소리도 꽹과리 가락에 맞춰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51분 박지성이 골이 터지면서 경기장은 승부를 떠나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침묵하던 그리스 응원단도, 16강을 간절히 바라던 대한민국 응원단도 서로를 위해 모두 함성을 질렀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은 한국의 홈구장이 되었다. 꽹과리를 앞세운 농악대와 그 뒤를 따르는 흑백의 물결들... 경기장 앞에서 한바탕 놀고 호수를 끼고 행군을 시작했다. 이 순간 포트엘리자베스는 한국이었고,  희망의 땅이 되었다. 도착 후 갑자기 추워진 요하네스버그가 얼마나 추웠던지 쫄쪼리와 장갑을 껴입어야 할 정도로 엄청 추웠다. IBC내에서는 얼음이 얼었다.  우리는 따뜻한 남쪽나라라고 하지만 여기는 북쪽으로 가야 따뜻해진다. 남반부와 북반부의 차이일까? 낮은 언덕이 몇 개있는 사커 시티 주변은 스탠딩을 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한국 8시가 낮1시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가까운 스탠딩 포인트는 항상 역광이었다. 해는 경기장 우측에서 좌측으로 졌다. 차를 타고 나가면 되는데 주위엔 사커시티가 잘 보이는 거리엔 높은 건물이 없었다. 언덕조차도 찾기 힘든 평지는 여기가 정말 해발 1700m 고지인가 했다. 오후 5시면 어두워져 버린다.   8만8천명이 모인 경기장은 아르헨티나의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5층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한국응원단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관중석 좌우로 나눠져 있고 가끔 중간 중간 빨간 티셔츠가 섞여있었다. 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준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외국인도 가끔 보였다.   경기장에서는 벌떼소리(웅웅)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경기장에 들어선 태극전사들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한국 팀은 어처구니없이 실점을 당했다. 한국응원단의 허탈한 모습과 환호하는 아르헨티나 응원단을 번갈아 보여주는 전광판을 부셔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운하루였다.  사커시티는 말 그대로 악몽의 현장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16강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이지라아를 이기거나,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기면 되 모든 국민의 소원인 원정 16강의 희망은 있었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품고 더반으로 향했다. 더반은 남아공화국에서 제일 따뜻한 곳으로, 겨울인데도 낮 기온은 26도 까지 올라가는 해양 관광지이다. 더반은 인구의 1/3이 인도출신이고  아프리카에서 제일 다혈질인 나이지라아인들이 제일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남아공에서도 '더반은 곳 나이지리아다' 할 정도로 현지 경찰들도 조심하는 곳이다. 한국 원정응원단도 만일을 위해 최소인원으로 줄였다. 해안선을 끼고 있는 더반 경기장은 아름다운 곳이다. 결전의 날 더반 저녁 8시 30분(한국 새벽3시 30분) 경기 시작 후 한국 골망을 가르는 첫 골에  ‘어’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붉은악마들은 주저앉았다. 하지만 침묵도 잠시였다. 붉은악마들은 '괜찮아'를 외치며 다시 열렬히 응원하였다. 잠시 후 동점골과 역전골이 터지자 경기장안의 붉은악마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었다. 그때의 붉은악마의 모습은 진정한 12번째 태극전사였다. 김남일의 반칙으로 만들어진 나이지리아의 페널티킥에서는 정성룡을 외쳤고, 동점상황에서 남은 15분 동안은 정말 모두 하나가 되어 모두 골대를 지켰다. 야쿠부의 실수가 응원단의 힘이 되었고 시끄럽던 부부젤라 소리를 잠들게 만들었다. 종료휘슬이 울린 순간 잠깐의 정적후 곧이어 터진 함성소리는 내가 이 순간 새로운 역사의 순간에 있다는 것을 만끽하게 하였다. 우리의 16강 상대는 우루과이로 킴벌리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훈련중이였다. 보통의 기자회견장은 감독과 선수가 동시에 같이 나와서 질문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감독혼자 하고 들어간 후 선수를 불러주었다. 그래서 인터뷰보다 선수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포를란과 수와레즈는 처음 보는 선수였다. 수와레즈는 명색이 공격수라는데 체격이 작아서 부딪히면 넘어질 것 같아보였다. 주전이라기보다는 후보선수정도로 보였다. 그런 선수에게 2골을 내주며 대한민국의 8강꿈이 깨져버리다니 너무나 아쉬웠다. 비록 8강은 가지 못했지만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준 월드컵이었다. 지금도 월드컵 4강이 아닌 결승전에서 웃는 날을 위해 어린 태극전사들은 열심히 뛰고 있다. 언젠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ps) 흑인들은 가발과 사진을 최고로 친다. 카메라를 잡고 있으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잡는다.       심지어는 ENG를 보고 반대쪽도로에서 자기를 찍어달라고 온갖 제스처(?)를 한다.         나도 똑같이 손가락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부르면 시커먼 흑인들이 2~3명씩 넘어와 부드럽게 이야기를 한다.       너무 솔직담백하고 진솔한 우리가 듣던 다른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강동철/SBS 영상취재팀 ※ <미디어아이> 제74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2
    2010-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