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은 검사의 기소로 시작된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공소는 검사가 제기하여 수행한다’고 정하고 있다(제246조). 이를 흔히 ‘기소독점주의’라고 부른다.
수사의 다음 단계가 재판이지만, 재판은 수사와 전혀 다른 절차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거의 새로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사 단계에서 수세(守勢)에 놓여있던 피의자는 재판 단계에 이르러 공세(攻勢)로 태세가 전환된다. 판을 뒤집을 기회가 드디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 중 하나로 ‘공소장일본주의’를 꼽을 수 있다.
공소장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란, 쉽게 말해 기소할 때 공소장 하나만 달랑 법원에 제출된다는 뜻이다. 민사재판을 개시하는 원고의 소장을 생각해보자. 소송을 제기하는 배경과 이유, 소송을 통해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자세히 적혀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서류가 잔뜩 첨부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형사재판을 개시하는 검사의 공소장에는 아무런 증거서류가 없다. 적용될 법조문과 죄명을 제외하면 범죄사실을 특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항, 다시 말해 5W1H에 따라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범죄를, 왜, 어떻게 저질렀는지만 기재되어 있다(형사소송법 제254조).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법관의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無罪推定)이 재판 과정에 실제로 구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형사소송규칙 제118조 제2항은 ‘공소장에는 … 사건에 관하여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는 기록을 남긴다. 피의자를 신문한 내용이 담긴 문서(피의자신문조서),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을 담은 문서(참고인진술조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수사기록에는 범죄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이러한 기록을 다 읽고 나면 제아무리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판사라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나에 대한 예단, 유죄의 선입견을 가진 판사에게 재판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상태에서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헌법과 법률에서 유죄로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된다고 정해둔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공소장 하나만 가지고 형사재판이 시작되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 수사 과정에서 수집된 증거들은 언제 법원에 제출될까? 증거조사 과정에서 넘어가게 되는데, 어떤 문서는 끝내 증거가 못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례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줄여서 ‘검사 작성 피신조서’)의 경우 피고인이 조서에 적혀 있는 자신의 답변 내용을 부인하면 해당 조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 범행을 자백하는 피고인의 진술이 거기(검사 작성 피신조서)에 적혀 있더라도 “그렇게 진술한 건 맞지만 그 자백은 사실이 아닙니다” 한 마디면 끝이다. 본래 검사 작성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은 강력했다. 조서에 기재된 내용이 자신이 진술한 내용과 일치하기만 하면 검사 작성 피신조서는 곧장 증거가 되었다. 그런데 2020년 2월 4일 검사 작성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이 개정되었고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돌입했다. 이로써 막강했던 검사 작성 피신조서의 증거 가치가 상당히 약해졌다.
한편, 통상의 기소와 구별되는 특수한 형태의 기소가 있다. ‘약식명령청구’라는 것인데 통상의 기소에 ‘구공판’이라는 별칭이 있다면 약식명령청구는 ‘구약식’이라고 부른다. 약식명령청구 역시 기소의 한 유형이므로 검사의 고유 권한이다. 그런데 약식명령청구는 통상의 기소와 다르게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다. 일종의 서류재판으로 피고인 신문, 증인 신문도 생략된다. 검사가 작성한 약식명령청구서 내용을 판사가 확인하고 도장 찍으면 끝이다. 경미하고 유죄가 명백한 사건에 한해 적용된다. 이로 인해 약식명령재판에는 공소장일본주의가 적용되지 않으며 증거서류도 다 첨부된다. 자신에 대한 재판이 약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부당하게 느끼는 피고인은 소정의 기간(약식명령 정본 송달받은 날로부터 7일) 내에 정식재판으로 진행해달라고 청구하면 된다.
법률용어 해설 무죄추정: 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취급되어야 함 공소장일본주의: 검사가 기소할 때 법관에게 사건에 대한 예단을 줄 수 있는 수사기록이나 증거자료를 공소장에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지 못하도록 함 피고인: 검사의 기소로 형사재판을 받게 된 사람. 기소되기 전 수사 단계에서는 ‘피의자’, 기소된 뒤에는 ‘피고인’이라고 부름 구공판: ‘공판을 구한다’는 뜻으로, 검사가 약식절차가 아닌 정식 공판절차에서 재판해 달라고 기소하는 것을 가리키는 실무상 표현. 구약식: ‘약식명령을 구한다’는 뜻으로, 검사가 정식 공판을 열지 않고 서면심리로 벌금 등의 약식명령을 내려 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것을 가리키는 실무상 표현 |
양재규 변호사 (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