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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9회 이달의영상기자상 인권,노동보도부문 수상자 - KBS대전 심각현 기자

“남겨지지 않을 것이라 남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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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으로 방송되는 3.1절 특집 다큐. 처음부터 이렇게 큰 작품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KBS대전 뉴미디어팀 소속으로 웹다큐 ‘달그릇’을 제작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 우연히 일제 강제동원 생존자 현황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외면의 기록, 생존자>를 제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생존자를 찾는 것도, 섭외하는 것도 정말 어려웠다. KBS대전 심각현 기자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등 관련 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피해자 단체도 10개 가까이 접촉했지만, 대부분 왜 취재하려고 하느냐며 거부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피해자는 1800여 분(2022년 초 의료지원자 기준). 하지만 대부분 90대이거나 100세를 넘긴 분들이라 해마다 500~600명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4~5년이 지나면 일제의 만행을 증언할 생존자가 남아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여러 차례 공을 들인 보람이 있었는지, 한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피해자는 많지만 생존해 계신 분들이 거의 없다며 부산에 한 분, 부천에 한 분을 소개해 주었다. 

 20살에 나가사키에 강제동원된 김성북 할아버지, 19살에 일본 해저 탄광과 구마모토 비행장 건설에 끌려간 신영현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고 돌아오면서 15분짜리 웹다큐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일제의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은커녕 사죄도 받지 못한 상태로 계속 둘 수 없는 문제였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과 관련해 서면으로 돼 있는 기록은 있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구술채록 사업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영상으로는 기록이 안 돼 있어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언론인으로서 내가 이걸 남기지 않으면 앞으로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상황이 오겠죠. 남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남겨야 했습니다.”
전국을 수소문해 모두 18명의 생존자를 만났다. 하지만 작품에는 14명의 이야기만 나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터뷰와는 차원이 달랐다.

 “생존자 찾기도 힘들었지만,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도 너무 어려웠어요. 워낙 연로하셔서 보청기를 꼈는데도 잘 못 들으시고, 이도 없으세요. 또, 일본어를 많이 섞어 쓰셔서 가족 분들이 옆에서 통역하듯 도와주셨어요. (건강이 안 좋으시다 보니) 일반적으로 한 시간이면 끝날 인터뷰를 어떤 분은 정말 죄송하게도 4~5시간 걸린 분도 계세요. 신기한 건, 가족들에게 전화상으로 연락했을 때 대부분이 아버지(어머니)가 인터뷰하기 싫어하신다고 했는데, 막상 가면 당시의 울분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요. 내 인생도, 엄마 아버지도, 가족도 모두 거기에서 인생을 망치고 송두리째 뺏겼다고요.”

 정말 어렵게 만난 한 분 한 분이지만,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바로 충남 태안에서 뵌 가재학 할아버지다.

 “인터뷰를 하러 갔을 때 할아버님 연세가 98세셨어요. 인터뷰 중간에 큰아드님이 호떡을 사와서 잠시 쉬며 먹었는데, 알고 보니 할아버님이 위암 말기여서 이날 서울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었더라고요. 그런데 할아버님께서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니 얘기를 해야 한다고 (병원에)안 가셨더라고요.” 가재학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마친 뒤 돌아가셨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처음 공개된 증언도 있다. 일본의 해저 탄광인 조세이(장생) 탄광에서 일하다 수몰 사고에서 살아남은 피해 생존자 고 김경봉씨의 증언이 그것이다. 

 “김경봉 씨가 95년 일본의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탄광 수몰 이후)일본 정부가 유골 수습도 전혀 하지 않으니 유족회에서 (일본 정부와 언론에 대해) 많은 의심을 해 내보내지 않았더라고요. 다행히 유족회 회장을 설득해 당시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군함도’는 잘 알려져 있지만, 군함도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미이케 탄광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심 기자는 만 명 가까운 조선인이 강제로 동원돼 일하다 수십 명이 숨진 미이케 탄광의 생존 피해자를 각방으로 수소문했다.

 “어떤 탄광을 지정해 생존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제강제동원피해지원재단 홈페이지에서 구술채록사업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봤는데, 보도자료에 미이케 탄광 생존자가 한 분 계시더라고요. 그때 당시 105세라 돌아가시진 않았을지 걱정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 지자체 등을 통해 수소문했는데 개인정보에 막혀 못 찾다가 겨우겨우 따님이 하는 식당을 찾아가게 됐죠. 그런데 구술채록 과정에서 힘드셨는지 인터뷰를 안 하신다고 하셔서 여러 번 부탁해 겨우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성과는 그동안 일제 강제동원과 관련한 언론의 조명이 피해 현장 중심이거나, 국가기록원 등의 자료를 발굴했던 것이었던 데 반해 피해 생존자의 육성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에서는 다큐가 방영된 이후 해당 영상 자료를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취재를 위해 피해 현장 세 곳에 직접 다녀왔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생존자 증언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죠.”

 생존 피해자들의 인터뷰 사이사이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꽃이 지고, 비가 내리고, 단풍이 떨어지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이번 다큐는 연출 장면을 배제하고 싶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뭔가를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영상미학적으로) 뭐가 필요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이분들이 강제동원된 시기가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이라는 점을 떠올려 이분들의 (슬픈) 청춘과, (흘러간) 지난 세월을 표현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찍었다. (꽃만 하더라도 어떤 꽃이 좋을지 몰라) 대전·충남 지역에서 찍을 수 있는 꽃은 다 찍었는데, 실제로 나간 건 몇 장면이다.

 나레이션도 별도로 삽입하기 않았는데, ‘노 내레이션 다큐’는 당사자 연출을 최소화할 수 있고, 시청자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 기자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지상파 방송 다큐멘터리는 자꾸 (시청자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지금 환경에서는 주입식으로 가르치듯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당사자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요. 반면, 노 내레이션 다큐의 단점이 인터뷰이를 통해 정확한 정보 전달이 안될 수 있다는 건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경험이 중심 내용이기 때문에 될 수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막을 사용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3.1절 특집으로 방영된 이후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고,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통상부는 이들에 대해 일본 정부나 기업이 아닌 제3자가 배상하는 해법안을 내놨다. 여러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취재한 심 기자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정부 안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정말 화가 났어요. (정부가) 피해 생존자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진정성있게 들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텐데, 많이 안타까웠죠. 생존자들 가운데는 내가 이 나이에 돈 받아서 뭐하냐, 직접 안 찾아와도 된니 TV에서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 주면 된다는 분도 계시고, 사죄와 배상을 모두 원하는 분도 계세요. 가재학 할아버지는 나라를 뺏겨서 그런 걸 어떡하냐고 하셔서 현장에서 취재진이 울기도 했어요. (정부가) 피해자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걸 회복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다음을 진행해야 하는데, 국가 간의 이익 관계만 따져서 하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니 일본 눈치를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삶’이 모여 한 사회의, 국가의 ‘역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는 영상기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영상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역사, 시대의 역사,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이대서 단순히 기록하는 게 아니라 이분들이 당했던 일에 대해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영상기자의 가장 큰 능력은 촬영과 편집, 여기에 기획도 가능하기 때문에 큰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겠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더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조직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영상기자들이 맡은 직종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길 바랍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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