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안 된 일부 언론사에 의해 공항 포토라인 붕괴"
우리나라의 포토라인은 94년 12월, 본 협회와 사진기자협회에 의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라는 운영선포를 통해 발효 되었다. 상호간의 불필요한 경쟁으로 야기된 무질서한 취재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 포토라인을 설정해 운영해 왔다. 그 후 10년이 지난 현재,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포토라인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지난 달 14일 벌어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입국과 검찰 출두 장면은 포토라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6월 14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은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취재를 위해 100여명의 취재진과 ‘대우차 정리해고 원상복직투쟁위원회’(이하 대우차 원복투위), 노동자, 시민단체 등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김 전 회장이 등장한 후 얼마 안 되어, 6mm를 든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포토라인이 무너졌다. 그리고 시민단체 등의 거센 규탄 시위로 김 전 회장은 기자회견도 생략한 채 황급히 검찰로 향했다. 일부 미디어에서는 몸싸움을 해가면서 서로 좋은 그림을 찍겠다고 아우성치는 기자들의 모습을 대단히 흥미롭게 보도하기도 하였다.
김우중 전 회장의 입국장 포토라인이 붕괴된 원인은 지나친 취재 경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에 인천공항을 출입하는 한 사진기자는 “상황을 잘 모르고 방송 화면만 본 국민들은 파리 떼처럼 몰려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전부 사진기자나 카메라 기자로 알고 혀를 찰 것입니다. 심지어 같은 현장에 있던 취재 기자들까지 그들이 전부 사진기자나 카메라기자들인 줄 안다”고 성토했다.
그날 CIQ 지역(입국수속장) 에서도 검찰이 김우중 전 회장을 다른 쪽으로 빼돌리려 하다가 1차 포토라인이 무너졌다. 입국장에서 포토라인이 무너진 원인에 대해 현장에 있던 한 카메라기자는 “취재를 위해 자리를 옮기려는데 시민단체들의 구호소리가 더욱 커지는 격앙된 분위기에서 한 두 명의 6mm를 든 사람과 취재기자들(공항출입기자들은 아님)이 몰려 왔다”고 지적하며, “현장을 떠나려는 검찰 직원과 경찰이 순간 김 회장을 에워쌌고, 그 때부터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현장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공항을 출입하는 조선일보 조인원 기자는“ 늘 그래 왔듯이 공항에서 벌어지는 취재 관행이 공항공사와 경찰이 사전에 협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우리가 포토라인을 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찰의 과잉 경호 속에서 취재원이 안 보이는 경우, 간혹 포토라인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번 사태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 날 취재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은 취재 관행에 대해 모르는 6mm 카메라맨들과 일부 언론사에 의해 포토라인이 붕괴되었다는 주장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취재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몰지각한 언론사에 대해 강력한 재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많은 기자들은 이 같은 현장 취재에 있어 협회와 관계 기관의 원칙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곽재우 회장은 “빠른 시일 내에 사진기자협회와 유관 협회, 관계부처장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포토라인 문제를 재정립 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검찰의 출입기자들은 현장의 취재진들과 포토라인을 설정해 미리 포지션을 정하고 안정된 취재 모습을 보여 주어 귀감이 되었다.
<용어 팁>
포토라인 이란?
1963년 11월 22일 미국의 케네디(John F. Kennedy)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오스왈드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이틀 뒤 달라스 경찰에서 구치소로 수감하는 오스왈드를 촬영하기 위해, 각 신문의 사진기자와 방송사의 카메라기자들이 아우성을 치는 순간, 잭 후비가 촬영 팀 사이에 나타나 오스왈드를 사살해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케네디(John F. Kennedy)대통령의 저격 사건이 베일 속에 묻혀 버리게 됨으로서 언론인이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미국의 언론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것은 포토 라인(Photo Line)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다.
포토라인이 국내에서 운영 된 실질적인 계기는 1993년 1월 15일, 대통령 선거법 위반으로 정주영 전 국민당 대표가 서초동 지검에 출두한 일이다. 약 100여명의 신문 사진기자와 방송 카메라기자는 포토라인(Photo Line)을 설정하고 두 줄로 나란히 정렬하여 정씨가 입장하기를 기다렸다. 정씨가 검찰 청사로 들어오자 복도의 두 줄로 된 기자의 포토 라인(Photo Line)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정씨의 얼굴을 찍기 위해 한 무더기가 되어 그 앞에 쓰러져 버렸다.
그 순간, 사진기 플래시에 정씨의 이마가 찢겨졌고, 그가 피를 흘리는 모습이 TV를 통해 생중계 되었다. 이 사건으로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들은 시민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고, 이것이 1988년 새마을 비리로 검찰에 출두한 전경환 씨의 촬영 때 설정했던, 유명무실한 포토라인(Photo Line)의 실질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실질적인 한국의 포토라인은 1994년 12월 22일, 한국TV카메라기자회(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회(현 한국사진기자협회)와의 협의로 운영 선포 되었다.
이정남 기자 newscam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