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광주 이승준,정현덕,조민웅
<무늬만 에너지벨리..생산지 세탁 의혹_기획 연속 보도>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매달 21일. 나의 통장엔 애잔한 녀석이 들어온다. 바로 월급. 입금과 동시에 카드 값, 공과금, 할부라는 이름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나에게 월급날은 한 달을 버티게 만드는 희망이지만 그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음 달을 기다린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라는 요즘 청년들 사이 번지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분명이 있는 게 맞는데 없는 것과 같을 때. 그 허무함을 표현하는 젊은 세대들의 해학이 담긴 표현이다. 전남 나주시 혁신산단에 있는 ‘에너지밸리’는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조성된 광주전남 미래 산업의 핵심기지다. 이곳은 지방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으로, 한전이 연간 발주량의 20%를 우선구매해준다. 해당 지역에서 물품들을 직접 생산하는 조건으로 입주기업들에 큰 혜택을 준다. 부지 제공과 설비투자금, 고용지원금 지원과 함께 법인세와 소득세 등 50% 세금감면 혜택까지.
KBS 취재 결과, 보조금을 받아 에너지밸리에 지사를 세운 뒤 타 지역에서 물건을 만들어오거나, 다른 업체가 만든 물건을 직접 생산한 것으로 속여 한전에 납품한 업체가 수두룩했다. 협약사항을 준수하는 업체들은 “한국전력도, 지자체도 나서지 않아 불법이 일상이 되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는 상황. 수개월의 잠복취재. 취재팀은 타 지역에서 생산한 물건이 지역생산제품으로 둔갑되는 과정쫓아 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후 한전과 지자체를 찾았다. KBS는 10회에 걸쳐 가려진 민낯을 샅샅이 보도했다. KBS보도 이후 한전은 적발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에 착수해 위반 의혹을 사실로 확인하고 업체 3곳의 계약을 해지했다. 또 에너지밸리 직접생산 업체에 대해 7월 한 달 가까이 단속을 벌였고 한전과 별도로 중기부도 직접생산 승인 품목인 변압기 업체를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불시 단속을 벌였다. 경찰도 보조금 관리법 위반 등 별도 위반 소지가 있는지 조사 중이다.
지역 미래 산업의 핵심기지로 큰 기대를 모았던 나주 에너지밸리. 그곳에 국가 미래를 위한 성장과 희망은 “있었는데... 없었다...”. 천 277억원에 달하는 입주기업의 한전 우선 배정물량과 3백 95억 원의 나주시의 보조금은 있었지만, 이를 위한 감시와 업체들의 양심은 없었던 것이다. 오늘 들어왔다 내일 사라지는 나의 월급. 이를 지키기 위해선 소득을 늘리는 것 보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현재 있는 자산을 잘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처럼 자정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소비를 감시하고 격려해줄 아내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언젠가 빈털터리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도 똑 부러지는 아내의 마음으로 우리 사회를 감시하고 격려해준다면 더운 건강해 질 것이다. 그 역할 또한 우리 영상기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