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BS 윤인수
<제주 지하수의 경고_바다의역습>
제103회 이달의 영상기자상 수상소감
3편의 지하수 다큐멘터리…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어릴 적 서귀포 바닷가, ‘단물’의 추억
어린 시절 고향을 기억하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서귀포, 나의 고향은 재미있는 것들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곳은 바로 해안가 ‘단물’ 이었다. 바닷가 바로 옆에서 쉴 새 없이 나오는, 마실 수 있을 만큼 아주 약간의 짠 맛만 느껴지는 물. 마을 어르신들은 그 물을 ‘단물’ 이라고 불렀다.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해안가에서 나오는 소금기 없는 민물은 말 그대로 ‘달콤’ 했다.
바닷물까지 데워져 버리는 한 여름, 바위틈에서 쏟아지는 ‘단물’은 놀랄 만큼 차가웠다. 한 겨울에는 따뜻함까지 느껴졌다. 그 ‘단물’을 먹고 마시고, 사용했던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수였을 것이다.
환경과 인간 위협하는 ‘질소(窒素:nitrogen)’오염된 제주의 지하수 문제 찾아 3년
그 ‘단물’. 바로 지하수, 바위틈에서 지하수가 해안가에서 ‘기저유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투수성(透水性: transmissibility)이 높은 제주의 땅은 빗물을 그대로 지하로 함양(涵養)시켜 버렸다. ‘단물’이 나오는 해안가 곳곳마다 사람들이 모였고, 마을이 만들어졌다. 물은 나와 가족들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생명의 조건이었다.
지금도 제주에서는 지하수를 생명수라고 부른다. 제주에서 사용하는 물의 98%는 지하수에서 나온다. 우리가 쓰는 물의 사실상 모든 부분을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작 지하수의 소중함은 모르는 것 같다.
지난 3년간 3편이 제작된 지하수 특집 다큐멘터리는 이 지하수의 중요성과 위기 상황 등을 기존에 보도됐던 내용이나 알려졌던 사실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시각에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이 특집 다큐멘터리들은 ‘제주 지하수의 경고’ 시리즈라고도 할 수 있다.
1편인 <제주 지하수 침묵의 경고>는 높은 작물 생산량 등 풍요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던 ‘질소’의 지하수 오염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특히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하수 오염의 ‘시간차’ 문제, 하와이 바다 거북이를 통해 지하수 수질의 오염이 바다 생물에게 치명적 일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으며 지하수 오염은 땅 속을 이동하며 시간차를 가지고 진행되는 만큼, 적절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편인 <제주 지하수의 경고 균형이 무너진다>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해저 지하수를열화상 드론과 수중촬영을 통해 제주지역의 해저 지하수 유출(SGD) 모습을 촬영하고, 제주 지하수가 바다와 숨겨진 연결고리를 통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석했다. 용천수의 수질을 분석해 밭작물에 뿌리는 농약의 과다사용으로 농약 성분 일부가 지하수에서 검출되고 있다는 점, 지하수 오염이 단순히 먹는 물에 국한되지 않고 생태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국내 최초 와편조모류 ‘오스트레옵시스 라벤스(Ostreopsis cf. labens)’ 확인
3편 <제주 지하수이 경고 바다의 역습>은 바다와 지하수의 관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제주 바다의 변화가 지하수의 변화 때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추적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검증하면서 제주 지하수의 위기 상황을 전달했다.
바다로 나가는 용천수의 질산성 질소 농도 증가로 인한 제주 연안 규조류 대발생 실태를 첫 확인 했으며 규조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독성이 있을 수 있는 와편모조류(渦鞭毛藻類: Dinophyta) ‘오스트레옵시스 오바타’(Ostreopsis cf. ovata) 가 발견됐고 국내 미기록종인 ‘오스트레옵시스 라벤스(Ostreopsis cf. labens)’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제주 연안으로 유입된 오염 물질이 쉽게 정화되기 어렵고, 심지어 오염된 지하수가 지속적으로 유출될 경우, 제주 바다의 체류시간은 생각보다 길어 이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바다를 잃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JIBS 제주 지하수 경고 시리즈의 핵심은 지하수 보전이 단순히 구호로 그칠 상황이 아니라는 것과 지하수 보호를 위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먹는 물 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반이 긴밀히 연결돼 지하수의 수량과 수질의 변화만으로도 주변 생태계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 지하수 수질 문제는 단편적인 대책으로 해소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라는 점과 지하수 관리 시기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데 주력했다. 이런 문제가 단순히 제주에만 국한되지 않다는 점도 강조하면서 전국적으로 지하수 관리의 중요성과 지속가능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의 ‘생명수’ 취재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소중한 지하수를 보존하기 위해 우리는 알려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힘들지만 그래도 누군가 해야 할 일... 끝까지 마무리를 짓고 싶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인력 속에서도 3편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응원해주고, 도와준 JIBS 제주방송 보도국 선후배들과 같이 제작한 김동은기자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윤인수 / JIBS 제주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