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MBC 박주원
<폐양어장 길고양이 학대 사건 연속 보도>
1. 양어장에 길고양이 가둬놓고 학대...20대 남성 조사
2. 폐양어장 길고양이 집단 살해범..추가 학대에, 신고자 협박까지
폐양어장 길고양이 학대 사건을 취재하며
“포항에서 폐양어장에 길고양이 수십 마리를 가둬 놓고 학대, 살해하는 남성을 추적 중이다.”
3월 20일 늦은 밤, 동물보호단체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학대 내용은 매우 잔인했습니다. 동행 취재를 결정했습니다. 새벽에 도착한 폐양어장의 모습은 참담했습니다. 가스버너와 칼이 놓여 있고 곳곳에 혈흔과 함께 절단된 고양이 사체가 널려 있었습니다.
학대 용의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확보한 단서들을 바탕으로 용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집과 가게 등을 찾아갔습니다. 여러 차례 허탕을 친 끝에 마침내 용의자를 만나 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용의자는 일부 학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죽인 적은 없다고 계속 부인했습니다. 한 시간 넘는 설전 끝에 용의자는 결국 고양이 살해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학대 행위의 이유가 ‘호기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사당국이 동물 학대 범죄에 안일하게 대응한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보도 전날,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내가 죽인 건 아니다.”라는 용의자의 말만 듣고 어떠한 조사도 없이 돌려보냈습니다. 문제는 이미 이런 문제들이 여러 차례 지적돼 매뉴얼까지 만들어진 상태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취재 결과 확인된 매뉴얼에는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명시돼 있었지만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용의자가 취재진에게 일부 혐의를 인정한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뒤늦게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후속 취재를 통해 구체적인 학대의 정황을 밝혔습니다. 한 마리만 죽였다고 주장한 용의자는 최소 18마리의 고양이를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용의자의 고양이 추가 학대 정황과 제보자에 대한 협박 사실도 추가로 확인해 연속 보도했습니다. 결국 수사 한 달여 만에 경찰이 용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동물 학대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용의자는 구속 송치됐습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사안이 중대하다.”고 구속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학대 가해자를 잡기도 힘듭니다.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듯 포항에서도 길고양이 연쇄 살해 사건들이 수년전부터 잇따라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특별 수사팀까지 꾸리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보도했지만 가해자를 잡지 못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가해자를 잡는 경우에도 실형은 극소수였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그 사이 범행은 더 잔인하고 악랄해지고 있었습니다. 동물학대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보도 이후, ‘학대범을 강력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20만 명 넘게 동의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지막 국민 청원 답변에 직접 나서 안타까움을 표하며 엄정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초기 부실 수사를 했던 경찰은 포항MBC의 취재가 시작되자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수사 담당자는 용의자가 취재진에게 일부 혐의를 인정한 보도 내용을 중요한 증거로 보고 소환 조사, 압수수색, 디지털 포렌식 등 적극적인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용의자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습니다. 동물 학대 혐의로 피의자가 구속까지 된 사례는 2010년부터 11년 동안 5명에 불과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입니다.
아직 판결이 나기까지 절차가 남았지만 동물 학대 범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 새로운 양형 기준 마련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지켜보겠습니다.
박주원 / 포항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