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빈곤 최초실태 그곳에 아이가 산다>
KBS부산 장준영
아동 주거 빈곤, 행복하게 살 권리에 대하여
<KBS부산 장준영>
‘22599’.
주거 빈곤을 겪고 있는 아동의 수, 심지어 주거 빈곤 아동의 ‘세대 수’입니다. 부산광역시 세대 수의 8%에 달하는 이 수치는 감히 얼마나 많은 아이가 주거 빈곤을 겪고 있는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부산만의 조사에서도 이 정도 수치라고 하니 전국을 대상으로 한다면 아득할 정도로 많은 숫자의 아동이 주거 빈곤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초점에 맞추어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대상 선정과 실태 파악, 아동의 육체적/정신적 영향 그리고 환경 개선 후 변화와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성. 취재 방향은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상을 어른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들여다볼 순 없었습니다. 설득의 시간이 전체 제작 기간의 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총 다섯 가구의 현장 취재. 방 한 칸이 채 되지 않는 공간, 양변기도 없는 화장실. 좁디좁은 공간에서 일곱 식구가 생활합니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 샤워도 할 수 없어 늘 목욕탕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마저도 금전적인 문제로 매일 갈 수는 없는 현실. 단열이 되지 않아 문 틈새로 들이치는 골바람에 시린 겨울을 보내고, 습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구석구석 핀 곰팡이와 함께 생활합니다. 나만의 공간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은 집 안에서 몸도 뉘지 못한 채, 바깥으로 나돕니다. 주거의 그늘에 치이는 사이에 피부병, 호흡기질환, 우울증 등 육체와 정신이 병들어 갑니다. 부모는 녹록지 않은 환경을 물려준 자책으로 힘들어하고,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과한 욕심인 것 같습니다.
아등바등 몸부림쳐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빈곤을 선택하지 않은 아동과 빈곤을 물려주기 싫었던 부모가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아동 주거 빈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전문가들은 빈곤이 환경을 선택한 사람들의 책임이라 한다면 주거 빈곤 문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야 할 아동의 권리를 사회가 박탈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가 얼마나 환경을 바꿀 수 있는지, 환경이 바뀌면 아동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부산시와 함께 3억이 채 되지 않는 예산으로 22가구를 선정했고, 낡은 시설을 고쳐 깨끗한 방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누런 벽지를 걷어내고 말끔한 하얀색의 벽지로 새로 도배했고, 화장실에 새로이 양변기가 설치되니, “이제 화장실 가려고 밖에 안 나가도 되겠네.”라며, 짧은 웃음들이 번집니다.
‘사는 건 다들 똑같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22599’라는 숫자에 놀라고, 마주한 환경에 놀랍니다. 행복하게 살 권리는 늘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동 주거 빈곤의 현실입니다. 사회가 아동의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출생률에 목메면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를 외면할 때 그 숫자는 더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배웠습니다. 작은 변화에도 아이들은 내일의 희망을 꿈꿉니다. 그래서 영상기자로서 더 보여줄 것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더 변화할 것들을 보여줘야 할 책무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아동이 행복하게 살 권리를 들여다보겠다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