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제108회 이달의 영상기자상 수상소감
처음 특집을 시작하기로 하고 많은 걱정이 들었다. ‘원전’, ‘사용 후 핵연료’, ‘영구처분장’ 등 지루하고 어려운 주제는 영상기자로서 소위, ‘그림 안 되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 어렵고 지루한 다큐멘터리를 2편이나 볼까?’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일단 원전 관련 다큐들과 뉴스를 보며 공부를 했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머릿속에서 다큐를 구상해 나갔다.
제작을 준비하며 처음부터 4K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영상 플랫폼들에서 4K 화질의 영상들을 접하기 쉬운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동안 데일리 뉴스만 제작하며 4K와는 거리가 먼 제작환경에 있었고, 4K 기반 장비와 워크플로우 편집 등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유튜브를 뒤져 4K제작에 대해 공부하며 ‘맨땅에 헤딩’ 식으로 준비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중에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 모든 원전의 내부촬영을 거절했다는 소식이었다.
‘아이템의 주인공인 ‘사용 후 핵연료’를 실제로 볼 수도 없고 촬영할 수도 없다니...‘, 쉽지 않은 제작의 연속이었다.
또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문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연결되어 진행된 일이었다. 과거 자료들이 필요했다. 회사의 아카이브를 몇 날 며칠을 찾아서 생생한 과거의 자료들을 어렵게 찾을 수 있었다. 과거의 자료는 현재의 어떤 그림보다도 힘이 있었다. 거기에 장준영 기자와 함께 다녀온 ‘핀란드’, ‘스웨덴’ 등의 해외 출장을 통해, 취재한 영상들이 더해져 무사히 2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사용 후 핵연료’와 10만년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원전 1호기의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은 모두 25기. 우리나라는 세계 6번째로 많은 원전을 가동하며 명실상부한 원전 강국을 이뤘다. 하지만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핵 쓰레기 ‘사용 후 핵연료’가 필연적으로 무려 2만 톤이 쌓여있다.
이 ‘사용 후 핵연료’가 안전한 자연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은 10만 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이다. 우리는 원전을 통해 값싼 가격의 전기를 얻고 발전해 왔지만,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문제는 진영논리나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취재 중 들은 ‘외관도 멋지고 내부도 멋진 아파트를 지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에 화장실을 짓지 않았다.’ 는 어느 취재원의 표현이 우리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이 없는 집’, 과연 지속 가능할까?
이것은 찬반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가 직면한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아포리아’이다. 막다른 골목에 갇혀서 오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영구처분장을 만들기 위해서 과거 9차례에 걸친 부지 확보 시도가 있었다. 번번이 유혈 충돌 사태까지 발생하며 모두 실패했다. 원전운영 40년이 지나도록 아직 영구처분장 건립에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취재 중 만난 스웨덴 핵폐기물국가위원회 의장 칼 라인홀트 박사는 “원전의 혜택을 누려온 세대가 미래세대에 떠넘기지 않고 ‘사용 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할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40년의 긴 과정을 거쳐서 세계 최초의 영구처분장을 건설했다. 우리의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운영은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도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지금도 원전은 가동 중이고 ‘사용 후 핵연료’ 다발은 쌓여가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를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