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탐사기획보도부문
SBS 김승태 <마약팬데믹 골든타임은 있다>
우리보다 먼저 마약 문제를 겪고 있는 미국의 여러 현장을 돌아보며,
마약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마약을 막을 대책들을 모색하는 기획 보도 시리즈.
“마약의 환락성 뒤에 숨어 있는 추악하고 두려운 현실을 고발하다.”
<SBS 김승태>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고백한 것처럼 이 나라는 이제 10대들도 쉽게 마약을 구해 투약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렸다. 마약 관련 취재를 비교적 많이 해왔던 경험 탓에 이런 상황을 더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회사에서 준비하는 마약 기획 시리즈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중 우리 취재팀이 맡은 부분은 한국보다 먼저 마약 문제를 겪고 있는 미국에서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현장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이동시간 포함 일주일이라는 한정적인 출장동안 미국 마약의 실태부터 대책까지 담은 4편가량의 리포트를 제작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라 각오를 다졌다.
출장을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신용식 기자와 어떤 현장을 어떻게 취재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한국에서 현장 상황을 미리 유추해서 계획을 짜는 것도 어려웠고, 현지에 있는 기관 및 전문가들을 섭외하는 일도 쉽지 않아 출장 준비기간 내내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취재 동선을 정리한 계획표, 장비목록, 샷리스트 문서 제목에 ‘_진짜_최종_수정’을 적어놓고도 또 몇 번을 더 수정한 끝에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4년 만에 떠나는 해외 출장이라 마냥 설렐 만도 했지만, 취재 주제가 마약 ‘팬데믹’라 씁쓸한 맛은 지울 수 없었다.
첫 번째 현장은 좀비거리로 유명한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였다. 한국에서 미리 구글 로드뷰로 거리를 돌아보며 여러 번 시뮬레이션 해봤지만 역시 진짜는 달랐다. 기분 탓이었을까. 거리에 가득 찬 마약 중독자, 판매상들 모두 카메라 든 나를 노려보는 듯했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특히 총기를 소지한 중독자를 봤을 때는 눈이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카메라를 급히 숨길 정도로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용기가 필요한 취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 취재에서 나의 개인적인 목표는 재벌, 연예인 등 일부 상류층들의 환락성 일탈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마약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에게 환락 그 뒤편에 숨어있는 추악하고 두려운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설득력 있게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싶었다. 그런 적나라한 장면들을 촬영하기 위해선 근접촬영은 필수였다. 안전을 위해 차량 안에서 숨어 촬영하기도 하고, 눈이 마주치면 악의가 없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짓거나, 가벼운 인사도 하면서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경각심이 사라지니 그들은 내가 바로 앞에서 찍든 말든 퉁퉁 부은 자신의 팔에서 주삿바늘을 꼽을 혈관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초점 없는 눈, 넘어질 듯 상체가 꺾여 축 늘어진 채로 흐느적거리고 있는 좀비 같은 사람들이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했다. 어느 곳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거리, 푸르른 공원이었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이미 끔찍한 상태로 변해있었다.
타지였기에 취재 중 변수도 많았는데 대부분 운이 따랐다. 약에 취한 중독자가 카메라를 보고 달려와 흉기로 취재차량을 공격하는 일도 있었는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돌발 상황을 대비해 미리 설치해 둔 VR 카메라에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기면서 리포트의 첫 장면을 인상적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 주 약물법원 취재 때에는 오래전부터 협의를 해왔지만 취재 전날까지 취재허가를 받지 못해 포기직전이었는데,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한인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허가가 났다. 덕분에 미국 약물 법원 실제 재판 현장을 국내 최초로 촬영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마약 피의자들 포함 전원에게는 초상 촬영 동의 서명을 받아 그곳의 생생한 표정까지 모자이크 없이 방송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에서도 거리를 지나던 중 대마샵 앞에서 우연히 받은 대마 샘플을 활용해 경각심을 주는 스탠딩을 하는 등, 다 풀어놓지 못한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며 올해 가장 바빴던 일주일이 지나갔다.
한국으로 돌아와 열심히 고민해 만든 리포트들이 3일간 주요뉴스로 나간 후에도 꽤 많은 재가공 콘텐츠가 더 만들어졌다. 충격적인 현장이 담겨 있어서인지 유튜브를 포함한 여러 매체를 통해 이슈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피드백도 받았다. 무엇보다 기뻤던 반응은 “기자들 고생했다”는 댓글보다 “마약 무섭고 끔찍하다”는 댓글이었다. 공감 없이 소비되고 끝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취재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아 안도했다. 부디 이 보도가 마약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오늘도 마약과 싸우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또 누군가는 마약을 찰나의 천국으로 착각하며 지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도 나의 분야에서 계속 지켜보며 앞으로도 영상기자로써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끝으로 함께 취재 한 신용식 기자와 현지에서 도움 주신 채왕규 목사님, 좋은 시리즈를 만들어 준 마약 팬데믹 취재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영상취재 팀원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