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탁 위에 올라오는 먹거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KBS청주총국 김현기>
어릴 적 살던 동네는 5일장이 열릴 때면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굣길에 그 시장통을 지나와야 했기에 장날은 우회해서 집에 오곤 했을 정도. 상인의 익살스런 호객멘트와 가격을 흥정하는 손님들의 밀고 당기는 대화들, 농작물들의 채취가 이리저리 한데 섞인 그윽한 향. 내가 기억하는 시장의 풍경은 그렇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시장을 다녀온 기억이 없다. 로켓배송과 마켓컬리로 클릭 몇 번에 간편한 구매가 편해진 탓일 것이다. 재료의 신선함 보단 그 재료가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도착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졌다고나 할까. 시장을 통해 직접 이 재료를 수확한 농부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모습과는 점점 대비될 수밖에 없는 구매 행태인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소비자가 이런 식으로 구매를 하고 있었다.
시작은 이랬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재료들은 어디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달려 우리 식탁위에 오게 된 것인가. 길고 긴 유통망을 줄여 신선한 재료들을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표로 시작한 우리 다큐의 주제는 ‘짧은 공급망을 통해 탄소배출을 줄여 신선한 먹거리를 사고 지구환경보호에 앞장서자’ 는 다소 계몽적인 메시지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농부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시장과 매장이 많아진다면 유통비도 줄이고 가격도 저렴해지며 나아가 이동 경로가 줄어들기 때문에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즉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는 담론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로컬푸드’ 다큐 <로드투테이블>의 제작을 시작했다.
촬영시작 전부터 이 다큐는 푸드다큐가 아님을 스스로 다짐했다. 유통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다큐이기 때문에 재료의 여정을 보여 줄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차량의 이동샷을 통해 농작물이 어디론가 계속 팔려나가는 과정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촬영해야 했다. 생전 처음 가 본 서울 가락시장 경매장의 모습은 갓 수확한 농작물보다도 더욱 신선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그곳은 그들만의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영국 런던, 프랑스 리옹, 일본 아와지섬에 가서 해외는 로컬푸드 유통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촬영했다. 런던의 경우 먹거리위원회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최대한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고 이 움직임에 자원봉사자들이 동참하고 있었다. 주말마다 열리는 파머스마켓은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이어주며 짧은 유통망의 확실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리옹은 지역 레스토랑들이 로컬푸드를 식재료로 쓰면서 미식의 도시다운 면모를 보였고 아와지섬은 로컬푸드 운동에 기업도 동참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봄의 시작부터 가을의 끝자락까지. 무럭무럭 자라나는 먹거리의 수확을 촬영할 수 있었고 농민들, 푸드전문가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다양한 농가들과 장터를 다녔고 특히나 해외 3개국 촬영분량을 모두 녹아내야 했기 때문에 명료한 사례들 위주로 편집을 시작했다. 한 시간 반 분량의 가편집을 끝내고 점차 현재의 로컬푸드 상황을 먼저 비춰주고 원인을 찾고, 잘된 사례들을 보여준 뒤 나아가서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다뤄주는 스토리텔링으로 완성했다.
<로드투테이블>이 113회 이달의 영상기자상의 지역특집다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너무나 감사드린다. 올해초부터 로컬푸드 아이템을 기획하고 방향의 키를 잡으신 한성원PD와 먼 타국에서 함께 고생한 장용석 감독, 그리고 적극적으로 모니터해주신 최승원 영상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이 다큐가 지역 농가와 소비자간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한번쯤은 우리 식탁위에 올라오는 먹거리가 어디에서 오는 것 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