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제주, 하수 슬러지 처리의 문제
<KBS제주총국 강재윤>
지난 8월 25일, 후배 강인희 기자로부터 급히 사전취재요청이 들어왔다. ‘성이시돌목장’ 근처에서 토양과 수질 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 모습을 촬영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부서 결원이 많은 금요일이라 어쩔 수 없이 영상 데스크 업무를 잠시 멈추고 현장으로 향하면서 이번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개의 오름 사이에 위치한 문제의 폐기물처리업체는 제주의 유일한 민간 하수 슬러지(찌꺼기) 처리 업체로 서귀포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사용한 하수 찌꺼기를 건조해 다른 지역 화력발전소로 보내고 있으며 1년에 슬러지 처리량만 2만여 톤, 투입되는 세금만 40억 원이 된다.
업체 주변에 도착하자마자 심한 악취가 진동했다. 업체 굴뚝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취재팀은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며 시료 채취를 시작했다. 모기와 풀벌레가 날아들었고 지면은 질퍽질퍽 늪지대를 걷는 느낌이었다. 폐기물처리업체로 점점 가까워질수록 토양에는 기름기가 가득했고 축산분뇨 더미로 보이는 토양에서는 누런 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냥 보기에도 오염이 심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취재팀은 토양과 수질 검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 조언을 받아 거리별로 여러 지점에서 시료를 채취했고 동시에 영상 증거로서 채취 위치마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해 나갔다. 이는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증거자료로서 중요한 역할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검사 의뢰 3주 후 제주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 나온 결과는 매우 심각했다. 수질은 하수처리장에서 처리 이전 원수보다 더 오염되었고 토양도 기준치보다 아연의 경우는 최대 4배 이상 높은 결과가 나왔다. 취재팀의 예상이 적중한 순간이었다. 하수 슬러지 처리 업체 주변이 왜 이렇게 오염이 되었을까? 라는 의문을 갖고 연도별 위성사진을 확보하고 행정에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분석을 시작했다. 결과는 업체 주변에 수년간 하수 슬러지를 야적했던 모습이 위성사진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났고 지난 10년 동안 환경오염법 위반으로 행정처분만 17차례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해발 300미터 중산간에 위치한 업체 주변 수질과 토양의 심각한 오염으로 인근 지하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세계가 인정한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세계자연유산)을 차지한 보물섬 제주도의 지하수가 오염이 된다면 그것은 곧 재앙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탐사K’ 연속보도 이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주도의회는 제주도에 즉각 대책을 주문했고 제주도 역시 행정절차를 다시 검토하고 있으며 관련 부서들은 정기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보도를 통해 하수 슬러지를 공공에서 처리하지 못해 민간업체에 처리를 맡기고 있는 제주도 하수 처리 정책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는 청정 제주, 보물섬 제주, 유네스코 3관왕을 외치고 있었지만 속은 참혹했다. 앞으로는 지금의 문제점을 알리는 보도를 뛰어넘어 청정 제주의 환경을 지켜나가기 위한 공공하수 슬러지 처리 방안과 대책은 무엇인지 ‘시즌2’ 취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