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한국영상기자상 멀티보도부문 MBC 현기택 기자
▲ <고성산불-화마에 불탄 삶의 터전 연속보도>로 한국영상기자상 멀티보도부문을 수상한 MBC 현기택기자<사진 왼쪽>.
지난 4월. MBC 영상뉴스 ‘현장36.5’ 팀으로 한참을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취재기자 없이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하는 점에서 영상기자 개인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는 하나 그만큼 많은 품을 들여야 했다.
4월 5일 아침. 지난밤. 강원도 고성에 큰 산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밤새 강풍에 옮겨 붙은 산불이 고성과 속초, 동해 일대를 하룻밤 사이에 집어삼키고 있었다. 출근도 전에 캡에게 전화가 왔다. ‘고성으로 헬기를 타고 다녀와라’ 365팀인 나에게 전화가 온 건 이미 모든 사람들이 고성산불 취재에 투입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라이브 장비인 MNG를 가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고성산불 현장까지는 헬기로 약 1시간 30분이 걸렸다.
하늘에서 본 현장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하룻밤 화마가 할퀸 상처는 곳곳에 생채기를 남겨 봄을 맞이해 초록이 피어나야 할 동산들이 온통 시커먼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헬기 라이브 방송과 피해 지역 스케치 두 가지 미션을 부여받고 낮 뉴스부터 라이브 방송을 했다. 생방송 연결이 끝나면 바로 피해 상황을 지켜보다가 특이 사항을 틈틈이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던 중 완전히 전소된 폐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폐차장 내 차들이 잿더미가 되어버렸고 뜨거운 불길에 녹아내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차체들 사이로 누군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는 모습을 포착했다.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모습이 하룻밤 사이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회사로 복귀한 뒤 이 내용을 전달했고 특정된 취재원이기에 뉴스에 내기 위해서는 취재원 동의가 필요했다. 폐차장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아직 울먹이는 폐차장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취재내용을 설명하고 방송해도 좋다는 동의를 받은 후 취재기자가 기사를 작성했고 급히 데스킹을 거쳐 방송 직전 겨우 영상편집을 마쳤다. 그렇게 방송이 나갔다.
헬기취재의 특성상 한 곳을 집중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폐차장 이외에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없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고성으로 달려갔다. 우선 폐차장 주인을 찾아가 취재 동의를 다시 한번 구했다. 땅에서 본 현장은 하늘보다 혹독했다. 그곳은 단순 폐차장이 아닌 중고차 부품 수출업체로서 누군가가 30년간 이뤄 낸 삶의 터전이자 10여 명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곳이었다. 이 폐차 공장 같은 중소기업은 자연재해로 인한 특별재난 구역 무상지원대상에서 제외되어 당장 복구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폐차장을 비롯해 화마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막막한 심정은 뷰파인더에 그래도 전달되었고 ‘현장 36.5_화마에 불탄 삶의 터전’은 그렇게 완성이 됐다. 취재 도중 중앙재해본부로부터 지원대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대책 수립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도 받아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이번 취재로, 개인적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라 헬기 취재에 특정된 취재원에게 방송 가능 여부를 직접 확인한 과정은 향후 초상권 기준을 마련하는 데에도 참고할 사례가 될 것이다.
이달의 기자상에 이어 2019년 한국영상기자상에도 선정되어 너무도 영광스럽게생각한다. ‘멀티기자’라는 타이틀은 어색하지만 현장의 영상기자들 대부분이 다양한 역할을 하는 멀티 기자들이기에 이번 상은 뉴미디어를 비롯해 영상취재, 영상편집, 영상기획, 특수촬영, 현장 중계 등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영상기자들 전체에게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또, 지난 1년간 함께 고생하며 성장해 온 ‘MBC 현장36.5팀’에게 이 모든 영광을 돌리고 싶다.
현기택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