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고향, 멍게와 번데기를 먹는 나라
미디어가 만들어낸 유럽 신한류 열풍
최효진 (미디어아이 프랑스통신원)
“한류, 제니스에 몰려들다”
지난 달 10일과 11일 양일간 파리 제니스 공연장에서 열린 SM타운 파리 콘서트를 앞두고,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 지(紙)가 콘서트와 프랑스에서의 한류 열풍 현상에 대해 소개하고자 앞세운 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을 위시하여 이번 파리 K팝 공연에 관한 현지 언론 보도는 다분히 자극적이고, 심지어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르몽드와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한국전쟁과 특히 “인천상륙작전”을 의식한 듯, K팝과 한국 드라마 등 한국대중문화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도 상륙했다 혹은 정복했다는 식의 기사가 많다. 그리고 그 문화적 흐름의 근원지인 서울 SM기획사를 찾아, 한류 스타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했다. 수년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기계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들을 문화상품으로 제작해내는 스타시스템과 그로부터 생산되는 문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프랑스 현지 언론들도 프랑스에서의 한류 열풍을 대서특필했다고 알려진 듯 한데, 각 매체 문화 면은 현지에서의 한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심층적으로, 그리고 신랄한 비판으로 파고 든다.
일례로 한 민영TV매체인 M6의 매거진 프로그램에서는 이번 콘서트를 이끈 큰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한류팬 50여 명의 한국단체관광을 동행취재했다. 약 10분 내외의 분량으로 한류를 소개한 이 프로에서 취재진은 이들 소녀팬들이 K팝 스타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담는 한편,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프랑스 소녀들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에 한국 문화를 발견하는 과정을 같이 담았다. 이들은 낮에는 남대문, 인사동과 같은 서울 시내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국내 주요 방송 3사의 음악프로그램 녹화장을 찾는다. 그런데, 이들이 새로이 문화적 발견이라고 소개한 아이템은 민박집 화장실에 설치된 비데, 재래시장에서 먹는 비릿한 멍게와 징그러운 번데기, 이런 것들이다. 한국을 조금 아는 시청자들은 한국 음식 중에 맛있는 것도 참 많은데, 왜 하필 저런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반응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취재진 역시 한국을 처음 방문했고 급하게 취재일정이 잡힌 터라 한국 문화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족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 프로는, K팝과 한류를 소개하기 보다는 거기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십대 소수 마니아들의 현상 보도에 그쳤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소소한 논쟁이 오가고 있다. 한국전쟁이 났을 당시, 프랑스 참전 군인들이 한국이 베트남 옆에 붙어 있는 나라인 줄 알고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부산항에 도착했다는 시절이 있었는데, 불과 반세기 만에 우리 말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프랑스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말그대로 한류 열풍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0일 공연 직후, 기자회견에서 슈퍼주니어 리더 이특이 “10년 전 프랑스 꼬마 조르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큰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프랑스팬들이 우리 노래를 따라 불러준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말처럼, 분명 몇 십 년 사이 한국문화는 특히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현지에 무섭게 상륙하고 있다. 주불한국문화원 등에서 사물놀이나 판소리와 같은 일회적인 전통문화공연에 그쳤던 현지 한국문화 소개는 이제, 유투브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온라인 세상에서 현지 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급속도로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온라인 세상에 모인 유럽 한류팬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기회는 어쩌면 지난 달에 있었던 콘서트가 보여준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10여분 만에 매진된 이틀 간의 공연 티켓 1만 4천여 석을 메운 소수 마니아들의 문화가 우리가 말하는 유럽 한류의 전부라는 분석도 있다. 300 여개가 넘는 파리 공연장 중에서, 그것도 7천여 석에 불과한 작은 공간에서 개최된 콘서트를 두고 우리는 신한류라는 너무 과장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번 파리 K팝 공연은 규모 면에서 보면, 같은 가수들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개최하는 콘서트에 비하면 너무나 작다. 예를 들어, 왠만한 한류 스타들이 일본의 도쿄돔에서 공연을 할 때, 이 객석을 채우는 한류팬들의 수가 2만 여명이 넘는다. 프랑스 인기 가수들이 주로 공연하는 파리 베르시 공연장이 이와 비슷한 규모로, K팝 공연을 여기서 개최할 경우 이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발짝 더 뒤로 가서 보면, 프랑스에서의 신한류 열풍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영화 등을 위시하여 한국 대중문화에 푹 빠진 몇몇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에 불과하다. 여러 이민사회가 모여사는 프랑스가 이른바 “똘레랑스(관용)”으로 하나 둘 자신들의 문화에 흡수해가는 다양한 문화적 흐름 중에 한류가 있다. 프랑스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에 북아프리카식 덮밥요리인 쿠스쿠스가 생활화된 것처럼, 일본 망가에 빠진 프랑스 젊은이들이 자주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처럼, K팝과 한류 콘텐츠는 이제 점차 일부 프랑스 젊은이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있다. 이들이 한국 대중가요와 드라마를 접한 시기를 물어보면,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의 소녀팬일 경우 대부분 적어도 5년에서 6년은 되었다고 답한다. 일본 드라마와 J팝, 그리고 망가 등을 보다가 한국 것들을 접하게 되었다고. 비록 시작은 타 문화에서 흘러들어왔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최신 K팝을 듣고 가사를 배우는 일, 엊그제 지상파 방송 3사에서 방영된 트렌디 드라마를 섭렵하는 일, 각종 국내 연예뉴스 스크랩 등은 이제 한국인들과 같은 일상이 됐다. 최근 무섭게 불어닥치는 바람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유럽땅에 조금씩 스며들어온 가랑비 같은 것이 우리가 말하는 유럽 신한류이다.
우리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을 아시아가 아닌 다른 땅에서 만났다고 자축하는 분위기는 이쯤해서 접어두고, 한국 언론은 이들 한류팬들이, 그리고 그들 주변의 친구과 가족 등이 K팝으로 알게 된 한국이라는 나라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처럼 모험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이 멍게와 번데기 같은 희한한 음식을 먹는 나라라는 식의 인식에서 벗어나 K팝이 보여주는 역동적이고 다양한 한국문화의 진면목을 그들의 생활 속으로 끌어가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