切齒腐心(절치부심), 臥薪嘗膽(와신상담), 그리고 드라미아 ...
백도를 오르내리던 지난 7월. 일련의 무리들이 승합차에 빼곡이 채워져 서울을 벗어나 시골길을 달렸다. 승합차 안에는 이십대에서 오십을 훌쩍 넘긴 아홉 명이 서로 낯선 듯 창밖을 바라보고, 차창 너머 들녘엔 벼들이 한창 자라고 있었고 백로들은 시내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물고기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용인 드라미아에서의 근무가 내주면 벌써 두 달이 된다. 지난 두 달 나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7월 업무 복귀를 앞두고 선후배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카메라 기자가 될 것인가? 지난날 우리에겐 어떤 잘못이 있었기에 MBC가, MBC 뉴스가 이지경이 되었나를 고민했었다. 또 앞으로 ‘진실을 향하는 사실의 최종 확인자’로서 취재에 더 치열하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카메라기자가 되기를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드라미아 발령으로 잠시 접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같이한 여러 선배들 또한 취재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건설현장으로, 징계로 집에서 대기하거나 또는 아카데미에서 브런치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취재 PD”라는 낮선 이름의 대체 인력들로 채워졌다.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뉴스는 보도 영상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품질과 편향성 논란을 일으키는 “그림”으로 넘쳐난다. 저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기록하고 언젠가 돌아갈 취재현장에서 감을 지키기 위해서 꼼꼼하게 모니터를 하다보면 내 자신의 건강을 위해 뉴스를 안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8월 언젠가 출장가는 후배가 함께 가자는 제안이 왔다. 자기는 취재하고 나는 머리도 식힐 겸 같이 가자는 것이다. 처음에는 함께 가는 것이 설레다가 이내 취재현장을 보면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결국 함께 가지 못했다.
여의도 회사 앞에서 취재차량을 기다리거나 취재가 끝나 회사로 복귀하는 선후배들과 마주칠 때 그들의 카메라를 보는 것은 지금도 불편하다. 회사 어딘가에서 고이 잠들어 있을 내 이름표가 붙은 카메라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용인 드라미아 사무실. 이젠 나름 서로 단란한 동료가 되었고 들녘은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었으며 백로들은 어디론가 날아갔다. 말 같지 않은 막말을 쏟아내는 회사 특보를 보니 내가, 그리고 선배들이 언제 카메라기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지 기약이 없다.
하지만 언제일지 내 카메라에 불이 켜져 돌아갈 취재현장에는 ‘진실을 향하는 사실의 최종 확인자’로서 더 치열하게 취재하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카메라기자로, 그리고 불의에 결코 고개 숙이지 않는 ‘사람’으로 합류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다짐한다. 절치부심, 와신상담, 그리고 드라미아 ...
권혁용 /MBC 용인 드라미아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