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카메라기자입니다.>
“어깨에 장착할 무언가를 만들어야겠어.”
동기들과 우스갯소리로 나눈 이야기이다. 신입사원 교육이 끝난 후, 처음 부서에 갔을 때였다. 내 눈에는 선배들의 어깨만 보였다. 그 드넓은 어깨는 지금 생각해도 충격이다. 저 어깨에 카메라를 얹는다면 안정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카메라를 위해 태어난 어깨 같았다. 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 어깨는 그렇게 드넓지 않았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어깨였다. 어깨에 나무로 만든 뽕이라도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상으로 기사를 쓰는 거야.”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무주와 진안, 장수를 오가는 버스 회사가 파업에 돌입했다는 기사였다. 버스 파업을 알리기 위해 나는 차고지에 가득 찬 버스와 빈 좌석을 찍었다. 그리고 뉴스 전반에 이를 배치했다. 다음 날, 부장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전혀 다른 편집을 보여주셨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버스 없는 터미널 그리고 차고지에 가득 찬 버스를 보여주었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한눈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내가 한 편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이때,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기사를 만들어가는구나.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뉴스를 잘 알지 못하던 시절, 카메라기자는 취재기자의 기사를 보조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흐르는 영상을 보는 무지한 시청자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큰 오해였다. 전주MBC에 입사하여,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큰 반성을 하였다. 영상으로 기사를 쓰는 선배들의 모습에 놀랐다. 시청자에게 좀 더 쉽게 뉴스를 전달해주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남들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고, 가장 좋은 포인트를 찾는 모습은 자랑스러웠다. 나도 저런 카메라기자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사각의 프레임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그렇지만 뉴스를 제작하는 일은 어렵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정말 내가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이 들기도 했다. 편집할 때마다 아쉬운 점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이 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사각의 프레임이다. 파인더를 보는 그 순간이 매우 좋다. 현장 속에서 그 모습을 파인더에 담아내는 작업은 언제나 즐겁다. 그래서 욕심이 생긴다.
나는 기자다. 나는 카메라기자다. 아직은 어색하다. 카메라기자라고 스스로 칭하기에 부끄러운 점도 많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 당당하게 카메라기자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반년이 지났다. 아니, 벌써 반년이나 지났다. 아직 서툴고 어설프다. 어딘지 불안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 반년이 또 지나면 그만큼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날이 다가올 것이다.
“안녕하세요, 카메라기자 강미이입니다.”
강미이 / 전주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