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회 기획보도부문 - DMZ 사계 (YTN 이문세)
수상소감
DMZ를 취재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어려움과 늘 싸워야 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 DMZ라는 특별한 공간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마음대로 다닐 수 없다는 공간적 제약과 해가 지기 전에 나와야 한다는 시간적 제약이 우리를 항상 쫓아다녔다. 게다가 천안함 사건, 연평도포격 사건 이후로 남북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DMZ 취재는 더욱 어려워졌다. 심지어 북한에서 ‘DMZ 취재를 계속 강행한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날아들기도 했다. 2010년 DMZ 취재하기에 최악의 해가 아닐까 싶다.
또 다른 난관은 자연 다큐멘터리 촬영이 갖는 특유의 어려움이었다. 일반 프로그램과 달리 자연 다큐는 끊임없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야생 동물을 촬영한다는 것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날씨가 춥건 덥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수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무수한 사전 작업이 이뤄진다. 먼저 어느 지역에 어떤 동물이 자주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배설물이나 발자국 등의 흔적을 실제로 확인하고, 출몰시간, 이동경로 등을 파악한다. 적당히 몸을 은신할 곳을 찾거나 위장막을 설치한 후에야 비로소 기다림은 시작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발품’을 팔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역시 자연은 뿌린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 법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던 산, 깎아지른 듯한 절벽, 인적 끊긴 깊은 산 속에서 우리는 좀처럼 보기 힘든 천연기념물 산양(217호), 두루미(202호), 재두루미(203호), 수달(330호), 까막딱따구리(242 호)를 비롯해 용늪에만 서식한다는 비로용담, 기생꽃, 개통발 등의 희귀식물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특히 최초로 촬영된 사향노루의 DMZ 서식 확인은 155마일 DMZ의 자연적, 생태적 가치를 높여주는 쾌거 이기도 했다.
최근 DMZ에는 관광과 개발이 단연 화두가 되고 있다. DMZ 생태 공원, 탐방로 조성 등 관광 자원화 바람이 불면서 각 지자체마다 개발이 한창이다. 하지만 한 번 개발이 이뤄지고 나면 자연환경과 생태가 파괴되는 것은 어찌보면 시간문제다. 그래서 어디까지 개발하고 어디까지 보존할 것인가는 항상 고민거리다. 무작정 개발을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보존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올해 안에 환경부가 DMZ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을추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각 지자체와 군 당국의 협조 등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접점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DMZ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 비록 전쟁과 분단, 이념이 낳은 비극의 산물이지만, 이곳의 자연은 우리의 유산을 넘어 세계 인류의 자산이기도 하다. DMZ의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장기적인 시각에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스스로 그러하다(自然)’는 말처럼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는 자연의 섭리, 그러면서도 조화와 균형 속에서 질서 있게 돌아가는 자연은 모습은 위대하고 경이롭기만 하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지식이 늘어도 자연의 신비로움은 따라 갈 수 없을 것이다. 인간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분이고 그래서 자연 앞에선 늘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닐 듯 싶다. 우리가 DMZ를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인간이 그리 애쓰지 않아도, 오히려 괜한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태양은 다시 찬란하게 떠오르고, 알에서 갓 태어난 새끼는 부모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고, 밤하늘의 은하수는 오늘도 황홀하게 펼쳐질 것이다.
YTN 영상취재1부 이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