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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영상취재부 김상하 기자

'징크스'나 '머피의 법칙'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취재하다보면 이상한(?) 일들이 심심치않게 생깁니다.

우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우입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던 것들이 막상 그걸 대상으로 취재를 하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연초에 택배 관련 취재를 할 때였습니다. 평소 거리에 그렇게 많던 택배 차량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습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다들 어디로 간건지... 한시간, 두시간, 방배동, 신림동 등 거리를 헤매고 나서야 어렵게 그것도 세 대만 간신히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다른 취재를 하려고 거리로 나섰는데 왜 이리 택배 차들이 많은지... 취재차 앞, 뒤, 옆으로 '날 좀 찍어주쇼' 하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대상만 약간씩 다를뿐 적잖은 촬영기자들이 경험하게되는 쓴웃음 나는 현상입니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우연히 아이템에 맞는 장면이 차창 밖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취재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덜 됐기 때문에, 그보다는 조금 귀찮은 마음에 '흔한 장면이니까 좀 더가면 더 좋은 그림이 있을꺼야.' 하고 지나치면 먼저 봤던 장면은 나의 안일한 판단을 비웃듯 절대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게으름을 탓하거나 운전기사에게 부탁해서 기억 속의 그 장소로 돌아가는 정말 미운짓을 해야 합니다.

물자 절약 차원에서 재생 테입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끔 일어나는 아주 저주스러운 현상. 정부나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장. 기자회견문 낭독하는 것을 촬영했는데 회사에서 확인해보니 정작 필요한 녹취 부분에 딱 한 줄의 심한 스크레치(테입이 손상돼서 화면이 일그러지는 현상)가 생겨 쓸 수 없는, 아주 기막힌 일도 종종 생깁니다. 취재 기자 스텐드업(리포트 중간에 취재 기자가 직접 나와 설명하는 부분)도 보통 서너 번, 많게는 열 번 넘게 촬영을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컷은 이상하게도 오디오 NG가 나던지 스크레치가 생겨있으니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행사 취재 스케줄을 받으면 시간과 장소를 확인합니다. '광화문 프레스 센타? 이정도면 여의도에서 30분정도면 되겠지'하고 조금 여유 부리다가 어림잡은 시간에 맞춰 회사에서 출발하면 다른 때와 달리 왜이리 길이 막히는지, 건널목 지날 때마다 빨간불에 걸리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취재차 안에서 늦을까봐 안절부절, 연신 시계를 보며 식은땀만 흘리고... 그런 때는 왜그리 시간은 잘도 가는지... 시작시간 30분전이 금방 10분전으로 바뀌고, 조금 일찍 출발할 걸 하는 후회만 가득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주로 1-2년차 초년병 시절에 많이 일어납니다. 그때는 적잖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은 아무 문제없이 잘도 촬영해 가지고 오는 것 같은데 내가 취재 나가면 왜 이런 저런 일들로 꼬이는지... 꼭 필요한 녹취 부분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데를 촬영하고 있거나, 그나마 촬영했는데 스크레치가 생겨 버리거나, 시간에 쫓기는 취재를 나가면 왜 가는 곳마다 길은 막히는지... 강북강변로와 올림픽대로 중 왜 우리가 가는 길만 이렇게 막히고 강 건너편은 잘도 뚫리는지...

나를 괴롭히던 그런 일들이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음을 느낍니다. 왜냐고요? 차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이 보이면 '조금 더가볼까'하는 고민없이 '스톱'을 큰소리로 외치고 바로 카메라를 들고 내립니다. 중요하다싶은 녹취는 재생 테입(물자 절약 차원에서 재생테입과 새 테입을 같이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합니다)이 아닌 새테입만을 가려 사용하는 얕은 수도 익혔습니다. 행사 취재? 몇 번을 마음 고생하다보니 이제는 보통 행사 시작 2-30분 전에 도착할 수 있게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차에서 푹 쉬고, 도착해서는 오디오 라인과 촬영 포인트를 선점해 놓는 노하우아닌 노하우를 갖게됐습니다.

제가 1-2년 차일 때, 일에 관한한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던 선배들도 아마도 오랜 기간 그런 시행착오를 거쳤을 겁니다. 저처럼 차안에서 식은 땀도 흘리고, 바로 촬영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좀 더 완벽해 질 수 있는 방법들을 깨우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징크스'니 '머피의 법칙'이니 하는 말들은 한낱 준비 덜된 자들의 핑계거리에 불과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법칙은 아직도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아직 제가 '준비 덜된 자'라는 반증일까요?

자료출처: http://news.kbs.co.kr/column/col_view/column_5_0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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