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95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No Attached Image

故 조종옥 기자와 함께한 5일

<6월 25일>

 ‘속보 - 한국인 13명 탑승한 항공기 캄보디아에 추락’

 나는 갑작스러운 출장 명령을 받고 캄보디아를 향하는 밤 비행기에 피곤한 몸을 싣는다.

탑승자 명단에 포함된 입사동기 조종옥 기자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 이들을 생각하니 가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종옥아 내가 지금 가니까 조금만 힘내라. 우리 함께 같은 비행기로 돌아가야지.’

<6월 26일>

 아침에 수도 프놈펜에 도착해 차로 3시간 떨어진 캄포트로 향했다. 한국에서의 보도내용과 현지상황은 차이가 있었다. 아직 사고위치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고 탑승자의 생사도 불확실했다. 기상도 좋지 않아 수색도 중단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지교민들의 분위기는 희망적이었다. 밀림지역에 추락했으니 완충작용으로 큰 충격 없이 떨어졌을 것이라고들 생각해 탑승자의 생존가능성 역시 높게 보고 있었다. 헬기를 이용해 약품, 식량, 담요 등이 담긴 생존키트를 추락예상지역에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뜨릴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듯했다.

<6월 27일>

 “기체가 발견 됐대요.”  

 취재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헬기장이 있는 곳으로 무조건 달렸다. 분주히 움직이는 군 병력들,  요란한 헬기 프로펠러 소리로 주변은 어수선했다. 현장에 들어갔다 온 교민자원봉사자에게 생존자가 있는지 묻자 기체파손이 심하다는 말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닐, 알코올, 들것 등이 헬기에 실리는 것으로 보아 현장상황이 좋지 않은 듯 했다.

 오후에서야 헬기를 섭외, 현장에 접근했다. 헬기를 타고 20분정도 가서 다시 길도 없는 밀림을 헤치고 25분정도를 걸었을 때, 참혹한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장을 확인하는 순간 마지막 희망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기체는 절반이 꺾인 채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고 신발, 안경, 모자 등 주인 잃은 소지품은 이곳저곳 진흙탕 속에 나뒹굴고 있었다. 기체 앞쪽으로 다가가자 미처 수습되지 못한 시신이 비행기 잔해와 어지럽게 엉켜있었다. 작업 중이던 한 교민은 아직 수습되지 못한 조 기자의 큰아들과 부인 시신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조종옥 기자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으로 아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는 사실도 전해주었다. 나는 그 현장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힘없이 현장을 걸어 나오는데 한 캄보디아 경찰간부가 취재진에게 가족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조 기자 내외와 세 아들이 있었다.  눈물을 참으며 사진 속 행복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 그것 말고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6월 28일>

 수습된 사고유해는 프놈펜에 있는 깔멧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열세개의 영정이 나란히 세워져있는 분향소 앞에서 유족들은 가족 잃은 슬픔을 억누르며 빈소를 지켰고 빈소 뒤편의 컨테이너 안에는 유해가 안치되어있었다. 그리고 마치 생과 사를 갈라놓은 듯 그 사이에는 흰 천이 높게 가로막고 있었다. 망자의 눈물인 듯 굵은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조 기자의 아버지는 영정사진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으셨다. 차마 위로의 말씀도 드릴 수 없는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6월 29일>

 희생자들의 유해와 유가족 그리고 취재진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기는 프놈펜공항을 이륙해 인천공항을 향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조 기자와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기를 그토록 바랬는데, 나는 살아서 또 그는 죽어서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종옥아 미안하다. 이런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캄보디아까지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네 사진 앞에 꽃 올리고 고개 숙이는 것뿐이구나. 하지만 너의 남은 아들에게 꼭 말해줄게. 너의 아버지는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기자였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故 조종옥 기자와 나는 98년 3월 KBS에 함께 입사한 동기이다. 이번 출장은 사고 현장 취재라기보다 동료가 떠나간 곳을 찾아가 수습된 동료의 시신과 함께 귀국하여, 그를 먼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의식과 같은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사고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

이영재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


  1. 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취재후기

    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취재후기 먼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당한 고인들과 유족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4월 16일 오전, 평상시와 똑같이 수원지국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오늘의 촬영 일정을 위해 전화를 하고 있는데,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갑자기...
    Date2014.05.21 Views8567
    Read More
  2. No Image

    해파리의 침공 제작기

    해파리의 침공 제작기 '해파리의 침공' 그것은 촬영기자인 나에게 대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말못할 문제점과 아쉬움이 다수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 취재기자와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촬영스케줄이 수중촬영이...
    Date2004.02.25 Views8611
    Read More
  3. 소치 동계올림픽 취재기 - 온몸으로 즐기던 축제, 그리고 옥의 티

    처음 취재해 본 종합대회, 22회 소치 동계 올림픽은 내게 ‘함께 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병풍처럼 펼쳐진 설산을 배경으로 한 야자수 무리. 우선 그게 첫인상이다. 대회기간 중 종종 추웠던 날도 있었지만, 해상클러스터가 있는 아들러 지역의 날씨 대부분은 ...
    Date2014.03.20 Views8635
    Read More
  4. 이산가족 상봉취재기 - 60년만에 허락된 만남

    11년 만이다. 다시 금강산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대학교 신입생이던 2003년, 우연치 않은 기회로 금강산을 다녀 올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 되고 경색되는 남북관계 속에서 언제 한번 다시 금강산을 가보나 했다. 그런데 11년 만에 기회는 찾아왔다...
    Date2014.03.20 Views8678
    Read More
  5. No Image

    MBC 태그의 뻘쭘함.

    마이크 스폰지 부분에 로고를 붙인 이후, 인터뷰이 사이즈 잡기가 곤란하네요. 타사 마이크 로고도 다 나오게 잡자니 사이즈가 넓고, 엠 로고 안나오게 잡자니 너무 클로즈업이고. 중간 사이즈로 잡으면 엠 로고만 나오고... -_-; 다같이 이기회에 스폰지에 자...
    Date2006.08.25 Views8711
    Read More
  6. No Image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

    인도 캘커타의 ‘소나가치’라는 홍등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 도 규 만 | (에센스21 PD) ‘인도 홍등가의 작은 반란’은 도규만 PD가 모 일간지의 외신란에 난 기사를 보고 기획했다. 촬영장소는 소나가치였는데 이곳은 한국의 미아리, ...
    Date2003.07.08 Views8727
    Read More
  7. 초보 카메라기자의 제주 적응기

    서울 촌놈 제주로 이직하다 나는 작년에 처음으로 제주 땅을 밟았다. 여행으로라도 한번쯤 다녀왔을 법도 한데 서른이 넘도록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제주도 한번 못 가봤다’는 말에 ‘서울 촌놈’이라며 친구들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제주에 정착하리라...
    Date2014.03.21 Views8731
    Read More
  8. 북극 도전 촬영기

    <북극 도전 촬영기> “성공할 확률 50%, 실패할 확률도 50%” 2005년 박스그랜드슬램 북극원정대는 캐나다의 최북단 이누이트 마을 레졸루트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출발에 앞서 마지막 장비 점검과 식량 그리고 여러 가지 기타 품목들을 점검하며 출발을 기...
    Date2005.07.11 Views8779
    Read More
  9. 잠 못 드는 취재 288시간

    수습 취재기자 동기들과 함께 서울지역 경찰서로 투입된 지 3일차, 나는 강남라인 배치 후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두 시간마다 라인 선배에게 특이사항과 경찰서를 돌며 알아낸 정보를 보고한다. 혼자서 ‘형님’이라 불리는 취재원 경찰들과 부딪치며 하루 1...
    Date2014.03.21 Views8906
    Read More
  10. No Image

    즐거운 장례식

    KBS 영상 취재부 최연송 기자 ( http://www.9ood.com ) 즐겁고 기쁜 장례식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 제가 갔다 왔습니다. 다름아닌 故 버다 홀트여사의 장례식이었습니다. 남편 해리 홀트와 함께 한 평생을 한국의 고아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다 가신...
    Date2003.02.24 Views8997
    Read More
  11. No Image

    아파트 촬영허가 받으셨어요?

    현장 속에서 현장1-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한 유명업체에서 지은 아파트의 처마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서 현장을 찾았다. 사고가 난 H아파트는 2년 전에 입주를 시작한 새 아파트였다. 사고가 난 처마는 가로 5 미터, 세로 1 미터, 깊이 1미터이고 총무게가 ...
    Date2006.05.16 Views9027
    Read More
  12. No Image

    일본러브호텔

    일본 러브호텔을 돌아보고 ( 2000년 10월 ) -------------------------------------------------------------------------------- KBS 영상 취재부 유민철 기자 지금 고양시에서는 러브호텔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시에서는 화들짝 놀라 이미 내 준 허가를 ...
    Date2003.02.24 Views9030
    Read More
  13. No Image

    몽골 취재기 1

    몽골 취재기 1 ( 2000년 1월 중 2주간) -------------------------------------------------------------------------------- KBS 영상 취재부 유민철 기자 지난 1월에 2주 동안 몽골에 출장을 다녀왔읍니다. 몽골과 한국의 교류를 중심으로 몽골의 이모저모를...
    Date2003.02.24 Views9074
    Read More
  14. 베이징과의 만남

    2008 베이징올림픽을 취재하고 베이징과의 만남 #1. 베이징으로 “내일 당장 출발해야겠다!” 동행하는 선배기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의 모습을 담기위해 비행기를 타기는 해야겠지만 마음에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직스...
    Date2008.09.26 Views9078
    Read More
  15. 6자 회담 취재, 이렇게 했습니다. "mpeg2 파일로 송출"

    “4개 사의 합의 통해 mpeg2 파일로 송출” 지난달 9일부터 13일까지 4박5일간 중국 북경에서 6자회담이 열렸다. 이번6자회담에서는 KBS, MBC, SBS, YTN 4개사가 HD카메라를 이용한 풀 취재를 하였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상황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취재와 인...
    Date2008.09.01 Views9117
    Read More
  16. No Image

    특집 EBS자연타큐멘터리 2부작 -개미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

    특집 EBS자연타큐멘터리 2부작 -개미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 개미 오는 3월 7, 8일 이틀간에 걸쳐 EBS에서 방송 예정인 자연다큐멘터리 ‘개미’는 일반 자연다큐와 달리 아주 작은 피사체를 다루고 있어 일반 렌즈로는 촬영이 불가능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따...
    Date2003.07.08 Views9152
    Read More
  17. 폭설취재기 - 1미터 눈폭탄 '진짜 난리예요'

    <1미터 눈폭탄 '진짜 난리에요'> - 2월 6일.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진다. 원주를 떠나 강릉에 발령난 지 불과 사흘째. 좀처럼 볼 수 없던 탐스러운 눈발에 잠시나마 감상에 젖어든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솜털 같은 하얀 눈이 도로 위에 쌓여간다. ...
    Date2014.03.21 Views9317
    Read More
  18. No Image

    충주예성여고 여섯시간의 인질극

    tvcamera@unitel.co.kr 난 오늘 인간 터미네이터 그들을 보았다. 검은색 방탄조끼에 소형무전기, 한 손엔 가스총, 다른 손엔 방망이. 세상 어떤 범죄와의 싸움에서 이길것 같은 강렬한 눈빛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런 터미테이터 들이 충주예성여고 인질 ...
    Date2003.02.24 Views9470
    Read More
  19. No Image

    故 조종옥 기자와 함께 한 5일

    故 조종옥 기자와 함께한 5일 ‘속보 - 한국인 13명 탑승한 항공기 캄보디아에 추락’ 나는 갑작스러운 출장 명령을 받고 캄보디아를 향하는 밤 비행기에 피곤한 몸을 싣는다. 탑승자 명단에 포함된 입사동기 조종옥 기자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 이들을 생각하...
    Date2007.07.23 Views9507
    Read More
  20.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지난 7월 28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취재를 위해 급히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
    Date2010.09.28 Views9605
    Read More
  21. 나로호 발사 순간을 기억하며..

    나로호가 발사되기 10분전.. 남열 해수욕장에는 대한민국의 우주 시대를 개막하게 될 나로호 발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반인들이 구비하기엔 비쌀 것 같은 길다란 망원경을 보는 사람, 여기저기 기념 사진 찍기에 바쁜 가족 및 연인들.. ...
    Date2009.10.16 Views965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