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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 유출 사태 취재기 Ⅱ>

절망의 태안 바다에서 희망의 햇살을 보다

 3주 만에 달콤한 휴식을 맛보고 있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푸른 녹차밭과 깨끗한 강이 보이는 시골 찻집.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 날이다. 오랜만에 친구와 수다가 이어지다 화제는 자연스레 태안으로 넘어갔다.

친구 : 태안 출장 잘 다녀왔어? 몸에 밴 기름때는 뺐어?

나 : 왜, 기름 냄새나? 와서 바로 깨끗이 씻었는데. 그런데 태안 기름 냄새 장난 아니었다.

친구 : 태안 상황은 뉴스에서 보는 거랑 같아? 우리 내년에 놀러갈 수 있을까?

나 :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걸. 글쎄, 내년에 갈 수 있으려나?

 내가 충남 태안으로 달려간 것은 기름이 유출 된 후 사흘이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다. 전북 전주에서 충남 태안까지 대략 2시간 이상을 달려 만리포 해수욕장에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진동하는 기름 냄새와 기름투성이가 되어버린 방제복을 입은 사람들 모습이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카메라를 들고 해변으로 갈수록 더 진해지는 기름 냄새와 새까맣게 변한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했던 첫마디는 “이거 장난 아니다!”였다.

 태안 지역 만리포와 천리포를 비롯해 모항항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동시에 방제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안가에서는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방제작업을 하고 있었고, 바다에서는 어선을 이용해서 오일펜스를 치고 동시에 방파제와 바다의 떠있는 기름을 걷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름띠의 확산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안면도까지 기름띠의 위협이 미치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그저 망연자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연일 메인뉴스는 태안으로 집중되어 있었고, 보도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접한 수 십 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태안으로 모였다.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도 이미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이 해안가로 가서 기름을 닦아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자원봉사자들을 취재하면서 인터뷰 했던 한명의 자원봉사자가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왔냐는 질문에 그 자원봉사자는 “여기에 이모가 사는데요... 방학만 되면 여기 해안가에 와서 놀았었거든요. 좋은 추억이 많은 곳인데, 다른 사람들도 저와 같은 추억을...”이라고 하며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카메라에 이 모습을 담고 있는 나 또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모인 수 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여기에 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들은 자신을 비롯해 타인들 그리고 미래의 우리 후손들을 생각하며 여기서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자원봉사자들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태안 앞바다는 점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커멓던 모래사장은 점점 하얗게 변해갔고 바다에 떠있던 까만 기름띠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손길이 모여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아쉬운(?) 출장을 마무리 하고 전주로 돌아오는 길. 피곤한 몸에 어느새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몇 년 전 태안에서 만들었던 좋은 추억이 생생하게 재연되었다. 그리고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아마도 나도 취재하면서 희망의 햇살을 봤던 것 같다.

최지환 / YTN 전주지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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