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올림픽을 취재하고
베이징과의 만남
#1. 베이징으로
“내일 당장 출발해야겠다!” 동행하는 선배기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의 모습을 담기위해 비행기를 타기는 해야겠지만 마음에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직스런 출발결정에 당황하면서도 서둘러 집으로 전화해 출장준비를 아내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우리는 어느새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덥고 습한 공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 쉽진 않겠군!’ 베이징의 첫인상은 그렇게 걱정 반, 호기심 반이었다.
#2. 베이징 사람들
넓은 도로와 원활한 소통으로 베이징의 교통상황은 평소에도 매우 양호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부제의 실시와 올림픽 관련차량의 전용도로제 실시라는 현지 코디의 설명을 듣고 불편해도 참는 베이징 시민들의 올림픽에 대한 성공개최의 열의가 느껴졌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지낼수록 그것은 중국인들의 당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공산당의 획일적인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은 당의 명령이 절대적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언론통제가 어디에서나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당의 명령에 의해 낡은 집이나 상점들은 올림픽을 선전하는 대형 가림판 뒤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물론 베이징 시내의 곳곳이 재개발과 재정비로 베이징 사람들이 희생을 무조건적으로 강요받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게앞에 대형 선전판이 가리고 있어 장사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의 경우 어느 누가 가만히 있겠는가를 생각해 볼 때 역시 당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절대적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당의 통제하에 중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고취되고 또한 어린시절부터 주입된 중화사상의 교육으로 자신의 민족에 자부심을 느끼며 민족에 반대되는 사람이나 집단은 철철하게 배척해야 되는 존재로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 우리나라와 관련된 동북아공정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베이징 시내 한복판에서 커다란 벽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한반도에서 안주하고 있을 때 주변 열강들은 항상 우리를 노리고 있음에 우리 모두가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3. 중국의 음식
중국은 그 땅덩어리 만큼이나 음식에 대한 가지 수와 요리방법이 다양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위생관념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베이징에서의 생활이 나에겐 쉽지만은 않았다. 사실 처음엔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하거나 일로인하여 체류를 해야 할 땐 그 나라의 음식을 먹으며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며칠 동안은 중국음식을 선호했었다. 하지만 어느 식당에서 들어갈 때부터 느껴진 이상한 냄새는 결국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비위가 상한데다 메뉴판에 나온 머리 달린 비둘기 요리는 당장이라도 그곳을 뛰쳐 나가고 싶게 만들었다. 홍콩에 여러번 다녀왔지만 그곳에선 자라탕을 제외하곤 느껴보지 않은 괴로움이라 정말 며칠은 상당히 힘들었다.
#4. 짝퉁시장
올림픽이 열리던 베이징 시내의 표정을 담아오던 우리는 중국의 짝퉁시장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이태원이나 남대문에서도 몰래 접할 수 있는 짝퉁은 중국에선 올림픽 전엔 거의 내놓고 팔다시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중국 짝퉁시장에 단속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했고 상인들은 조심스런 반응이었다. 베이징의 짝퉁상점이 밀집되어 있는 곳 중에 한곳인 ‘슈슈이제’를 들어가니 조용한 목소리로 ‘프라다!’,‘구찌!’라는 말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 일단 한번 보자!’ 상점으로 들어가니 책자를 보고 고르란다. 한참을 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선택하니 한 남성이 물건을 갖고 왔다. 물건은 남자인 내가 봐서는 도저히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래! 좋다!’ 바로 가격흥정에 들어갔다. 물론 손에 들린 소형 카메라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부른 가격 중국돈 1800원..... 두사람 사이에 머리싸움이 시작되었다. 내가 제시한 가격 600원..... 펄적펄적 뛰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봅시다.’ 나가려고 하니 일단 1400원으로 가격이 내려갔다. ‘그래도 물러서면 안돼지!’ 다시 600원을 제시하고 나가려고 하자 가격이 1000원까지 내려갔다. 이번엔 조금 양보해서 700원.... 결국 몇 번의 흥정에 750원에 합의를 봤다. 두 번째 상점에선 아예 밖으로 나가자고 하더니 여행용 가방 몇 개를 가지고 와서 흥정을 시작했다. ‘어라! 이거 점점 재밌어지네!’ 열심히 물어보고 다시 흥정도 시작 되었다. 그들은 물건을 팔기위해 열심히 설명했고 난 열심히 그들이 알지 못하게 취재하고 있었다.
송출을 하고 뉴스가 나가는 것을 인터넷으로 확인한 후 다시 한번 생각하니 짝퉁시장에 열광하는 우리네 모습에 조금은 씁쓸했다. 일본인의 경우 짝퉁시장에 오지도 않는다는 것을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선배로부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짝퉁이 팔린다는 것은 우리들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허영심에서 출발하는 그릇된 행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5. 베이징! 안녕!
길고긴 출장이 끝나갈 무렵 나는 이도시를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레임과 길었던 시간이지만 베이징과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도 마지막날 열리는 경기를 관전하려 주경기장으로 몰려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베이징올림픽을 아쉬워하고 있는 듯 했다.
폐막일 다음날 공항엔 출국하려는 기자들과 관광객으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입국하던날 반갑게 맞이해 주던 안내봉사요원들도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었는지 분주해 보였다.
이번 대회를 취재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났다.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에 좋아하던 교민들! 또 단 1패도 없이 결승에서 쿠바를 누르자 경기장 주위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환호하던 우리 동포들! 또 판정시비를 딛고 일어나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우리의 아줌마 핸드볼 군단의 투혼이 베이징을 떠나며 인천으로 향하는 배행기에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손엔 나를 기다리는 아들에게 건네줄 올림픽 마스코트 징징이를 들고서…
조성범 / OBS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