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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눈물과 감동의 2박 3일 - 추석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다녀와서

공교롭게도 작년에 이어 다시한번 금강산에 다녀올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난해 615공동선언 8주년 행사가 금강산에서 치러진지 한 달 만에 박왕자 씨 피격 사망사건이 발생해 지금껏 관광이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처음으로 공동취재단이 금강산을 다시 방문하게된 것이다. 2년 만에 재개된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지난 9월 26일부터 엿새 동안 두 차례로 나뉘어 이루어졌고, 2차 상봉단으로 북측가족 99명을 만났던 남측 가족 420여명과 이번 짧은 여행을 함께하게 되었다.

여섯 개의 방송사가 함께하는 풀 카메라기자단 역시 둘로 나뉘어 교대로 방북하였다. 출발하기에 앞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은 바로 송출문제였다. 지금껏 금강산에서 이루어진 행사를 취재할 때는 주로 북측 현장에 중계차를 두고 수시로 위성송출을 해왔다. 그러나 송출과정에서 북한 당국이 영상을 모니터하고 노골적으로 개입하기도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였고, 게다가 남북관계 역시 이전보다 순탄치만은 않은 상황에서 문제없이 이번 취재를 진행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우리측 정부와 취재단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남측 동해선 출입국사무소에 중계차를 두고 북측 현장으로부터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통일부 행낭을 통해 그림을 운반하기로 결정되었다. 앞으로의 취재에서도 있을 북측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노력의 선례를 만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우리 카메라기자들의 입장에서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북측 땅에서 회사와는 물론 중계 포인트와도 사실상 연락이 두절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담은 한층 가중된 셈이었다.

남북의 가족들이 처음 만나게 된 장소는 지어진지 1년여 만에 제 역할을 하게 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였다. 앞서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약속은 미리 사례로 정한 가족들을 취재할 때 정해진 테이블의 번호표를 먼저 촬영하는 것이었다. 이들 가족들의 첫 상봉장면은 각 사별로 뉴스 특보를 통해 송출과 거의 동시에 방송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제작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상봉장에서는 방송사 세 팀이 몇 가족씩 사례를 나누어 곳곳을 취재하기로 했다. 특보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되도록 커트를 나누기보다는 얼싸안고 흐느끼는 모습부터 오고가는 대화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상봉이 시작되자 면회소 전체는 그야말로 울음바다였다. 지금껏 자료로만 보아오던 광경이 뷰파인더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에 흥분되기도 했고 흐느끼는 가족들과 함께 감격에 젖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 뒤섞였다.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아버지와 딸, 언니와 동생 그리고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가족들까지 상봉장은 눈물어린 사연들로 가득했다. 취재를 위해 정신없이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다가도 가족들에게 다가가면 어느덧 우리역시 그들의 일원이 된 듯 몰입하였다. 한편 취재를 불편히 여기는 가족들도 있었다. 촬영하고 있는 취재진에게 찍지 말라며 화를 내는 북측 할아버지와 카메라를 들이대자 갑자기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대화를 꺼내는 할머니를 보며 어쩌면 우리의 취재가 반세기만의 천금 같은 그들의 만남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더욱더 조심스럽고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취재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마련된 저녁 만찬. 북측 기자들과의 술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조선중앙통신사의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같은 일을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다른 성격의 일을 하는 사람들 간의 만남. 처음은 어색했지만 몇 차례 오고가는 술잔에 금세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그들은 남한 사정에 놀랍게도 정통한 편이었고 대화도 아주 잘 통했다. 나이가 훨씬 지긋했지만 우리에게 꼬박꼬박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여줬고 농담도 곧잘 했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최대한 정치적인 주제의 대화는 피하려고 우리 모두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다. 묻고 싶은 게 참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아직은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남북 간의 벽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자리 덕분에 다음날부터 현장에서 그들과 마주쳤을 때는 서로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안부도 묻게 되었다. ‘우리는 일단 만나야한다’ 고 했던 어느 통일운동가의 말을 세삼 실감하게 되었다.

두 번째 날은 야외상봉이 예정되어 있었다. 1차 상봉 때에는 날씨 문제로 열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취재진들의 관심이 쏠려있었다. 외금강호텔 옆 잔디밭에서 가족들끼리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은 야외상봉은 보도된 대로 ‘가족소풍’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가족들이 그렇게 흥겹게 노래를 열창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노랫소리가 퍼져 나오는 곳을 따라 정신없이 카메라를 움직이다 제주가 고향이라는 북측 할아버지의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그대로 담아냈다. 울음에 목 메이며 부르는 그리운 남쪽나라 고향의 노래. 어느새 모두가 함께 목이 메여오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예정된 이별 그리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이었기에 작별상봉의 분위기는 전날과 달리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간 찍은 사진들을 정성스레 쓴 편지와 함께 교환하고 족보를 가져와 서로 확인하고 맞추어보는가 하면 마지막 상봉이라는 생각에 만나자마자 서럽게 우는 가족들도 있었다. ‘언니 고마워.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아줘서…’ 무선마이크 너머로 들려오는 두 자매의 대화는 어떤 슬픈 영화보다도 더 극적이고 안타까웠다. 한 시간여의 작별상봉이 끝나고 북측 가족이 먼저 떠나야 하는 시간이 됐다. 앞으로 취재를 하면서 눈물을 흘려볼 경험을 얼마나 하게 될까. 버스에 타 기다리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위해 뛰어나오는 남측의 가족들. 차창사이로 손을 부여잡으며 오열하는 그 모습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가족들도 기자들도 그야말로 모두가 함께 울었던 마지막 날의 아침이었다. 여기서 우리의 취재도 모두 끝이 났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제껏 그저 숙소인 외금강호텔과 면회소 정도만을 오갔을 뿐, 정작 금강산의 절경은 제대로 구경해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삼일포나 주변의 경치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루빨리 관광이 재개되고 이산가족들의 만남도 면회소에서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비치는 북녘의 모습은 무척 황량했다. 바위산과 민둥산, 옥수수 밭과 멀리 간간히 보이는 주민들은 마치 이국적인 풍경인양 창문 밖을 스쳐갔다. 남과 북의 각 출입국사무소를 지날 때마다 모든 짐을 검사받고 복잡한 절차를 거친 후에야 다시 남한으로 귀환할 수가 있다. 정작 금강산에서 속초간의 거리는 차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데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남과 북의 마음의 거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분단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기자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분단의 아픔을 몸소 느끼게 해준 소중한 추억을 금강산에 남겨둔 채 우리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최 진 영 mbn 영상취재부 / haveno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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