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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다사다난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산이나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히말라야 원정을 지원했다. 하지만 등산화를 신고 오르는 두 번째 산인 안나푸르나는 나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네팔 히말라야 중앙부 간다크지구에 위치한 해발 8091m의 이 거대한 봉우리는 힌두어로 ‘풍요의 여신’을 뜻한다. 높이는 세계 10위에 지나지 않으나 주목을 끌게 된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단 1차례도 정복되지 않았던 세계최초의 8000m급 처녀봉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카투만두로 향하며 구름위로 솟은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저 산을 오른다는 생각보다는 멋진 광경에 마음이 들떴다. 카투만두를 느끼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작은 비행기를 타고 휴양도시 포카라로 이동했다. 귀를 막을 솜을 주는 스튜어디스가 움직이기에는 너무 좁은 통로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밖을 내다보니 자를 대고 선을 그어 놓은 듯이 산들이 밑은 황토색, 위는 하얀색으로 나뉘어져 있다.

포카라에서 묵을 숙소에 들어서니 도마뱀이 우리를 반긴다. 시차는 3시간 15분 정도. 그다지 잠을 이루는 데 어려움은 별로 없다. 다음날 포카라에서 레떼, 따또바니 등 지점을 거치며 버스로 이틀을 달린다. 버스 두 대가 서로 마주보았을 때는 난감하다. 계곡 쪽으로 비켜가는 버스에서 절벽을 내려다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실질적으로 등반의 지점은 버스에서 내려서부터 시작된다. 버스에서의 메스꺼움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이란 생각과 아무래도 걷는 것이 여유로울 거라는 예상으로 등반을 시작하지만 첫 발걸음을 내딛으며 ‘버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고도계가 달린 시계가 해발 2500m정도를 가리킨다. 베이스캠프는 해발 4600m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중간에 넘어야할 뚤루부긴이란 고개가 해발 5400m정도라고 하니 다들 처음 온 사람들은 고소증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등반을 시작해서 3박 4일에 걸쳐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오전 7시쯤 아침을 먹고 촬영을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30분 정도 먼저 출발한다. 한참을 걸으며 함께 짐을 들어주는 포터와 짧은 영어로 대화를 해본다. 베이스캠프까지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는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네팔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잠을 걷다가 좋은 자리에 카메라를 놓고 등반대를 기다린다. 그들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면 촬영을 시작해서 가 다시 좋은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몇 번을 하면 해가 지는 저녁 6시쯤까지 몇 컷을 건질 수 있다. 그렇게 3일을 계속 걷는데 자기 페이스를 잃으면 고소가 오기도 한다. 함께 갔던 취재기자, 촬영기자 선배가 몸 상태가 약간 좋지 않아서 고생을 했다.

마지막 날 베이스캠프에 오후 1시쯤 도착을 했다. 시차를 생각해봐도 9시 뉴스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송출 상태를 아직 확인해보지 않아서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등반대가 도착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취재기자의 스탠드 업을 하고 나서 바로 컴퓨터에 연결하여 NLE로 편집을 시작한다. 일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정신이 없다. 송출을 시작하니 그나마 예상했던 것보다는 위성 송출이 좀 빠른 것 같아서 숨을 돌리자 베이스캠프와 웅장한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정신없이 첫 번째 9시 뉴스 리포트를 마무리 했다.
8000m급 산에 오르는 일은 베이스캠프에서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3일에 걸쳐 중간에 캠프들을 구축하고 마지막 캠프에서 새벽0시에서 1시 사이 정상공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보도팀은 ABC라 불리는 곳, 해발 5600m정도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이상은 장비도 없고 경험도 없어 무리였다. 첫 번째 정상시도를 며칠에 걸쳐 촬영을 하며 리포트를 했다. 하지만 첫 시도는 심한 화이트 아웃, 눈보라로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보여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날씨 탓에 무산되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날씨가 좋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단조롭고 지루하다. 짐이 될까 두 권만 들고 온 책은 이미 손을 떠난 지 오래다. 날이 가면서 등반대는 약간의 초조함이, 언론사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약간의 의심이 생긴다. 하지만 사람들과 지내는 일들은 그리 나쁘진 않다.
두 번째 시도를 하기로 결정했다. 셀파들은 날씨가 좋지 않고 겨울이 가까워져 내심 걱정을 한다. 이래저래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은선 대장을 비롯한 등반대의 의지는 확고하다. 우리는 영웅을 만들기보다는 그저 그 느낌을 전하려 노력해본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 일하기란 쉽지 않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근육이 금방 피로해지는 걸 느낀다. 게다가 발전기는 아마도 높은 기온차이에 따른 결빙현상이나 높은 고도 등으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별로 없고 머리는 술 먹은 다음날처럼 빙빙 돌아가고.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리포트를 보낸다. 하지만 마지막 리포트는 ‘실패’였다. 오은선 대장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의 보도는 성공이었다. 그만큼 이 곳 상황을 잘 모르는 본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힘들지만 노력한 선배들의 결실이라 생각된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는 그리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하지만 말이나 글로는 알 수 없는 직관적인 산의 기운이랄까 하는 것을 촬영기자로서 경험했다는 것은 나를 믿고 보내준 선배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힘들긴 하지만 누군가의 표현을 빌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면 후회하고 안 가면 더 후회한다는 것.

김성현 / KBS 영상취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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