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나는 사실 다사다난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산이나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히말라야 원정을 지원했다. 하지만 등산화를 신고 오르는 두 번째 산인 안나푸르나는 나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네팔 히말라야 중앙부 간다크지구에 위치한 해발 8091m의 이 거대한 봉우리는 힌두어로 ‘풍요의 여신’을 뜻한다. 높이는 세계 10위에 지나지 않으나 주목을 끌게 된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단 1차례도 정복되지 않았던 세계최초의 8000m급 처녀봉이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카투만두로 향하며 구름위로 솟은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저 산을 오른다는 생각보다는 멋진 광경에 마음이 들떴다. 카투만두를 느끼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작은 비행기를 타고 휴양도시 포카라로 이동했다. 귀를 막을 솜을 주는 스튜어디스가 움직이기에는 너무 좁은 통로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밖을 내다보니 자를 대고 선을 그어 놓은 듯이 산들이 밑은 황토색, 위는 하얀색으로 나뉘어져 있다.

포카라에서 묵을 숙소에 들어서니 도마뱀이 우리를 반긴다. 시차는 3시간 15분 정도. 그다지 잠을 이루는 데 어려움은 별로 없다. 다음날 포카라에서 레떼, 따또바니 등 지점을 거치며 버스로 이틀을 달린다. 버스 두 대가 서로 마주보았을 때는 난감하다. 계곡 쪽으로 비켜가는 버스에서 절벽을 내려다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실질적으로 등반의 지점은 버스에서 내려서부터 시작된다. 버스에서의 메스꺼움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이란 생각과 아무래도 걷는 것이 여유로울 거라는 예상으로 등반을 시작하지만 첫 발걸음을 내딛으며 ‘버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고도계가 달린 시계가 해발 2500m정도를 가리킨다. 베이스캠프는 해발 4600m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중간에 넘어야할 뚤루부긴이란 고개가 해발 5400m정도라고 하니 다들 처음 온 사람들은 고소증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등반을 시작해서 3박 4일에 걸쳐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 오전 7시쯤 아침을 먹고 촬영을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30분 정도 먼저 출발한다. 한참을 걸으며 함께 짐을 들어주는 포터와 짧은 영어로 대화를 해본다. 베이스캠프까지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는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네팔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잠을 걷다가 좋은 자리에 카메라를 놓고 등반대를 기다린다. 그들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면 촬영을 시작해서 가 다시 좋은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몇 번을 하면 해가 지는 저녁 6시쯤까지 몇 컷을 건질 수 있다. 그렇게 3일을 계속 걷는데 자기 페이스를 잃으면 고소가 오기도 한다. 함께 갔던 취재기자, 촬영기자 선배가 몸 상태가 약간 좋지 않아서 고생을 했다.

마지막 날 베이스캠프에 오후 1시쯤 도착을 했다. 시차를 생각해봐도 9시 뉴스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송출 상태를 아직 확인해보지 않아서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등반대가 도착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취재기자의 스탠드 업을 하고 나서 바로 컴퓨터에 연결하여 NLE로 편집을 시작한다. 일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정신이 없다. 송출을 시작하니 그나마 예상했던 것보다는 위성 송출이 좀 빠른 것 같아서 숨을 돌리자 베이스캠프와 웅장한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정신없이 첫 번째 9시 뉴스 리포트를 마무리 했다.
8000m급 산에 오르는 일은 베이스캠프에서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3일에 걸쳐 중간에 캠프들을 구축하고 마지막 캠프에서 새벽0시에서 1시 사이 정상공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보도팀은 ABC라 불리는 곳, 해발 5600m정도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이상은 장비도 없고 경험도 없어 무리였다. 첫 번째 정상시도를 며칠에 걸쳐 촬영을 하며 리포트를 했다. 하지만 첫 시도는 심한 화이트 아웃, 눈보라로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보여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날씨 탓에 무산되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날씨가 좋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단조롭고 지루하다. 짐이 될까 두 권만 들고 온 책은 이미 손을 떠난 지 오래다. 날이 가면서 등반대는 약간의 초조함이, 언론사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약간의 의심이 생긴다. 하지만 사람들과 지내는 일들은 그리 나쁘진 않다.
두 번째 시도를 하기로 결정했다. 셀파들은 날씨가 좋지 않고 겨울이 가까워져 내심 걱정을 한다. 이래저래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은선 대장을 비롯한 등반대의 의지는 확고하다. 우리는 영웅을 만들기보다는 그저 그 느낌을 전하려 노력해본다. 하지만 히말라야에서 일하기란 쉽지 않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근육이 금방 피로해지는 걸 느낀다. 게다가 발전기는 아마도 높은 기온차이에 따른 결빙현상이나 높은 고도 등으로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별로 없고 머리는 술 먹은 다음날처럼 빙빙 돌아가고.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 리포트를 보낸다. 하지만 마지막 리포트는 ‘실패’였다. 오은선 대장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의 보도는 성공이었다. 그만큼 이 곳 상황을 잘 모르는 본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힘들지만 노력한 선배들의 결실이라 생각된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는 그리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하지만 말이나 글로는 알 수 없는 직관적인 산의 기운이랄까 하는 것을 촬영기자로서 경험했다는 것은 나를 믿고 보내준 선배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힘들긴 하지만 누군가의 표현을 빌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면 후회하고 안 가면 더 후회한다는 것.

김성현 / KBS 영상취재국

  1. 금강산, 눈물과 감동의 2박 3일

    금강산, 눈물과 감동의 2박 3일 - 추석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다녀와서 공교롭게도 작년에 이어 다시한번 금강산에 다녀올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난해 615공동선언 8주년 행사가 금강산에서 치러진지 한 달 만에 박왕자 씨 피격 사망사건이 발생해 ...
    Date2009.11.13 Views9698
    Read More
  2.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아들아.’ 이 말을 듣고도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뉴스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런 이 말을 나는 현장에서 직접 듣고 있었다. 미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 한마저 느껴지는 가족의 목소리...
    Date2010.05.14 Views9734
    Read More
  3. '후쿠시마 그 곳에서 일본을 보다'

    “후쿠시마 그곳에서 일본을 보다“ 다시 갔다. 솔직히 꺼림직 했으나 취재를 위해 7개월 만에 다시 찾아 간 후쿠시마는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들이었다. 동일본 대지진 직후 원전 폭발로 인해 발생된 피해와 사회적 두려움이 가득했던 지난 2월과는 사...
    Date2013.12.17 Views9808
    Read More
  4.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지난 7월 28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취재를 위해 급히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
    Date2010.09.08 Views9970
    Read More
  5. 쇄빙선 아라온호의 한계와 희망

    쇄빙선 아라온호의 한계와 희망 신동환/ SBS 영상취재팀 아직 활동하고 있다는 눈 덮인 활화산인 멜버른 산과 희고 긴 얼음 협곡, 대륙의 산맥들, 빙하가 지나간 거대한 자리,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는 타국의 기지들. 남극 대륙에서의 취재 마지막 날 헬기를 ...
    Date2010.04.16 Views10061
    Read More
  6. No Image

    충주 예성여고 인질극

    충주지역은 작년에 구제역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끈 지역이기도 하다 올해는 지난 17일 예성여고의 인질사건으로 또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다 TV 카메라 기자를 하면서 1년에 힌번씩 국짓한 뉴스를 경험하는것도 복받은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17일...
    Date2003.02.24 Views10066
    Read More
  7. 쉽게 허락없는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나는 사실 다사다난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산이나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히말라야 원정을 지원했다. 하지만 등산화를 신고 오르는 두 번째 산인 안나푸르나는 나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네팔 히말라야 중앙부 간다크지구에 위치...
    Date2009.12.15 Views10080
    Read More
  8. 혼돈의 시간과 정지된 시각

    혼돈의 시간과 정지된 시각 -해군 제 2함대 취재기-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이 마무리된 지 일주일 남짓. 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평택이었다. 언론사에 입사해 뉴스를 만든 지 이제 5개월 남짓밖에 안된 수습기자에게, 이는 너무나 가혹한 소식이 ...
    Date2010.05.14 Views10089
    Read More
  9. '카메라기자 수난시대’ 쌍용차사측, 기자폭행…경찰은뒷짐

    “쏵 다 밀어 붙여!~” 멀찌감치 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급히 카메라 렌즈를 격앙된 함성에 초점을 맞추며 앵글을 잡았다. 곧 마스크, 복면,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 손에는 각 각 쇠파이프, 빗자루, 나무막대기, 물병, 돌을 움켜 쥔 겉보기에 수백 ...
    Date2009.10.16 Views10091
    Read More
  10. 백령도 그 침묵의 바다 앞에서

    그 침묵의 바다 앞에서 천안함이 바다에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를 모니터 하다가 귀에서 맴도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백령도 수심 20m 부근에 침몰하였다"라는 기자의 목소리... 이 소리가 나를 움직이게했다. 수심20m면 스쿠버다이빙으로 얼마든지 내...
    Date2010.05.14 Views10095
    Read More
  11. 필리핀취재기 - 죽음의 도시 '타클로반'을 가다.

    죽음의 도시 ‘타클로반’을 가다. 겹쳐 쓴 마스크 사이로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라져버린 마을을 멍하게 바라보다 다시 길을 걷는데 거리마다 널브러진 주검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적때기라도 둘러놓은 것은 그나마 참을만했다. 다리를 벌리고 석고...
    Date2013.12.17 Views10103
    Read More
  12. 강제병합 100년 사할린 취재

    출장 다이어리 ♬~~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어떻게 잊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세월가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불과 3시간 거리의 땅 사할린, 그곳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우리에...
    Date2010.11.04 Views10107
    Read More
  13. 필리핀취재기 - 전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

    탕! 탕! 타클로반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두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다리를 향해 긴박한 표정으로 걷던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해서 뛰는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차를 돌리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 취재차량도 차를 돌렸다. 길에서 뛰던 ...
    Date2013.12.17 Views10200
    Read More
  14. 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아이티 참사

    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아이티 참사 신봉승 / KBS 보도영상팀 아이티는 가는 길도 멀었다. 서울에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까지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네 번 갈아탔고, 여섯 번의 기내식을 먹어야 했으며 도미니카공화국 공항에서 육로로 10시간을 달려서...
    Date2010.02.23 Views10236
    Read More
  15. 김길태 사건 취재기

    “길태다.” 2010년 3월 10일 15:00경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 인근에서 김길태가 붙잡힌다. 경찰이 이양실종사건의 용의자로 김길태를 지목하고 공개수사로 전환한지 8일,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지 4일만이다. 김씨의 흔적을 찾아 사상구를 헤매던 기자들이 급히 ...
    Date2010.05.14 Views10366
    Read More
  16. WBC 그 '위대한 도전'의 현장을 가다

    제목 없음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 제1회 WBC 출전 선수들보다 투타에서 한 수 아래로만 여겨졌던 제2회 WBC 선수들이 전대회의 4강 신화를 넘어 준우승이란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금의환향했다. 나는 운 좋게도 그들이 준우승 신화...
    Date2009.04.14 Views10368
    Read More
  17. 독도 탐방기 - 기술과 자연의 만남

    독도 탐방기 “독도 좀 다녀와라!” 언제나 그렇듯이 갑작스레 출장 명령이 떨어졌다. 입사 후 이상하게도 울릉도 독도 출장의 기회가 없었던 터라 내심 즐거운 마음으로 출장 준비를 시작했다. 내게 부여된 미션은 헬기로 독도에 상륙해서 주변 상황을 스케치...
    Date2013.12.17 Views10384
    Read More
  18. 여수엑스포 취재기

    여수엑스포 취재기 – KBS 순천방송국 서재덕 2002년 12월 3일 모나코 현지. 올림픽, 월드컵만큼이나 국제적인 행사로 꼽히는 세계박람회의 2010년 개최지가 결정되는 순간. 큰 기대감이 순식간에 탄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수시가 탈락하고 중국 상하이...
    Date2012.07.25 Views10386
    Read More
  19. 중국 자국(自國)만의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취재하고 중국 自國만의 올림픽 2008 베이징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안전 강조와 철저한 통제 속에 외형적으로 한없이 화려했던 올림픽.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환경오염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
    Date2008.09.26 Views10437
    Read More
  20. 남극 세종 과학 기지에서 느낀 것... "공부가 필요해!"

    남극 세종 과학기자에서 느낀 것 … "공부가 필요해!" 광활한 자연과 작은 인간들이 펼치는 무대 남극 과학기지 최근에 사람들 사이에서 탐험과 야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그런 관심 속에 가장 대표적인 와일드 라이프가 바로 남극 대륙과 그에 연관...
    Date2006.02.15 Views10443
    Read More
  21. 여수 대림산업 화재현장

    여수 대림산업 화재현장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는 중 갑자기 막내 기자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여수산단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나 수십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비보였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회사로 와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출동했다. ...
    Date2013.06.04 Views1044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