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D-4)
여행용 캐리어를 꺼내 주섬주섬 짐을 담는다. 작년 늦가을 첫 취재 때는 가벼운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갔던 것 같은데, 3번째가 되니 한겨울이 되어버렸다. 옷이 그만큼 두꺼워 졌으니 짐도 자연스레 늘 수밖에...
늘 내려갈 때 마다 출장기한은 5일+a 다. 5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5일짜리 출장이야 우리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늘 5일 옆에 붙어있는 +a 가 문제다. +a가 수십 일이 되진 않지만 단지 확신이 없는 기간이 불안하다고 할까?
27일 (D-3)
여수공항에 비행기가 내리고 창밖을 보니 바람이 많이 분다. 을씨년스럽게도 하늘도 우중충 하고, 약한 눈발도 날린다. 하늘이 황금 같은 일요일, 게다가 생일에 출장을 가는 내 마음 같다. 나로우주센터 주차장에 마련된 KBS 취재 부스에 장비를 풀고 내일부터 시작될 보도를 위해 사전 점검에 들어갔다. 3번 반복되다 보니 이젠 1시간 만에 척척이다. 2차 때 말썽이었던 편집기도 이번에는 쌩쌩 잘도 돌아간다.
28일 (D-2)
냉정하게 말해 나로호 발사는 나로호가 쏘아질 하늘 저 멀리 만큼이나 이미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미래의 우주강국 보다는 현재의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과 그녀의 인수위원회에 귀를 세웠고, 언론의 뉴스 또한 앞으로 꾸려질 새 정부에 맞춰 있다. 그래서 뉴스의 양도 줄어 오늘은 나로호의 기립과 관련된 뉴스 1꼭지. 하지만 슬프게도 양이 줄었다고 취재의 양이 준 것은 아니다. 1,2차 때와 마찬가지로 배를 타고 발사대 가장 가까운 암초위로 올라갔다. 매번 올라갔던 암초였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해경에서 육지로 올라갈 것을 요청했다. 이왕 올라간 암초이니 기립까진 취재하고 얌전히(?) 배를 타고 나왔다.
우주센터로 복귀하니 우리가 무단으로 나로 발사대 근처까지 갔다는 이상한 소문이...
29일 (D-1)
발사 하루 전, 우주센터는 날씨도 쾌청하고 태풍전야처럼 고요하다. 마음은 이미 발사 성공 후 집으로 향하고 있다. 새로울 것도 전혀 없는 1,2차와 반복된 취재일정. 3번에 걸쳐 선발대로 내려와 후발대로 올라갔던 나에겐 나로 우주센터는 대한민국 우주강국의 전초기지가 아닌 외로운 남쪽나라일 뿐이다.
30일 (D-day)
이른 아침 우주센터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나로호 모형 위 까마귀가 앉아 까악 거리기 시작했다. 10분여 목 놓아 울어대는데 불안함이 엄습했다. 어찌나 까마귀 소리가 구슬프던지 또 다시 실패하려나 보다 하고 있는데, 동기의 한마디 “제일 중요한 1단 발사체는 러시아 꺼잖아, 외국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래~ 오늘은 성공하나 보다.”
울어댄 까마귀 때문이었을까? 예정된 발사시간 나로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나로호 삼수 만에 SKY 입성’ 이라는 조소 섞인 말도 있었지만, 가을부터 해 넘어 한겨울까지 나로호를 취재했던 취재진의 한사람으로서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항우연의 조광래 단장이 발사성공 전까지 공황장애를 앓을 정도라 하니, 연구진의 발사에 대한 갈증이야 어느 국민들보다 간절했을 거다.
물론 100여명의 취재진들도 마찬가지, 이제 고흥은 안녕이다. (2020년 유인우주선 발사 전까지만//)
윤성구 KBS보도영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