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영상취재는 참 할 짓이 못 된다.
토요일 오후 3시. 헬기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 바쁜 토요일이다.
오후 편집회의를 마치고 내려오는 선배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갑자기 군산으로 출장을 가야 한단다.
우리에게 '갑자기'는 늘 가까이 있는 단어여서 놀랄 일도 아니다.
가방엔 양말, 속옷, 간단히 세면도구가 늘 준비되어 있다.
군산에서 무려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선박화재 사건이 발생 했다.
라이브 송출 장비를 챙기고 일단 현장으로 출발하면서 기사를 검색한다.
새벽에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선원들이 자체적으로 진화를 시도하다가 화재 신고가 늦어지면서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고였다.
사고는 수습되었고, 사망 선원들은 이미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결국 8시 뉴스는 장례식장에서 중계차를 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오후 6시 30분. 군산에 도착했다. 빈소도 아직 제대로 차려지고 않은 상태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가족들이 하나 둘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서둘러 8시 뉴스용 밑그림을 촬영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 일은 참 할 짓이 못 된다.
오늘 새벽까지 바다에서 그물을 끌어올리던 강인한 남성들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주검이 되어
이곳에 누워있다는 생각이 들자, 허망하고... 안쓰럽고...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영정 사진을 하나 하나 찍고 있는데 멀리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꺼억, 꺼억...아아.... 아.들.아..."
망자의 어머니가 도착했나 보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차례다.
그 어머니의 슬픔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다리가 풀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노인을 망자의 형처럼 보이는 사내가 부축하고 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촬영한다.
주저앉아 소리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촬영한다.
간신히 어머니를 부축하는 가족들을 촬영한다.
슬.프.다.
빈소로 들어가는 길에 형처럼 보이는 사내가 쾡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그만 하이소..."
말없이 카메라를 내리고 그에게 크게 목례하며 죄송함을 표현한다.
빈소에 도착한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을 보고는... 쓰러지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안된다며... 못보낸다며... 악다구니를 쓴다.
다시 내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빈소 멀찌감치에 트라이포드를 세우고, 줌으로 당겨 목놓아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찍는다.
내가 그곳에 있는 이유는, 바로 이 허망한 죽음에 슬퍼하는 유족을 촬영해 방송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벌써 7시30분. 뉴스 시작 30분 전이다. 반드시 이 슬픈 순간을 촬영해야 한다.
숨소리 조차 조심스러워하며 촬영을 계속한다.
그때, 조용한 경고를 보냈던 망자의 형이 멀리 있는 나를 발견한다.
"찍지 말라고 그랬지!!" 분노가 가득한 고함이다.
최소한의 예의를 보였던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다.
조용히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간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크게 목례하며 사과한다.
"아까 분명 그만 하라고 했지!!!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그리고 그건 진심이다.
다른 조문객들이 달려들듯 분노에 찬 그의 팔을 잡아 당기며 말린다.
다행히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슬픔에 빠진 어머니를 달랜다.
조용히 카메라를 집어 들고, 말없이 빈소를 빠져 나온다.
중계차에서 영상을 송출하며 회사에 전화한다.
어머니의 얼굴이, 망자의 형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게 완벽한 모자이크 처리를 요청한다.
장례식장에서 해야 할 나의 일이 끝났다.
담배를 끊은 지 5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담배가 많이 피고 싶어진다.
큰 한숨을 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어느새 별이 참 많이도 떠 있다.
그리고 보니 여기는 서울이 아닌 군산이다.
오랜만에 전라도에 왔으니 맛있는 저녁이나 먹어야겠다.
스마트폰에 '군산 맛집'을 검색한다.
스스로가 참 한심하고 불쌍하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밥 먹으러 가기 전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망자에게 인사는 드려야겠다.
그리고 다신 한번 그의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겠다.
정상보 SBS 영상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