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04 03:45

다시 찾은 연평도

조회 수 1113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다시 찾은 연평도                  

3월 8일 오후, 연평도를 향하는 여객선. 배 안 곳곳에 세워져있는 트라이포드와 장비가방들, 그리고 좌석에 놓여있는 타사 카메라들. 익숙한 풍경이었다.
2년 4개월 전, 연평도에 들어가기 위해 해경경비정에 올랐던 때와 유사한 풍경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늘어난 매체와 새로운 장비들. 아직 익숙지 않은 종편의 취재진들과 무겁디무거운 MNG 장비.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때를 생각하고 있자니 당시 내 옆에서 멀미 때문에 고생하던 홍병국 선배의 말이 기억났다.
저기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면 넌 들어갈 수 있겠냐고 선배가 물었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본인은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당장 들어가겠다고 하셨다. 그땐 아이가 없던 나에게, 이젠 아내 뱃속의 태아까지 생각하면 벌써 두 애가 생긴 지금, 만약 내 옆에 다른 후배가 있다면 그때의 홍선배처럼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저기 불바다로 나는 바로 뛰어들겠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 2010년에 도착했던 그 부두로 내가 탄 여객선은 다가서고 있었다.
2010년도엔 언론사 중 가장 먼저 연평도에 입도한 김대원 선배가 1톤 트럭을 끌고 와 날 반갑게 맞아줬듯이 이번에도 전날 미리 들어와 취재 중이던 이상원 선배가 날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하지만 연평도를 열 번을 넘게 드나들었다는 이상원 선배의 안내에도 난 그저 낯설 뿐이었다. 그때의 연평도는 주민도 다 떠나고 없었고 식당이든 민박이든 문 연 곳이 없었다. 당시 우리 취재진은 연평도에 도착하자마자 떠나는 주민들의 집 열쇠와 차키를 얻어 겨우 잘 곳과 이동수단을 얻었을 뿐이었다. 정전으로 인해 썩어가는 편의점의 유제품들을 조승연 선배가 공짜로 얻어 와서 다 같이 행복에 겨워하며 실컷 먹고 난 다음날 단체로 설사를 해야 했고, 적십자사에서 주민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주겠다며 운영하는 ‘밥차’에는 식사 시간만 되면 기자들만 어디선가 좀비처럼 나타나서 끼니를 때웠던, 기자들만 가득하고 주민하나 없는 그 때의 연평도와는 무척이나 달랐다.
이미 모든 주택이 재건축되었고 안보교육장에서만 피폭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축구장 같은 주민 체육시설과 편의시설도 눈에 띄고 부두에선 농어 잡이 배들이 열심히 드나드는, 나에게는 낯선, 평화로운 연평도였다. 그땐 접근도 할 수 없던 섬의 북쪽도 모두 개방돼 있어 망향전망대에선 많은 기자들이 쉽게 북한을 바라다 볼 수 있었다. 모든 카메라에는 망원렌즈가 장착되어 있었고 카메라기자들 등에는 MNG장비가 매달려있었다. 매 시간마다 현장 중계를 해야 해서 정작 취재할 시간이 부족한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 선배들이 어렵게 촬영해 특종했던 북한 땅의 갱도와 포를 누구나 쉽게 포착할 수 있는 현재는 우리에게도 더없이 평화로운 연평도였다.
그러나 내가 느낀 그 평화로움은 단순히 멋모르는 내 착각이었다는 걸 며칠 지나지 않아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육지에서 먹기 힘든 맛있는 회를 배불리 먹고 기분 좋게 추억 운운하며 소주 한잔 기울일 때도 그 곳 주민들은 옷을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언제든 북한의 타격이 가해지면 바로 방공호로 뛰어가기 위해 주민들은 평소에도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잔다는 사실. 연평도 포격 당시 내가 연평도를 돌아다니며 봤던 수많은 포탄 파편들은 내겐 그저 추억이었지만 사고 당일 그들이 느꼈던 그 공포는 이틀 뒤에서나 나타나 사후 현장을 누비며 느꼈던 내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2년 반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에게는 큰 변화가 있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2010년을 살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들려오는 포격훈련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는 그들이다.

지금도 북한은 연일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언론사 해킹과는 차원이 다른 그때의 그런 공포를 연평도 주민들이나 아니면 다른 곳 주민들이 또다시 겪을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의 대남 위협에 따라 많은 취재진이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여전히 취재 중인 이 시기에 우리는 천안함 피격 3주기를 맞이해야 했다.
언제 또 이런 비극이 수많은 사람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지 모르나 다만 정부가 나서서 또 다른 비극을 낳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하기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하루빨리 그곳 주민들이 맘편히 두발 뻗고 잘 수 있는, 그들에게도 평화로운 연평도가 되길 희망해본다.

KBS 임태호

사진 캡션 <MNG로 LIVE 현장 중계 중인 KBS 이상원 기자>

List of Articles
제목 날짜 조회 수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인류최악의 원전사고, ‘체르노빌원전사고’를 알린 네 명의 영상기자들 file 2023.11.20 71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Inside Russia: Putin’s War at Home)” file 2023.11.20 95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바흐무트 전투(The Battle of Bakhmut)” file 2023.11.20 100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소감]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 러시아의 소프트파워 (Russian Soft Power in The CAR)” file 2023.11.20 117
모든 것이 특별했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file 2023.11.15 118
지역에서는 이미 불거진 문제, 아쉬움만 가득한 잼버리 조기퇴영 file 2023.08.31 128
2023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도 광주처럼] file 2023.12.18 140
저는 지금 텔아비브의 중심가에 나와 있습니다 file 2023.11.15 145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숙제” file 2023.08.31 178
언론인에 대한 정교하고 다양해진 공격, 직업적 연대로 극복해야 file 2022.11.01 179
EEZ 중국 불법어선 단속 동행 취재기 file 2023.12.21 180
"기후위기 시대의 영상기자’로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 file 2023.08.31 195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 현장 취재기] 뉴스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등지고 서다. file 2022.12.28 197
“첫 취재를 함께 했던 언론인 동료이자 친구인 故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 …팔레스타인의 진실 계속 취재할 것” file 2022.11.01 211
“후쿠시마 오염수, 서로 다른 체감온도” file 2023.08.31 212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발표 취재기 file 2023.12.21 234
[현장에서] ‘세계적 보편성’ 인정받은 ‘세계의 지역성’ …‘ATF2022’와 다큐멘터리 ‘화엄(華嚴)’ file 2023.03.03 241
[현장에서] “독재와 권력에 맞설 우리의 무기는 손에 든 카메라와 마이크입니다.” file 2022.07.01 243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 현장 취재기] 월드컵 역사상 다신 없을 카타르 월드컵 file 2022.12.28 263
[현장에서] 카메라와 아이디어로 담아낸 현실의 부당함과 저항, 인간의 투쟁이 세상의 조명을 받도록 file 2022.07.01 270
외신에 의존하지 않는 한국 시각의 전쟁 취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file 2023.12.21 27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