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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플라자 붕괴 그 후...

방글라데시의 8월은 무더웠다. ‘가난한 나라를 꼽으라고 하면 늘 손에 꼽히는 나라. 그렇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높은 나라.’ 방글라데시에 대해 딱 이정도만 알고 간 출장이었다. 다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휘감는 습한 기운은 비행으로 지친 몸을 더욱 무겁게 눌렀다.
지난 4월,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가 붕괴 되었다. 라나플라자는 세계 유명브랜드의 의류를 만들던 공장들이 모여 있는 건물이었다. 한순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당시 근무하던 1149명의 노동자들이 숨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인재(人災)였다. 사고 4개월 후 찾은 라나플라자 사고 관련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깨를 누르던 그 어떤 것은 바로 방글라데시의 습한 기운이 아닌 이번 취재의 주제였다.
내가 제일하기 싫은 취재, 바로 사고 유가족 취재다. 사고 후 4개월여 남짓 지났지만 당사자들의 상처가 아물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 그들의 설 아문 상처를 헤집고 취재할 수 있을까?.
븡괴 현장은 상당히 정리가 되어있었지만, 아직 가시지 않는 역한 냄새와 함께 실종자를 찾기 위해 몇몇의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 취재를 시작하자 카메라를 본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몰리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 하지만 가슴으로는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내 딸을 찾아주세요.”, “내 아내를 찾아주세요.” 타국에서 온 하얀 얼굴의 취재진에게 유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울부짖었다.
낙후된 의료시설 탓에 치료보다는 신체의 일부를 절단해야 했던, 평생을 사고의 트라우마를안고 살아가야하는 사고의 당사자들은 적절한 보상 없는 지금의 시간을 절망과 함께 보내고 있었다.
붕괴사고 이후 국제사회의 손길이 이어졌고, 방글라데시에 하청을 준 유명 의류업체들은 사고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4개월이나 지났지만 사고의 당사자들과 유가족의 손에는 보상금이 아닌 눈물 닦은 천 쪼가리뿐 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심한나라. 피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금은 다른 힘 있는 누군가의 지갑을 채워줬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의 삶은 구걸이 되었고, 건강하게 재봉틀을 돌리던 누구는 손을 잃은 채 밤새 천장이 무너지는 악몽 속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늘어가고 또 늘어가고 있지만 이런 상황의 근원적인 대책인 노동 환경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단기적인 보상금만 있을 뿐 장기적인 의류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서구의 의류 브랜드들은 가격 단가를 낮추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고, 의류산업을 국부로 인식하는 정부는 외화가 빠져나갈까 노동자들의 인권에 침묵하고 있다.
취재를 하는 동안 열악한 노동환경에 안타까워하고, 또한 이들에 침묵하는 해외의류업체와 방글라데시 정부에 함께 분노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우린 그들의 상황을 더하거나 덜함 없이 카메라에 담아갈 뿐이었다.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방글라데시에서 담아온 것들을 조심스레 풀어놓을 때가 되었다. 하나하나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끌어낸 상처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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