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그 후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주말을 앞둔 파리지앵들이 긴장을 풀고 파티를 즐기던 그날 밤.
파리 시내 한복판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의 표적이 되었다.
불길의 상징인 13일의 금요일이 현실이 될 것이라 생각한 파리 시민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130명의 사망자를 낸 연쇄 테러가 일어난지 한 달이 지났고 파리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증오, 분노에 맞서며 악몽의 흔적들을 지워가고 있는 중이다.
테러 발생 이후 취재를 통해 만났던 다양한 파리지앵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담아 보았다.
scene # 1
11월 15일 일요일.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바타클랑 극장 인근 리퍼블릭 광장.
프랑스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대중이 모이는 집회나 행사를 금지시켰고 가능하면 집에서 나오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였고 함께 기도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시민들은 저마다 가져온 촛불을 밝혔고 그 주위를 꽃다발로 에워싸며 거대한 추모의 제단을 만들어갔다.
- 시민: “작은 초를 켜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희생자들도 우리와 같은 시민들이었고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었겠죠”
scene # 2
리퍼블릭 광장 구석의 기다란 벽이 원색의 페인트로 채워지고 있다.
서너 명의 청년들이 ‘파리, 너를 사랑한다.’라는 문구를 그라피티로 표현하고 있다.
이전 같으면 파리시의 골치 덩어리 낙서였겠지만 오늘은 그라피티가 시민들을 하나로 묶는 연대의 끈이 되었다.
- 그라피티 작가: “우리가 비록 서로 다른 민족 구성원이지만 지금은 같은 프랑스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라피티는 이번 사건에 대항하는 연대감의 표현입니다.”
scene # 3
5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카페에서 수 백 미터 떨어진 소극장.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지나 조그만 문을 밀고 들어가자 benny goodman의 ‘sing sing sing’이 흘러나온다.
배우들은 스윙재즈에 맞춰 춤을 추고 관객들은 흥에 겨워 박수를 친다.
잠시 후 본격적인 코미디 쇼가 시작되고 관객의 입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국가적 재난과 참사 앞에서는 나라 전체가 숙연해지는 대한민국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달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 관객: “그들(테러리스트)에게 우리가 평소처럼 여기에 계속 있고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두운 분위기로 몰고 가선 안됩니다. 계속해서 삶을 끌고 나가야죠.”
scene # 4
5명의 희생자가 있었던 카페 ‘라 본 비에르’가 3주 만에 다시 문을 연다고 해서 아침 일찍 찾았다.
다시 찾은 카페 앞에는 여전히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메세지 등이 걸려있었지만 끔찍했던 테러의 흔적들은
거의 사라진 모습이다. 핏자국이 선명하던 카페 입구의 바닥은 깨끗했고 총탄 자국이 선명했던 유리창은 새로 교체되어
있었다. 종업원들은 단골인 듯한 손님들에게 익숙한 아침인사와 미소를 건넸고 손님들도 카페 앞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카페 간판위에는 현수막 하나가 걸려있다. “je suis en terrasse(나는 테라스에 있다)”
공포 속에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테러에 대한 그들만의 저항 방식이다.
-카페 사장: “우리 카페는 사람들이 서로 오고 가며 정을 나누는 곳입니다. 그 것이 저희의 목적이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매우 감동적입니다.”
-손님: “제가 여기 오는 것은 익숙한 습관 때문이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scene # 5
파리 북부 18구 barbes.
중동계, 북아프리카계 무슬림을 포함해 많은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파리시의 변두리이다.
취재 중에도 경찰차와 무장 경찰의 순찰이 수시로 보인다. 대로변에서는 무슬림으로 보이는 남성의 가방과 옷을
경찰이 샅샅이 뒤지고 있다. 이슬람 사원 촬영을 위해 동네 중심으로 들어가자 무슬림 노인 한명이 노여운 표정으로
당장 나가라고 소리친다. 무슬림의 입장을 듣고 싶어 왔다는 설명도 소용이 없다.
주변 무슬림들의 표정도 싸늘하기만 하다. 테러가 있을 때 마다 무슬림 전체를 범죄자로 모는 따가운 시선과 공권력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한계에 달한 듯 했다. 테러 이후 이슬람 혐오 범죄가 작년 같은 시기와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는 통계가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 무슬림 청년: “페이스북만 봐도 밖으로 나가서 히잡을 쓴 여성과 수염을 기른 이슬람을 쏴 죽이자는 식의
선동이 많습니다. 국가가 이슬람혐오와 관련된 범죄는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이슬람교를 따르는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니까 우리들은 피해를 받더라도 신고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적이 누구인지에 대해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취재 중 파리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일상은 계속 되어야한다”,
“우리의 삶은 지속 되어야 한다”이다. 테러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일상을 유지하며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폭력과 테러는 과연 끝난 것일까,
프랑스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맴돈다.
테러 이후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이전보다 강한 연대감이 생겨났다고 하지만 그 프랑스인들 속에 다양한 이민자들과
프랑스 국적의 무슬림들도 공존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추가 테러를 예방한다는 구실로 국가비상사태를 지속시키며 무슬림에 대한 국가적 폭력을
공공연하게 행하고 있으며 유럽 각국은 국경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비록 결선 투표에서 패하긴 했지만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는 반이민자 정책을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 국민전선이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공권력에 의한 자유의 제한을 수용할 수 있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었다.
타문화에 대한 관용은 점차 차별과 증오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 분위기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자유, 평등, 박애를 어떠한 가치보다 최우선에 둔다는 관용의 나라 프랑스의 현재 모습이다.
최근 아프리카를 방문한 프란시스코 교황은 “폭력과 테러는 공포와 불신, 가난한 삶에 대한 절망과 좌절에서
비롯된다.”면서 공동체 의식을 통해 극복할 것을 강조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차별과 빈곤에 신음하고 방치되어진 사람들 속에서 폭력의 씨앗이 조용히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생각해 볼 문제다.
이영재 / KBS 파리지국 촬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