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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진취재기>

강진 속에서 흔들리지 않음을 배우다


 

여진 느끼셨어요? 좀 많이 흔들리는데요..ㄷㄷ

? 난 모르겠는 디 ㅋㅋㅋ

 

새벽 1, 숙소에서 각자 잘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날 촬영한 영상 파일을 백업하고,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놓고 나니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후배 취재기자가 여진을 느꼈나 보다. 난 좀 둔감해서 못 느끼는 건가? 이 정도 여진이면 크게 위험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난 뒤 벽에 걸려 있는 옷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좌우로 살살 움직이는 게 보였다. ‘흔들리긴 흔들리는가 보다.’

 

몇 분쯤 지났을까.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컵이 드르르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내 몸이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혔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벽이 내 몸을 밀쳐내는 것 같았다. 동시에 옆 다른 벽도 나를 계속 타격했다. TV, 냉장고, 서랍 등 모든 물건이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넘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대로 계속 있다간 방 전체가 건물에서 떨어져 날아갈 것만 같았다. ‘죽는 건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일본에 가야 한다는 말에 부랴부랴 짐을 싸 공항으로 향했다. 임현식 선배의 부사수로 지진 현장 취재를 가게 된 것이다. 오늘의 목표는 9시 뉴스에 피해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 재난재해 지역 출장은 처음이라 촬영기자로서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될 것 같아 마음이 벅찼다. 그런데 진원지인 구마모토로 가는 길이 꽉 막히면서부터는 오히려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고속도로가 파손돼 국도로 차량이 몰린 것이다. 샛길로 빠져 꼬불꼬불한 시골 길을 달리고 달려 830, 드디어 무너진 가옥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10분 만에 서둘러 촬영하고 편집, 달리는 차안에서 이동식 와이파이를 이용하여 곧바로 본사로 송출했다. 국내에선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일본에 와서 방금 촬영한 그림이 뉴스에 나오니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에 쫓겼던 하루였지만, 괜찮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9시 뉴스를 무사히 마치고, 보충 취재를 하고 나니 어느새 자정이 넘어가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시간, 지진은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규모 7.3 강진. 단 한번도 지진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진동이 잠깐 멈췄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카메라만 들고 건물 10층에서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호텔 앞은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와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행히 나도, 임현식 선배도 다친 데는 없었다. 하지만 취재기자는 흔들리는 순간에 나오려다 문에 부딪혀 얼굴에 상처가 나 있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호텔이 내진 설계가 안 된 건물이었다면 아마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계속되는 여진에 넋이 나가 멍청히 있던 나에게 임현식 선배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 상황을 스케치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밤샘 취재가 시작됐다. 근처 공원으로 대피하는 사람들,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구급차들, 무너진 집에서 사람을 구하려는 소방대원들, 구마모토 시내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평소 지진에 익수해져 있을 일본 취재진들도 갑작스러운 지진에 당황하고 허둥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속에서도 임현식 선배 어깨 위 KBS 로고가 박힌 카메라는 침착했다. 아침 뉴스용 파일을 송출하고 난 뒤, 선배에게 혹시 무섭진 않으셨냐고 물어봤다. 선배도 지진 당시엔 이대로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부터는 공포와의 싸움이었다. 지진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취재진이기에 일을 멈출 순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여진 탓에 작은 진동에도 깜짝깜짝 놀랬고, 머릿속엔 그때 기억이 반복 재생됐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혼란스러울수록 침착함을 잃지 않아야 하며 그리고 냉정해 질수 있었던 이유는, 그건 바로 사명감이 아닐까. 우리는 단순히 촬영만 하는 사람이 아닌, 시청자의 대리인으로서 현장을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띤 사람, 바로 촬영기자이기 때문이다. 지진을 직접 겪게 된 건 큰 고통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피해자를 더 잘 이해하며 취재하라는 하늘의 뜻인지도 모르겠다.

 

경험은 중요하다. 오늘의 후배가 내일의 선배가 되듯 어려운 상황일수록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선배는 경험 그 자체였다. 나도 시간이 지나며 선배가 되어갈 것이다.

언젠가 후배가 물어보겠지.

선배! 무섭지 않으세요?“ 

- KBS 촬영기자 조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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